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가마마루이

여긴 춥다, 주머니에 손을 숨겨봐도. 너무 춥다, 손을 모아 입김 불어봐도.
마음이 얼어 붙어서 자꾸 입술이 튼다.
나만 춥다, 이불로 내 몸을 감싸봐도. 너무 춥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봐도.
가슴이 구멍 나서 막아보려 해도 자꾸 바람이 샌다.
-에픽하이 <춥다 (feat. 이하이)>
딱 요맘때 많이 듣는 곡이다. 에픽하이의 <춥다>.
진짜 춥다. 알록달록 단풍이 드는 가을이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비바람은 자꾸 겨울 준비를 서두른다. 분명 올해도 봄, 여름 그리고 잠깐이지만 가을도 있었을 텐데 그저 무작정 겨울이 와버린 느낌이다.
올해 나 뭐 했지? 뭐 했는지 사실 돌아볼 여유도 없이 학교 수업, 토론, 발표, 보고서 등등으로 정신이 없다. 그런데 추워진 날씨에 문득 올해의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괜시리 뭐했나 싶다. 뭘 아예 안 한 건 아니다. 분명히 나름대로 바쁘게 뭔가를 했다. 그런데 정작 내면에 무엇이 남았는지 찾으려고 하니까 뒤숭숭해지는 것이다.
사실 저학번 때는 뭐가 남았는지 따위 고민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고등학교 때는 그냥 대학이나 가야지 했던 것 같은데. 분명 취직을 하고 나면 대학 다닐 때는 그래도 이런 고민은 안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그때는 그랬는데’ 하는 것 자체가 속된 말로 ‘꼰대’가 된 느낌이다.
아, 진짜 춥다. 누가 고학번 아니랄까봐, 최신노래는 냅두고 2012년에 발매된 에픽하이의 <춥다>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정말 몸도 마음도 춥다고.

오늘도.. 혼밥..하러.. 가는.. 길..~~
몸도 마음도 추운 오늘, 수업이 끝나고서 남는 것은 혼밥이다. 혼자 밥 먹기. 혼자 밥 먹을 수도 있지 뭐 그렇게 서럽나 싶지만 이런 추운 날에는 뭘 해도 외로운 법이다. 그리고 그때의 혼밥은 눈물 나게 서러울 수 있다. 하지만 슬프게 눈물 흘리면서 밥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럴 때는 서러움을 덮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신촌에서 추운 날 혼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을 때. 이 세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을 떠올려보자. 첫 번째, 추운 날이라면 따뜻한 것이어야 한다. 두 번째, 혼자라면 바(bar) 좌석이면 좋겠다. 세 번째, 맛있는 것이라면 내 입맛에 맞으면 된다.
그렇게 발걸음으로 옮긴 곳이 ‘가마마루이’였다. 가마마루이를 처음 가본 것이 언제더라. 기억도 안 나는 과거인듯하다. 그만큼 가마마루이는 오랜 시간 신촌의 골목 한구석에 자리 잡아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작년 겨울 몇 번 찾아간 이후로 올해는 처음 방문한 것이었는데, 평소 즐겨보는 백아저씨의 <삼대천왕>에 나왔다는 홍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걸 보고 ‘부럽다. 일년 새에 가마마루이는 스펙이 나아졌네.’ 라고 생각했다면 지나치게 순수를 잃은 것일까.

추운 날, 따뜻하게 대기하는 곳
가마마루이는 오전 11시~ 오후 3시까지 점심 영업을 하고, 오후 5시~ 9시까지 저녁 영업을 한다. 평소에 웨이팅이 많기도 하고 브레이크 타임도 있어서인가 대기하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에디터는 4시 50분쯤 가마마루이에 도착해 대기하는 곳에 들어가 난로를 쬐며 5시를 기다렸다. 대기하는 곳 안에서는 주방 내부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데 큰 가마 세 개가 연기를 뿜어 내는 게 눈에 띈다. ‘가마마루이’는 가마 여러 개를 돌려가며 쓴다는 뜻이라고 한다. 저 가마들 안에는 아마 기본 육수, 순한 돈카츠 라멘 육수, 매운 돈카츠 라멘 육수가 있지 않을까. 맛에 따라 가마를 돌려쓴다는 의미에서 가마마루이라는 가게 이름이 탄생했나 보다.
5시가 되고, 가마마루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가마마루이를 혼밥 플레이스로 떠올린 큰 이유 중 하나는 바(bar) 좌석이기 때문이다. 가마마루이에서는 보통 음식점에서 보편적인 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하나도 없고 모두 한 줄로 이어진 바좌석만이 있다. 둘이 오나 셋이 오나 어차피 마주보고 앉지는 못하고 일렬로 앉아야 하며, 보통 웨이팅이 있을만큼 인기있는 라멘집이기 때문에 두 명 이상이 오게 되면 가마마루이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혼밥하기 최적이라는 말이다.

모두를 혼밥할 수 있게하는 마법의 (Bar)구조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노래는 익숙한 박효신의 <눈의 꽃>이 나오는가 했는데 일본 여자 가수가 부른 <눈의 꽃> 일어 버전이었다. 가게 곳곳에 붙여놓은 사진들을 봐도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눈에 띈다. 그만큼 일본 라멘집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들어가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가마마루이는 마파두부와 밥이 무료이기 때문에 앉아서는 바로 배를 채울 수 있다. 평소에 마파두부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무료라니까 일단 먹어본다. 밥 작은 한 공기, 마파두부 한 접시를 가져다가 앞에 두니 바로 주문한 매운 차슈 라멘 (9500원)이 나온다. 사실 가마마루이에 입성하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는데, 라멘이 나오는 속도는 지나치게 빨라서 꽤 당황했다. 그래도 배고팠으니까 좋았지만 마파두부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는 꼭 먹을 만큼만 집중해서 먹을게요 죄송합니다 (。•́︿•̀。)

잘 먹겠습니다, 이타다키마스 (いただきます) *´﹃`*
에디터는 고기가 먹고 싶었고, 마치 해장국스러운 얼큰하면서 깊은 맛을 느끼고 싶었다. 따라서 차슈가 많이 들어간 차슈 라멘에 매운 육수로 진한 맛을 선택했다. 음주를 한 지는 좀 되었지만 꼭 해장이라는 게 술을 먹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매운 다대기를 휘적휘적 풀어 얼큰한 국물을 만들고 한 스푼 먹었을 때, ‘가슴이 구멍 나서 막아보려고 해도 자꾸 바람이 샌다’ 던 그곳이 따스해졌다. 가슴 한 켠 자리 잡던 서러움이 조금이나마 해장된 기분이다. 얼큰하지만 다소 깊은 맛의 국물이 질리면 아삭한 숙주 한 입 그리고 단무지 한 입. 그리고 다시 국물과 면 한 입. 그리고 부드러운 차슈 한 입. 행복한 식사 시간이 이어진다.
호로록, 면을 다 먹어도 괜히 아쉽다. 남아있는 깊고 얼큰한 국물을 차마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없다. 밥솥에서 밥을 한 주걱 퍼서 국물에 말아본다. 왠지 라멘은 느끼하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밥을 말아먹으니 진짜 해장국 같은 느낌이다. 우동 스푼 말고 그냥 일반 숟가락이 있었으면 더 잘 먹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밥을 먹다 보니 금세 그릇이 빈다. 어느새 텅 비었던 배는 따스하게 불러있다.

또 뵙겠습니다, 마타아이마쇼 (また会いましょう).
서러운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갔던 가마마루이인데 먹고 나니 왠지 몸도 마음도 따스해져 있었다. 몸이 따뜻해진 건 라멘을 먹어서라고 하지만 마음은 왜 따뜻해졌을까. 뜨끈한 국물이 가마에서 연기를 내는 걸 멍하니 보는 것만으로 추운 날 방황하던 마음이 편안해졌나 보다. 괜히 들어가기 전에 백아저씨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걸로 가마마루이를 시기하던 스스로가 우습다. 이렇게 여전히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는데 말이다.
오늘도 추웠고 내일도 추울 것이고, 앞으로 한동안은 추워지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올해 뭐 했지’ 라는 질문을 넘어서 나이 먹을수록 ‘인생에 남는 게 뭘까’ 고민할 것이다. 그렇지만 채워지지 않을 것 같던 가슴에 뚫린 시린 구멍은 의외로 따스한 라멘 한 끼로 잠잠해지기도 한다.
별일 아닐 수 있다. 참을 수 없이 큰 별 일인 것만 같은 날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것이다. 뭘 남기기보다는 그냥 살아가고 있음에, 사소한 것들에 감정을 느낄 수 있음에 가치를 두고 살 만하다. 거창한 것을 이루기 바라는 욕심 많은 스스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많은 사소한 따스함을 나누고 있을지도. 내일은 좀 더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22길 4
연락처 : 02-3142-3929
영업시간 : 평일 11:00 – 21:00 / Break time 15: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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