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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2 · 11 · 04

186. 토리호람

Editor 로스

24시 #D54902

 

소소한 요리술집

신촌 토리호람

 

 

불은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잔잔함을 담고 있다.

 

 

드디어 주말의 시작이 다가왔다는 기쁨을 느낄 시간이 왔다. 이번 주의 마지막 수업이 평일과 함께 끝났다는 사실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내게 소소한 해방감을 주었다. 끊임없이 흘러나온 콧노래는 메들리가 되어 신발장까지 따라왔고 신명나는 집안일로 이어졌다. 한 주의 끝, 그리고 달콤한 주말. 충분히 아름다웠다.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했던가. 밤이 찾아오자 변함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이 통하였는지, 서로는 당연한 것처럼 만나기로 하였고 그렇게 나는 신촌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신나게 놀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다.

허나 그런 기쁨 속에서도, 평일이 끝났다는 행복 뒤, 복잡한 마음 또한 느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주말 후에 다가올 새로운 한 주에 대한 막막함. 이런 감정들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거움을 몸소 느끼는 중이었기에 시끌벅적하게 오늘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만난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촌의 골목길 외곽에 있는 한 가게로 향했다. 요리주점 ‘토리호람’이었다.

 

 

아늑함이 느껴지는 입구

 

 

연세대 정문에서 신촌으로 향했을 때 오른쪽의 두 번째 블록, 그 골목길의 끝으로 가면 하얀 간판이 보인다. ‘요리주점 토리호람’이라고 적힌 간판은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찾기 쉽게 불이 켜져 있다. 네온사인으로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는 가게들과 달리 잔잔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금요일이지만 늦은 시간이었기에 건물 주변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늘 같은 기분은 친구와 한 잔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 좋겠다 생각하며 가게의 입구로 발을 들였다.

 

 

 영화 <나니아 연대기>가 떠오르는 전등

 

 

토리호람은 작은 건물의 2층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게 이름이 적혀 있는 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면 주황색으로 칠해진 벽과 토리호람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불이 켜지지 않은 조그마한 전등이 위에 달려 있다.

 

 

 

토리호람, 소소한 요리술집.

 

 

그러고 나서 보이는 가게의 문. 마찬가지로 주황색 빛깔이 가득한 문이 활짝 열린 채 손님들을 맞이한다. 언제나 변함없이 열려 있을 문에 붙어 있는 종이에 적힌, 토리호람에 대한 굵고 짧은 소개.

 

‘소소한 요리술집’

 

소소한 해방감과 복잡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날, 이 기분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불 타는 금요일이 아닌 소소한 금요일의 밤 24시를 장식하기에 적절한 문구다. 

“어때? 아무리 금요일이라고 하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기엔 딱 좋은 술집 아니야?” 라고 친구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마음에 들었으리라. 친구의 표정에도 은근한 걱정과 피곤함이 묻어나오는 듯 했으니.

 

 

 

 

 

가게에 들어가니 곳곳에 붉은 색들이 보인다. 간판에서 느꼈던 안락함이 가게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것 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어두운 벽, 갈색 테이블과 대비되는 붉은 의자들을 보니 따뜻한 벽난로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런 포근한 인상을 주는 인테리어 속에서 테이블은 가게 안에 총 5개 존재한다.

 

 

 

 

벽에 붙은 조그만 책장과 장식품들, 시간이 느껴지는 벽 사이에 서니 어떤 자리에 앉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중 창문이 있는 구석의 자리에 앉았다. 둘이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한, 꽤 소소한 위치 선정이었다.

 

 

 

 

 

기본 안주가 담긴 그릇도 주황색, 물 마실 잔도 주황색. 재미있는 점은 모두가 같은 주황색이 아닌, 저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지녔다는 것. 하지만 모든 잔과 그릇이 가게의 인테리어 그리고 분위기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아늑한 인테리어와 조명이 나와 친구를 감싸주니, 서둘러 안주와 술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일단 시키고, 금요일의 대화를 해보자는 것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BEST 라는 단어가 떡하니 붙어 있는 메뉴인 ‘구운도미’. 이곳 요리주점 ‘토리호람’에서 제일 잘 나가는 메뉴라 할 수 있다. 

“도미? 구운 도미?” 신촌의 주점에 와서 도미 요리를 먹을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친구에게 한 마디를 했다. “왜? 독특하잖아?” 평소의 금요일하고는 다른, 그런 독특한 오늘에 어울리는 메뉴이지 않을까? 토마토와 크림 중에서 소스를 선택하기도 해야 하는 메뉴인 구운 도미. 꽤 특이하긴 하다. 우리의 도미와 함께 할 소스는 크림으로 결정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 나만의 무조건적인 스타팅 메뉴였으니 말이다.

어떤 술을 시켜야 할지 딱히 고민은 되지 않았다. ‘평일의 끝이자 주말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뒤에는 ‘오늘 불에 타진 않더라도 소주는 마셔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주종 또한 골랐으니 주문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먼저 나온 소주와 함께 곧 나올 메뉴를 기다리면서 친구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고학번들의 대화란 다 그런 것인지, 이야기는 한탄으로 출발했다.

“이번 주 과제는 다 냈어?” 

“아니? 아직 채플도 다 못 들었어”

 “야 우리 인생 반성 좀 하자 진짜” 

“반성도 반성인데 종강이든 뭐든 좀 쉬고 싶어.. 반복되는 학기 너무 지친다”

 

 

술을 부르는 비주얼의 구운도미 + 크림 소스

 

 

그렇게 한숨을 반복하다보니 드디어 기다리던 메뉴가 나왔다. 울상 짓던 얼굴은 음식을 보자 어느새 설레는 표정으로 탈바꿈했다. 토리호람의 베스트 메뉴인 구운도미 with 크림. 비주얼부터 눈을 확실하게 사로잡는다. 버섯과 양파와 같은 야채들을 제치면 등장하는 생선은 소스까지 함께 하며 독특함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손에 들린 젓가락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구운도미로 향한다. 살점을 크게 잘라 한 입 넣었을 때의 그 맛.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살코기와 크림 소스의 달달한 만남은 이내 입 안에서 눈처럼 녹는다. “왜 여기 오자고 했는지 알겠다”라는 친구의 대답에 괜스레 흐뭇해졌다.

바삐 움직이던 손은 잠시 후 멈췄고, 도미 요리가 담겨 있었던 그릇은 텅 빈 상태로 바뀌었다. 그 옆의 깔끔하게 비워진 소주 병은 덤. 우린 자연스럽게 메뉴판을 다시 쳐다보았다. 당연하게도 다음 안주가 또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공간인 주방도 주황 빛을 드러낸다.

 

고기치즈그라탕은 푸짐함과 스페셜함을 다 가졌다.

 

 

그렇게 주문하게 된 두 번째 메뉴. 사장님의 오피셜, ‘구운도미with크림’ 다음으로 잘 나가는 메뉴라고 하셨기에 고민하지 않고 주문하게 된 메뉴인 ‘고기치즈그라탕’이다. 고기와 치즈가 함께하는 그라탕을 처음 보니 위에 가지들로 덮여 있었다. 역시 메뉴가 바뀌어도 독특한 비주얼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단 맛과 짠 맛의 공존이 느껴지고, 앞의 메뉴인 도미하고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을 준다. 고기와 치즈는 ‘우리도 베스트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물론 가지도 포함이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로 감싼 가지의 조화를 부드럽게 씹는다.

 

아, 술이 더 필요하다. 

 

새로운 메뉴와 술이 끝없이 들어가니 친구와 나의 대화도 조금씩 무르익어간다. 긴 대화와 긴 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면서도 어쩌면 내일 아침에 눈 떴을 때 기억하지 못할 것들. 그래도 이러한 시간을 우린 목말라 한다. 

“있잖아. 나는 같은 인생을 살고 싶었어. 아니, 지금도 그렇게 살고 싶어. 그래서 서울로 온 건데, 매번 똑같은 학교 생활과 똑같은 일주일이 반복이 돼.” 

반복되는 과제와 시험, 학교 수업들에 내 자유를 빼앗긴 것만 같고 여유가 뭔지 기억도 잘 안나는 요새였다. 오늘의 분위기가 나의 짐을 덜어준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야기는 술술 나오게 되었다. 또 소주 잔을 비운 친구는 자신도 요새 같은 기분이라며 공감을 해줬지만 둘 다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음, 너는 휴학해야겠다.” 라는 농담과 함께 둘은 다시 술을 들이켰다.

 

 

 

 

“인생 별 거 없어.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같이 하면 되지.”라는 말을 한 번씩 듣곤 하는 우리였지만 공감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 말은 자유와 별거하고 있는 이들이 그 사실을 잊기 위해 내뱉는 말이라 생각했으니까. 다들 아닌 척 하면서도 힘들어하고 또 갈망하잖아? 물론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멋을 느끼긴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에겐 어줍잖은 위로처럼 느껴지니까.

그래서 친구의 말이 더 좋았다. “사실, 다 필요 없고, 소주 한 잔이 진짜 위로가 될 때가 있어.” 그래, 친구랑 맛있는 안주 먹으면서 소주 한 잔 하며 밤을 보내는 게 위로지, 소소하지만 진짜인 위로. 복잡한 생각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잠깐의 시간이 이런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구와 함께 조용한 가게에서 옛 추억을 얘기하는 이 시간도 나중엔 새로운 추억으로 바뀔 것이니 말이다.

 

 

 

 

밤은 깊어졌고 시간은 24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금요일 밤에서 어느덧 토요일 새벽이 되었고 신촌 거리의 불도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가게를 나서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사실 24시간이라는 것도 똑같지 않을까? 하루의 끝 혹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지만 그것은 내 입장에서 임의로 라벨을 붙인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어쩌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항상 불이 켜지고, 또 꺼질 토리호람처럼.

‘매일 똑같아’ 에서 ‘매일’을 빼고 ‘오늘도 끝났어’ 에서 ‘오늘’을 지워버리면, 긴 시간에 구분선을 긋지 않는다면, 반복이라는 단어에 휘둘리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의 답답함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 오늘 토리호람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로소 불처럼 자유로워진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은 겉으로 보았을 땐 쉬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잔잔하고 변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삶이 하나의 거대한 연속체인 것처럼. 

이렇게 흔들리거나 답답함이 내게 찾아올 때, 토리호람이 내게 그런 공간이 되어주길 바란다. 벽난로의 불처럼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쉼터가 되어주고 동시에 내가 더 불을 더 지필 수 있는 장작이 되어줄 수 있는 공간. 변함없이 소소하게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줄 공간. 

 

다른 이들에게도 토리호람이 그런 요람같은 곳이 되길 바라며.

 

 


토리호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9길 32

월 – 일 17:00-04:00

02-322-2993

 

로스
AUTHOR PROFILE
로스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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