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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7 · 09 · 14

72. 대구삼겹살

Editor 주디

신촌은 빠르게 변한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는 이내 새 가게들로 채워진다. 임대료가 비싸서, 유행이 바뀌어서, 혹은 사장님 개인 사정 등 그 어떤 이유가 됐든 신촌 상권은 역동적으로 변모해 왔다. 마치 바쁘게 달려가는 요즘 세상을 닮았다.  그러나 모두가 정신없이 바뀌는 와중에도 변치 않고 한 자리를 지켜온 가게가 있다. 명물거리의 번듯한 새 가게들 사이에서 40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구삼겹살’이다.

에디터는 몇 년 전 ‘대구삼겹살’을 우연히 알게 됐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평소엔 그냥 지나쳤는데 그날 유독 간판의 ‘since 1977’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한참 ‘응답하라 1988’, ‘응답하라1994’가 유행하던 때였다. 94년 88년도 그토록 멀게 느껴지는데 1977년이라니… 

흔한 냉동고기에 김치볶음밥, 오래된 인테리어, 그렇다고 엄청 싸지도 않은 가격, 평범한 고깃집이다. 그렇지만 항상 북적인다. 그냥 어르신들만의 아지트인가 싶다가도 은근히 젊은 손님들도 보인다. 한눈에는 4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비법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대구삼겹살’이 어떤 곳인지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에디터는 오랫동안 묵혀왔던 궁금증을 이번 기회에 풀어보기위해 오픈시간에 맞춰 대구삼겹살의 문을 열었다

 

응칠도 아니고 칠칠이다…!

 

 “우리 바쁜데.”

인터뷰를 요청한 에디터에게 단박에 돌아온 대답. 아니나 다를까 이제 막 오픈했음에도 손님들이 벌써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바빠서인지 사장님께서는 다소 무뚝뚝하게 대답하신다.

“그럼 내일 오픈 전에 찾아오세요. 지금은 안돼요. 보시다시피.”

거듭된 에디터의 인터뷰 요청에 불판에 호일을 깔고 계시던 사장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게 에디터는 다음날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고깃집에 들어왔는데 그냥 나갈 순 없다. 근처에 있던 지인을 소환해 인터뷰 전에 고기부터 먹어보기로 했다.

 

초장 간장 쌈장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자리를 잡자 금세 한 상 차려진다. 특이하게 초장도 나온다. 고기는 어김없이 냉동고기. 후추가 약간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이 뿌려져 있다. 약간 기울어진 불판에는 호일이 3장 깔려있다. 불판을 바꾸지 않고 호일만 한 장 한 장 벗겨가며 굽는 시스템이다. 불판에 마늘, 김치와 함께 고기를 올린다. 이제 여느 고깃집에서처럼 고기를 구워 먹으면 된다. 고기를 뒤집으며 돌아보니 어느새 가게에 사람이 가득 차 북적인다. 사장님께서 돌아다니면서 말하지 않아도 빈 그릇을 채워주신다. 첫인상은 다소 무뚝뚝해 보이셨는데, 손님에겐 친절하다. 한 손으론 취재용 사진을 찍으며 다른 손으론 고기를 먹고 있는 에디터에게 음료도 한 병 건네 주셨다. 배우신 분임에 분명하다.

 

상추 위에 고기는 항상 옳다

 

 한 상 배부르게 먹은 에디터는 다음날 저녁시간이 되기 전 다시 한 번 ‘대구삼겹살’을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전날 뵀던 사장님과 닮은 분이 고기를 썰고 계셨다. 인터뷰 하러왔다는 에디터를 몇 초간 빤히 쳐다보시더니

“아~맞다 잠시만요, 언니 지금 없는데 조금만 기다려봐요”

알고 보니 자매가 같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빈 자리에 앉아 조금 기다리니 이내 전날 뵀던 사장님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셨다.  두 사장님이 다 모이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에디터 : since 1977이라고 돼있는데요, 77년부터 이 자리 그대로 장사하신건가요?

  사장님 : 그렇죠, 올해가 지나면 40년째네요. 원래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를 저희 자매가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정식으로 받았구요. 원래 이 자리에 ‘대구족발’이라는 족발집이 있었다고 해요. 장사할 곳을 찾으시던 아버지가 신촌에 있던 가게를 인수한 것이지요. 전 주인이 대구사람이라 대구족발이라 이름 지었나봐요. 여하튼 그 가게를 받으셔서 2년 정도 족발장사를 하셨다고 해요. 그러다 당시 최신 유행이던 삼겹살을 전격 신촌에 도입하시기로 결정하셨대요. 아마 신촌에서 삼겹살이 제일 먼저 들어온 집일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자리에서 삼겹살을 팔고 있습니다.

 삼겹살이 워낙 대중적인 음식이다 보니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실 삼겹살은 70년대 들어 등장한 음식이다. 당시 일본이 고속성장하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 돼지고기를 수출하기 위해 축사를 대규모로 늘렸다. 목살, 앞다리살 등 식사용 부위를 중심으로 수출했는데 그러다보니 본디 식용이 아니던 삼겹살이 과도하게 남게 됐다. 이 남는 부위가 국내 소비용으로 저렴하게 유통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삼겹살은 맛좋은 한국식 바베큐의 전형이 됐고, 국내 돼지만으로는 한국인의 삼겹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해 전 세계 삼겹살이란 삼겹살은 다 우리나라가 수입하고 있다. 지금은 한식의 대표주자지만 70년대에는 핫 트렌드였던 삼겹살을 사장님이 신촌에 전격 도입한 셈이다.

 

70년대 핫 트렌드! 후추맞은 냉동삼겹

 

 에디터 : 어려서부터 부모님 가게가 신촌이다 보니 신촌에 대한 추억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70년대 신촌은 어땠나요?

  사장님 :  뭐 추억 정도가 아니라 어려서 나고 산 곳이 여기인걸요. 부모님이 77년에 가게 인수하시고 78년에 저를 79년에 동생을 가지셨어요. 말 그대로 저희 인생과 이 가게가 함께 한 셈이죠. 당시 명물거리는 지금처럼 번화가는 아니었고 주택가에 군데군데 가게가 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 현대백화점 쪽에 ‘신촌시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까지가야 식당과 주점이 조금 있었을 뿐이죠. 그때는 가게가 몇 없어서 그런지 상인들끼리도 가족같이 지내서 주변 상인들이 저희를 같이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부모님이 두 분이서 식당을 하시니 애 볼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낮부터 부모님이 고기 손질하며 가게 열 준비 하시면 뒤쪽 주차장에서 일하는 오빠가 저희랑 놀아주고 그랬어요. 지금 가게 앞에 큰 노래방 자리가 당시에 유치원이었거든요. 유치원도 거기 나왔어요. 심지어 가게 앞에 고무대야를 두고 거기에 물 받아서 수영하고 놀고 그랬어요(웃음)


 에디터 : 명물거리에서 수영을 하셨다고요? 와! 상상도 안 되는데요?

  사장님 : 지금처럼 사방팔방 가게만 있는 거리는 아니었으니까요(웃음), 그땐 주택이 더 많았어요. 그땐 신촌에 실개천도 있었다는데 사실 잘 기억은 안 나네요. 어릴 때 집은 가게 근처라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중학교는 근처에서 나왔고 고등학교는 이사를 가서 조금 멀리서 나왔어요.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신촌에 가게 있다고 그렇게 부러워했죠. 그때는 패션 하면 ‘이대’였거든요. 친구들이 저희 가게 놀러간단 핑계로 옷 쇼핑하러 가곤 했어요. 근데 정작 저희는 불편한 점도 있었어요. 남들 다 신촌에서 노는데 저희는 인근 홍대나 이대로 도망가 놀았거든요. 상인들이 저희 얼굴을 다 알다보니 몰래 놀 때는 멀리 가서 놀아야 했어요.

 

2호선 건설이 한창인 80년 신촌 로터리. 고로 대구삼겹살은 2호선 보다 오래됐다.(*사진출처 서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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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대구삼겹살이 거의 40년간 이 자리를 지켜왔는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법이 있을까요?

  사장님 : 인복이죠. 그저 인복이에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속 찾아주니까요. 예전부터 오시던 분들이 꾸준히 와 주시고, 또 그분들이 새로운 손님 연결해 주시고, 그렇게 새로운 단골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40년을 이어왔어요. 그 분들이 저희 먹여 살리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사실 건물주도 잘 만났어요. 주인분이 점잖으셔서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 않으세요. 그래서 이 건물에 있는 가게들이 오래됐나봐요. 위층에 미네르바*도 오래됐잖아요. 가게가 작은 것도 어떻게 보면 장수하는 비결인 것 같네요. 단순히 생각하면 가게가 커야 돈도 잘 벌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아요. 홀이 커지면 직원을 써야하고, 그 인건비 부담이 크거든요 사실. 그리고 테이블이 많으면 호황 불황에 따라서 매출 격차가 너무 커져요. 그래서 많이 벌 때는 많이 벌다가 힘들어지면 못 버티고 이내 가게를 접는 거죠. 그치만 우리 가게는 아담하다 보니까 경기가 좋든 안 좋든 매번 찾아주는 단골로만 해도 꾸준한 편이에요.  

* 미네르바: 대구삼겹살 위층에 있는 신촌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이모습 그대로 40년째 손님을 받아내고 있다

 

 에디터 : 그럼 지난 40년간 신촌이 변하시는 것을 이곳에서 다 지켜보셨겠어요.

 사장님 : 그럼요, 동생과 제가 이곳을 맡아 운영한지도 15년째니 그동안은 계속 여기서 지켜본 셈인데 많이 바뀌었죠. 매년 유행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신촌에 음악카페가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고 음악사나 값싼 소주집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나 하면 요샌 치킨집이 또 그렇게 많더라고요. 유행 때문에 바뀌기도 하고, 경기 따라 바뀌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동안 상인들도 많이 바뀌었지요. 예전엔 저희 집 양옆으로 삼겹살집만 4개가 쪼르륵 있었어요. 그 사장님들끼리는 가족처럼 친했거든요. 저희 집이 아직도 새벽 3시까지 하는데요, 그렇게 된 이유가 상인들이 모여서 그래요. 12시 넘으면 신촌에서 장사하시는 사장님들이 죄다 우리가게에 모여서 소주를 한잔 했었거든요. 그땐 다 같이 장사하고 다 같이 즐기고 그랬어요. 요즘은 예전 같은 느낌은 아니죠. 시대가 바뀌기도 했고. 특히 최근엔 경기도 좋지 않아서 인지 상인들이 싹 바뀌고 있어요. 뭐 어떻게 보면 좋은 점도 있지요, 그냥 우리만 우리 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그래도 예전처럼 상인들끼리 서로 다 알고 챙겨주던 시절이 그립긴 해요.

 

  에디터 : 그렇군요, 그런데 어쩌다 가게를 물려받게 되셨나요? 저는 다름 아니라 ‘대를 이어 하는 가게’라는 점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가게를 물려받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장님 : 취업이 안돼서?(웃음) 아니 뭐, 저희 때도 IMF 직후라 취업이 쉽지 않은 시기기도 했고, 이게 부모님을 닮아서 장사꾼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동생이나 저나 성격이 참고 못살아요. 직장생활 하려면 눈치도 보고 싫어도 꾹 참을 줄 알아야 하는데, 저희는 천성이 그러지를 못해요. 작은 가게라도 가게를 하면 내가 사장인데, 직장생활은 그렇지 않잖아요. 젊었을 때 잠시 취직해보기도 했는데 성향에 안 맞더라고요. 마침 부모님이 가게를 하시고 하니, 가게일 도우면서 인수받기로 결정했죠. 가게 일이라는 것이 하루 12시간 일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이게 성격에 맞고, 또 매번 찾아주시는 단골들 얼굴 보는 맛도 있어서 지금 일이 좋아요.

 

 에디터 :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네요. 마지막으로 오래 가게 운영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 하나만 소개해주시겠어요?

 사장님 : 일화라…글쎄요 그냥 매번 오는 단골들 또 오는 이야기뿐인데…(한참 고민하시더니) 아 참! 이 이야기 해드려야겠네, 세브란스 직원 중에서 저희 가게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이 계세요. 몇 년 전 일인데, 보통은 손님들이 학생이거나 근처 일하시는 분들이라 점잖으신데, 가끔 거친 손님들도 오시거든요. 그날따라 손님 한 분이 조금 거친 진상이 왔는데 손님들끼리 시비가 붙더니 사태가 심각해지드라고요. 병도 깨지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가게가 좁다보니 다른 손님들은 무서워서 다 나가시는데 그분은 평온하게 고기를 계속 구워 드시더라고요. 다행히 경찰이 빨리 도착해 사태는 무사히 마무리 됐습니다. 사실 정말 무서웠는데,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켜주신 것이 너무 의지가 되고 고마웠어요. 나중에 그때 안 무서우셨냐고, 왜 안 나가셨냐고 물어보니 병원에는 그보다 더한 일이 워낙 많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우습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랬죠. 그런 분들 보는 맛에 계속 장사 합니다.

 

에디터 : 정말 고마우신 분이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사장님들에게 대구삼겹살이란? 그리고 단골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사장님 : 가게가 우리집이죠 집. 진짜로 어쩔땐 가게에서 엎드려 자는게 집에서 자는것 보다 편해요.(웃음) 자는 집은 여러번 이사했어도 여긴 태어났을때부터 그대로니까. 그래서 말 그대로 우리집이에요. 단골들에게…뭐 별거 있나요. 저는 몸이 허락하는 한 가게에 계속 나올테니까요, 단골들도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고 일년에 한 두번 생각나시면 얼굴이나 비춰주세요. 곧 가을이니까 얼굴들 한번씩 봅시다.

 

40년간 신촌을 지켜온 두 자매

 

 사장님이 단골을 추억하시는 사이 어느새 오픈시간이 되고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빠지기 시작할 사장님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에디터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섰다.

사장님들의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주차장과 유치원은 사라지고 이제 그 거리는 온갖 프랜차이즈의 전시장이 됐다. 사실 프랜차이즈야말로 신촌이 정신없이 바뀌는 주 원인 중 하나다. 프랜차이즈는 메뉴와 인테리어가 규격화돼있어 창업이 쉽다. 높은 브랜드 인지도는 소비자 접근성을 높여 창업실패 확률을 줄여준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프랜차이즈를 택하는 이유다. 그래서 웬만한 번화가들은 여지없이 프랜차이즈로 뒤덮이기 마련이다. 이른바 프랜차이지피케이션 (Franchisification)의 시대다. 신촌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에도 불구하고 신촌에서 대를 이어가며 자리를 지켜가는 가게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뭇 고맙다. 40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는 것이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하루의 절반은 가게일을 하면서도 단골들 보는 맛이 있다며 그 자리를 지켜오신 사장님들, 그 오랜 시간동안 잊지 않고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들, 그리고 무리한 요구없이 공간을 내 주신 건물주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일부러 대구삼겹살 쪽으로 돌아가봤다. 가게는 여전히 북적이고 있다.

 

하…간만에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할까…?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명물길 18

연락처 : 02-392-6801

영업시간 : 매일 17:00 ~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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