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REMIND INTERVIEW: 몽롱문방구
우리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우린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 아닐까? 변화가 없다면 이 순간을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피플팀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기록으로 남겨둔 당시의 우리는 인생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고, 우린 또 다시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피플팀이 기록했던 사람들의 ‘한 때’를 이어 ‘지금’을 다시 써내려가고자 리마인드 인터뷰를 기획했다.
‘몽롱문방구’는 우연히 눈에 들어온 글이었다. 문방구라는 추억 속의 단어에 이끌려 클릭했더니, 문구점이 아니라 술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 있을까 찾아봤지만 이미 영업이 종료된 곳이었고, 사장님의 마지막을 알린 몽롱문방구의 마지막 페이스북 게시물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몽롱문방구에서의 여정이 끝났을 뿐, 사장님은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 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새로운 여정을 하고 계셨다.
몽롱문방구 페이스북
겸조그라픽 인스타그램
사장님을 만나 새롭게 하시는 일과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에 대해 여쭤보기로 했다.
Q. 겸조님, 안녕하세요! 몽롱문방구 인터뷰 기억나세요?
안녕하세요. 기억나죠. 그때 횡설수설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잘 들어주시고, 정리도 잘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몽롱문방구를 2년 6개월 정도 했었는데 인터뷰 했을 당시는 2년 정도 된 후반이었을 거예요.
Q. SNS를 보면 몽롱문방구는 단순히 술집이라기보다는 여러가지 활동을 하시는 거 같았어요. 페이스북에 다양한 손님들을 소개하면서 캐리커쳐도 그려주시고, 시 낭독 같은 행사도 하시더라구요!
제가 원래 디자인, 예술 쪽이어서 23살 쯤 홍대 앞에서 캐리커쳐를 했었어요. 보통 캐리커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리면서 손님과 대화하려고 했어요. 계속 가볍게 질문을 던지다가 결이 맞으면 인터뷰처럼 대화를 이어나가는 거죠. 이런 대화들은 ‘몽찌’라고 제가 했던 작업이랑 이어져요. ‘꿈을 담은 뱃지’라는 말인데 뱃지 제작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뱃지에 그림을 그려 만들어드렸어요. 만들면서 나눴던 이야기는 따로 옆에 적어두었다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어요. 처음엔 용돈 벌이로 시작했지만 몽찌와 캐리커쳐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게 재밌더라구요. 이런 활동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러던 와중에 SNS에 제가 올린 인터뷰를 보고 투자 제안을 받아서 몽롱문방구를 차리게 됐어요. 그러니까 몽롱문방구를 하게 된 이유는 공간에 대한 니즈가 가장 크죠.

Q. 그럼 몽롱문방구를 하시게 된 계기가 ‘청년들을 위한 아지트 마련’이셨던 거네요. 청년들이 몽롱문방구에서 서로 질문을 주고받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모습들을 봤을 때 행복하다고 하셨어요. 여기서 질문이란 어떤 질문인가요?
기본적으로 다들 질문을 품고 있잖아요. 일을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 방향이 맞나 이런 기초적인 고민들이요. 이런 고민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으려고 많이들 공부하고, 글도 읽고, 사람들도 만난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도 그렇고요. 그때 당시에는 사람들의 꿈이 뭘까, 어떤 게 되고 싶어하는 걸까,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나는 어떻게 나아가는게 좋을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던 거 같아요.
Q. 몽롱문방구를 그만두신 후 겸조그라픽으로의 과정이 궁금해요.
사실 제가 음식을 못해요. 제가 요리에 흥미가 없다는 걸 요리를 즐거워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은 요식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렇다면 내가 더 즐거워하는 건 뭘까 고민했어요. 공간을 기획해서 오픈하고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경험하면서 ‘나는 콘텐츠를 만들고 브랜드 기획하는 걸 재밌어하구나’라고 느꼈어요. 몽롱문방구가 당시에는 특이한 디자인이기도 했고, 페이스북 마케팅도 효과적으로 쓰며 재밌게 운영되다보니 실제로 기획이나 디자인과 관련해서 의뢰가 많이 들어왔었어요. 몽롱문방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의뢰를 전부 받지는 못하고 조금씩 해드렸었는데, 규모가 점점 더 커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굳이 가게를 운영할 필요 없이 이쪽 길로 가는 게 맞다는 결정을 했고, 가게를 정리했어요. 몽롱문방구는 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준비 단계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식점을 한 번 해봤기 때문에, 음식 하시는 분들에 대한 니즈도 알게 되었고, 그때 알게 된 분들이랑 일로 연결되면서 도움도 받았어요.
Q. ‘겸조 그라픽’ 인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겸조는 저의 호예요. 이름대신 쓰는 호요. 그래서 문겸조가 아니라 그냥 겸조예요. 근데 이번도 그렇고 저번에 인터뷰를 할 때도 저를 문겸조 사장님이라 소개해주셨더라구요.(웃음) 겸조의 뜻은 겸손 겸에 만들 조예요. 저한테는 ‘겸손하게’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서 작명가분이랑 같이 만들었고, 가까운 사람들도 다 저를 겸조라고 불러주니 겸조라는 키워드가 저에게는 의미가 있죠. 어차피 프리랜서 때도 ‘겸조’라는 활동명으로 작업을 해왔으니까, 겸조를 좀 더 브랜드로 내세워봐야겠다 해서 그래픽 사업자를 등록할 때 ‘겸조그라픽’으로 정했어요.
Q. 겸조그라픽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일러스트와 헤리티지를 기반한 FnB* 브랜드 에이전시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FnB: Food and Beverage
단단하고 야무지게 겸손히 만들겠습니다 (배너 클릭시 홈페이지 연결)
Q. 헤리티지 브랜딩을 생소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기다움’ 같은 것들을 고민해왔어요. 몽롱문방구든 몽찌든 저의 방향을 고민하면서 했던 작업들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계속 저는 저만의 자기다움을 찾아왔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당신의 자기다움을 찾아드리겠다는 개념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 같아요.
“변하지 않는 무언가들이 있거든요. 그게 하나의 기록이에요. 역사, 헤리티지요.”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브랜딩을 한다는 건 ‘당신의 역사를 들려주세요.’와 같은 거예요. 가게에 이렇다 할 역사가 없으면, 운영하는 사람의 역사를 들어보는 거죠. 그게 어려울 땐, 파는 상품의 역사를 파고드는 거죠. 이런 식으로 헤리티지를 브랜드 가치와 연결 시켜서 비주얼로 뽑아내는 게 저희가 재밌어하는 작업이에요. 사실 오래된 노포같은 가게들이 프랜차이즈처럼 그들만의 역사 없이 겉만 화려하게 변하는 게 되게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브랜드 작업을 할 때 오래된 것들은 그 헤리티지를 살려서 요즘 느낌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작업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작업을 맡기시는 분들이 전부 이런 작업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이건 제가 표방하는 바에 불과하죠. 또 자기다움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저희가 해야되는 부분은 이걸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Q.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많죠. 저희가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안 올린 것들이 더 있어요. 이 말은 꼭 써주세요(웃음). 사실 ‘신분당선 숯불구이’가 기억에 남아요. ‘신분당선 숯불구이’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고깃집을 아드님과 같이 하게 되면서 의뢰를 주신 거예요. 오래된 숯불구이 집이라 디자인을 바꾸면서 매출도 늘리고 싶어하시는 등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아드님이 부모님과 같이 일하게 된 스토리가 있는데 가게에는 하나도 드러나있지 않았어요. 이 헤리티지를 손님들에게 드러내자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냥 글로 적으면 재미가 없으니까 만화 형식으로 풀어서 재밌게 가자는 생각이 들었죠.
신분당선 숯불구이 이야기
그리고 ‘신분당선’이라는 이름을 바꾸고 싶어 하셨는데 저는 오랫동안 쓰신 이름도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이걸 아예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게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전철 느낌을 더 살려서 디자인했죠. 지하철 표지판 같은 것들이 추가로 더 설치하자고 제안을 드렸던 부분이에요.


그리고 제가 이 작업에 좀 더 마음이 갔던 게, 사장님이 천 만원을 들여서 놀이방을 만드신 거예요. 저는 이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굳이 돈들여서 만들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데, 가족 외식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드신 거예요. 근데 놀이방이 사장님 생각만큼은 잘 안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뭔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여기에 스토리를 만들어 드렸어요.

사장님이 했던 말을 제가 좀 편집해서 쓴 거예요.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느끼시잖아요. 지금도 연락 하셔서 너무 좋다고 하세요. 그리고 매출이 느셨대요! 물론 이것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저희가 어느정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요. 솔직히 고깃집을 가면 일반적인 고깃집이잖아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고, 가격 밖에 눈에 안들어와요. 물론 단골들은 알겠죠. 근데 새로 오신 분들은 모르니까 ‘여기를 운영하는 사람은 이렇다. 이 사람의 헤리티지는 어떤 거다.’ 이런 스토리들을 좀 더 피력하려고 했어요.
Q. 사장님이 SNS에서 사용하신 ‘시간의 주름’이라는 말이 인상이 깊어요.
책에서 읽었던 말 같은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단어예요. 저는 시간 같은 흐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전에 오래된 공간들을 그리는 작업으로 전시를 한 적도 있어요. 옛날의 그 시간들, 때묻은 건물들이 좋아요. 의뢰도 그런 느낌이나 감성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런 걸 저는 꼬질꼬질하다고 해요. 제 그림들이 다 꼬질꼬질하죠. 몽롱문방구 만들었을 때도 친구들이 놀러와서 꼬질꼬질하게 잘 만들었다고 하면서 딱 너 가게 같다고 그랬어요. (웃음)
Q. 하셨던 활동들이 다양하면서도 전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사장님은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아가시는 것 같아서 부러워요.
맞아요. 그 맥락이 저에겐 중요해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제가 걸어왔던 그 맥락이랑 연결되지 않으면 스스로도 납득을 못해요. 24살 때 플리마켓을 했었는데, 사실 그것도 연결이 돼요. 그때 제가 원도심* 재생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서 엄청 돌아다녔어요. 방학 때 한 작가님께 찾아가서 여기서 살게 해주시면 안되냐고 부탁해서 세달인가 살았어요. 그때 경험한 게 대전 원도심 플리마켓이랑 ‘닷찌 플리마켓’이에요. 또 기자님과 함께 인천 원도심이랑 아트 플랫폼을 기획하신 분을 인터뷰 해보기도 했어요. 이런 활동들이 저한테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했었던 몽땅 플리마켓도 천안 원도심 프로젝트의 일종이었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부동산 자체에 관심이 있었어요. 특히 도심 공간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고, 가게같은 것들도 상업 부동산이랑 연결이 되거든요. 지금도 그런 상업 부동산, 테넌트, 개발에 관심이 많아요. 이렇게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삶에 만족하게 됐어요. 누구든 더 나아질 생각을 하듯이 저도 살이 빠졌으면 좋겠고, 좀 더 건강했으면 좋겠고 그렇기는 하죠. 그렇지만 지금의 삶이 제가 계속 꿈꿔왔던 삶이거든요. 예전에는 이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왔어요. 이런 고민들에 질문이 만들어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과정 덕분에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원도심: 도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도심지 역할을 한 지역. 다른 도심지가 생겨나기 전에 형성된, 도시의 오래된 중심 부분이다.
Q.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원래 없던 길을 걷다보니 스스로 개척해야 할 것도 많구요. 좋아하는 것을 일로 연결 시키는 과정에서 가지신 고민이나 생각들이 궁금해요.
우선 좋아하는 것과 일을 연결 시키려면 꿈을 꿈으로만 놔두는 게 아니라 꿈을 깨야 해요. 흔히 말하듯 ‘야, 꿈 깨!’라는 의미로 꿈을 꾸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꿈을 현실화시키는 거예요. 좋아하는 게 있으면 무조건 해봐야한다고 생각해요. 꿈으로만 놔두면 안되죠. 근데 그냥 제가 재밌어하고 즐거워하는 것들만 쫓았으면 아무것도 안됐을 것 같고 일단 시작을 했으면 결과를 짓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앞에서 말했듯 ‘겸조’가 ‘겸손하게 만든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마무리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뜻도 있거든요. 제 꿈을 시작하고 그걸 실행했으면 마무리를 지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어떤 형태이든지요.
그러니까 배로 비유를 하면 항해를 하는 거예요. 배를 타고 가다가 이 배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배로 갈아타고 싶어졌어요. 그렇다고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면 안되잖아요. 선착장에 선착할 때까지 가야 돼요. 내리는 건 그 다음이죠. 꾸준하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이런 책임감 있는 마무리로 맺은 신뢰 덕분인 것 같아요.
Q. 사장님께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주의나 신념은 별로 안쓰고 싶어요.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이라고 하지만 그건 질문만 남는 개념이라고 보면 돼요. 앞서 얘기했듯이 기록, 역사, 헤리티지처럼 변하지 않는 무언가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 당장의 자기다움은 없는 거 같아요. 저도 계속 변화하고 있거든요. 제가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은 무엇일까?라고 말하는 건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이 있긴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인 거 같아요.
Q. 저번 인터뷰와 같은 질문으로 마무리해볼게요. 사장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재밌게 살고 싶어요. 건강하고 재밌게! 그리고 겸조 그라픽의 캐치 프레이즈로 내걸었듯이 야무지고 단단하게 살고 싶어요. 작업을 의뢰 받으면 ‘각자의 자기다움을 잘 찾아서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으로 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로 단단하고 야무지게 살고싶어요.
허세 없고 실속 있게!
……
변하지 않는 ‘자기다움’이란 무엇일까?
자기다움이란 결국 질문 자체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스스로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과 대답들은 차곡차곡 쌓여 헤리티지가 되었다. 캐리커쳐부터 몽찌, 몽롱문방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겸조그라픽까지의 모든 것들이 사장님의 헤리티지이자 ‘자기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을 항해로 비유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시작할 용기보다 끝을 마주할 용기가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호기롭게 응원을 받으며 시작한 항해가 내가 원한 목적지를 향한 경로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 금방 돌아와버린 배에 실망할 사람들의 얼굴이 두려워 맞지 않는 길로 계속 나아가거나, 무작정 바닷 속에 뛰어들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선박장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용기말이다. 하나의 항해를 마무리한 다음 타고 있는 배를 바꾸어 경로를 변경하더라도 그 모든 경로들은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경로들이 바로 우리의 헤리티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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