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신촌 놀이터
작년 하반기부터다. 전국적으로 ‘뽑기방’이라고 불리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뽑기방’은 기존 가게들이 나간 자리에, 리모델링도 간판도 없이 ‘뽑기방’ 현수막 정도 걸고 인형 뽑기 기계들을 배치한 형태였다. 지금까지 들어본 ‘방’ 시리즈 중에 목적성이 제일 간단 명료한 방이었다. 가게를 지키고 있어야 할 주인은 CCTV로 보고 있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신촌도 예외는 아니다. 신촌, 이화여대를 돌아다니며 에디터가 대충 확인한 ‘뽑기방’만 해도 5개나 되었다. 그 중 신촌 치킨 골목에 자리한 ‘신촌 놀이터’는 제일 성의를 차리고 간판도 단 뽑기방이었다.

2개의 층을 쓰고 있는 ‘신촌 놀이터’
‘신촌 놀이터’를 검색 해보니, 이 곳에서 뽑기를 한 사람들의 후기가 나왔다. ‘신촌 놀이터’는 괜찮은 평을 받고 있다. 대부분 ‘뽑기방’의 인형들이 캐릭터 저작권을 보호하지 않는 불법 짝퉁 인형을 배치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신촌 놀이터’는 진품 인형을 들여놓고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는 마지막으로 인형 뽑기를 해본 게 기억도 안날 정도였지만 딱 만원만 써보겠다는 다짐으로 들어갔다.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법한 순위 차트의 노래가 아주 크게 나오고 있다.
에디터는 나름 잘 뽑아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갔다. 이론으로 배운 약간의 비법을 적어보겠다.
이 곳의 뽑기 기계들은 모두 ‘토이팝(Toys pop)’이다. 뽑기 기계의 가장 무난한 스탠다드인데, 이는 기계의 집게 모양으로 알 수 있다. 안 적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신촌 놀이터’는 친절하게도 모든 기계에 ‘토이팝’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토이팝’은 결정적으로 장애물에 취약하다. 인형 하나를 물고 오더라도 다른 인형에 걸리는 순간 바로 떨어뜨려 버린다. 이 점을 유의해서 가져 오는 길에 장애물이 없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소한의 돈으로 뽑을 수 있는 비법은 인형 넣는 통인 드롭박스(drop box)와 가까운 인형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탑처럼 쌓여 있는 인형들이 드롭박스 높이와 유사하거나, 살짝 높은 경우가 제일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론대로 될 수 있다면 ‘뽑기방’은 망한다. 사장님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게를 오픈하기 전 인형 배치를 조절하신다. 그 증거가 못생긴 녹두 오리 인형들이다.


이 불쌍한 녹두오리 친구들은 장애물이다.
놀랍게도 녹두오리 인형들은 ‘신촌 놀이터’ 모든 기계의 동일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 친구들은 우선 모자가 있어서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두 오리 인형보다는 더 예쁘고 귀여운 인형들을 뽑고 싶어한다. 그래서 저 멀리서 예쁜 인형들을 데려오려 하지만 잡아 오는 길에 놓치고 만다. 혹은 가까이 와도 녹두 오리 인형의 머리에 부딪혀 떨어뜨리고 만다. 녹두 오리의 딜레마다.
꼼수라고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신촌 놀이터’는 양심적인 편이다. 어떤 ‘뽑기방’은 아예 집게발에 인형을 잡을 수 힘조차 없게끔 나사를 조정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꼼수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원하는 인형이 녹두 오리 인형에 방해 받지 않을 자리에 놓여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원하는 인형이 드롭박스와 가까이에 비슷한 높이로 있어야 한다.
세 번째, 기계를 테스트해보는데, 잡는 힘이 지나치게 약한 기계면 하지 말아야 한다.
이론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실전이다.

새로운 재능일지도 모른다.
에디터는 총 6판을 했는데 마지막 3판을 피카츄 인형 기계에 썼다. 물론 하나 잡았다.
조금 자랑을 해보자면 그 곳에서 뽑기를 하던 분들을 인터뷰 했는데 그 분들보다 에디터의 승률이 더 좋았다. 으쓱. 피카츄 인형 정품 소매가가 만 사천원 정도이니, 손해본 거래는 아니다.
30분 정도 ‘신촌 놀이터’에 있으니, 에디터를 포함해서 8명의 손님이 왔다. 몇 분들을 인터뷰 해보니 평균적으로 8천원에서 만원 정도의 금액을 쓰고 가는 것 같았다. 인형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면 뽑기보다는 인형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인 방법이다. ‘신촌 놀이터’의 경우 정품 인형들이어서 가격이 꽤 나가긴 하지만, 사행성인 뽑기보다는 일반 인형 가게에서 구입하는 것이 원하는 상품(인형)에 대한 구매 리스크를 훨씬 줄일 수 있다.

드라마 <도깨비>의 ‘메밀군’을 뽑으신 메밀양. 그녀는 친구 분들이 알아볼지도 모른다며 사진에서 손톱까지 숨기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뽑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짧은 노력에 비해 얻게 되는 강렬한 ‘득심(得心)’이다. 뽑기를 성공함으로써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극. 이 간헐적 자극을 사행성 게임 중독 원인인 ‘강화 계획 이론’에서 설명하는데, 결국 이 자극도 너무 많이 노출되면 도박에 빠지는 루트와 동일해진다. 과유불급이다.
‘뽑기방’의 유행을 놓고 그 원인을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꼽을 수 있다.
우선 사행성 게임이 활개치기 좋은 경제적 불황시기다. 뽑기 게임 자체가 큰 돈을 쓰기 보다는 적은 돈으로 단기간에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노오력’ 해서 성공 발 끝에 겨우 도달할 수 있다는 시대에서 적은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해주는 것은 약간의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공급자에게는 인건비가 들지 않는 장점과 전력비, 인형 보충의 비용만 부담하는 편리한 창업 구조가 주어진다. 캐릭터 산업 종사자들 입장에서도 저작권이 있는 인형의 수요가 커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수요자에게는 혼놀족(혼자 놀기족)의 증가와 게임 ‘포켓몬GO’의 유행,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 소비되는 예쁜 인형 이미지들이 수요를 자극시키는 요소가 된다.

‘게임만 꽝이고 내 인생은 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신촌의 특수성이 있다. 신촌은 사람 만나기 좋은 장소다. 뽑기 게임은 친구를 만나서 내기로 하기 좋다. 또한 친구를 기다릴 때 ‘뽑기방’은 시간을 때우는 데에 알맞은 장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이용객들 중에 혼자 오신 한 분은 약속시간까지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오셨다고 하였다.
또한 신촌의 사람들만 유행에 민감한 것이 아니다. 상권도 이에 버금간다.
이 글의 주인공인 ‘뽑기방’이 그 단적인 예시일 것이다. 특히 ‘신촌 놀이터’가 있는 이 건물은 신촌에서 상권이 꽤 자주 바뀌는 건물이다.

2010년의 일식 이자카야 니혼만땅, 2014년의 술 향에 취한 통닭, 2015년의 HOT N BEER.
HOT N BEER 외관을 보면 ‘신촌 놀이터’가 그대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촌의 골목 상권은 유행을 환대하지만 유행의 지속성에는 신경 써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지속성은 짧아지고 있다. 이자카야 일식집이 유행하던 2010년의 ‘니혼만땅’, 2014년 이색 치킨으로 유명했던 ‘술 향에 취한 통닭’, 무조건 치킨이면 되던 2015년의 ‘HOT N BEER’, 2017년의 ‘신촌 놀이터’까지. 해당 건물의 업종 변화 주기는 3년에서 2년, 1년 그리고 지금 미지수로 흘러가고 있다.

3월 10일에 오픈을 예정하고 있는 3층 게임방 신촌 지플렉스. 뽑기방부터 오락실 게임까지 없는 것이 없다.
유플렉스에서 이름을 착안한 것인지는 몰라도, 뽑기부터 오락실 게임까지 다 모아놓은 대규모의 ‘G.PLEX(지플렉스)’가 신촌 명물거리에서 3월 10일 개장을 앞두고 있다. 명물거리에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오락실이 있지만 더 깔끔하고 다양해진 ‘지플렉스’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결국 신촌에서 간판도 없이 운영되던 소규모 오락실들은 다시금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신촌 놀이터>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1길 8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