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2. 신촌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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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고향과도 같은 신촌에서 의도적으로 길을 잃는다는 것.
물론 이 실로(失路)가 순도 백 퍼센트로 유쾌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방문한 라이카시네마에서 시청한 일본 영화는 생각보다 난해했고, 누군가 사랑을 틔웠던 식당의 파스타는 다소 평범했다. 또한 훌쩍 떠난 휴양지에서 누군가는 휴식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남기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음식을 즐길 때 맛보다 플레이팅을 더 우선할 수도 있다. 결국 타인의 직관에 ‘나’의 하루를 위임하는 일은 비합리성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성의 바깥에 발을 내딛고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던 것들이 있다. 2년간 학교를 수도 없이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연희동의 골목길에서 받은 햇볕, 가지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2년간 입에 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지튀김, 가끔 방문은 하지만 그날만큼은 갈 생각이 없었던 중고서점에서 집어든 시집 같은 것들. 스스로가 내리는 합리적 선택 하에서는 차마 마주하지 못했을 도시의 비가시적 층위들.
그러므로 타인에게 한 움큼씩 넘겨받아 한 층 다채로워진 신촌에 서서,
때로는 비합리적인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모순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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