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기
지난 일 년간 무뎌지기 싫다는 말을 닳도록 입에 올렸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삶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고 했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그는 돌이나 물처럼 생명이 없는 것조차 살아있는 것으로 느낍니다. 살아있는 것은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코 크거나 힘이 세서가 아니라, 그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눈과 피부에서는 무언가 뿜어져 나오고, 내면과 주변에서 환하게 빛이 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힘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있을까요!
*에리히 프롬 –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비슷한 맥락으로, 생명력이 충만한 사람은 모든 걸 극적으로 감각합니다. 계절의 전환에 답하듯 소담스레 움튼 새싹부터, 볼을 간지럽히는 작은 바람결, 나풀거리는 주변의 목소리와 어느새 만개한 하늘까지. 그 모든 걸 충만히 머금고 다시 내뱉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세상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호흡이 맞습니다. 세상의 사랑할 만한 구석을 속속들이 찾아냅니다.
저는 그런 삶을 바랐고, 나름대로 그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오만하게도 세상을 다채롭게 감각할 수 있는 건 저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쉽게 사랑한다고 오인할 만큼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다정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걸, 크고 넓은 걸 느껴야 했습니다. 내가 넓어진 만큼 세상의 사랑할만한 구석을 많이 찾아낼 수 있을테니까요.
작년 한 해 동안 익숙한 중앙도서관 앞을 한 번도 그냥 지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게시판에 붙은 알록달록한 포스터들, 울창한 나뭇잎 사이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고소한 햇빛의 냄새, 발 끝이 보도블럭 하나하나에 닿을 때 느껴지는 촉감과 초여름 공기의 약간 아린 맛. 빛나는 초록. 그것들을 양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분명 나를 다잡아주는 감각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들로부터 영원하고 그들은 나로부터 배태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 야호! 정답이야! 이게 내가 찾던 무언가지. 바로 그 ‘무언가’일거야. 틀림없이 찾았어, 나의 구심점을.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분명 흔들림 없이, 바위처럼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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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터일까요, 난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의 생경함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지금이 너무 좋아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아서, 그 언젠가 값을 치를 나를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언젠가는 무뎌질 나를 애써 외면했습니다. 모든 걸 처음 경험하는 어린 아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다르고, 두 번째와 열 번째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무뎌졌고 온 힘을 다해 모호함을 씹었습니다. 턱 언저리가 뻐근한 게 참 씁쓸했습니다. 난해한 숙제를 맛봤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그건. 기를 쓰고 무뎌지지 않은 척 해야하는지, 아니면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야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 어느 쪽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시작에 가까운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 버거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겠냐마는, 난 흔들리는 게 무서운걸요. 흔들리다 결국 중심축을 잃고 무색무취의 평평한 인간이 되는 게 죽기보다 싫습니다. 알록달록 뾰족뾰족하게 구는 게 훨씬,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작과 멀어져버리니 아스팔트 길에 자주 닿는 모서리는 갈려 버려 절로 뭉툭해지기 일쑤였습니다.

복잡한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생각을 안고 마주한 곳은 토끼굴이었습니다. 우리가 토끼굴이라고 부르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신촌 토끼굴 그라피티’ 입니다. 세브란스로 통하는 육교와 메가박스 사이에 숨어있는 이곳을 지나간 적은 있어도 목적지로 찾아본 건 처음입니다.

밤 열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 이곳 그라피티 터널은 새로 옷을 갈아입습니다. 이전 흔적 위에 새로운 흔적을 덮는 것입니다. 나이 든 그림은 새로운 그림 아래에서 잠듭니다. 그렇게 토끼굴이라는 이름 아래 그 인상이 변합니다.

약간 서늘한 토끼굴 안은 이상하리만치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탁 트인 하늘이 뻥 뚫리게 시원하다고 생각이 들기보다는 막막함에 한숨 짓게 되는 오늘 같은 날은 더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에도 그랬습니다. 의자 몇 개, 침대 시트와 담요로 만든 작은 텐트 안을 가장 아늑하게 느꼈습니다. 다리 겨우 뻗을 만큼의 작은 공간은 밖과 달리 컴컴했습니다. 그 안에 웅크린 채 누워있으면 참 편안했어요. 고요한 나만의 공간. 그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나는 세상 때문에 무뎌졌으니까요. 어떨 때는 나만 있는 이곳에 고여 조용히 숨만 쉬고 싶어집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졌으니까요, 내 밖의 것들이. 이젠 다 피로합니다 — 나만 빼고 모든 걸 멈추고 싶어져요. 덧없는 투정을 혼자 곱씹어봅니다.
뭐, 그렇게 큰 사람이 되는 걸 바란 건 아니지만, 내 생의 무게 정도는 너끈히 들어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다지도 삶이 무거운 건 분명 삶에 지나치게 진지하기 때문이겠지요. …됐어요, 됐습니다. 이제는 상관없어요. 예민하게 감각하든지 무뎌지든지. 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충분히 힘들어요. 그냥 그렇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사실 전 변화가 두렵습니다. 내가 아닌 나를 발견할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분명 시작하는 이의 설렘을 가득 안고 이십대를 시작했었는데요. 요즘은 그렇지 못한 나를 자주 들킵니다. 아닌 척해도 숨기기 어렵습니다. 공강 시간에 800번대 서가에 들르는 게 더 이상 처음처럼 설레지 않습니다. 명백한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잊어버린 것 같아요.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 길목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음을 깨달으면, 못내 아쉽고 사무쳐 시무룩해집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며 이 몸에 자리 잡고 맙니다. 축적되어버린 기억은 개별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덩어리져 제멋대로 하루를 단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무뎌지기 시작한 게. 소중한 존재들을 습관적으로만 사랑하는 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을 사랑해 마지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경험이 축적되어 아는 게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어째 모르는 게 더 많아진 듯 싶습니다.
— 분명 정답인 줄 알았는데. 틀림없이 정답이라고 확신했었는데.
서늘한 이곳을 천천히 거닐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양쪽을 둘러싼 벽은 물론이고 천장까지도 톡톡 튀는 형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이 곳에 자리 잡았음을 외치는 듯 화려한 색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토끼굴은 들를 때마다 표정을 달리합니다. 어떨 때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혼재하는 타이포그래피일때도, 어떨 때는 동물일때도, 또 어떨 때는 특색있는 캐릭터일 때도 있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워요. 그 전환의 새로움이 낯설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이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멋진 모양으로 덮일테니까요. 바뀌고, 바뀌고, 바뀌어도 나름의 매력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곳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래피티가 무명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록달록 색색깔 글자와 낙서의 향연과 대비되는 익명의 작가. 아무도 지나지 않는 늦은 밤에 펼쳐낸 거리 예술. 이곳의 매력은 거기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솟아난 이야기를 신촌의 세월과 함께 겹겹이 쌓아냈다는 사실이 이곳을 진정으로 의미 있게 만듭니다.

이상 속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터널 끝에 어렴풋이 보이는 빛을, 그걸 굳건히 지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누군가가 “무뎌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순간을요. 다른 색으로 덮혀도,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래도, 잠시 잠깐은 터널 속에 들어가 고요히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순간을요.
나는 결코 완결될 수 없음을, 완전무결할 수 없음을, 베짱이처럼 낭만을 노래하며 살아갈 것임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음을 새삼스레 곱씹습니다. 존재를 한 번 인식한 이상 지워버리기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곱씹어 본 이 사실들을 꼭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겠습니다. 나라는 걸 강박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그냥 나인데요. 우리는 바뀌고, 바뀌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일 년 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본질은 나임이 틀림없습니다. 난데없이 쉽게 웃고 울어도, 납작하게 덤덤해져도, 그건 나예요. 납니다. 흔들리며 변모하는 건 납니다. 뾰족한 나도 뭉툭한 나도 납니다. 나였고, 나일 겁니다.
무르익는 계절 속의 제가 더 성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저도 제 안에 굳건히 서 있는 벽에 그림을 겹겹이 쌓아봅니다. 무뎌짐을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 엉성하게 변하는 순간에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치지도 않을 겁니다. 분명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기에.
*양귀자 – 모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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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난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갈무리하는 날인가 봅니다.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정답게 맞이해봅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터널 끝의 빛이 더 밝게 보입니다. 분명, 그 전과는 다릅니다.
서두르지 않기를
흔들리고 물들지 않기를
언제나 너의 그 말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
복잡한 세상에 지치고 무뎌져
어지러워하는 우리들
설레고 벅차던 처음의 한 걸음은
조금씩 더 멀어져 가는데
함께할 수 있기를
햇살이 비추기를
소리내어 하하 웃고
모두 내려놓기를
Thank you – 페퍼톤스
Special thanks to ZAN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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