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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5 · 11 · 04

249. 신촌, 외계인 출몰

Editor 3호

신촌이 별로 재미없었다. OT에서 선배들에게 혼밥 맛집을 물어봤다. 그렇게 새내기 내내 신촌 쪽에는 가지도 않았다.

 

#1 신촌에는 바플라이라 이름 붙은 술집이 있다. ‘일일호프’를 비롯한 행사들이 열리는 대관용 술집이다. 일일호프란 대학생들이 하루 간 여는 임시 주점을 일컫는 말로, 단과대학이나 동아리 단위의 학생들이 술집의 기획부터 서빙까지 모든 걸 맡아 진행하게 된다. 목적은 당연히 친목 도모다. 일일호프는 대부분 바플라이에서 열리고, 바플라이에서 열리는 행사도 대부분 일일호프다. 

바플라이는 4호점까지 있다. 1호점 ‘별밤’, 2호점 ‘달밤’, 3호점 ‘단밤’, 그리고 4호점 ‘예체능’이다. 4호점이라는 넘버링이 바플라이가 신촌에, 그리고 대학생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공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촌에서 일일호프가 그들에게 꾸준히, 자주 찾아지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솔로파티, 대학 뒷풀이, 댄스 동아리 공연과 같은 대학 행사 공간 대관에도 바플라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혼자 튀는 4호점의 네이밍 ‘예체능’은 그 자리에 위치하던 오락 술집을 바플라이가 먹으며 그대로 가져왔다. 

재미있게도 나이 제한이 있다. 아래가 아니라 위로 있다. 2025년 기준으로는 01년생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바플라이의 규정에 따라 01년생부터 06년생까지의 입장만 허용됩니다!’라 쓰인 일일호프 포스터의 공지 사항이 조금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이제 11월이니, 2개월 뒤면 2001년생은 바플라이, 그리고 바플라이에서 열리는 모든 일일호프에 입장할 수 없다.

 

 

 

그렇게 지내니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신촌을 벗어나 돌아다녔다. 전시회나, 소품샵, 그리고 관심사서브컬처(소수집단의 하위문화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선 소위 ‘오타쿠 문화’의 의미로 사용된다)와 그 하위 하위문화들에 대한 행사들까지. 그러다 한 잡지사에서 주최한 파티에 들렀다. 대학 생활의 방향을 바꾼 방문이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2 파티라는 문화가 있다. 중앙 디제잉 부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의류, 장난감, 책 등의 소품을 플리마켓 형태로 판매하기도 한다. 여기에 사진전과 영화 상영을 더해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될 수도 있다. 

미친 공간은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제공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문화와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한 채로 내 세계를 집어 삼킨다. 이때 느끼는 감정에 ‘압도된다’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앞선 그날이 정말 그랬다. 이후부터 공간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 파티의 기획자 ‘통조림’과 DJ로 참여했던 ‘미허’가 공동으로 기획한 다른 파티가 있다. 게다가 더 재미있다. 파티의 이름은 콥스갸루프로레슬링파티(Corpse Gyaru Pro Wrestling Party). 메탈 기반 아티스트들이 얼굴에 하얗고 검게 칠하는 콥스 페인팅에, 일본 서브컬처 패션 문화의 한 축인 갸루, 그리고 프로 레슬링을 결합한 파티다. 2022년부터 꾸준히 열려와, 쩜오(0.5)로 세는 콜라보 기획까지 포함하면 이번 Vol.4.5까지 6번 열렸다. 

CGPW는 여러 하위문화를 조합해 말 그대로의 서브컬처에 근간을 두고 있다. 콥스 페인팅은 음악 기반의 패션 하위문화이고, 갸루는 패션을 기반으로 한 서브컬처이며, 프로레슬링은 파티의 기획자, DJ와 셀러, 그리고 관객 대부분인 여성이 향유하기에 극히 마이너틱하다. 

ⓒ Women of Wrestling MMA

이런 조합은 두 공동 기획자의 취향에서 비롯되었다. 가장 큰 영감을 받은 곳은 시체처럼 보이는 콥스 페인팅을 한 채 레슬링을 하는 일본 여성 프로레슬러 Ram Kaicho다. 그녀가 선보이는 ‘귀여운 여성의 야만성’에 매료되어 출발한 컨셉이다. 여러 서브컬처가 중구난방으로 섞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질감 없이 어울린다. 어느새 300명을 가뿐히 뛰어 넘은 매 파티의 참석 인원이 그 증거다.

 

 

 

2025년 10월 18일. 신촌은 외계인들에게 잡아 삼켜진 듯했다. 과잠을 입은 학생들 사이 존재하는 신비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태풍의 눈이었던 바플라이 앞에 서보았다.

 

[wds id=”24″]  ⓒ Corpse Gyaru Pro Wrestling

#3 콥스갸루프로레슬링파티의 컨셉은 항상 새롭다. Vol.2는 철권과 같은 격투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고, Vol.3는 치정이라는 로맨틱 코미디 액션 영화 컨셉을 취했으며, Vol.4는 갸루와 이모(emo 음악, 혹은 그를 근간으로 한 패션 문화)라는 두 패션 문화의 충돌을 다루었다. 이번 Vol 4.5는 외계코어가 그 중심에 있다. 마라탕을 먹던 갸루 소녀들이 괴상한 버섯을 먹고 외계인이 되어버렸다는 황당하지만, 깜찍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화려한 외계 컨셉을 선보였다. 

컨셉의 기반은 항상 레슬링 배틀이다. 본격적 컨셉이 잡힌 2회차부터 도입된 기틀이다. 남성과 여성, 치정, 갸루와 이모 등 항상 재미있게 붙을 만한 두 요소를 잘 활용한다. 이번 파티에서는 괴상한 버섯을 먹어 외계인이 된 갸루 소녀들이 같은 편이던 서로를 몰라본 채 싸우게 된다. 정말 프로레슬링을 보여주는 건 아니고, 사각 링 모양의 디제잉 부스에서 DJ가 둘씩 나와 음악으로 겨룬다. 배틀 중간 중간마다 링걸이 나와 몇 번째 라운드인지도 알려준다. 

이번 콥스갸루프로레슬링파티는 신촌의 일일 호프 주점, ‘바플라이 4호점 예체능’에서 열렸다.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바로 직전 회차의 콥스갸루프로레슬링파티 Vol. 4 ~갸루 vs 이모 대격돌~이 동일한 베뉴에서 이미 열렸었다. 바플라이도 디제잉 베뉴라는 것이 어색할 뿐이다. 굳게 잠겨있던 바플라이의 나이 제한이 이례적으로 풀리는 날이었다.

플리마켓이 오후 2시부터 먼저 운영되며, 디제잉이 7시부터 시작한다. 디제잉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내부가 혼잡해지고, 닫는 부스가 하나 둘 나온다. 따라서 플리마켓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낮에 먼저 방문하는 것이 필요하다. 

팔찌를 받은 뒤 계단을 내려가면 이번 파티 포스터가 반겨준다. 공연장에서만 맡을 수 있던 뭔지 모를 냄새도 난다. 이미 음악은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틀어져 있다. 

바플라이 4호점의 내부는 2층으로 이루어져있다. 계단을 통해 1, 2층을 오르내릴 수 있고 2층은 비좁은 공간 안에 플리마켓이, 1층은 디제잉부스와 트램펄린이 있다. 바플라이 테이블을 플리마켓의 그것으로 그대로 쓰고 있고, 남은 테이블들은 구석으로 밀어뒀다. 촌스러운 바플라이 예체능 간판과 함께 보이는 파티의 모습이 재미있다. 완전히 탈바꿈한 바플라이가 참 새롭다. 

플리마켓의 셀러 라인업이 볼만하다. 총 22팀의 부스가 있고, 브랜드나 빈티지샵 셀러가 가장 많다. CGPW의 공동 기획자, 통조림이 운영하는 세컨샵 lovecannedfruits도 당연히 만날 수 있었다. 그밖에 액세서리나 다이어리 같은 소품들, 앨범 같은 수집품들도 판매한다. 캐리커처 부스나 페이스페인팅, 그리고 별자리 점까지 받아볼 수 있었다. 디제잉 시작 직전에는 메탈에서 쓰이는 창법인 그로울링을 다함께 배웠다.

사진은 온라인 편집샵 부스의 모습이다. 음악, 애니메이션, 게임 등 서브컬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빈티지 아이템을 판매해오고 있는 곳이다. 플리마켓의 묘미는 셀러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눈여겨보던 곳이었기에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은 어떤 물건이 자주 보이는지, 운영하며 어떤 점을 느꼈는지, 음악은 무엇을 듣는지 등.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다 앨범 한 장을 그냥 받았다.

Tokyo shoegazer의 Moonworld playground. 일본 슈게이즈 앨범이다. 뭔가 받게 된 김에 평소에 갖고 싶었던 다른 앨범도 몇 장 더 샀다.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던 my dead girlfriend의 Undrawing for Three Forms of Unhappiness At The Six State of Existence를 마주친 게 반가웠다. 

 

 

 

여러 맥줏집과 바플라이 사이 골목에서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주저앉아 쉬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던 베트남인이 피던 전통 담배 냄새가 생각난다. 얘기를 좀 하다 한 모금 마셔보고 싶냐고 물어봐 왔다.

 

#4 7시부터는 디제잉을 진행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된다. 앞서 말했듯, 레슬링이라는 컨셉에 맞게 배틀 형식으로 두 명씩 디제잉을 하게 된다. 중간 중간엔 아티스트들의 노이즈나 하드코어 라이브도 있다. 9명의 DJ가 디제잉을, 3명의 아티스트가 라이브를 펼친다. 

사람들은 1층에 설치된 트램펄린에서 뛰어도 되고, 디제잉 부스 위까지 올라가도 된다. 레슬링을 보듯 아예 2층에서 기대있는 것도 괜찮다. 어느새 1층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2층도 발 디딜 틈이 없다. 

파티 이름의 제일 앞에 붙던 콥스와 갸루가 확실히 보인다. DJ들은 모두 진한 콥스 페인팅을 하고 나타난다. 주변을 둘러보면 DJ와 관객 할 거 없이 갸루는 물론이고, 온갖 서브컬처가 어지럽게 섞여 있다. 미친 공간이다. 물론 끔찍히 좋은 의미로. 

술 가격은 바플라이에서 판매하던 그대로 유지되었다. 보드카는 15,000원이었고, 믹스 보드카라고 해도 이는 다른 베뉴들에 비해 월등히 합리적이었다. 아마 합석을 위해 술을 마시던 신촌 대학생들의 가격일 테다. 그 덕분에 훅 마시고 취해버리기 쉬웠다.

이번 CGPW에는 개버(Gabber)와 같은 실험적인 장르의 음악들이 들렸다. 이번 Vol.4.5가 ‘괴(상한)버(섯)’이라는 개버 페스티벌과 협업한 행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버섯을 먹고 외계인이 되어버렸다는 컨셉 또한 여기서 왔다. 이번에 설치된 트램펄린도 괴버의 아이템이라고 한다. 

개버란 전자음악의 일종인 하드코어 테크노의 한 장르를 가리킨다. 이를 위해 방콕에서부터 DJ NUHPEACE를 초빙하기도 했다. 그에게 ‘괴상한 버섯’을 건네었다는 포지션을 맡겼다. 약간 생소한 음악일지 모르겠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단 들으면 무슨 장르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들도 리믹스되어 꽤 들려온다. AOA의 ‘짧은 치마’나 최예나의 ‘네모네모’ 같은 K-pop도 믹스해 틀어준다. 애니송은 물론이다.

참석 자체를 어려워할 것도 없다. 기획자가 인터뷰에서 “무서워하지 말고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힌 만큼 가벼운 옷차림과 마음으로 방문해보아도 좋다. 한 번쯤 가보지 않을 이유가 정말 없다.    

 

 

 

1시까지 진행한다던 파티는 3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서브컬처의 매력에 ‘자유로움’, ‘개성’, ‘비현실적’ 따위를 붙여볼 수야 있겠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니까’다. 즐기는 것이 재미있으니 좋아해왔다. 원래 좋아하는데엔 특별한 이유가 없다. 

 

#5 처음 파티에 가본 그날부터 잡지 기사를 써보고 싶었다. 플리마켓 구석에서 발견한 서브컬처 월간지(창간호를 끝으로 더 발간되지 않았다), 수업을 빠지고 읽던 만화 속 등장인물이 만들던 독립 잡지, 그리고 한 팝아트 작가의 전시에서 발견한 말. “인생은 잡지와 같다”. 대학 생활에서 해보고 싶은 걸 처음 찾았다. 

주변에서 보이는 기억할 거리를 포착해 글자로서 붙잡는 행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본인만의 도식으로 사랑하는 공간과 문화와 사람을 당당하게 전달하는 것. 그 배경은 그렇게 재미없다 여기던 신촌이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시 들여다 본 신촌은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타이밍이 맞게 우연히 바뀌어 이끌린 것인지, 아니면 신촌을 더 자세히 보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외계인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없게 생각해본다. 

 


바플라이 4호점 예체능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7안길 지하1층, 지상중층

https://www.sinchonbarfly.com/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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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원초적 반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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