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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 · 12 · 21

370. 응원이 값진 이유, 서강대학교 응원단 트라이파시 제 12대 총단장 유형선

Editor 오월

네o버 지식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익명의 작성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써 올렸을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 뿐인 응원이 정말 힘이 될 수 있나? 일면식도 없는 익명의 누군가를 응원하고, 또 응원을 받는게 의미가 있을까?

 

글에는 여러 답변들이 달려있었다.

 

답변을 읽다 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 글을 작성한 익명의 누군가는 분명 큰 힘을 받았을 것이라고. 어쩌면 살아갈 이유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나조차 가슴 한 켠이 따스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응원이란 그런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녀석이다. 그저 뱉는 순간 사라져버릴 것 같은 말뿐인 응원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에디터는 신촌에서 ‘응원’을 전하는 이를 찾아가 인터뷰해보았다. 신촌의 청춘, 신촌의 대학생. 신촌이라는 공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들에게 직접 응원을 전하는 응원단을 만나러.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강대학교 응원단 <트라이파시> 제 12대 총단장 11기 유형선입니다. 

 

서강대학교 응원단 <트라이파시>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트라이파시>는 지성, 야성, 감성을 두루 갖춘 서강인을 응원하는 열정의 마에스트로라는 뜻으로 서강대학교 산하의 독립적 학생단체입니다. 2010년 창단이 되어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봄가을 축제, 응원대제전 TROS, 단독공연 그대에게 등 각종 교내 행사를 기획 진행하며 서강대학교 문화의 중심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교외적으로는 치어리딩 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는 등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산하의 독립적 학생단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일반적인 대학교 동아리와는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아리는 학생들이 모여서 자체적으로 구성한 단체잖아요? 그런데 학생단체는 학교에서 직접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만든 단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학교 교직원, 교수님들이 직접 학생들을 모아 학교의 독립적인 산하 단체로 응원단을 꾸려갔습니다. 아무래도 학교와 조금 더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단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학교의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혜택도 있지만 그에 따른 무게와 책임도 무겁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서강대학교 응원단이 만들어진 특정 의도는 무엇인가요? 

일본에 조치대학교와 서강대학교가 SOFEX라는 이름으로 교류전을 진행해왔던 게 있었어요. 조치대학교에는 응원단이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는 그런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에서 응원단 <트라이파시>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죠. 조치대학교와의 교류는 현재 지금 끊겼지만 그 명맥을 이어오며 대학 문화의 중심으로 남아있습니다. 

 

 

제 12대 총단장으로서의 활동을 마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은퇴 후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2022년 올해 일 년간 제 12대 총단장으로서 활동을 마치고 은퇴를 했는데요. 현재는 휴학생 신분이라서 집에서 열심히 휴양을 하고 있습니다.(웃음) 피로도 많이 쌓여있는 상태고 수면 패턴도 많이 바뀌어서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 하는 중입니다. 거의 매일 같이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연습을 안 하니까 몸이 불어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운동도 시작했고 밀렸던 독서도 조금씩 시도를 …

 

총단장이라고 소개를 해주셨는데 직책이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응원단의 총단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대외적으로 응원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으며 응원단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총단장의 독립적인 업무로는 매주 전체 단원들과 진행되는 총회의에서 의장으로서 진행을 하고, 교내 외 단체와 소통하며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합니다. 그렇지만 응원단의 단장인 만큼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대 위에서 관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리딩 하는 것이죠. 

 

 

응원단에 들어온 계기나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별한 저만의 계기가 있던 건 아닌데 저는 옛날부터 무대에 서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제 마음이 편한 그런 활동들을 했었어요. 그냥저냥 무난한 활동들 있잖아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니 그렇게 안정적인 선택만 해왔던 것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제 고등학교 친구가 본인이 하고 있는 응원단 활동을 추천을 해줬어요. 사실 그 친구는 저보다도 동적인 활동에 거리가 먼 친구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무대 위에서 정말 행복해하고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잘하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런 사소한 계기로 3년간 이 응원단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운명같이 느껴지기도 하네요.(웃음)

 

응원단에 들어오셨을 때 가장 꿈꾸고 기대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응원단에 들어온 처음부터 응원에 대한 숭고한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웃음)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제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극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되게 컸어요. 그리고 응원단 활동을 함께하는 단원들이랑 이곳저곳 놀러다니는 거! 다만, 제가 2020년도에 대학교에 들어왔는데 그때는 코로나 상황도 많이 안 좋았고 인원 규제도 있어서 놀러 다니는 건 물론이고 활동을 대면으로 하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단원들과 이 정도까지 친해질 수 있었다는 게 놀랍고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대면활동이 어려웠던 작년, 11기 단원들과 함께 나갔던 천안 흥타령 대회

 

총단장을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해지네요. 또 총단장을 맡게 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트라이파시는 회칙상 최고 간부(총단장, 교육단장, 기획단장)의 직책에 대해서는 별도의 절차 없이 전대의 단장이 지명을 하는 방식으로 후대 최고 간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저도 11대 총단장님의 지명으로 12대 총단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지명받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다른 단원들도 놀라서 뭐? 너가 총단장으로 지명되었다고? 이랬던 게 기억이 나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간부진도 아니었고 신입기수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단도 아니었거든요. 제 친구들이랑 가족들도 정말 놀라더라고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반장 이후로 리더의 자리에 서본 적이 없던 사람인지라…(웃음) 그런데 전대 총단장님이 명쾌하게 저를 지목한 이유를 말씀해 주셨고 그 진심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총단장의 자리에서 트라이파시라는 단체를 이끌어가는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신념이나 가치가 있을까요? 

총단장이라는 자리에 지명을 받고 가장 먼저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균형’을 맞추는 것. ‘균형’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었어요. 사실 제가 어떠한 신념을 지니는지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자신이 우선시하는 가치를 단원들과 나누고 그들을 설득해서 단체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올 한 해 함께 나누고자 했던 가치는 균형이었던 거죠. 저를 제외하고도 서로 다른 54명이 모인 단체잖아요? ‘응원’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같이 달려가기는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도 다를 거고 그 목표가 본인에게 얼마나 깊게 다가오는지 정도의 차이도 있을 것이거든요. 그래서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총단장인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많은 인원을 이끌어가셔야 했는데 그에 대한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제가 총단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오면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성장 중에 하나가 많은 인원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반장 경험이 마지막인데..(웃음) 당연히 그때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잖아요. 가치관이 모두 정립된 54명의 성인들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 많이 부담이 된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이 경험이 나에게 자양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많이 부딪혀보고 배워가려고 노력했어요. 그 과정 중에 많은 실수도 있었어요. 심지어 앞서 말씀드렸던 제가 총단장의 자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념인 ‘균형 맞추기’가 무너졌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바랐던 대로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 어려움에서 내가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며 발버둥을 쳤던 기억이 나네요. 

 

 

2년간 단장단원으로 활동하셨고 1년을 총단장으로 활동하셨는데 일반 단장단원으로 활동했을 때와 총단장으로 활동하셨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네요. 첫 번째는 해야 할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다는 점. 평단원 때는 단장들의 가이드를 따라 안무 연습에만 집중하면 되었거든요. 그런데 총단장은 누구도 일을 던져주지 않아요. 직접 문제와 태스크를 정의하고 찾아내야 하죠.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게 많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내는 작업 자체도 굉장히 신경 쓸게 많잖아요? 그런데 a 공연 안무를 연습하면서 b 공연도 기획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면서 외부 단체와 c 찬조공연도 해야하는 게 다반사거든요. 동시에 소통하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놓치는 게 생길 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 시간을 주체적으로 관리하는 게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빨단에서 검단으로!

 

4년이라는 대학 생활 가운데 3년이라는 시간을 한 단체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응원단이라는 단체가 가진 어떤 매력 때문이었을까요?

온 힘을 다해서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다른 공연 단체와 다르게 응원단은 단원 한 명 한 명이 주목 받을 수 있지는 않아요. 전체적인 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단체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응원단의 특성이 역설적으로 개개인의 책임과 역할에 힘을 실어준다고 생각했어요. 한자리만 공석이 생겨도 전체 합이 무너져버리기도 하고요. 내가 곧 응원단이라는 생각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기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네요. 그게 응원단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1년간 트라이파시가 진행한 행사 및 무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우선 겨울방학(1-2월)에는 신학기 맞이 응원 주간을 맞아 서강의 학우분들을 응원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곡을 선정하여 새내기들의 앞날과 청춘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영상을 제작했고요. 지금까지 트라이파시가 밟아왔던 발자취를 보여주는 ‘기수곡 메들리’ 콘텐츠를 선보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인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유튜브 영상을 배포했습니다. 

5월에는 <응원대제전 TROS>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대면 공연을 진행했고 여름방학(7-8월)에는 여름 콘텐츠를 제작했는데요. 서울대학교 응원단과의 콜라보를 진행하고 트렌드에 맞춰 여름릴스를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9월에는 <서강문화제>라는 학교 축제 무대를 섰고 <천안 흥타령 대회>를 준비하여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1월에는 정기공연이자 단독공연인 <그대에게>를 진행했습니다.

 

올 한 해동안 정말 많은 무대와 행사들을 진행하셨네요! 그렇다면 이번 1년간 진행한 여러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건지 궁금해지는데요? 

저의, 그리고 12대의 첫 번째 대면공연이었던 응원대제전 TROS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앞서 응원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불특정 다수 앞에서 무대를 서는 거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런 저의 동경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이러니까 무대에 중독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던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단체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본다면 3년 만에 재개된 대면공연이었거든요. 직접 학우분들과 만나 서강의 대표곡들을 부르고 같이 FM을 외칠 수 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응원단 한 팀이 1시간 30분 동안의 시간을 꽉꽉 채우며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는 점에서 트라이파시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트라이파시는 그간 많은 액션곡과 리딩곡을 무대에 선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애정하는 곡이 있으신가요? 

저는 관객들과 하나 되는 느낌을 받는 리딩곡을 더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곡인 ‘그대에게’를 고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서강대학교 신해철 선배님이 부르신 곡이기에 당연히 큰 애정을 가지고 있고요. 또한 서강을 대표함과 동시에 트라이파시를 대표할 수 있는 곡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이 들어요. 그리고 무대를 하면 할수록 ‘그대에게’라는 곡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는 걸 느끼는데요. 제가 직접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무대를 서고 관객들과 마주하다 보니 진심이 된다고나 할까요? 가장 반응이 좋은 곡이기도 하고요 당연히. 항상 저희 트라이파시 무대에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곡이랍니다.

 

2년간 단장단원으로 활동하실 때에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대면 행사를 거의 경험하신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대면 무대를 서며 많은 학우 및 관객들과 직접 마주하셨는데 떨리지는 않으셨나요? 

제 인생에서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뛰어 본 적이 없어요. 첫 대면공연인 TROS가 바로 떠오르는데요. 무대 오르기 직전까지도 너무 떨려서 온몸이 굳었었는데 인트로 무대를 끝내고 마이크를 잡자마자 너무 신나더라고요. 정신줄을 놓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아요.(웃음) 무대 뒤에서 수차례 외우고 준비했던 대본이고 뭐고. 그냥 하염없이 즐겼던 것 같아요. 제 인생 경험 중 최고였어요 그날이. 

 

무대 전에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함께 무대를 오르는 단원들에게 해주는 말이 따로 있으신지도 궁금하네요

사실 어떤 무대를 설 때마다 그 직전의 긴장과 떨림에 적응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자기암시를 했어요. ‘즐기자’ 계속 되뇌었어요. 솔직히 응원단 활동을 하는 이유는 결국 즐기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무대에 서있는 사람이 즐겨야지만 관객들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단원들한테도 재밌게 무대를 즐기고 오자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긴장한 탓에 그 말을 해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런 제 마음을 느꼈길.(웃음)

 

수많은 관객 앞에서 무대를 하실 때 기분은 어떠신가요? 정말 짜릿하다는 말을 해주셨는데요. 

맞아요.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진심으로요. 저는 총단장으로서 관객들을 이끌고 리딩하는 역할을 했잖아요. 제가 어깨동무~!!라고 외치면 수많은 관객들이 다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함성 발사~!!를 외치면 수백수천 명이 같이 함성을 질러주시고. 아마 무대를 함께 오른 단원들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끝내주는 순간이었죠. 

 

 

많은 관객 앞에서 진행되는 현장감 넘치는 무대인만큼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도 많이 발생했을 것 같아요. 무대 위나 아래에서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가장 최근 공연이었던 <그대에게>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이 나는데요. 환복을 자주 했어야 했는데 대기실에서 환복을 하고 무대 위로 올라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냥 무대 옆쪽 빈 공간에서 환복을 했어요. 프라이버시 뭐 그런 건 생각할 것도 없이 단복을 훌렁 벗어던지고 있었는데 관객석 왼편에 계신 관객분과 눈이 딱! 마주쳐버린 거예요.(웃음)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겨우 정신 차리고 마저 환복을 진행했네요. 물론 어둠 속에 있어서 크게 곤란한 상황은 아니었답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제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끌어야 했을 때도 있었어요. 무대 올라가기 전에 대본을 준비하는데 <그대에게> 공연은 대본을 완벽히 준비하지 못했었거든요. 4-5분의 시간을 즉석으로 메꿔야 했던 순간이 있는데 머리에서 생각도 안 거치고 정말 아무 말이나 했던 기억이 나요. 냅다 ‘저를 응원하러 오신 분 계시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했었는데요. 공연을 하면 할수록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점점 느는 것 같기는 해요. 뻔뻔해진다고나 할까요?(웃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2년을 겪었고 그 이후 대면 행사가 점차 가능해지는 올해, 응원단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서게 되셨습니다. 많은 고민과 어려움들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공연팀 모두가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신입 기수로 응원단에 입단을 했던 때가 2020년이었는데 그때부터 모든 대면활동이 중단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점차 대면활동이 가능해지는 시점이 되었는데, 대면 공연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기획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이전 대에 선배들이 남긴 인수인계 파일들을 보며 틀을 잡아갈 수는 있었지만 직접 대면 공연을 경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선배님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A부터 Z까지 정말 꼼꼼하게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2년간 단절되었던 트라이파시의 응원을 어떻게 하면 학우분들께 잘 전달할 수 있는가였어요. 그래서 5월에 진행한 응원대제전 TROS의 경우 트라이파시의 리딩곡들을 전부 세트리스트에 포함시키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콘서트를 가보시면 알겠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공연보다는 같이 소리 지르고 뛰어놀 수 있는 공연이 훨씬 재밌잖아요. 그런 점에서 관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리딩곡을 많이 무대에서 보여드리자라고 생각했죠. 그런 저희의 고민과 노력이 학우분들께 잘 와닿았다고 느낀 순간은 물론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반응도 있었지만 학교 커뮤니티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거든요. 예상보다 더 잘 즐겨주신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을까요?

‘역시 트파다’ ‘공연 팀 중에 트파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축제에 연예인 안 왔는데도 정말 즐거웠다’ 이런 반응을 남겨주셔서 굉장히 뿌듯했어요. 고학번 선배님들 같은 경우에는 옛날 생각나서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저 같은 20학번 이후에 입학하신 학우분들은 그 흔한 새내기 오티도 못 가봤거든요. 그런데 리딩곡을 함께 따라 부르며 FM도 외치고 했던 게 학교에 대한 애정도 가지게 되고 끈끈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그래서 좋은 반응이 따라왔던 거고요. 

 

‘리딩곡’이 학우분들의 좋은 반응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해주셨는데 정확히 어떤 곡들을 리딩곡이라 하는건가요? 

리딩곡은 관객들에게 정확하게 요구되는 동작이나 구호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액션곡과는 가장 다른 점이에요. 보다 적극적으로 관객이 응원단의 공연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는 노래인 것이죠. 간단한 율동 수준의 안무, 어깨동무, 함성 등이 곡 중간중간 포함되어 있어요. 가장 쉽게 생각하려면 학교마다 FM이 있잖아요. 저희 학교 같은 경우는 청년! 서강!이라는 FM을 가지고 있어요. 이렇게 FM을 외치는 것들도 모두 리딩곡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들이에요. 

 

 

신촌에 있는 타 대학 응원단과 교류를 하신 경험이 있나요? 응원단끼리의 교류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신촌에 있는 타 대학과의 교류가 진행된 적은 아쉽게도 없고요. 과거에는 일본 조치대학교와 SOFEX라는 이름으로 교류전을 진행해왔고 이번 여름방학 때 서울대학교 응원단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올해는 타 대학과의 교류에 있어서 첫단추를 꿰매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서울대학교 응원단과의 합동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지속가능성’ 이었습니다. 단발성 콘텐츠가 아니라 이번을 기회로 꾸준히 교류가 이어져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는 비교적 가벼운 느낌으로 ‘그대에게’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응원곡으로 두 학교가 함께 응원무를 추는 유튜브 콘텐츠를 꾸며보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대학교 응원단 측에서도 교류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주셔서 꾸준히 연락을 지속하며 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는데요. 점점 교류의 스케일이 커져서 두 대학 간의 큰 응원전도 가능해지면 좋겠다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트라이파시의 연습 진행 방식도 궁금해집니다. 응원단 하면 매우 철저하고 힘든 연습이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도 그런가요?

일단 공연을 앞둔 무대 세트리스트가 공개되면 해당 곡에 대한 안무를 배우는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몸이 많이 고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은 사실이죠. 학기 중에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방학 중에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더해 금요일까지 나와 연습을 합니다. 연습 시간은 하루에 세 시간으로 배정되어 있는데 추가 연습이 거의 매번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네 시간 정도는 연습을 해요.  학기 중에는 학교 수업까지 있다 보니 단원들은 월, 수는 없는 요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게 사실이고요.(웃음)

최근 단독공연 <그대에게>를 준비할 때는 연속으로 이틀 동안 새벽 연습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단원들이 정말 많이 고생을 했어요. 방학에는 일주일에 세 번 연습이 있다 보니 응원단을 위해 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고요. 그렇지만 그런 연습 시간도 부족해서 추가연습이 계속 잡히는 걸 보면 응원단이 그만큼 체력과 열정이 필요한 활동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름연습이 종료되던 날.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까닭이 되어준 단원들과 함께!

 

오랜 시간 같이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만큼 단원들 사이의 유대감도 남다른 것 같은데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가족들보다 더 많이 만나는 사람이 단원들이거든요. 유대감이 안 생길려야 안 생길 수가 없고요.(웃음) 응원단 선배님들을 종종 뵐 때도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끈끈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트라이파시 사람들 모두가 정말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12대 최고간부와 주체기수


보통 대학 응원단이라고 하면 각종 학교 내외 운동 경기에서 응원을 진행하는 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강대학교는 학내에 운동부가 따로 없는데, 서강대학교 응원단 트라이파시의 응원 대상은 누구인가요? 

모든 서강인이 응원의 대상입니다. 이 부분이 트라이파시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저희 앞에 한 분이 계시더라도 그 한 분을 위해 진심으로 응원을 전하는 단체가 되고자 합니다. 이런 점에서 트라이파시가 올리는 여러 무대들이 다른 공연 동아리들과 차별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응원단이 무대에 올리는 공연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있고 그것이 ‘응원’과 맞닿아 있다는 게 가장 핵심이죠. 결국 무대에 서 있는 ‘나’를 위한 공연이 아니라 무대를 지켜보는 ‘너’를 위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 이는 응원단만이 만들어내고 전달할 수 있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서강대학교 응원단으로서 트라이파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서강의 모든 ‘너’라는 존재가 트라이파시의 존재 이유입니다. 서강이라는 단체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위해 진심으로 응원하는 존재가 있음을 느껴주시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서강을 위하여

 

코로나로 인해 학내 문화 및 유대와 연결이 많이 사라지고 단절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학내 응원단으로서 노력하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는데 그때 학교 관계자분들께서 예전에 똘똘 뭉쳤던 대학생들이 코로나로 인해 많이 흩어진 것이 아쉽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이에 정말 많이 공감했는데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느꼈던 상실감, 공허함의 이유겠죠. 저는 이렇게 흩어진 대학 구성원들을 묶기 위해서는 다 같은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점에서 트라이파시 그리고 다른 대학교 응원단들이 대학 문화에 정말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신입생들만 생각해도 학내 문화생활이 학교 선택 혹은 만족도에 있어서 영향을 끼칠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학내 공동체가 ‘다같이’ 하나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응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응원단이 신촌 대학 문화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대학교 내 구성원들을 묶는 역할로서 응원단의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신촌 대학들을 묶는 역할을 하기에 응원단이 적격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교류전을 기획할 때 신촌에 있는 모 대학을 후보군으로 고민했기도 했거든요. 신촌에 있는 대학교들이 묶이는 것만으로도 신촌 대학 문화가 살아날 것 같아요. 먼 이야기지만 신촌 상권이 더욱 발전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런 신촌 상권 덕에 신촌에 있는 대학교들이 메리트들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또한 신촌 거리를 응원 문화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단독공연 <그대에게 7>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총단장으로서 1년간 임기 중 마지막으로 진행한 행사이기에 해당 공연이 갖는 의미도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소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응원단 트라이파시로서 서는 마지막 무대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의미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2대 수료식에서 단원들에게 해줬던 말인데 저에게 트라이파시는 정말 ‘사람’ 자체였거든요. 단원 한명 한명 모두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에 제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게 좋았습니다. 

 

가장 반짝이는 순간에서 함께 막을 내리다

 

단독공연 <그대에게 7>의 부제가 ‘응원이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해당 공연의 기획 의도와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지난 2년간 대면으로 응원을 전달할 수 없었잖아요. 응원단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응원’이 가진 의미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는 다행히 대면 무대가 진행이 되어 관객들과 마주하는 순간이 꽤나 있었는데, 단원들이 정말 많이 했던 말이 ‘응원을 전하는 우리가 되려 응원을 받고 내려온다’였어요. 응원의 주체가 곧 응원의 객체가 되고 반대로 응원의 객체가 응원의 주체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에서 진짜 응원이 완성되는 순간은 주체와 객체의 응원이 서로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라는 아이디어가 시초가 되었어요. 

그래서 ‘손’에 집중을 해봤는데요. 처음에 응원을 내미는 손이 있어요. 그런데 내미는 손만 있다면 응원이 완성되지 않아요. 관객들도 다시 그 손을 맞잡아야 하죠. 그렇게 손이 만나는 순간, 응원이 완성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를 담아봤어요. 그래서 공연 부제를 ‘응원이 만나는 순간’으로 정했습니다.

 

두 손이 맞닿는 순간, 응원이 만나는 순간

 

응원단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사실 응원단을 하면서 제가 이 활동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활동을 하던 마찬가지겠지만요. 결국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앞서 공연을 하기 전 ‘무대 위에서 즐기자’라고 되새긴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무대 위에서 뿐만 아니라 무대를 준비하는 순간에도 즐기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런데 즐긴다는 게 노력으로만 되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위해 이 활동을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마냥 시간을 보내고만 있는 거는 아닌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어요. 생각주머니가 갑자기 커지면서 말이죠. 즐기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 그럴 때가 힘들었어요. 

 

1년간 총단장으로 활동을 하시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음..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앞에서 한 것 같은데요. 가볍게 이야기해보자면 개인 사진을 많이 못 찍은 게 아쉬워요. 순간순간이 긴장된 탓도 있지만 괜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솟은 책임감에 총단장이니까 사진 찍는 건 사치일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그 시간에 상황을 더 살피고 안무를 복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죠. 사실 그렇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었는데 책임감이 이상한 부분에서 과해지면서.. (웃음) 사진이 추억인데 그런 추억을 많이 남기지 못한 건 아쉽네요. 그래서 후대 총단장님께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조언해 줬답니다. 

 

얼마 없는 <그대에게> 공연 개인 사진 중 하나, 귀하다

 

응원단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가장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 아직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응원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가장 마지막 공연에 왔기 때문에 딱 은퇴를 했을 때는 힘든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제 제가 혼자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주어졌고 다시금 응원단 활동을 돌아보니까 아.. 이런 부분에서 내가 개인적 성장을 이뤘구나, 응원단이라는 단체에 이러한 도움을 주었구나, 앞으로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겠구나 등 갖가지 생각들이 점차 선명해지더라고요. 가장 뿌듯했던 ‘이 순간!’을 언제쯤 정의하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말하기 어렵네요. 한순간을 뽑기에는 제가 농익은 느낌이 아니다.. 정도로 해둘까요. 단편적인 조각 하나하나가 아니라 응원단 활동이 나에게 진정으로 어떤 의미였는지 퍼즐을 완성해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퍼즐이 완성될 그 순간을. 

 

누구보다 바쁘고 정신없는 1년을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고 응원을 전해주었던 존재들은 누구였나요? 

가장 먼저 같이 활동했던 우리 단원들. 저는 일 년간 총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진심으로 단 한순간도 ‘내가 해냈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정말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한 걸 알아요. 그래서 함께 1년간 활동에 최선을 다해준 단원들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줬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당연히 가장 친한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그들이 저에게 가장 힘이 된 이유는 묵묵히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연락도 정말 안되었고 서운할 부분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자취를 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도 연락을 안 드렸을 때도 있었거든요. 얼마나 속상하셨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옆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기다려준 것 자체가 정말 고맙더라고요. 마지막 <그대에게> 공연 때 와서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정말 열심히 응원해주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었는데 그 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히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 공연 <그대에게>를 마치고. 언제든 믿고 돌아갈 구석이 되어준 고마운 친구들. 

 

항상 누군가를 응원하는 존재로 지난 3년을 보내오셨는데 수고한 자신에게도 응원의 한마디 건네주세요. 

의심할 여지 없이 누구보다 이 단체와 활동을 사랑했고 또 어떻게 하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걸 너 스스로가 잘 아니까 자칫하면 실패로 남을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 나에게 값지게 남아있을 활동이라는 걸 너가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고했다!

 

자신의 인생을 24시간으로 나타낸다면 지금은 몇시쯤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3시 59분 59초로 하겠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순환한다는 속성이 있잖아요. 23시 59분 59초 뒤에는 0시가 오겠죠. 그렇지만 0시는 끝이 아니고 다시 0시 01분 01초가 와요. 23시 59분 59초에서 저에게 남은 01초라는 시간은 이번 응원단 활동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활동의 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려고요. 그래서 트라이파시를 완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이후 새로운 저만의 시계가 0시 00분 01초로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응원단 ‘트라이파시’란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여전히 그 의미를 찾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저는 아직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흰 도화지에 여러 개의 점을 찍고 그 점 하나하나가 연결되면서 저라는 사람이 점차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 저는 그 점들을 찍고 또 연결해가는 과정 중에 있어요. 그렇지만 트라이파시가 흰 도화지에 찍힐 가장 큰 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어떤 구체적 의미로 자리할지는 끝없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응원’이란? 

올해 3월 잘 모르는 저희 졸업생 선배님이 쓰신 글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는데 그 글이 참 인상 깊었어요.

‘난 저 때 당신들 덕에 참 즐겁고 의지가 됐다고’ ‘그냥 나에게는 대학교 응원단 그 이상이었다고’ 

응원이 진짜 값진 이유는 수백, 수천 명 중에 단 한 명에게라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따뜻한 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걸로 되기 때문이죠. 결국 ANYONE 사이에 섞여있는 응원이 필요한 SOMEONE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한 명에게는 내가 전하는 응원과 맞닿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이 졸업생분께 트라이파시의 응원이 다가갔던 것처럼 말이죠. 모두에게 응원이 전해지지 않더라도 나의 응원이 필요한 단 한 명을 응원할 수만 있다면. 저는 그런 응원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정성껏 답해주신 유형선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당신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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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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