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파티오(Patio)
옛날부터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있다. 사람을 사귈 때는 사계절을 다 보고 사귀라고.
딸의 신중한 연애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었겠지만, 웬걸. 그 딸은 너무나 신중한 나머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쨌든 누군가와의 만남을 곱씹어 볼 때, 함께 보낸 계절을 세어보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그 계절을 겪으면서 더욱 좋아진 인연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관계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서는 단순히 함께한 시간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그 계절 하나 되짚어 보는 것이 더 낭만적이지 않은가.
마냥 인간만 계절에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꽃은 더 나아가 그의 생명을 계절에 맡긴다.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줄 것이냐는 어떤 가사처럼, 짧지만 아름다운 애상(哀傷)의 한 철을 보내는 것이 꽃이다. 그러한 꽃과 닮은 것이 또 우리네 청춘일 것이다. 꽃 같은 청춘이 모여 있는 신촌에 사실 생화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식물을 키우기에는 공기도 좋지 못하고, 나무보다 생명력이 짧고 민감한 꽃은 아무래도 찾기 힘들 수밖에.
하지만 이런 신촌에 벌써 18년, 일흔번째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정원이 있다. 바로 ‘파티오(Patio)’. 스페인어로 ‘정원’이라는 뜻의 이 카페 겸 바(bar)는 신촌의 한 켠에서 그 세월을 양분 삼아 지붕의 넝쿨을 키워가고 있다.

우-아해.
파티오는 신촌 현대 백화점 뒷골목에서 쭉 들어가면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카페다. 첫 방문도 그러하였고 두번째 방문에서도 한 번에 파티오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식물로 가득한 이 외관이 어떻게 눈에 띄지 않을까 싶지만, 이 골목의 맞은 편에 미분당과 기꾸스시의 1호점들이 있기에 멀리서는 그곳들의 간판에 더 눈이 간다. 그러다가 오른쪽을 보면 눈에 들어오는 정원식 한옥의 외관. 딱딱한 골목에서 굉장히 어색할 듯한 외관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자연’스럽다.

마당의 돌분수가 평화를 맡고 있다.
파티오의 ㄷ자형 구조는 마당에 들어선 손님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카페 내부에 들어가서도 어디든지 정원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더불어 깨끗이 닦인 투명한 유리 창문은 외부의 정원을 실내로 가져온다. 마당의 꽃들 외에도 테이블마다 놓인 소소한 꽃과 카페 내부의 크고 작은 꽃들은 이 곳이 정말 정원인지, 카페인지 헷갈리게 한다.
2000년 3월, 한옥 정원 카페로 문을 연 파티오 사장님들은 처음에는 마당에만 화단을 놓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주위에서 사오는 개업 축하 꽃들에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내부에까지 들여놓게 된 지금, 제철에 맞춰 남대문 시장에서 직접 꽃들을 공수해오신다. 수고스럽지 않냐는 에디터의 물음에 중년의 사장님은 허허 웃으셨다. 두 분의 사장님들께서는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꽃을 단순한 인테리어 이상의 가게 정체성으로 생각하시는 듯 했다. 중년의 사장님 두 분께서 정성껏 꽃에 물을 주시는 모습은 훈훈했다. 진정한 꽃중년이었달까. 꽃을 든 남자도 아름답겠지만 꽃에 물 주는 남자는 더욱 아름다웠다.

싱그럽다는 말로 부족해, 생(生)그러워!
이 곳의 화룡정점은 바로 과일이다. 꽃도 살아있지만 서비스 간식마저 살아있다. 계절마다 종류는 조금씩 바뀌지만 대체로 포도, 파인애플, 딸기가 서비스로 나온다. 처음에는 멀리서 이 신촌 구석까지 찾아와준 단골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손님을 섭섭치 않게 챙겨주기 위해 기본 서비스로 챙겨주신다고. 덕분에 파티오에 다녀오면 장소, 사람, 음식까지 모두 생생해지는 느낌을 받게 해준다.
이 글을 통해 파티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신초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파티오는 올해 18번째 여름을 맞이했다. 그 세월을 증명하듯 주문하며 오고 가는 대화가 참 정겹다.
客 “아저씨, 주문할게요~”
主 “네 주문은 안받을거야~”
말은 그리 하시면서도 사장님의 올라간 입꼬리와 손님에게 다가가는 그 발걸음은 사뭇 밝다.

파티오에 들어가면 왼쪽은 소파 의자, 오른쪽은 딱딱한 의자다. 선호에 맞춰서 앉으시길.
사람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이 거진 다 갖추어진 신촌이지만, 없는 것이 하나 있다면 미술관이다. 대신 신촌, 이대 부근에는 꽤 많은 갤러리 카페들이 있다. 파티오 역시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 카페다. 사실 파티오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이 처음부터 갤러리 카페였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친구의 그림을 전시해주다가 나중에는 서대문구 미술 협회에서 전시 지원이 들어왔고, 현재는 마포구 미술 협회 지원이 들어오고 있다. 계절과 함께 바뀌는 꽃과 더불어, 달마다 바뀌는 그림 보는 맛에 또 파티오를 찾을 핑계가 생긴다.

잔치의 막내가 파티오의 심(장)쿵 포인트는 화장실의 ‘You are so beautiful..’이라 했다.

구찌 감성의 각설탕 그리고 풀잎은 빼꼼.
파티오에 많은 친구들을 데려갔지만 하나 같이 나오는 반응들은 ‘예쁘다.’ 그리고 ‘신촌스럽지 않다.’ 였다. 그렇다면 신촌스러운 건 뭘까? 오래 있었다거나, 유명하다고 해서 신촌스러운 건 아닌 것 같다. 신촌의 제일 오래된 카페인 미네르바를 간다 해서 우리가 ‘신촌스러움’을 느끼나? 그렇다면 최근에 신촌에서 가장 번창한 다모토리를 ‘신촌스러움’으로 느끼는 건가? 각자 생각하는 신촌의 정체성이 다르겠지만, 현재의 ‘신촌스러움’은 약간 붕 뜬 것 같다. 에디터가 그 정체성에 정착을 못한 것인지, 신촌이 정착을 못한 것인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르겠다.

너도 신초너(sinchoner).
능동적으로 형성되는 인간의 정체성과 달리 장소의 정체성은 그를 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부모의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티가 난다고 한다. 이는 공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주인과 손님들에게 애정을 듬뿍 받은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 애정을 돌려준다. 우리는 공간으로부터 받은 애정으로 다시 장소에 정체성을 부여하게 된다. 요즘은 공간들이 애정을 주기 전에 사라져버리니, 정체성이 새겨진 공간을 찾기 힘들다.
빠르게 변화하는 신촌에는 디자인적으로 신경을 쓴 곳이 많다. 그 중에서도 사람의 손을 탄 공간은 티가 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다시 사람을 부른다. 마치 파티오의 단골들이 이 신촌의 구석진 골목을 굳이 다시 찾아오는 것처럼. 사람 손을 탄 공간, 계절의 나이테가 묻은 공간, 이런 것이 ‘신촌스러움’이 되길 바라는 소망을 파티오에서 찾는다.

파티오(Patio)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62-31
Tel. 02-333-9467



파티오에 관해 몇 가지 여쭤보고싶은게 이렇게 연락 남깁니다. 메일로 꼭 연락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