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김나영

김나영(22)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잔치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김나영이라고 합니다.
에디터명이 ‘Mr.Lee’잖아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세 가지 뜻이 있어요. 그 중 두 가지 의미는 제 인생 웹툰인 <연민의 굴레>에서 나온 건데요. 작품 속에서 이 씨 성을 가진 남성이 나와요. 웹툰 속에서 그를 Mr.Lee라고 부르고 그 이름을 따서 미스터리 클럽이 만들어져요. 웹툰 속 Mr.Lee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 카페 이름을 mystery라고 해석해서 이 카페를 불가사의 한 것을 논하는 클럽으로 여겨요. 그래서 중의적인 의미가 있고요. 더불어 마지막 하나는 저는 김 씨라서 미스김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미스김이라는 호칭 안에는 여성혐오적인 함의가 있기 때문에 미스김과 반대라고 생각하는 Mr.Lee를 대척점으로 삼고자 했어요. Mr.Lee를 쓰면서 비꼬는 효과랄까요?
그럼 Mr.Lee라는 호칭을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전에는 필명이나 가명 같은 걸 사용할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잔치에 들어오고 나서 에디터명을 고민하다가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존경하는 그리고 닮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써보면 좋겠다하고 쓰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작년 9월부터죠.

잔치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어요?
원래도 제가 속한 과 안에서는 잔치에 활동하는 분들이 계셨어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직접 들어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작년 하반기였어요. 1학년 때부터 해오던 학회에서 2학년 때는 예상치 못하게 장을 맡게 되면서 원래 희망하고 있었던 영상동아리를 할 수 없게 됐어요. 물론 동아리 면접에서 떨어진 것도 있었고요(웃음). PD를 꿈꾸고 있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영상으로 만들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획이 잘 안 풀렸죠. 이후에 터키 여행도 다녀오고 2학기 때 휴학을 결정하게 되면서 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꼭 영상만이 나를 표현하는 수단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때 눈에 띈게 잔치였죠.
나영 씨가 겪어본 잔치는 어떤가요?
잔치꾼이 되기 전에도 자유로운 곳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신촌의 예술, 사람 그리고 공간을 아카이빙 하면서도 확실한 지침이나 기준선이 없어서 오히려 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이제 다가오는 학기에는 잔치에서 어떤 것을 다루면 좋을까 구상하고 있어요. 많이 기대돼요!
자신이 쓴 글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건 뭐였나요?
첫 번째 글이요. 처음 쓰는 글이라서 어떻게 써야하는 지 정말 어려웠어요. 자율성에 반해서 들어온 잔치였지만 막상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니까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또 취재 전에는 취재 대상에 대해 자세히 모르잖아요. 두려움이 앞섰지만, 강연자체도 좋았고 또 제가 그 강연에서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을 제 의지대로 선정할 수 있단걸 알게 된 것이 좋았어요. <문학과 사회 히든트랙>의 사람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개개인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들 모두 공유하고 있는 고민은 무엇인지 그 고민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도 충분히 제 생각을 녹여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된거죠. 취재 전에는 어떤 글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가 글을 쓰면서 점점 뚜렷해지는 것도 신기했고요. 이게 글의 힘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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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PD가 꿈이었거든요? 그 때는 마냥 <무한도전>이 재밌어서 나중에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주위사람들은 중학교 때부터 꿈이 있는 저를 부러워했는데, 사실 저는 제가 PD 할 거라고 말하고는 있었지만 적성이 맞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이유가 뭔지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너무 안일했던 거죠. 한편으로는 너무 PD라는 틀 안에 갇혀서 나의 미래를 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었어요. 캠페인 영상도 만들어보고 기사도 써보고 하면서요. 물론 고등학교 활동이 엄청 다양하다거나 전문적인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어요. 그래서 ‘아, 내가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생각하게 됐죠.
학창시절부터 꿈을 정했다면, 대학교에 들어와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덜했을 것 같아요. 어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어떤 PD가 되어야 하는 가에 집중해서 다양한 체험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2학년이 되어서 보니까 PD가 돼서 어떤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적 공백이 있더라고요. 점점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책임감도 커지다보니까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게 저를 저 스스로에게 갇혀 있게 했어요. 타인의 조언이 필요할 때도 누구에게 또는 어느 정도를 털어놔야 되는지 점점 모르겠더라고요. 확실히 작년은 대2병을 앓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대2병을 앓는 동안은 힘들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그 공백을 채우는데 학회에서 한 공부들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나름 내린 결론은 영상이 됐든 글이 됐든 페미니즘을 구조적으로 제시해줄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지금은 ‘~ 안 하기’와 같은 문화적인 양상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문화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 있기에 구조적인 시각으로 여성권에 대해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017년 내내 해왔던 고민들의 답을 찾으면서 방향성을 정했으니까 올해는 좀 더 깊숙이 공부하면서 구체화시키려고요.
최근 페미니즘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도 여전히 무관심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나영 씨는 그렇지 않았나봐요.
제 주위엔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학회는 깊게 공부하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합의도가 높은 공간이어서 접근성이 높았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이 화두에 있다는 건 저와는 반대로 공론화되기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접근성이 낮은 분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도록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영 씨는 고향이 서울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언제 처음으로 신촌에 왔었나요?
저는 충북 단양이 고향인데요. 고3때 사랑니 뽑으러 세브란스 병원에 왔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저희 동네가 되게 조그마한데 사랑니 뽑으려면 서울로 가야된다고 해서 2시간 반이나 걸리는 서울을 더욱이 고3때 왔었죠.
그 때 신촌에 대한 인상이 어땠어요?
그 때는 남산이 어디에 있고 종로가 어디고 같은 개념이 없을 때였어요. 서울은 그냥 서울이라는 한 덩어리로 인식될 때였죠. 그래서 신촌이라기보다는, 서울이고 이질감이 큰 곳이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동네는 영화관도 없는 작은 곳이었으니까요.
지금의 신촌은 어떤가요?
작년에는 신촌이 너무 지겨웠어요. 저번 학기에 휴학을 하긴 했어도 학회를 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4번 정도는 신촌에 왔어야 했거든요. 11월 말 쯤에는 신촌보다 혜화나 종로 쪽에서 많이 놀았었는데, 그러니까 신촌이 그리운 거 있죠. 다른 데에서 놀다보니까 그래도 신촌이 내게 편한 공간이구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묻고 싶어요. 나영 씨의 2018년은 어떤 키워드로 채워질까요?
집중, 고민 그리고 사랑이요. 저는 일을 많이 벌이고 나중에 너무 힘들어서 휴학버튼을 누르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올해는 제가 꼭 해야하는 것에 #집중하며 보내고 싶어요. 또 전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그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을 살면서 필요한 고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고민들은 강제되는 건 아니라서 눈앞에 있는 과제 때문에 놓치기 쉽죠. 설령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그런 고민들을 계속 가지면서 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제가 마땅히 사랑해야하는 주위사람들을 더욱 더 #사랑하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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