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3. 김태은, 에디터 초록
스물셋과 4학년.
숫자를 일렬로 주욱 세워두고 보면 그저 콩알만 한 숫자들이지만, 어쩐지 이 세계에서는 이 숫자들이 우리에게 참 가혹해요.
세상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법을 어쩔 수 없이 깨우치며
작지만 작지 않은 이 무게를 견디려 오늘도 부단히 애를 쓰죠.
그러니 밉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거예요.
그리고 미움받기 십상인 이 세상에서 서로를 믿고 온전한 모습을 내보일 수 있다는 건 더 큰 기적일지도요.
당신의 언어를 떠올리면 꼭 초록빛이 떠올라요.
칙칙하고 반듯한 회색빛만 가득한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지켜낸 본연의 모습들이요!

안녕하세요, 초록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잔치에서 에디터 초록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은입니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탐나는 잔꾼명이 아닐 수 없는데요, 에디터명을 초록으로 짓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 굉장한 고민과 시행착오가 있던 이름이에요. 잔치는 각자 준비한 PPT 장표 하나 띄워놓고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에디터명은 차차 정하면 되는 줄 알고 빈칸으로 비워 뒀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식은땀이 났죠. 내 순서는 다가오고, 다들 기깔난 이름들을 말하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걸 에디터명으로 쓰면 좋겠다’ 싶어서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봤는데 문득 좋아하는 색인 초록색이 떠오르더라고요. 이파리의 푸릇푸릇한 초록빛 색감을 좋아하는 터라 이걸 에디터 명으로 쓰면 좋겠다 싶어서 초록이 되기로 결심을 했죠.
임기응변에 능한 분이시네요.
아직 안 끝났어요.
죄송해요. 킵고잉 하세요.
그리고 초록빛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초록색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욱 정진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자지만 논문 읽을 때 맨 앞에 논문 요약한 부분을 초록이라고 하잖아요. 여러모로 중의적인 의미가 담긴 이름 같아서 더 맘에 들었어요.

소름… 제가 ‘초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이유와 같아요. 여러모로 초록님을 잘 요약하고 있는 에디터명인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는 후보였던 다른 이름도 참 좋아하는데 이 자리를 빌려 그 이름도 살짝 소개해 주시겠어요?
맞아요.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능이’였어요.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던 별명이었거든요. ‘할 수 있다 능(能)’이라는 한자가 웃기면서도 힘이 되잖아요. 능이버섯같기도 하고. 근데 뭔가 멋진 이름을 쓰고 싶었나 봐요. 그리고 실제로 글도 이름을 따라가는 것 같고요.
맞아요. 이름이 주는 힘이 참 큰 것 같아요. 그건 그렇고, 요근래 정말 춥지 않나요? 우리는 한창 무더울 때 만났는데 말이죠. 초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꽤나 여유로운 방학을 보내고 있어요. 학기 중에는 바빠서 못 만나던 친구들도 만나면서 추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까지만 해도 몸담고 있던 밴드 동아리에서 봉사도 하고, 합주도 하고, 공연도 하면서 바쁜 방학을 보냈던 것 같은데 이번 방학이 그 동아리를 졸업하고 맞는 첫 방학이라 그런지 왠지 헛헛하기도 해요.
그래서 말인데, 잔치 밴드 하나 만들면 안 되나요?
굉장히 흥미로운 발언이네요. 잔치엔 다양한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분명 뜻을 함께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곧 잔졸자(잔치졸업자)된다고 선 긋는 건가요?
(절대 아니다. 이 둘은 인터뷰하다가 별안간 누구에게 어떤 세션을 맡길지까지 모조리 상상했다고.. 밴드하고 싶은 잔꾼들을 대환영합니다)

지난 방학을 불태웠던 그 밴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연 하나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실력이 점차 쌓이다 보니 가장 많은 곡을 한 공연이기도 하고, 가장 만족스럽기도 했거든요. 저의 주 세션은 베이스이긴 했지만 사실 보컬로 섰던 무대가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백예린의 Antifreeze를 불렀었는데 아마 그 순간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문득 초록님은 늘 삶에 예술을 가까이 두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밴드 동아리에 이어 다음 스텝으로 잔치,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트팀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해요.
깜짝 고백이지만 저는 아트팀을 2지망으로 희망했었어요. 마음 기저에는 ‘신촌을 음악, 사진, 동영상 등 모든 형태로 자유롭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트팀을 지원하고 싶었지만 올라온 아트팀 글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거든요. ‘내가 과연 예술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제가 보는 초록님은 아트팀에 너무 찰떡인 에디터인데 말이죠.
그런가요? 마침 제 마음이 통한 건지 아트팀 에디터로 활동하게 되었고, 정말 만족스러운 한 학기를 보냈어요. 글뿐만 아니라 음악, 사진, 영상 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것들이거든요. 그리고 같이 활동하는 아트팀 사람들도 참 유쾌하고 사랑스러워요. 평소에 제가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비단 아트팀 뿐만 아니라 잔치 사람들 모두가 저에겐 참 복덩어리 같은 존재예요.
이런 광범위한 사랑 고백, 너무 감동인데요.
더 고백하자면 첫 OT 때 딱 느꼈어요. ‘아 이 사람들 너무 좋다’하고요. 자기소개 때 좋아하는 영화나 책들을 이야기하는데 다들 취향이 잘 맞는 거예요. 밖에서는 이렇게까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이런 사람들이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서 잔치라는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게 신기했고,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잔치.. 나란 사람에게 있어 참 복된 시간이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잔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집단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잔치를 통해 바뀐 점도 있나요?
잔치를 하면서 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잔치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수행평가나 과제를 위한 글들을 위주로 썼었고, 남한테 나의 글을 보여주고 싶어서 잔치를 들어온 것도 아니었거든요. 근데 잔치에는 워낙 책과 글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쓰는 게 그 사람의 단단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옛날에는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우와 좋다-‘ 정도에 그쳤는데 지금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고, 그 의미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예술적인 글을 쓰는 데에는 스스로 젬병이라고 생각해 항상 아트팀 사람들이 존경스러웠는데요. 초록님은 어디서 영감을 얻고, 어떻게 글을 써 내려가나요?
저는 잔치 이전에 글을 써오던 사람도 아니고 예술적인 글을 쓰는 데에 크게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어려움을 느끼던 편이에요. 그럼에도 한 학기를 돌아보면 제가 시각을 비롯한 오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예민한 편이라 그런 오감들을 받아들이면서 머릿속에서 나만의 언어로 정제해왔던 것 같아요.

방금 그 답변이 초록님의 글을 관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초록님의 글 중 ‘빗소리가 우리의 노랫소리를 온전히 우리만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아서’라는 문장을 참 좋아하거든요. 너무나 일상적인, 어쩌면 지긋지긋할 수 있는 어떤 일에 새로운 시각을 덧입히는 게 초록님 특유의 글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각 글에 얽혀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궁금해요.
<빗속에서 우리는>은 첫 글인 만큼 가장 애정이 가요. 쓰면서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반영됐거든요. 평소에 산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날은 ‘첫 글을 어떻게 쓸까’에 대한 고민을 안고 무작정 걸었어요. 마침 비가 오는 시즌이었는데 문득 그냥 이 과정 자체를 글로 풀어내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걸으면서 든 생각들을 메모장에 적었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글이에요.

그날 초록이 적었던 메모
저에게 비 오는 날이란 회색빛의 우중충한 느낌보단 초록빛의 푸릇푸릇하고 생명의 냄새가 더 잘 느껴지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냄새 맡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내가 좋아하고 잘 감각할 수 있는 소재로 쓴 글이다 보니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계절과 날씨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도 일종의 재능인 것 같아요. 보통은 흐리면 무작정 기분이 안 좋거나 계절의 흐름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종이잡지에 담긴 글인 <지글지글 보글보글>도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여름에 제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되짚어 봤을 때 ‘아가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더라구요. 그리고 마침 그즈음에 친구와 카공을 했는데 그 친구가 변신 모티프의 소설을 하나 픽해서 분석하는 과제를 하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나도 내가 붕어로 변하는 이야기를 써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제가 서강대생이라 서강대만의 특징도 잘 담아보고 싶었어요. 예컨대 수업 종이 치는 거나 과거에는 집으로 성적표를 보냈던 거나.. 그런 것들을요.
*잔치는 매학기 종이잡지를 발간한다. 2월에 발간될 이번 종이잡지의 주제는 ‘신촌사계’이다. 새로운 글들이 궁금하다면 곧 발간될 종이잡지 소식을 기다려주시길!
아트팀은 매학기 전시나 공연에 대해 소개하는 글도 쓰고 있죠. 평소 이러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편인가요?
고등학교 친구들이 전시나 뮤지컬, 영화를 많이 보러 다니고 좋아해요. 그 친구들을 따라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이런 것들이 저에게도 잘 맞더라구요. 예술작품은 그 형태가 어떻게 됐든 만든 사람의 내면을 반영하거나 혹은 그들의 기저에서 나온 것들이잖아요. 사람들의 생각이나 세계를 알아가는 걸 좋아해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 같아요.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예술작품이 있다면요?
12월 31일에 혜화에서 뮤지컬을 봤어요. <해적>이라는 뮤지컬이었는데 제목 그대로 해적의 이야기를 담은 극이에요. 우리가 ‘해적’ 하면 갖고 있는 환상들을 음악과 같은 웅장한 요소와 함께 풀어내니 멋있더라구요.
듣기만 해도 흥미로운데요. 내용도 조금 이야기해 주세요!
선장 해적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인 여자에게 ‘보물섬에 함께 갈만한 좋은 선원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말해요. 여자는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죠. 총을 정말 잘 쏘는 사람이었거든요. 처음엔 남자가 자기 배에 여자를 태우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둘이 총 쏘는 내기를 하고, 마지막에 여자가 별을 쏴보겠다고 해요. ‘어떻게 별을 쏘지?’ 싶었는데 마치 유성우 같은 조명들이 관객석까지 흩날리는 식으로 연출하더라구요.
짜릿한 뮤지컬이네요.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나요?
선원 중에 선장 친구의 아들이 등장해요. 선장의 친구이자 아들의 아빠가 죽고 난 뒤 함께 떠나는 이야기인데 배우님이 ‘단순히 해적 이야기가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봐주시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참 좋았어요.

만약 팀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써볼 수 있다면 어떤 팀에서 어떤 글을 써보고 싶나요?
플레이스 팀에서 글을 써보고 싶어요. 특정 주제가 딱 떠오르진 않지만 공간이 가지는 힘이나 의미에 관심이 많거든요. 굳이 특정 가게가 아니더라도 신촌에서 나만의 탈출구가 되는 공간이나 누군가를 숨 쉴 수 있게 하는 공간…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초록님만의 탈출구는 어디인가요?
서강대 근처 경숲길부터 시작해 공덕으로 넘어가는 그 길을 좋아해요. 이름에 걸맞게 저만의 헤테로토피아는 초록이 가득한 공간인 것 같아요. 나무든 풀이든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역시 산책을 사랑하는 사람답군요. 피플팀은 어때요..?
섭섭하신가요?(웃음) 근데 진짜 빈말이 아니라 피플팀이 써내려 가는 글도 너무 흥미로워 보여요. 인터뷰가 아니라면 못 만났을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 질문을 하다 보면 내 삶의 답을 얻기도 하잖아요. 인터뷰이와 컨택하고 인터뷰를 준비하고 윤문하는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분명 얻어가는 게 많은 글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Tmi: 24-2 잔치의 02라인이었던 초록, 글루, 뉴사운드는 무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사이이다. (절대 같이 보낼 사람이 없어서는 아님. 아무튼 아니에요)
우리 지난 학기 잔꾼들 중 몇 안 되는 02년생 동갑내기였죠. 고백하자면 일기에 ‘내년의 우리는 더 건강하고, 더 견고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썼어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이지만 같이 있으면 참 편하거든요. 사람들 사이에서 초록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너무나 당연하게도 몸담는 집단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여담이지만 저는 MBTI를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4글자로 사람이 정의된다는 게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어디서 만난 사이냐에 따라 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다르다 보니 처음엔 ‘내가 가면을 쓰고 사나?’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너무 공감해요. 사실 저는 여러 가면을 쓰고 산다는 걸 이미 기정사실화 하고 있긴 해요.(웃음)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본질만 잃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맞아요. 어느 집단이나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사람을 동경하던 때도 있었는데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참 힘든 일이지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딜 가든 유머는 잃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아빠가 종종 회식자리에 데려가시곤 하셨는데 아빠가 하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웃는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거든요.
귀한 모습을 물려받았네요. 제가 참 좋아하는 모습이기도 하고요. 물렁한 질문도 하나 드릴게요. 초록은 자칭 ‘DMZ 소녀’이기도 하죠. 통학러로서의 애환이나 꿀팁이 있나요?
일단 잔치하면서도 굉장한 서러웠는데요.(^^) 왜 서울 사람들이 말하는 “끝까지 가자!”의 ‘끝’은 2~3시인 거죠? 막차를 놓친 저에게 끝은 첫차 풀릴 때거든요… 홀연히 떠나는 그 모습을 보면 배신감이 들어요.
저격당한 기분이네요… 죄송합니다. 꿀팁도 하나 주시겠어요?
지하철에서 이런저런 생각 정리를 많이 해요. 온전히 나 혼자만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거든요. 생각하는 게 너무 지치면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 하나 끼고 적당히 리듬을 탄다…? 꿀팁이라면 이거네요.
‘노이즈 캔슬링 전자기기를 구입해라. 당신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도 1/3이나 흘렀어요. 초록님의 신년 목표가 있다면요?
제가 신년 목표를 크게 설정하는 사람은 아니긴 한데 새해 첫 곡이 1년을 좌우한다는 의미가 요즘 사람들 사이에 많이 통용되어 있잖아요. 별거 아닌 행동이긴 하지만 곡을 고르면서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올해 첫 곡으로는 The 1975의 Sincerity Is Scary라는 노래를 들었어요. 2024년에 많이 들은 노래이기도 했고 노래 전체를 관통하는 게 ‘진실되기란 무섭고 어렵다’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취미가 됐든, 커리어가 됐든, 관계가 됐든 진실되게, 진심을 다하고 싶어요.
참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2025년엔 보다 진실된 사람이 되시길! 잔꾼으로서의 다짐도 안 들어볼 수가 없죠. 다음 학기 써보고 싶은 글이 있나요?
아트팀의 본질이 글, 그림, 음악, 사진 등 그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신촌을 표현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글 외의 다른 매체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전시 취재 글이었던 <SMALL BUT SMALLER>을 쓰기 위해 찾은 전시의 컨셉이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었어요. 그중에 *딥틱(diptychs) 기법의 작품이 있었는데, 여러 사진을 엮으면 전시를 보는 사람마다 평소 생각과 경험에 따라 해석이 풍부해질 테니 흥미로워 보이더라구요. 저도 다양한 시도로 신촌을 더욱 다채롭게 담아보고 싶어요.
*딥틱(diptychs): 비슷한 형태의 이미지를 연결시켜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진 방식

기대할게요. 끝으로, 좋아하는 계절이 있나요?
좀 청개구리 같을 수 있긴 한데 콕 집어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기보단 계절이 바뀌는 그 순간순간을 좋아해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는 녹음이 지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는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걸 보는 재미가 있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는 낙엽 밟는 재미가 있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는 새로 솟아나는 새싹들을 보는 재미가 있잖아요. 그 매 순간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 같아요. 옛날 어르신들께서 말복에는 삼계탕을 먹어야 하고, 동지에는 팥죽을 먹어야 하고…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살아가다 보니 삶이 점점 단조로워지고, 옛날만큼 새로운 걸 경험할 일이 적어지니 제철 음식이나 그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점점 그 말에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아 얘기하다 보니 신년 목표가 하나 더 떠올랐어요.
잔치에서 피드백을 하다가 ‘어떤 역경이 있어도 그걸 지켜나가는 사랑이 경이롭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평소에 저는 좋아하는 걸 잘 티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기꺼이 무언가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만약 제가 사랑하는 게 티 났다? 그럼 진짜 좋아하는 겁니다.
(놀랍게도 초록은 인터뷰에서 주구장창 잔치에 대한 사랑고백을 했다.)
그래요. 사실 이 인터뷰는 우리의 시시콜콜한 대화의 단편집이었던 거예요.
목이 쉴 만큼 이야기를 나누다 이따금 다른 길로 새면 또 뭐 어때요.
이곳에서의 대화는 정해진 보도블럭을 따라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
어느 흙이든 내가 발 딛는 그곳이 곧 길인 그런 대화인걸요.
그러니 부디 당신이
자신만의 보폭과 여유를 잃지 않길.
오래도록 그 초록빛을 거머쥐길!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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