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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 · 11 · 02

364. 숨어있는 책, 노동환 사장님

Editor 오월

 

안녕하세요, 사장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신촌에서 <숨어있는 책>이라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노동환이라고 합니다. 헌책방을 하기 전에는 출판사 생활도 조금 했고요. 책을 좋아해서 헌책방을 시작했는데 벌써 <숨어있는 책>을 운영한지 23년이 넘었네요.

 

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신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숨어있는 책>은 199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헌책방을 시작할 때 문학, 인문사회과학, 예술 분야의 책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책방을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헌책방 특성 상 다른 서점처럼 책을 공급 받는게 쉽지는 않지만 처음에 마음 먹었던 책방의 성격을 계속 유지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벽면과 바닥을 가득 채운 책
책에 압도되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꾸준히 사랑받는 한국문학을 모아둔 코너
사장님의 애정이 물씬 묻어나온다

 

<숨어있는 책>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출판사 생활도 잠시 하셨다고 했는데 어떤 이유로 헌책방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사실 맨 처음에는 일반회사를 다녔어요. 그런데 그 회사에 적응이 어려웠고, 제가 어렸을 적부터 좋아했던 ‘책’을 다루는 출판사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어요.  하지만 출판사 생활이 제 생각과 달리 힘든 점이 많았어요. 기획, 편집, 교정 등의 업무를 24시간 내내 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고 조직생활도 저와는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죠.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컸기 때문에 자연스레 ‘책방’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당시만 해도 조그마한 독립 책방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학교 앞에서 자습서나 참고서 혹은 베스트셀러 정도를 다루는 책방이나 대형 서점들만 있었던 시절이었죠. 저는 그런 책방은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웃음).

무엇보다 헌책방이 저에게 익숙한 공간이여서기도 했어요. 저는 국민학교 2,3학년 때부터 동네에 있는 헌책방을 드나들었어요. 그때는 학교 주변에 헌책방이 꼭 한, 두 개씩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헌책방을 다니기 시작해서 <숨어있는 책>을 시작하기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만 되면 헌책방을 꼭 방문했어요. 헌책방을 다니는 게 일종의 취미생활이였다고 할까요? 

사실 책방을 손님의 입장에서 다녔기 때문에 운영은 어렵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데 저는 헌책방 운영에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헌책방 단골손님이 되면서 헌책방에서 책을 공급받는 루트도 알음알음 알게 되었고, 여러 헌책방을 많이 다녀보면서 이런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구해와서 나만의 헌책방을 차리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저는 인문,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해당 분야의 책을 모아놓으면 손님들이 좋아하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편집샵 같은 거죠. 그런 생각들이 결국 지금의 <숨어있는 책>을 만들게 되었네요. 

 

평범한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을 택하신 이유를 더 자세히 듣고 싶어지네요. 

결국 헌책방이라는 공간만이 가진 매력에 끌렸던거죠. 우리는 보통 필요한 책이 생기면 그 책을 사기 위해서 책방을 가잖아요. 그런데 헌책방은 달라요. 꼭 어떤 목적 때문이 아니라 그저 헌책방 서가 서가 사이를 누비는게 즐거움이예요. 그리고는 헌책방을 나설 때 자신이 사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책 한권을 꼬옥 안고 나가게 되는게 바로 묘미 아닐까 싶어요. 저희 가게 이름처럼 말그대로 ‘숨어있는’ 책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헌책방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일반 책방이 아니라 헌책방을 시작했어요. 

 

보물을 찾아보는거야

 

투박하지만 부여되어 있는 나름의 질서. 그것도 재미

 

많은 지역 중 ‘신촌’에서 헌책방을 운영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인문, 문학 분야의 책들이 많은 책방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곳을 방문 하고픈 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오길 바랐어요. 그래서 교통이 편한 쪽에 위치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더군다나 신촌은 유동인구도 많은 동네잖아요. 특히 제가 헌책방을 처음 열었을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는 대학생 손님들도 꽤 많이 방문을 했었어요. 여러 대학들이 모여있는 신촌이라는 공간의 이점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골목 끝에는 누가 숨어있을까? 숨어있는

 

신촌 그리고 그 주변의 헌책방
지도의 표시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헌책방을 찾는 손님들의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요? 여전히 대학생 손님들의 방문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 손님들의 평균 나이가 20대 후반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분들이 많이 이곳을 방문했었죠. 그리고 지금 20년 세월이 흘렀잖아요?  책방의 세월과 함께 손님들의 평균 연령대도 고스란히 올라갔습니다(웃음). 그 시절 저희 책방을 찾아주셨던 분들이 그대로 책을 보고 또 이 공간을 방문하고 계신 거죠. 그리고 초창기에는 많이 다루지 않았던 서지적으로 의미 있는 낡은 책들도 구비해놓기 시작하면서 5-60대 고연령층의 손님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어요. 아쉽게도 20대 손님들은 줄었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의 방문은 많이 줄었네요. 종이책에 대한 애착이 많이 사라진 까닭이 아닐까 싶어요. 그들에게 종이책은 더 이상 익숙한 매개체도 아니고요. 

 

1999년부터 <숨어있는 책>을 운영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오랜 기간 신촌에서 헌책방으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자기자랑 타임인가요? (웃음) <숨어있는 책>의 초창기 인상이 강했으리라 생각해요. 제가 이전부터 헌책방을 다니면서 모았던 책과 출판사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의 책. 이렇게 두 명의 책을 모아 시작을 했어요. 한 6~7000권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도매 성격의 헌책방을 오랫동안 다니면서 제가 주로 다루고자 했던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모아왔기 때문에 책의 구색이 꽤나 좋은 편이었어요. 사실 헌책방 특성상 원하는 분야의 책을 제대로 갖춰 놓기가 다른 책방에 비해 훨씬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을 채우는 책들을 더 신경 써서 모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역마진 혹은 노마진의 책들까지도 수집해오기도 했어요. 제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초창기에 우리 책방에 있는 책들의 구색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그런 노력이 손님들에게도 와닿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과장 조금 보태서, <숨어있는 책>을 가면 문학, 인문사회과학, 예술 분야 관련 책들은 전부 볼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시게 된 거죠. 

그리고 매스컴의 후광도 있었어요. 출판저널이라고 지금도 나오는 잡지가 있는데, 출판사를 다녔던 직원이 출판사를 나와서 헌책방을 차렸다는 이야기가 실렸어요. 그리고 그 인터뷰가 일간지에 소개가 되면서 대중적인 홍보가 되었어요. 와보면 아시겠지만 책방이 작은 동네 골목에 위치해 있잖아요. 그런데도 여러 지역에서 손님들이 일부러 이곳을 찾아 방문하시게 된 거죠. 그렇게 한번 이름을 알리고 난 후에는 우리 책방의 책 구색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어요. 뻔하지만 꾸준한 노력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숨어있는 책, 숨 

 

거의 20년이 넘어가는 오랜 시간동안 책방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중간에 한눈파신 적은 없으셨는지, 다른 일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으셨을 것도 같아서요.

사실 하나를 오래 하다 보면 답답한 점은 당연히 생기는 것 같아요. 저도 오랜 기간 책방을 운영하다가 10년 전쯤에 그런 순간이 왔었어요. 한마디로 헌책방이라는 공간 그리고 저라는 사람의 정체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방 운영이 어느정도 안정화되면서 제가 초창기에 가졌던 열정이 사그라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책’을 완전히 떠나서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오랜 책방 운영에서 오는 매너리즘의 돌파구로 생각했던 건 분점이었는데요. 파주 출판 단지에 <숨어있는 책> 2호점을 냈었죠. 결국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요. 또 출판사 일을 병행할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의 역량부족으로 현재는 이곳 신촌의 <숨어있는 책> 운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웃음).

 

책을 떠난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에서 사장님의 여전한 열정이 느껴지는걸요! 오랫동안 책방을 운영하신만큼 책방과 관련한 재밌는 에피소드들도 많을 것 같아요.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책방 그리고 책방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꽤 긴 시간동안 책방을 운영했기 때문에 알 수 있던 것들이라고나 할까요. 

먼저, 책에 대한 손님들의 애착이 달라진 걸 느껴요.  40대 후반 정도의 연령대가 책을 쌓아두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거든요. 그들은 책의 상태나 수준에 상관없이 책을 갖고 있으려 하고, 책이 쌓여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책을 쟁여놓는 겁니다. 현재 40대 후반의 손님들이 제가 처음 <숨어있는 책>을 열었을 때 열정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던 20대 손님들이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세대가 바뀌어 갈수록 책을 고르는 기준이 더 깐깐해지는 걸 느껴요. 아무래도 디지털 매체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원하는 책들만 가지고 있으려 하고 그마저도 요즘에는 종이책이 많이 줄어들다 보니 책에 대한 애착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그리고 손님들이 많은 시간대도 바뀌었답니다. 초창기 운영할 때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은 7시에서 9시였어요. 퇴근하면서 책방에 들린 손님이 많았다는 뜻이죠. 책방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직장 혹은 학교를 마치고 책방을 들리는 게 하나의 루틴처럼 일상에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저녁 시간대에 방문하는 손님이 현저히 줄어들었어요. 저녁 손님들은 거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해요. 저녁에 일을 마치고 책방을 방문하는 그 문화가 사라진 게 많이 아쉽긴 해요. 

말하고 나니 재밌는게 아니라 조금 씁쓸한 이야기 같기도 하네요(웃음). 그래도 이런 흐름들을 발견해내는 나름의 재미가 있어요. 바뀌어 가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요.

 

1999년 부터 ing

 

저는 <숨어있는 책>이라는 가게의 이름이 굉장히 인상깊었는데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어요. 

가게를 시작할 때 상호명을 어떻게 정하면 좋을지 많이 신경 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저도 책방을 시작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름을 떠올려봤는데, 정말 ‘책’이 들어가는 말들은 다 지어본 것 같아요(웃음). 아내와 함께 몇 날 며칠 고민을 하다가 ‘숨어있는 책’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이 말을 들었는데 느낌이 딱 오더라구요. 그 이유는 제가 헌책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똑 닮아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헌책방을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그리고 헌책방을 갈 때마다 제가 서가 어딘가에 숨어있는 책을 발견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방문하시는 손님들도 이 곳에서 숨어있는 책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숨어있는 책을 발견하는 기분이라니. 정말 멋진데요? 그러면 헌책방 <숨어있는 책>만이 추구하는 컨셉이나 방향성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까요?

맞아요. 저는 옛날 헌책방 스타일을 일부러 유지하고 있기도 해요. 많은 책들을 막 쌓아두는 옛날 골목 헌책방 같은 느낌이죠. 요즘 책방들처럼 깔끔하게 분류,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서가에 채 꽂히지 못한 책들도 정말 많아요. 

사실 이건 저의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인데요. 사람들은 보통 책을 읽기 위해 구매하잖아요. 저는 달라요. 저는 책을 고르는 게 좋아서 책을 사요. 이 책이 우리 책방에 필요한지 아닌지를 고민하면서 책을 고르는 순간이 정말 즐거워요. 그런 저의 고민들이 모여서 우리 책방에 어울리는 책들이 점점 채워지니까! 책을 읽지는 않고 고르기만 해서 얇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하지만요(웃음). 그래서 가게 이름 <숨어있는 책>처럼 손님들이 이곳에 와서 꼭 책을 사가지 않더라도 여러 책들을 구경하고 발견해가는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

 

아직 책방 문은 본격적으로 열지도 않았다

 

자 이제 시작이야 숨어있는 책 

 

<숨어있는 책> 입구에서부터 높이 쌓아진 책탑들이 그간 사장님이 책에 쏟으신 애정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사장님은 이 많은 책들의 위치를 전부 아시나요? 손님들에게는 어떻게 안내하시는건가요?

사실 전부 다 알고 있지는 못해요(웃음). 초창기 책방을 열었을 무렵에는 아주 잠깐이지만 책 위치를 다 알고 있던 때도 있었지만요. 그래도 대강 손님들이 찾으시는 책의 위치는 안내해드릴 수 있죠. 제가 직접 서가를 꾸려 나가니까요. 

책이 서가에 꽂히기 전까지 제가 책을 최소 2번에서 3번은 보는 것 같아요. 처음 책을 고를 때, 그리고 책을 정리하면서 가격을 정할 때, 마지막으로 서가에 꽃을 때. 그러다 보니 책이 나가는 거는 잘 몰라도 책이 언제 들어왔고 어디에 위치해있는지는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손님들이 물어보시는 책이 어디에 꽂혀있을 거다 싶은 감이 와요. 그러면 해당 서가로 안내해드리는 거죠. 

 

그렇다면 이 많은 책들 중에서 사장님이 특별히 아끼시는 책이 있나요? 

제가 모았던 책들을 내놓으면서 그 책들로 헌책방을 초창기에 꾸려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때 영화 관련 분야의 책들은 다 내놓지 않고 조금 남겨놓았어요. 90년대에 가장 큰 대형서점인 교보문고를 가도 영화 코너에는 책꽂이 반 칸 정도 남짓한 책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영화 관련 서적들을 각종 책방에서 모으다 보니 책꽂이 두 개 정도를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만의 취미로 영화 책들을 가지고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체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모으다 보니 영화 관련 책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죠. 그래서 이제는 그 책들도 거의 다 가게에 내놓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영화와 관련된 책은 많이 아낀답니다.

 

about MOVIE

 

사장님의 취향 가득! 

 

따로 수집하시는 책이 있기도 한가요? 

특별히 수집한다고 표현하기는 그런데 제가 느리게 내어놓는 책은 있어요. 바로 ‘책방’에 관한 책들이에요. 제가 꼭 한 번쯤은 먼저 읽어본 뒤에 내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근 들어서 책방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으로서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싶죠.

 

헌책방에 있는 책들의 흐름이 알고 싶네요. 예전에는 어떤 책들이 많이 나갔나요? 그리고 요즘은 어떤 책들이 <숨어있는 책> 서가를 많이 채우고 있나요? 

제가 거의 2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해왔는데 딱 절반으로 나눠서 10년씩 흐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초창기 10년에는 문학 분야의 책이 가장 많이 나갔어요. 저희 책방 판매량의 50퍼센트 이상을 문학이 차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최근 10년의 경우에는 문학 판매가 10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외국책 분야의 판매가 늘어났죠. 주로 철학 쪽 서적이에요. 제가 생각했을 때, 문학을 예전만큼 많이 안보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외국 언어로 된 서적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수요가 예전에 비해 늘어났어요.

 

알 수 없는 언어. 그 낯섬이 끌릴 때가 있다

 

최근 젊은 독립 서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책을 구매하는 곳임과 동시에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의 역할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렇게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요즘 책방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헌책방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것도 시대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책방 주인이 좋아하는 책들로 공간을 꾸며놓고 손님들과 교감하는 점은 멋있다고 느끼죠. 그런데 요즘 책방들은 아주 소량의 책들만 구비해놓잖아요. 그런 부분이 제가 추구하는 바와는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못할 것 같아요(웃음). 책이 많이 쌓여있어야 즐거운 사람이거든요. 

저는 책을 파는 순간보다 책을 구매하는 순간을 더 좋아해요. 우리 책방에 어떤 책을 들여놓을지 고민하고, 또 책들을 사서 서가에 꽂는 그 과정이 가장 즐겁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책들로 저의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게 좋고, 채우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많은 책들을 한가득 쌓아놓고 채워 넣는, 지금 제가 운영하고 있는 <숨어있는 책>이 좋네요. 

 

그렇다면 다른 책방이 아닌 <숨어있는 책>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책방들은 책을 찾거나 보는 걸 굉장히 편리하게 해놓는 반면 헌책방은 그렇지 않아요. 책들은 많이 쌓여있고 서가 사이는 비좁고. 책을 편하게 골라 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죠. 우리 책방도 그래요. 입구부터 책이 가득 쌓여있고, 정리를 채 못끝낸 박스 상자가 곳곳에 놓여있고. 하지만 이런 옛날식 헌책방만이 가진 매력은 바로 쌓여있는 책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방이 크면 정말 행복했어요. 책방이 넓으면 둘러볼 맛이 있거든요. 책이 많을테니까요. 그리고 책방이 좁더라도 책이 많이 쌓여있는 곳을 좋아했어요. 높이 쌓인 책을 하나씩 치워가면서 보는 게 재미고 매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해요. 보물찾기 하듯 헌책방을 누비는거죠.

또, 저는 <숨어있는 책>을 시작할 때 주로 다루고자 마음먹었던 분야의 서적들은 1단계에서부터 10단계까지 전부 다 구비해놓으려고 노력했어요. 손님들은 우리 헌책방에 방문해서 자기가 필요한 단계의 책을 원하는대로 골라갈 수 있으신 거죠. 다른 책방에서는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취향이 매력이 되는 순간 

 

이거야말로 숨!어!있!는

 

사장님의 자신감이 드러나는데요(웃음). 저는 헌책방하면 매니아층이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숨어있는 책>에 꾸준히 방문하시는 단골손님이 있나요?

제가 책방은 막 열었을 시점인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오시는 손님들은 몇 분 계세요. 짧으면 일주일 혹은 한 달, 길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기적으로 책방을 방문하시고는 해요. 그런 손님들이 오랫동안 안 보이다가 보이시면 굉장히 반갑죠. 저희 책방에 꾸준히 오셨던 단골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한 몇 년간 안 오셨어요. 그러다 최근에 다시 책방에 오셨는데 하시는 말씀이 외국으로 유학을 다녀오셨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손님을 만나 뵈어서 반가움도 컸고 무엇보다 <숨어있는 책>을 시간이 흘러도 잊지 않고 찾아주신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누구신가요? 그 분도 단골손님이신가요?

네(웃음). 단골손님이셨는데 굉장히 연세가 많으셨어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책을 볼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책방에 오셔서는 책을 두 뭉치씩 꼭 사가시더라고요. 심지어 서울에 거주하지도 않으셔서 신촌에 있는 저희 책방까지 오시는데 여간 어려우신 게 아니었거든요. 몸도 많이 불편하셨는데 말이죠. 그 어르신에게는 헌책방을 와서 책을 둘러보고 고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활 패턴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이 곳을 방문하는 게 당신의 즐거움이자 삶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제는 그 손님을 못 뵙는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네요. 

 

사장님은 책을 좋아하시나요? 또 어렸을 적 책방에 자주 방문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네. 책 좋아합니다. 좋아했었고요. 어렸을 때 책방도 자주 갔었어요. 그때 책방에서 삼중당 문고를 참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나요.  ‘삼중당 문고 세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1970년을 전후해 값싼 문고본 책이 쏟아졌거든요. 요즘으로 말하자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같은 거예요. 대지, 개선문, 제인 에어 그런 책들 알잖아요. 정말 재밌었죠.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어렸을 적 습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책방에 들렀던 것 같아요. 

사실 어린 나이부터 이렇게 책방을 다니는 게 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독특한 취미였죠. 사실 따지고 보면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활자를 좋아한 것 같기도 해요. 글자를 읽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죠. 그래서 책을 남들보다 더 많이,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한 칸 남짓 남아있던 어린이 분야 서적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은 아쉽게도 없었다

 

헌책방 사장님이라 하면 인생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사장님의 인생 책 한 권을 추천받고 싶습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사실 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굉장히 난감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 인생을 바꾼,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런 책을 딱 한 권 고른다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런데 만약 인생을 어떤 길로 가게 했냐라는 의미에서 인생책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모든 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종이책에 빠져서 그 모든 책들을 한가득 쌓아둔 헌책방의 사장이 되었잖아요.

 

사장님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
책으로 둘러싸인 인생이란 말이 단지 비유적 표현만이 아니었음을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실 저는 손님들이 이 공간을 방문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꼭 여기서 책을 사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모아놓은 많은 책들을 손님들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그래도 손님들이 책방에서 감정과 기쁨을 표현해주시면 그때가 정말 뿌듯하죠. 특히 책을 구해 가는 기쁨을 이야기해주실 때. 한 손님이 오랫동안 찾아 헤맨 책을 여기서 드디어 발견했다고 말해주셨는데 그런 말들이 참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그럴 때 <숨어있는 책>이 책방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네가 원하는 책이 여기 중 하나는 있겠지 . jpg
오랜 시간 찾아 헤멘 종착지가 될 수 있는 까닭이다

 

손님들은 주로 어느 시간대에 책방을 방문하시나요? 또 손님들께 가장 추천드리는 책방 방문 시간이 있을까요?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가 가장 많은 손님들이 방문하는 시간이에요. 손님들께 추천드리는 방문 시간은 특별히 없어요. 이곳 <숨어있는 책>은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열려있으니 언제라도 방문해 숨어있는 책을 발견해가시길 바랍니다. 

 

사장님의 인생을 24시간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은 몇 시쯤 된 것 같나요?

오후 5시쯤이요. 제가 <숨어있는 책>을 운영해온 시간들을 24시에 빗대어본다면 그렇네요. 조금은 어두워져오는 시간 그리고 점점 더 어두워질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한 헌책방의 현재 위치라고나 할까요. 확실히 예전 같은 위상은 아니니까요. 

제가 이 책방을 언제 그만둘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오후 5시지만 당장 1시간 뒤인 오후 6시에 그만둘 수도 있어요. 아니면 밤 10시에 그만둘 수도 있겠죠. 그런데 오후 5시가 완전히 깜깜해진 시간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깜깜한 밤이 오더라도 불을 켜놓을 수 있는거 잖아요. 조그맣게라도 불을 켜놓고 <숨어있는 책>과 밤을 함께 하고픈 바람은 있네요. 

 

사장님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밤 9시에서 10시 사이를 가장 좋아해요. 책방을 마감하는 시간이거든요. 맥주 한 잔과 함께 여유를 즐기고는 합니다(웃음).

 

<숨어있는 책>이 손님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자리했으면 좋겠는지 사장님의 바람이 듣고 싶습니다. 

‘사장님 여기 문 안 닫으실거죠?’ 최근 들어서 손님들한테 이런 말을 많이 들어요. 그래서 왜 그러시냐 여쭤보니 최근에 책방들이 문을 많이 닫아서 여기도 문을 닫을까 걱정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그냥 ‘계속할 거예요’ 라고 답해요. 

얼마 전에 일본에 계시다가 코로나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손님이 책방에 오셨는데, 공항 도착해서 바로 저희 책방부터 들리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전히 있어서 좋다’라고 하시는데.. 그게 제가 손님들에게 자리하고픈 우리 책방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손님들을 떠나지 않는 공간으로 말이죠. 책을 다 내놓으시고 그분이 나가시면서 하는 말씀이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꼭 다시 찾아올 테니 그때까지 꼭 있어줬으면 좋겠다였어요. 어디를 또다시 멀리 떠나시는 건지는 몰라도 그 손님의 바램처럼 제가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해가야죠. 

이곳 신촌에서 <숨어있는 책>의 자리를 지키는 게 제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장님에게 <숨어있는 책>이란?

뻔한 말이겠지만, 제 인생이죠. 제가 <숨어있는 책>의 문을 닫는 날은 일 년에 딱 이틀뿐이에요. 설날과 추석 당일. 그 이틀을 빼놓고는 매일같이 책방의 문을 열고 닫아요. 그리고 모든 저의 생활은 이 안에서 이루어지죠. 책을 채워놓고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오랜 친구들과도 여기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죠. 제 아내와도 함께 일하고요. 마감을 하고 난 후, 맥주 한 캔의 여유도 즐긴답니다. 정말 저의 생활 모든 게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져요. 그래서 <숨어있는 책>을 빼놓고는 저라는 사람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삶입니다. 노동환의 삶.

 

 

 

사장님은 헌책방의 매력이 가득 쌓인 책을 치워가며 숨어있는 책을 발견해내는 재미라고 하셨다. 보물찾기하듯 말이다. 나도 이곳에서 보물찾기를 성공했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보물은 숨어있는 이 아닌, 숨어있는 책에서의 인터뷰였다. 그저 헌책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감성이 좋아 결심한 인터뷰가 헌책방을 빼놓고 자신의 인생을 말할 수 없다는 이의 삶에 빠져드는 순간이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3시가 조금 안되어 시작한 인터뷰는 시곗바늘이 5시를 가리킬 때 끝이 났다. 절대 짧지 않은 2시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만큼 나는 녹아 들어가 있었다. 이는 이 곳에 담긴 사장님의 열정, 애정 그리고 정 때문이었으리라. 손님이 이곳에서 뜻밖의 책을 발견해가는 즐거움을 얻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사장님께, 나의 즐거움도 꼭 전달해드리고 싶다. 노동환 사장님과 진행한 인터뷰가 잊지 못할 뜻밖의 보물이었음을. 나른한 오후,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진행한 2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남기고 간다. 

신촌의 수많은 시간이 쌓인 이 곳, <숨어있는 책>에서.

 

서툰 인터뷰어의 질문에도 진심어린 답변으로 응해주신 노동환 사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여기 앉아 진행된 이번의 인터뷰 또한 그 오랜 발걸음에 힘이 되기를

 

 


숨어있는 책 Instagram @hiddenbook_sinchon

Since 1999

매일 13:00 – 22:00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 12길 30 지하 1층 숨어있는 책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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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곰탱이
    곰탱이 2024.10.15 00:01

    숨책만큼 넓은 우주가 있을까요? 신촌에서 가장 멋진 장소입니다. 헌책방의 A to Z가 다 있는 곳.
    이 헌책방서 7~90년대 책을 배웠습니다. 믿을수없이 저렴한 책값, 헌책방계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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