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 위에 그린 풍경들
비주

언제부터 이 길을 걸어왔을까. 예상하지 못하게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장소들, 이곳은 그중에서 하나이다. 몇 년째 아침 같은 길을 걷고 비슷한 가게들을 마주치다 보면, 무력함 속에서도 달라지는 매일을 느낀다. 신촌역부터 박스퀘어, 두끼, 담뿍유부, 디저트39, 그리고 공차가 보이면 정문이다. 언젠가 신촌에서 잔뜩 밥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학교로 다시 들어가는 길 클로버의 와플을 먹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비슷한 경험들이 사실은 꽤 많았다. 왜 와플 먹을 배는 항상 남아있지 못할까. 경의·중앙선 기차 시간에 맞춰 와플을 시키고 네 명이서 와플 하나를 나눠 먹었던 일을 기억한다. 긴 시간 서로의 삶 미래 추상적인 주제들에 대해 누구보다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이걸로 오늘이 끝난다면 텁텁할 것 같아 달콤한 와플을 먹고 날려버리자 말하며 주문한 딸기 생크림 와플, 와플보다 달콤한 친구의 마음과 그날의 마지막 웃음이 이 길의 정겨움이다.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우선 당연하게도 대학생들, 코리아 투어리즘 코스로 학교를 방문한 단체관광객 버스, 회사 명찰을 목에 건 회사원 그리고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매일 본 사람들의 이미지는 동공을 통해 신경을 건너 기억에 저장되고, 나중이 되면 우연한 계기로 생각나지 않을까. 무서운 괴담들의 온상인 신촌 아웃백을 경계로 자기는 신촌-연대와 이대 지역이 구분된다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학교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멀리 아웃백의 붉은 간판이 보이면 관련된 이야기들을 가끔 생각한다. 길을 걸을 때 슈게이징 장르의 음악을 듣기를 좋아한다. 슈게이즈, 시끄러운 구름 같은 소리의 모음으로 공연할 때 신발 끝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만드는 음악이라고 한다. 슈게이징은 찌질한 사람들이 찌질하게 해야 하는데 최근 모 밴드에서는 잘 꾸민 청년들이 나와서 질투가 난다나 음악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뮤직 이즈 라이프, 인터넷 쇼핑몰의 만 원대 티셔츠에서나 볼 법한 문구이지만 이만한 사실이 없다. 신촌역에 가까워지자 탁탁 바퀴 끄는 소리가 난다.


보드 타는 사람들은 경의·중앙선 신촌역에 자주 모인다. 홍대 근처의 대학가라는 지리적 특성은 이들에게 매력적일 것이다. 학교를 수년간 다니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들과 마주치지만, 나는 그중 아무도 알지 못한다. 개인이 아닌 보드 타는 집단으로 나에게 인식되는 그들은 지브리 영화 속의 산속 정령들 혹은 게임의 NPC 같다는 생각도 한다. 낮의 신촌역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어디서 재생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주변의 일들은 정말 많구나. 보드 타는 사람들을 지나 신촌 박스퀘어와 다비치 안경을 마주 보고 앉는다. 저녁 시간대 신촌 명물 거리로 나가는 꾸민 사람들과 저마다의 일정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지금은 세상과 유리된 기분으로 돌바닥에 앉아 노래의 볼륨을 높인다. 창 너머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번진 불빛은 만화경 속 세상과도 같다.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은 많지만,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을 위해
등하굣길 힘내라 청춘 노래 모음
대학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 처음 이곳으로 오는 길에 실리카겔의 no pain을 반복해서 들었다. 두려움 용기 절망과 희망의 감정이 강렬한 기타의 소리에 적절하게 잘 녹아 스무 살 대학생의 두려움도 조금은 덜어주었다. 질주하는 기타 소리와 빠르게 지나가는 지하철의 창으로 부서지는 도시의 풍경이 생생하다. 난 오늘 떠날 거라 생각했어, 시작도 하지 않고 떠나는 노래를 듣다니 그때의 신입생은 불안한 사람이었던가.
放課後、通学路。(after school, on the way to school) – kinoue 64
슈게이징 음악은 신발 앞코만 바라보는 음악가들이 한다고 했었나, 설령 그런 음악일지라도 이 노래에는 희망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실은 이 길이 필자의 실제 통학로인데, 통학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인 만큼 하루를 시작하기, 혹은 힘든 하루를 끝내는 순간에 적절하다. 수많은 소리로 만들어진 음표의 구름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유난히 몸이 무거운 날이 있다. 물리적으로 아픈 곳은 없다만 집을 나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한 또는 그저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날에 어울리는 노래다. 시원하게 뚫고 나아가는 전자음악의 소리는 어린 시절 만화영화의 주제가와도 닿아있다. 뒤뚱거리고 미끄러지지만 그것이 서툴거나 부족한 모습이 아니라 원래 펭귄의 모습이기에!
이대로 지내도 괜찮은 걸까 솔직하지 못하게
여기저기 긁혀버린 마음과 먼지 같은 약속들
가사는 다소 어둡지만 역시나 희망찬 밴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직설적인 절망은 청춘의 상징
[…] 글이라서… 전에 좋아했던 친구를 생각하면서 썼던 이야기에요. 지난번 팀글 쓸 때도 잠깐 등장했어요. 거의 1년쯤 된 이야기인데, 사실 제대로 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