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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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7 · 05 · 25

69. 구복

Editor 주디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밤, 간만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에디터는 비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우산을 써도 꼭 어딘가 젖는 것이 찝찝하기도 하고 공기도 눅눅한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 혹자는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지만 왠지 에디터에게 그런 모습은 과시용 감상으로만 비칠 뿐이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좀 와야 더위가 가시지. 요 며칠 과하게 더웠잖아?” 우산을 피며 볼멘소리 하는 에디터를 친구녀석이 나무란다. 더위를 식히는 비. 그래,  그런 비라면 가끔은 와주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은 막걸리’라며 매달리는 친구 녀석을 기어이 버스에 태웠다. 그는 버스 타는 순간까지도 영업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에디터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럼 너 말고 동네친구(이 친구는 회기동에 산다.)들이랑 한잔 해야겠다.” 고 투덜대며 그는 버스에 올랐다. 마침 파전이 유명한 동네이니 안성맞춤이리라. 에디터는 다소 길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실랑이를 그렇게 싱겁게 끝내버리고 신촌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한 데 별다른 이유는 없다. 비를 핑계로 술잔을 채우며 감정을 소비하는 청승이 싫을 뿐이다. 이제 이대로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2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아마 전동차는 평소보다 더 불쾌하리라. 집에 돌아가도 별달리 할 일이 없다.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가 싫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 고작일테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어딘가 공허하다. 평소 같았으면 버스 세 대는 기본으로 보냈을 친구녀석이 유독 빨리 가버린 탓일까? 신촌역을 향하는 발걸음에 어딘가 모를 아쉬움이 묻어났다.

 

 역으로 향하던 에디터는 어느새 명물거리 뒷골목을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옅은 간장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미묘하게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먼저 길가의 작은 가게로 돌아갔다. 언뜻 보면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지만 입구 주변은 말끔하게 정리돼있다. 문 위의 가게 이름이 떨어져 옆으로 달린 간판을 봐야 이름을 알 수 있다. ‘구복(口福)’. 이상한 이름이다. ‘먹으면서 복을 빈다’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먹을 복’을 말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입이 복이라는 건가? 묘한 호기심에 가게를 들여다 보니 중국 음식점이다. 단조로운 외관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면 깔끔한 벽 찬장이 중국적인 소품으로 여기저기 장식돼있다.

 

 

  들어올 테면 들어오고 아니면 말라는 주인장의 시선이 느껴진다. 에디터는 어느새 가게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순간 멋쩍어진 에디터는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 들어온 김에 저녁이나 해결할까?’ 그래,  어차피 지금 지하철 타봐야 사람만 많고 축축해질뿐이다. 이런 날일수록 러시아워(rush hour)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  방금까지 운운하던 비오는 날의 청승은 잠시 넣어두고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니 꽤 깔끔하다. 고풍스러운 중국 가구로 채워진 일반적인 중국집과는 다르다. 오히려 개인카페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찬찬히 살펴보면 중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게 한 구석에 폭죽이나 부채가 걸려있기도 하고 찬장에는 중국자기가 전시돼있다. 카운터에는 ‘복()’자가 선명한 잉어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메뉴판을 읽어보니 일반적인 중국집과 다르다. 흔한 자장면이나 짬뽕, 혹은 탕수육 같은 부담스러운 튀김요리는 전혀 없다. 대신 중국 현지에서 즐겨먹는 기스면, 우육면, 마파두부나 샤오롱바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중국집’이라기 보다 ‘중국 가정식집’에 가깝다.

 

 

  에디터의 발길을 붙들었던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옆 테이블에 갓 나온 홍소우육면(紅燒牛肉面)이었다. 오래 우려낸 소고기 육수에 면을 말아 먹는 음식이 우육면이다. 여기에 중국식 간장으로 쪄낸 소고기를 넣은 것이 바로 홍소우육면. 고기와 간이 맞도록 국물도 같은 장으로 우려내 검붉은 빛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에디터가 우육면을 처음 먹어본 것은 중국여행 때였다. 기름진 중국 음식에 물렸던 차에 우연히 사먹은 우육면은 일종의 구원같았다. 진한 소고기 육수에 면을 말아먹으니 속이 개운하기까지 했다. 꼭 돼지국밥을 먹는 느낌이었달까. 이후 우육면이 이유 없이 땡길 때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본토의 맛을 지닌 우육면을 취급하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에디터는 고민 끝에 샤오롱바오 하나, 홍소우육면 한 그릇 그리고 마파두부 한 접시를 시켰다. 거의 2인분에 달하는 양.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혼자만의 만찬을 이왕이면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미리 빚어져 있던 샤오롱바오가 가장 먼저 나왔다. 샤오롱바오는 한국말로 소룡포(小龍包)다. ‘작은 용 만두’쯤 되는 이름인데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찐만두를 저렇게 부른다. 작고 귀여운 대상에 붙이는 소()에 만두 모양이 용틀임처럼 생겼다 해서 용()을 붙여 소룡포다.

  ‘구복’의 샤오롱바오는 한 판에 예닐곱 개쯤 들어있다. 크기도 한 입에 먹기 적당하고 만두피도 터진 곳 없이 잘 마무리돼있다. 사람들이 샤오롱바오를 먹을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갓 쪄낸 샤오롱바오를 바로 먹어버리는 것이다. 만두 속에 있는 육수는 매우 뜨겁기 때문에 그렇게 먹으면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입이 데일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만두피를 찢어 육수를 어느 정도 빼낸 후 식혀 먹어야 한다. 이때 육수를 다 빼지 않고 적당히 남기는 것이 포인트다. 그래야 남은 육수가 만두 속을 녹여 입 안에서 만두속이 고르게 퍼진다. 이렇게 먹어야 비로소 샤오롱바오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샤오롱바오를 하나 집어 숟가락 위에 올려두고 살짝 찢었다. 피를 찢을 때는 반드시 숟가락에 올려두도록 하자. 그렇게 해야 흘러나온 육수를 버리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찢겨진 피 사이로 육수가 세어 나온다. 미처 다 흘러나오기 전에 초간장을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 곱게 다져진 고기가 진한 육수와 함께 입안에 퍼진다. 고기와 육수의 홍수에 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이어서 숟가락에 고여있는 육수를 한번에 들이킨다. 자고로 맛있는 샤오롱바오는 그 육수 맛이 결정하는 법이다. 진한 고기 속의 맛이 우러나는 육수로 보아 ‘구복’의 샤오롱바오는 상품(上品)인 것이 분명하다.

 

 

  샤오롱바오를 절반쯤 먹었을 때 홍소우육면과 마파두부가 나왔다. 세 접시가 상에 올라오니 제법 호화롭다. 역시 먼저 젓가락이 찾아간 곳은 홍소우육면이다. 사실 샤오롱바오를 먹고 은근히 배가 불러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으려나 걱정했었다. 그러나 왠걸, 에디터를 이곳으로 이끈 그 냄새가 다시금 코를 자극하자 거짓말처럼 식욕이 돋았다.

  먼저 홍소육 한 조각을 꺼내 먹어본다. 우리나라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간장수육쯤 되겠다. 큰 덩이를 베어물자 약간 질긴 느낌으로 뜯어진다. 정석대로 익었다. 부드러운 육질에 옅은 간장 향이 잡내를 잡아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원래 홍소육은 쪄내기 전에 고기를 가볍게 튀겨 기름코팅을 하는데 우육면에서는 튀기지 않고 쪄내기만 한 것 같다. 홍소육의 탱글탱글한 맛이 조금 떨어진 듯 하지만 또 국물과의 어울림을 생각하면 역시 튀기지 않은 홍소육이 제격이다. 면은 비교적 얇다. 수타로 면을 치는 경우 보통 이보다 두꺼우니 수타면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 라멘집의 얇은 면 같다. 원래 형태와 다소 다르긴 하지만 면이 얇은 덕에 잘 불지 않고 육수 맛이 유지 되니 또 그것대로 매력이다. 국물에는 중국 간장 특유의 향이 가득하다. 옆자리 손님은 냄새가 너무 심하다며 불평하지만, 사실 중국 현지 홍소우육면에 비하면 연한 편이다.

  마파두부는 중국 사천지방의 음식이다. 고대 사천에서 마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만든 두부요리 레시피가 아직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마파두부(麻婆豆腐, 婆 : 할머니 파). 매운맛을 기본으로 하는 사천요리 답게 알싸한 맛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구복’의 마파두부는 특유의 불그스름한 색과 매콤한 향이 일품이다. 깍두기 모양으로 잘게 잘 썰린 두부도 숟가락으로 눌러보니 탄성이 훌륭하다.

  마파두부는 자고로 밥과 함께 먹어야 하는 법. 하얀 쌀밥에 마파두부 한 숟가락 퍼다가 비벼서 한 입 가져온다. 중간중간 마늘이 씹히며 향이 터지고 사천고추의 알싸함이 입에서 느껴진다. 시중의 두반장(콩과 고추로 만든 중국식 조리장)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장을 내려 볶은 것이다. 꽤 이름난 중식당에서도 공장제 두반장으로 슥 볶아서 마파두부를 내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은 식당에서 소스를 직접 하는 것은 여간 대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음식처럼 매콤한 것은 아니지만 재료의 향과 더불어 알싸함이 입안 곳곳에서 터지는 맛은 사천음식만의 매력이다.

 

 

  우육면 국물 한 번, 마파두부 덮밥 한 번 번갈아 가며 먹다 보니 어느새 한 상을 다 비웠다. 무리했지만 만족스러운 한 상이다. 막걸리도 친구녀석도 없었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을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항상 기분좋게 한끼 잘 먹는게 복이라고 하셨다. ‘구복’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구복(口福)에서 한 끼 먹고 구복(求福, 복을 구하라)하라는. 계산하려고 일어나며 밖을 보니 마침 비도 그쳤다. “내 이럴줄 알았지!” 지금쯤 비그친 막걸리집에서 씩씩대고 있을 친구녀석을 생각하니 묘한 승리감에 만족감이 배가 된다. 해가 막 져서 어두워진 것으로 보아 2호선 전동차도 한결 여유로워졌을 것이다. 여러모로 성공적인 식사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낙비처럼 문득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어떤 음식이 땡길때가. 혹시라도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한 상 즐겨보자. 무더위를 식혀주는 비처럼 지친 당신의 일상을 만족스럽게 적셔줄 지도 모르니까.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4길 26

연락처 : 02-363-2020 

영업시간 : 월요일~토요일 – 11:30~22:30  / 일요일 –  16:00~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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