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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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4 · 04 · 28

219.〈태흥빙실 리마스터링〉

Editor 입하


 

– 저기요, 여기 있던 맥도날드 어디 갔어요?

– 거기는 문 닫은 지 6년하고도 16일이나 지났어요

– 그러면 약속한 사람은 어디서 만나죠?

– 다른 버거 가게 찾아봐요



2018년 4월 11일 맥도날드

신촌역 3번 출구를 떠났다



6년하고도 16일이나 지났다



다른 버거 가게였던 신촌로터리 롯데리아는

2024년 1월 23일에 문을 닫았다



2023년 12월 1일에 투썸플레이스

바로 다음 13일에 에뛰드하우스



내 다른 가게들이 자꾸 약속을 저버린다

그들의 다른 약속이 있는 걸까?



개미굴 같은 신촌역에서 기어 나온다



2024년 4월과 함께 떠나갈

내 다른 가게에게 향한다

 

 

가로수 너머 초록색 벽 초록색 간판

높게 어른거리는 이름

 


홍콩식당 <태흥빙실>

 

신촌이 숱한 간판이 사라지고 생기는 도시라지만, 언젠가부터 사라지기만 하는 것은 왜일까. 잘나가던 프랜차이즈들마저 이 바람을 피하지 못한다.

 

태흥빙실(太哼冰室)은 저 멀리 홍콩에서 건너온 홍콩식 차 레스토랑이다. 홍콩 길거리 음식과 차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중국 전역에 점포가 200여 개다. 현지에서 사랑 받는 브랜드.

한국에 하나 뿐인 이 홍콩식당이 이달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신촌의 홍콩으로, 한달음에 달려 간다.


연세로에서 명물거리로 벗어나 걸으면 온통 초록을 바른 건물이 하나 있다. 좁다란 계단을 한 칸씩 밟고 오른다. 홍콩의 이색적인 향기가 차오른다.

 

鴻運當頭 홍운당두 | GOOD LUCK 굿 럭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옛 홍콩의 정취. 초록색 타일과 붉은 네온사인, 홍콩 영화 포스터. 당신의 부와 복과 안녕을 바라는 말이 빼곡하다.

 

腰缠万贯为大亨 富甲天下则太哼

대흥한 부자가 있으면, 천하의 부자인 태흥이 있지

– 태흥빙실 캐치프레이즈

 

언젠가 친구가 그랬다. 이제 세상에는 쉽게 맛있는 식당이 많아서, 그 안에서도 성의 있는 맛을 찾아내야 한다고. 그 처음은 찻잎을 우린 물을 내오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이 식당의 처음은 레몬을 우린 물이다. 향긋함에 취해 본다.

 

나를 펼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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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러서 한 장씩 찬찬히 보는 거야.

오복임문 차슈 덮밥이라, 이걸 먹으면 내게도 다섯 가지 복이 찾아올까? 깨끗한 마음으로 풍요를 나누며 살다가 천수를 다해 편히 눈 감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만오천 원은 싼 편이다.

 

I AM RICH.

첫 음식이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나왔다.

홍콩식 간챠뉴허(소고기 쌀국수 볶음).

부드러운 소고기, 넙적 쌀면, 양파와 쪽파, 간장 향.

 

중국말이 들린다. 보통화일까, 대만어일까, 광둥어일까…

오복임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소고기 몇 점을 집어 먹어 버렸다.


기다리던 오복임문 홍콩식 차슈 덮밥.

청경채, 소시지, 햄, 차슈 2종, 에그스크램블, 소스를 적신 고슬고슬밥.

 

밥을 한가득 덮은 붉고 노란 향연이 입 안까지 메운다. 어느 반찬에 먼저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우물대다가 이내 젓가락질이 바빠지는 명절 식탁에 앉은 것 같다. 꼭 내가 이미 먹은 채소 반찬을 먹으라고 야단을 듣는다.

 

잊지 마, 여기는 ‘차’ 레스토랑이다.

홍콩식 레몬티. 담백한 홍차에 설탕과 레몬을 담근 차다.


한입 토스트. 우리가 아는 설탕 뿌린 토스트의 심화 버전이다. 기름에 절이다시피 한 튀긴 빵에 연유를 흠뿍 적셨다. 한입 베어 물면 따끈하고 고소한 기름이 배어나고, 혀 위에서 빵 조각이 아침 햇살에 눈 녹듯 사라진다. 이건 촉촉하고 바삭한데 따뜻하기까지 하다.

 

그 어떤 맛있는 빵이라도 갓 구운 빵을 이길 수 없다. 식사가 아니더라도 빵을 곁들여 홍콩식 차… 밀크티, 레몬티, 커피를 즐기고자 들러도 좋다.


이런. 어느새 나만 남았다.

종업원과 나, 빈 탁자, 홍콩 영화 ost가 흐르는 레스토랑.

 

신촌, 新村, Sinchon, 잔치가 앓다 죽어도 부를 그 이름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한다고 한다. 신촌에도 누군가 찾아와 이름을 세 번이나 부르는 걸까? 모를 일이다.

 

 

 

저 불이 언제까지 켜져 있을까, 태흥빙실

 




언제나 불 밝힐까

몇 년하고도 며칠이 흐를까

 


 

 




 

홍콩식당 태흥빙실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41, 2층 3층

연중무휴 11:30-21:00 (주문 마감 20:50)

신촌점 TEL. 02-313-0959

 

홍콩 프랜차이즈 핫라인. 400-9932-889

 

가게 사정으로 4월까지만 영업하나, 상황만 된다면 다시 손님들에게 찾아온다고 한다.

 

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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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에디터 입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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