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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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1 · 11 · 15

Mr. Blue Sky

Editor 개굴

 

Mr. Blue Sky – Electric Light Orchestra (1977)

 

그러니까 세기말에 태어난 아이들이 초등학생으로 변신하기 한창이던 2005년 무렵, 자기 키만한 죽도를 들고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검은 도복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매일 검도장을 왔다 갔다 하던 8살짜리 꼬마가 한 명 있었다. 

도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이 꼬마의 관심사는 하나 더 있었는데, 집에 가는 셔틀버스에서 흘러나오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었다. 버스 창가자리에서 다른 청취자들의 신청곡을 듣고 있던 꼬마는 또 그게 뭐가 그리 좋았었을까? 매번 오늘은 무슨 노래가 나올지 기대하며 집으로 향했었다.

 

 

아직도 이 꼬마는 그때 기억에 종종 라디오를 찾는다고 한다.

All we hear is Radio ga ga Radio goo goo Radio ga ga~

 

그러던 어느 가을날, 맨날 앉던 창가 자리에서 이 아이의 인생에 작은 습관 하나가 만들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날은 짝궁 때문에 억울하게 혼나서 화가 났었고, 형 누나들과의 대련에서 여러 번 져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다고나서도 까불어서 한 대 더 맞았었던 것 같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없어서 밥도 혼자 먹어야 했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슬프고 서러운데 설상가상 외롭기까지 한, 8살 어린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느껴진다. 

매우 싫은 날이었지만 하늘은 정말 야속하게도 너무 푸르고 높았었다. 그 어린 꼬마가 ‘그냥 확 비나 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면 말 다 한거 아닐까? 

그런데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노래 하나가 꼬마의 마음에 가득 찬 먹구름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음악을 잘 알지 못할 시절임에도 ‘푸른 하늘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청량했고, 무슨 청춘영화 대사마냥 힘이 들 땐 하늘을 봐!”라고 말하는데 그 손발 오그라드는 감성이 어린 마음에 크게 와닿았나보다. 그렇게 노래가 끝날 즈음엔 서러워서인지 감동받아서인지 모를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떨어졌고, 꼬마의 기분은 많이 나아진 듯했다.

 

 

대충 그날 하늘 같았던 사진.jpg (2021)

 


그때부터인지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하늘부터 쳐다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뭔가 투니버스에서 보던 오글거리는 소년만화의 한 장면 같은데, 그 감성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의 하늘과 음악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날들 중 몇 안 되는 생생한 기억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늘을 우울할 때는 나름대로의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으로, 기쁠 때는 시원함을 더해주는 매개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누가 보면 머리 위에 U.F.O 라도 지나가나 생각할 정도로 자주 하늘을 보는데, 덕분에 내 휴대폰 갤러리와 작은 카메라에는 하늘 사진이 꽉꽉 들어차게 되었다. 날이 좋으면 홀린 듯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그 장면을 렌즈 속에 담아내는 습관도 생긴 것이다. 그래서 찍은 하늘 사진을 보면 대충 그날의 기분도 알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아마도 저 비행기 타고 도망치고 싶었나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어릴때와 마찬가지로 하늘을 자주보곤 했다. 어떨 때는 학교 도서관 옥상에서 몇 시간 동안 멍때리며 구름 지나가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집에 가는 버스를 일부러 몇 대 놓치면서 하늘구경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분 좋은 일로 하늘 보는 일이 많아져야 하는데, 성인이 된 후부터는 별로 그러지 못한 것 같다. 20살 인생의 중심이 되어버린 신촌을 오가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새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게 감정의 가장자리를 드러내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텅 빈 통장 잔고가 나를 반기는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차라리 아무 생각 안 하고 하늘을 보는게 절실했던 것 아닐까? 참 소탈한 현실도피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푸른 하늘 아래 멍 때리는 시간이 늘어갈 즈음, 연세로 끝에서부터 시퍼런 옷을 입고 밤새 신촌을 누비던 새내기 시절 즐겨 듣는 노래가 하나 생겼는데 바로 이 글의 제목인 Mr. Blue Sky다. 

특히 지금도 아침에 어딘가로 향할 때 많이 찾는데, Morning! Today’s forecast calls for blue skies라고 인사를 건네는 도입부가 참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던 ‘오늘은 꼭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좋은 일이 생기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마법의 주문 한 마디 같은 느낌이었다.

 

 

아아, 여기는 신촌! 맑은 하늘은 준비됨! 좋은 일 나와라 오버!

 


신나는 인사말과 함께 피아노가 경쾌하게 귓속의 문을 두드리면, 드럼이 문을 열고 베이스와 기타가 반갑게 마중 나오듯이 1절이 시작된다. 어떤 날은 이 부분만 몇 십번을 돌려서 들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아마 나에게도 좋은 일들이 그렇게 마중 나와줬으면 하는 소망이 투영되서였나보다.

그렇지만 막상 기분 좋게 신촌의 입구에 들어서서 문을 열면 마중 나오길 바랐던 좋은 일은 별로 없고 책임져야 할 무자비한 현실들이 나를 반겨줬다.

“어른이 되면 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철없이 검도장 가는것만 좋아하던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서 별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20살이 되고 당연히 생길 줄 알았던 좋은 일들 대신 마주한 책임들은 참 많이 무서웠다. 

그래서인지 좋은 일에 대한 짝사랑이 거하게 실패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멀쩡하게 새파랗던 대낮의 하늘색이 칙칙한 미드나잇 블루로 변하는 것 같은 환상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파란색이 우울함을 뜻한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럴때는 하늘도 보기 싫어서 땅 아래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런 소탈한 현실도피가 일상이던 20살의 나는 지구가 태양을 네 번 돌아 다섯 바퀴 째를 돌기 시작하며 24살이 되었고, 무자비한 현실들과 타협하며 가서 좋은 일 좀 불러오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올해 5월쯤엔 ‘굳이 오지도 않는 좋은 일을 그만 찾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무력감이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전 세계적 대재난 덕분에 국방색 하늘 아래 사회랑 거리를 두는 동안 계획했던 일들이 전부 망가졌고, 여러 현실적인 사안들이 기막히게 맞물려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무언가를 마주하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려져서 소라게 마냥 하루 종일 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하늘과 담쌓고 칩거 생활을 하던 중 답답한 마음에 휴대폰 플레이 리스트를 켜고 Mr. Blue Sky를 찾아가 물어봤다. 

 

 

“저기 대체 좋은 일이 뭘까요? 좋은 소식과 함께 찾아가고 싶었는데 항상 우울한 일만 계속 들고 가니 죄송스럽네요…”

 

 

 Mr. Blue Sky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얼마 후 이렇게 대답하셨다.

 

“Runnin down the avenue 

See how the sun shines brightly

In the city on the streets Where once was pity,

Mr. Blue Sky is living here today”

 

 방에 틀어박혀서 그 부분을 며칠이고 다시 생각해 보니 8살 인생 최악의 날이 하늘 한 번 바라봤다고 좋은 기억으로 바뀌었던 것처럼, 일상의 사소함을 좋은 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뇌를 찌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계속 노래 가사를 곱씹으면서 요즘은 “그냥 맑은 하늘 한 번 보는 게 좋은 일인 거야”라고 주변에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신촌 거리가 아무리 최악이어도 푸른 하늘은 항상 내 머리 위에 살고 있어서 기분이 괜히 울적하면 슥 바라보면 되는, 사소하지만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좋은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소라게에서 바닥에 붙어있는 따개비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을 보며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쩐지 요새 이 노래를 들으면 Welcome to the human race!라는 가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데, 내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Mr. Blue Sky의 작은 선물 아닐까 싶다. 덕분에 무더운 신촌의 7월 8월 내내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사소한 좋은 일들을 눈에 담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기억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쓸 수 있는 기회까지 받게 되었다.

 

 

어쨌건 내 머리 위에는 항상 좋은 일이 있을거야

 


블루, 파란색을 뜻하는 단어는 언뜻 보면 활기차 보이지만 우울함 등등의 부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마치 과거의 내가 보았던 미드나잇 블루로 물든 하늘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면과 작별을 고하고 생기 넘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그래도 퍽퍽한 이 시국에 사소한 좋은 일이라는 숨구멍 하나가 뚫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하늘 위에 떠있는 푸른 장미 하나를 보고 새로운 인연을 찾을지도?

그래서인지 요즘 가끔 신촌 하늘에 고래가 떠 있으면 어떨까 하는, 8살 꼬마도 듣고 한숨을 쉴 만한 상상을 하곤 한다. 나 말고도 고개를 떨구고 사는 신촌러들에게 그나마 하늘 한 번 보게 해주는 좋은 구실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신촌에, 그것도 바다가 아닌 하늘에 고래가 떠있다니 제법 사소하지 않은 찰나의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나도 그 덕에 눈치 안 보고 하늘 좀 실컷 바라볼 수 있으니 신촌러들이나 나에게나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아무튼 신촌러 여러분들  Morning! Today’s forecast calls for blue sk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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