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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3 · 11 · 14

403. 눈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는 말

Editor 유화

무들이 한 해를 벗겨 내는 가을입니다. 길을 걷고 있노라면, 발 밑에서 들리는 바스락 소리가 꼭 잠깐 들렀다 가는 가을이 건네는 작별 인사 같아 마음 한 켠이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밟아서 생긴 낙엽 부스러기들은 누군가 먼저 다녀갔음을 의미합니다. 곧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우리는 똑같은 이 길에 뽀드득뽀드득 눈 자국을 내며 걸어가겠지요.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흔적을 남깁니다. 계절은 자연에 색을 덧칠해 놓고는 지나가고, 시간은 우리를 한 뼘 더 성장시키고 눈 깜짝할 새 흘러가죠. 사람은 일생 동안 어떤 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요? 세상에 내가 잠깐 다녀갔다는 사실을, 이 거대한 세월의 한 켠에 어떻게 새겨넣을 수 있을까요? 살아가며 만나고 소통하는 다른 이들의 기억 한 부분에 내가 자리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닳지 않는 아름다운 방명록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세상과 연결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나의 생각을 전하고 남의 이야기를 접하는 수많은 방법 중, 고요하지만 요동치는 손의 언어를 배우고 나누는 서대문구 수어봉사단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대문구 수어봉사단 ‘손오공’ 2기로 활동하고 있는 부회장 배지원(이하 배), 단원 양영숙(이하 양), 강혜숙(이하 강)입니다.

세 분이 함께 서대문구 평생학습관에서 수어 수업을 들으셨다구요. 수어를 배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양) 평소에도 수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배울 만한 곳이 없더라구요. 충현동 쪽에 가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엘림 센터가 있는데 거기까지 가기도 힘들고..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죠. 평생학습관 융복합인재교육센터에 다른 강의를 들으러 왔다가 수어 교육 홍보물을 보고, 주변인들에게도 제안해서 함께 배우게 되었어요.

배) 저는 양 선생님과 다르게 이전에도 수어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한동안 몸이 좀 아팠는데, 완치가 되었을 때쯤 도서관에서 수어 교육 홍보물을 봤어요. 한 번 아프고 나니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고 고민하던 찰나에 취미로도 할 수 있고, 자격증을 따면 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애초에 언어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라 호기심에 들어 봤는데, 수업이 너무 즐겁더라구요.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에 이렇게 아름다운 방법이 있을 수 있구나. 영어, 일본어도 해 봤지만 이만큼 사랑스러운 언어는 처음이었어요.

강) 저는 성대 수술을 두 번 해서, 들으며 느끼셨겠지만 목이 좋지 않아요.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갈라지니까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음식점에서 직원분을 부르기가 꺼려질 정도였죠. 목소리 때문에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겨 8년 동안 사서로 일했던 도서관을 그만두기까지 했어요. 제가 밖에서도 말하기를 너무 싫어하고 위축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남편이 먼저 ‘수어를 배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주더라구요. 덕분에 용기를 내어 수업을 듣게 됐어요.

각자 다른 이유로 수어를 배우기 시작하셨지만, 세 분 모두 수어 봉사단으로 활동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신 거네요. 수어를 통해 농인 분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양) 저는 지금도 자치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따로 하고 있어요. 봉사를 한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는 나이가 좀 있어서 직장생활을 34년간 했었는데, 그때가 최초로 토요일 격주 근무가 시작될 때였어요. 이 토요일을 의미 없게 보내지 말자, 해서 노동조합 여직원들을 데리고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수어도 그 연장선으로, ‘배웠으니 이 능력을 활용해 보자.’ 하는 마음에 봉사단에 들어갔죠.

강) 성대 수술을 하면 2-3주간은 말을 전혀 하지 못해요. 그래서 식당에서 글로 써서 대화를 하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거에요. 그때 느꼈어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그 후에도 목소리 때문에 오래 같이 일한 직장 동료로부터 “말 좀 그만 해.” 라는 핀잔을 듣거나 해서 말하기가 늘 눈치보였는데, 수어를 배우고 수어로 한두 마디 하면서 목을 쓰지 않아도 손을 통해 대화하는 게 너무 편안한 거에요. 정말 여느 언어 그 자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수어가 좀 더 보편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지금까지 계속 치료를 받고 있지만 어쩌면 말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는데,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 뿐 아니라 저처럼 후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수어를 통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일들을 지나치지 않는 마음, 나만 생각하기도 벅찬 상황에 남을 헤아리는 배려가 모여 이렇게 멋진 일을 해내신 거였군요. 정말 멋있으세요. 농인분들과 함께하다 보니, 봉사를 하실 때도 상대방을 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들었어요.

양) 봉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친구 중에 맹인 분과 결혼한 사람이 있어서 그분을 통해 관련 체험을 다녀왔어요. 눈을 가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사 오는 것, 한동안 말을 안 하고 소통하는 것 등의 미션을 주셨는데 생각 이상으로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때 장애인 분들의 고통에 조금이나마 공감을 했어요. 그 후로 장애인 돌봄 자격증도 따면서 더 봉사를 잘 할 수 있게 힘썼던 것 같아요.

강) 저는 제가 말을 거의 못 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봤으니 그 고통을 알잖아요, 일반인들은 전혀 상상도 못 하거든요 정말. 제가 경험해봤을 때 몸이 아픈 것도 힘들지만 어딜 가나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배려를 받더라도 오히려 과한 배려가 불편하고 기분 상할 때가 많더라구요. 나는 목이 아프지 않은데도 “됐어, 됐어. 말 많이 하지 마.” 라고 하는 것처럼요. 조금이라도 말을 할 수 있는 나도 사람이 고픈데, 장애인 분들은 얼마나 더 사람이 고프고 정이 그리울까. 동정 받는 느낌 없이, 온전히 정을 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제 경험을 바탕으로 봉사를 할 때도 저의 배려가 적선하는 것처럼, 동정 받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에요.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그 진심을 알아보더라구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코다(청각 장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소년 ‘은결’이 1995년으로 타임슬립해 어린 시절의 아빠와 함께 밴드를 하며 펼쳐지는 판타지 청춘 드라마.(출처:tvN)

최근 ‘반짝이는 워터멜론’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타임 슬립’을 매개로 농인 소녀와 청인 소년의 학창 시절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수어가 직접적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혹시 보셨나요?

강) 어머, 아시는구나! 전 그거 늘 본방사수해요.ㅎㅎ

배) 전 모르고 있었는데, 수어가 나온다니까 찾아봐야겠네요.

양) 아, 그 드라마 보죠. 저는 요즘 젊은이들 드라마를 잘 몰라서 스토리는 잘 모르고 수어 위주로 보는데, TV에서 내가 아는 수어가 중간 중간 나오거든요. ‘오, 이게 보이네.’ 하면서 뿌듯했죠. 수어로 했을 때 더 아름다운 말들이 있더라고요.

 

맞아요. 저도 이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들의 서사가 수어를 통해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또 수어를 할 줄 알아서 뿌듯했던 다른 순간들이 있으셨나요?

양) 농인 행사에서 길을 안내해 드리거나, 지나가다 마주친 농인 분께 수어로 말을 건네면 그렇게 환하게 웃으셔요. 햇살같이. 예쁘고 환하게. 그때 제일 기분이 좋더라고요.

배) 음, 저는 두 가지 정도가 기억나네요. 정말 우연히 친구들과 모임을 했는데, 2차로 갔던 가게 주인 부부가 농인이셨어요. 수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됐었는데, ‘몇 명이다’, ‘맥주 몇 개 주세요’, ‘화장실이 어디에요’ 등이 자연스레 나오더라구요. 농인 부부 분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저도 행복했어요. 같이 간 친구들도 “너 멋있다! 최고다!!” 해 주고 일본인 친구도 “스바라시!!!”를 외치더라구요.(웃음)

두 번째로는 저희 수어 수업 마지막 날에 개인 발표를 했는데, 저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참 좋아해서 수어로 시연을 했거든요. 아름다운 시어들을 수어로 표현하니 더 감동적인 거 있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늘었다는 사실이 참 좋았어요.

수업에서 발표를 하고 계신 강혜숙 수어봉사단 선생님의 모습.

아무래도 배운 것을 써먹을 때가 가장 보람찬 법이죠. 수어 이야기를 좀 더 해 볼게요. 이처럼 드라마나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수어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실제로 사용되는 수어가 다른 점이 있나요?

양) 수어가 여러가지에요. 같은 말을 해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더라구요.

배) 제가 알기론 서울과 지방의 수어 교육 기관 수의 차이도 원인 중 하나일 거에요. 농인 분들 중에 수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분도 많다는 거, 모르셨죠? 수어도 하나의 언어인 만큼 배우기가 쉽지만은 않은데, 교육기관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 지방에선 농인분들끼리 모여서 수어를 독학하시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조금씩 표현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강) 맞아요. 같은 맥락에서 국어에도 사투리가 있는 것처럼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어요. 지역마다 표현도 조금씩 다 다르구요.

 

와, 그렇군요. 저는 수어가 영어처럼 만국 공통 언어인 줄 알았어요. 왜 다른 모든 언어처럼 수어에도 사투리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을까요.

배)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구요. 영어를 말씀하셔서 하나 덧붙이자면 나라마다도 수어가 다 달라요. 그래서 외국에서 수어로 소통하려면 국제 수어를 따로 또 배워야 해요.

강) 또, 저희가 공부하는 ‘체계화된 수어’와 ‘일상 수어’에도 차이가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는 ‘커피’만 배웠는데 ‘아메리카노’, ‘라떼’ 등등 커피의 종류에 따라 표현이 다 달라요.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아직 제가 수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부끄러워져요. 혹시 저 같은 문외한들도 알고 있는 간단한 수어 표현이 있을까요? 맵다는 표현을 할 때 입을 벌리고 손을 입가에 대고 부채질하는 동작은 알고 있어요!

배) 엄지와 검지를 붙여서 만드는 손하트도 종종 쓰여요. 배가 튀어 나온 듯 손으로 불룩한 모양을 만드는 것은 ‘배부르다’를 나타내요.

양) 엄지를 올리는 ‘따봉’ 동작도 수어의 일부인데요, 한 손은 엄지를 올리고 다른 손으로 받쳐 양손을 같이 위로 올리면,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뜻이에요. 일상에서 “야, 너 최고다!” 할 때 따봉을 흔드는 것과 비슷하죠?

강) 이리 와라, 저리 가라는 손짓도 수어 표현이라고 볼 수 있구요.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는 접어서 얼굴 옆에 가져다 대어 보실래요?

 

“여보세요~” 가 자동으로 나오는데요?

강) 맞아요. 전화를 뜻해요.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수어가 많답니다.

다양한 예시를 듣고 나니 수어가 훨씬 친근하게 느껴지네요.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 중이에요. 그렇다면 수어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양) 제가 봉사를 하면서 만난 농인 분께 여쭤보니, 얼굴 표정이 제일 중요하다 하더라구요. 수어와 입모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라 입모양을 잘 안 하면 소통이 어려워요. 또, 아무리 손을 잘 쓰더라도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손의 표정과 다르면 헷갈릴 수 있어서 마치 연기하듯이 과장해서 표정을 지어야 해요.

강) 저는 몸 상태 때문에 면역력이 조금 떨어져서 마스크를 끼고 있었더니, 입 모양이 안 보여서 수어 수업을 들을 때도 가끔 어려움이 있었어요. 같이 배우던 선생님들이 입 부분만 투명하게 되어 있는 마스크를 주셔서 그걸 끼고 하기도 했죠. 수어니까 손만 잘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배) 맞아요. 저도 처음 배울 때는 표정 짓는 게 가장 어색하고 어렵더라구요. 보통 생활하면서는 감정을 충만하게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진 않잖아요, 티를 잘 안 내려고 하지. 수어를 하면서 안 쓰던 얼굴 근육을 쓰게 되고, 그러면서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피부가 좋아지려나 싶다가도 주름도 질 것 같고.. 다양한 생각이 들더라구요.(웃음) 에디터님처럼 수어를 배우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평생학습관이나 수어 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교육을 알아보셔도 좋아요. 지역마다 상설 교육원도 있고, 서울에는 충정로 쪽에 있는 걸로 아는데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군요! 저처럼 바쁜 학생들이나 직장인 분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수어 입문을 해보면 되겠어요. 수어교육이 더 활성화되면 좋겠네요.

배) 맞아요. 우리나라도 예전엔 ‘수화’라고 불리던 것이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로는 ‘한국 수어’ 라는 공식 용어로 쓰이고 있어요. 한국어와 동급의 공식언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농인분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렇게 법도 제정되고, 뉴스에서 수어 창도 커지긴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해요. 또 다른 국어라는 언어의 위상에 맞게, 대중적으로 더 배우기 쉬운 언어가 되면 좋겠어요.

강) 맞아요. 특히 선천적으로 농인이신 분들도 있지만 저처럼 후천적으로 장애나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도 있으니까 쉽게 쓰고 배울 수 있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10대 아들을 키워서인지, 중고등학생 때부터 제 2외국어 과목을 선택하듯이 수어도 의무교육을 하면 어떨까 싶어요.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도, 한 학기만이라도 배우면 수어를 훨씬 더 가깝게 생각할 텐데 말이에요.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면 청인과 농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수어로 대화할 날이 오겠죠? 당장 저부터라도 수어를 배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알려 주어야겠어요. 그렇다면 세 분은 앞으로 수어봉사단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으실까요?

배) 얼마 전에 서울 시립 장애인 복지회관을 갔는데, 직원분께서 ‘수어가 가능한 봉사자’를 찾는 게 하늘에 별 따기라고 하시더라구요. 수어가 조금이라도 가능한 분이 봉사를 해 주면 너무 도움이 되겠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제가 더 열심히 연습해서 그렇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또, 아직 수어를 완전히 유창하게 하지 못하다 보니 자신감이 부족한 것 같아요.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혹은 괜히 피해가 갈까 봐 먼저 말을 못 건넨 적이 있어요. 서대문구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도 많이 사셔서 얼마 전엔 노부부 두 분이 정류장에서 수어로 “여기서 이쪽으로 가야 한다니까~!” 하시면서 실랑이하시는 걸 봤는데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쳤어요. 꼭 봉사활동을 할 때만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는 농인 분들을 도와드릴 정도로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갖고 싶어요.

강) 구청에서 열린 10주년 행사에서 봉사를 하며 느꼈는데, 자원봉사 조끼를 입고 서 있으니 농인 분들이 엄청 반가워하시더라구요. “6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세요.”라고 수어로 말해드렸는데, 급하게 하다 보니 틀렸는데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제가 틀린 부분의 수어를 직접 알려주셨어요. 안내 하나를 해도 수어로 하니까 수고한다고 토닥여 주시거나 끌어안아 주시기도 하구요. 저희가 매번 행사를 6층에서 해서 찾아가는 방법을 분명히 아시는데도 제가 수어를 하고 있으면 일부러 오셔서 물어보는 분들도 계세요. 그때 느꼈죠. 저분들도 남들과 언제든 같이 섞이고 싶어하시는데, 우리가 멀리하니까 다가오시기 힘드셨던 것이구나.

성대 수술 이후로 목소리 때문에 늘 위축되어 있었는데 수어봉사단 선생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주셔서 유일하게 여기서 제가 정말 많이 떠들어요.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했고 수업 받으러 오는 요일이 제일 행복했죠. 수업이 끝나서 되게 아쉬웠는데, 수어봉사단 손오공 2기를 하면서 이 관계를 더욱 더 돈독히 유지하고 싶어서 계속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도 제가 받은 따뜻함을 봉사를 통해 베풀고 싶어요.

양) 저는 딱 하나에요. 저를 원하는 곳이 있으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가서 돕는 것.

 

마지막 질문이에요. ‘나에게 수어란 -다.’ 한문장으로 표현하신다면?

양) 나에게 수어란, 즐거움이다.

배) 나에게 수어란, 또 하나의 언어이고 세상이다.

강) 나에게 수어란, 인생의 변곡점이다.

리가 사는 지구가 실은 아주 거대한 세계의 민들레 홀씨 하나일 뿐이었던 어느 영화처럼, 일상의 온실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바깥에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요. 내 세상의 끝을 만져 보고서야 그 너머를 믿는 것이 사람이니, 더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는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익숙함을 탈피하고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기억 속  방명록’ 을 남기기 위한 정성스런 시도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도 지나쳤던 세상은 그리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아주 조금의 용기를 필요로 할 뿐이지요. 눈빛에 담은 진심을 손끝에 피워 내는 수어를 배우며 알고 있던 세계에 한 겹을 더해 보는 건 어떨까요? 수어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그리 색다르거나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서대문구 수어봉사단이 그러했듯이. 자, 이제 한 발 내딛어 볼 시간입니다.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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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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