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마당 시네마당 # 프랑코포니 영화제 # KEEPER
스위스, 가봉, 벨기에, 모로코,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캐나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것. ‘프랑코포니’는 프랑스어를 행정 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 기구에서 출범하여 현재는 프랑스 문화가 깊게 침투되어 있는 국가들 까지를 포함하여 일컫는 단어이다.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10년 전부터 참관국의 자격으로 프랑코포니에 속해있다.
매년 3월 20일은 국제 프랑코포니의 날로, 프랑스어권 국가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행사들이 세계 전역에서 진행된다. 3월 20일은 2017년의 봄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신촌의 독립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그 일환으로 프랑코포니 영화제가 열렸다. 이번 영화제는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에 걸쳐 7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할 것!

L’Histoire de Maxime et Mélanie
에디터는 일곱개의 선택지 중 벨기에의 영화 <키퍼(Keeper)>를 골랐다. 부제는 l’histoire de maxime et mélanie ‘막심과 멜라니의 이야기’이다. 열 다섯살 짜리 연인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것은 그들이 부모가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물 흐르듯 시작되어 예측 가능한 코스를 따라 달려간다. 사랑하는 연인, 임신 사실의 발견, 맥심의 잠수, 낙태에 대한 고민, 만삭의 멜라니, 출산까지. 그 뒤 이렇다할 결말은 생략한 채 크레딧이 올라간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서사는 하나의 작품을 본 것 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을 관찰한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결국 네가 지켜낸 게 뭔데?
그래, 사실 이 영화를 ‘즐겼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 모르는 두 청소년 때문에 답답했다. 인형뽑기에 성공하면 아기를 낳겠다는 진지한 고민 없는 결정이나, 아이를 입양보내려는 멜라니에게 무턱대고 욕을 하는 막심, 프로 구단에 갈 수 있는 일생 일대의 기회에서 핸드폰만 붙잡고있다가 결국에는 박차고 나오는 장면까지. 멜라니가 만삭의 몸으로 기어코 엄마 몰래 클럽에 가는 장면에서는 마음 속에서 이 노답들을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목과 달리 그들은 꿈도, 아이도, 어쩌면 사랑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하나씩 선택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그들 주변을 둘러싼 사회 분위기를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건 오로지 네가 결정 내릴 문제야
처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막심은 ‘내 아이가 확실하냐’ 며 멜라니를 울렸다. 그러나 이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뻔뻔하게도 아이는 우리 둘의 합작품이라며 낙태를 결심한 멜라니를 말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조른다. 아이를 낳자고. 그럼에도 부모님들, 상담사, 병원 관계자는 멜라니에게 한결같이 말한다. 이것은 네 몸이고 네가 하고싶은대로 해야한다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대두에 따른 여성 인권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안건 중 하나는 임신중단(낙태) 이다. 여전히 한국에서 낙태는 불법이며 음지에서 일어난다. 낙태를 한 여성은 사회적으로 비윤리적이라며 손가락질 당하고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어있다.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임신의 모든 과정이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에 대한 결정권이 온전히 당사자에게 있다’는 명제가 기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엿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또 미혼모 시설을 고르는 과정도 재미있는데 그 곳에서 생활하며 여성들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게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해서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사라지고 모든 육아의 책임, 사회적 시선을 홀로 떠안아야 하는 한국과 달리 벨기에에서는 미혼모 시설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어느 미혼모 시설로 갈지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니.

<키퍼(Keeper)>를 비롯해 유럽권의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 가족’ 의 범주에 들어맞지 않는 인물과 가족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막심의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이고, 멜라니의 엄마도 싱글맘이다. 여담이지만 에디터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시기 많은 친구들이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 가족들 중 어느 하나 ‘정상 가족’ 이 없었다. 한 두번쯤 이혼 하는 것은 예사요, 우리 집 마담은 옆집 아저씨와 반 동거를 하며 쌍둥이를 키웠고, 교수님은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셋 낳아 키우는 중이었다. 비정형성을 수용하는 그곳의 분위기들이 영화의 기저에 고스란히 깔려있어 오랜만에 다시 그 때 생각도 나고 잠시 향수에 젖었다.
기호로서의 예술은 시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맥락성을 지닌다. 그 중 영화는 인간 조건을 반영하기 최적화된 매체이며, 프레임 위를 떠다니는 상징들을 모아 그 맥락을 해독하는 과정은 꽤나 즐거운 유희다. 그리고 그 문맥과 나에게 익숙한 문맥의 간극이 커질수록 그 재미가 커지기도 한다.
평소 문학이나 영화를 대할 때 에디터는 생소한 문화, 혹은 인식에 대한 간접적 경험으로서의 체험에 많은 가치를 두는 편이다. 작품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 한 명, 한 명 안에는 원작자가 만나고 경험했던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녹아있다.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늘 즐거운 경험이며 내 세상의 확장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만난 벨기에의 연인에게서 때마침 최근 관심 있던 주제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접한건 토요일 오전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늘 유럽병에 걸려있는 에디터에게 두 시간 동안이나마 그 곳에 다녀올 기회를 준 것이다.
키퍼
keeper
벨기에 / 2015 / 91분 /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기욤 세네즈
출연: 케이시 모텟 클레인, 갈라테아 벨루지
2016년 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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