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 신촌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주말의 열기가 식어 한산한 월요일 저녁. 신촌의 빨간 잠망경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벽에 기대어 선 한 남자를 만났다. 그가 기대하던 얼굴은 아닐 테지만, 조심스럽게 그의 시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 누구 기다리고 계세요?
아, 여자친구요.
애인 있으시구나. 좋으시겠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곧 지인이랑 밥을 먹으러 가야 하거든요. 혹시 맛있는 식당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
신촌칼이라고… 아세요?
그럼요. 매주 목요일마다 지나다니는 걸요*. 혹시 신촌칼을 추천해 주신 이유가 따로 있나요?
* 필자가 다니는 연세대학교에서 잔치 회의실로 가는 길에 신촌칼이 있다.
아닐 수도 있는데, 복장을 보니 데이트하러 가시는 것 같아서… 제가 지금 여자친구랑 거기서 소개팅으로 만났거든요.
아. (웃음) 실례가 아니라면 소개팅 얘기 조금 더 들을 수 있을까요?
진짜 조금만… (웃음) 그게 첫 소개팅이었는데요. 조금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남자가 이끌어야지! 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런데 친구들, 그것도 시커먼 남자애들이랑 놀러가는 곳에서 소개팅을 하자니 분위기가 안 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소개팅하기에 적합한 식당을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네이버에 “신촌 양식집 소개팅” 이렇게 검색했던 기억이 나요.
신촌 양식집 소개팅. 직관적이네요. 직접 가 보니까 어떠셨어요?
좋았죠.
음식이요?
…전부요.
그때 뭘 먹었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맛있었다는 것만큼은 기억나요. 분위기도 좋았고요. 지금 여자친구를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좋았어서, 직접 만났을 때는 긴장을 많이 했었거든요. 진짜 교과서처럼 말했어요. 주선자 통해서 이미 다 들어놓고 학교 어디 다니세요? 하고 묻기도 하고요. (웃음) 근데 밥 먹다 보니까 긴장이 좀 풀려서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음식 진짜 빨리 먹거든요. 친구들이랑 있으면 제일 먼저 먹고 핸드폰 보는 타입인데, 그날 처음으로 한 시간 동안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첫 소개팅이 너무 성공적이었네요. 머릿속에 칼이 정말 소중한 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그 장소를 한 단어로 정의내린다면 어떤 단어가 될까요?
한 단어로 말해 보자면, 시작이요.
연애의 시작이기도 했고, 그날 이후로 신촌 거리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원래는 그냥 학교 앞 번화가였는데, 여기저기 추억이 많이 쌓여서 이제는 완전히 다른 거리가 됐어요. 그래서 모든 것의 시작.
누군가의 시작.
그곳에서는 달달한 가지튀김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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