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더 브레드 블루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 자체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아, 제 소개를 잊었군요. 저는 잔치 에디터 빙봉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정말이지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려 한 자 한 자 편지를 완성해가고 있는 이곳은 ‘더 브레드 블루’라는 곳이에요. 더 브레드 블루라는 가게가 생소하다고요? 이곳은 비건 빵을 만드는 베이커리에요. 그럼 또 비건 빵은 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 같네요. 비건이 어떤 것인 지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푸르른 빛이 가득한 No Egg, No Milk, No Butter !
비건(Vegan)이란, 육식 성분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를 말해요. 비건을 생활방식으로 택한 이들이 섭취하는 음식들은 온통 식물성 식재료들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쉽게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빵은 보통 버터나 우유와 같은 동물성 식재료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렇다면 비건은 빵을 먹을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답니다. 그들을 위해 빵에 으레 들어가곤 하는 동물성 재료들을 식물성으로 모두 바꾼 곳이 있습니다. 바로 비건 베이킹을 하는 더 브레드 블루지요.
비건이 어떤 것인지, 비건 베이킹은 또 무엇인지 지금 처음 알게 되어 멋쩍어하지 마세요. 저도 ‘채식주의자’들이 제 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는 걸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비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거예요.
다만, 저는 오싹한 기분이 조금 들었어요. 비건이라는 것, 그것을 삶으로 택한 사람들. 모두가 아주 옛날부터 서서히 존재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미 1998년 처음 채식 소모임이 조직되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그 이전부터 채식을 하던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왜 제가 그들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과거였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어서’가 적당한 이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기 최고!”를 외치는 사회에서 채소만을 먹겠다고 선언한 그들의 선택은 낯설게 여겨지기 마련이니까요. 늘 그렇듯 낯선 것은 으레 이상한 것으로, 괴팍한 것으로 취급받기 쉽잖아요. 그래서 성소수자도, 장애인도, 그렇게 ‘전혀 이상하지 않음에도 이상한 존재’로 분류되어 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나봐요. 떠드는 새에 빵 하나가 도착을 했어요. 저의 든든한 식사가 될 빵들을 바라보니 군침이 절로 도네요.

이름부터 정감가는 ‘못난이 콩콩볼’과 ‘맘모스’ 빵. 나의 소확행이 되어줘!
제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요, 먼저 빵을 먹고 난 후에도 속이 정말 편해요. 창가 자리에 앉아 과제를 하고 있다 보면 어르신 분들이 가게 문을 열고 빵을 고르시는 모습을 자주볼 수 있어요. 처음에는,
‘아, 이제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채식을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채식이 무엇인지, 비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집 빵만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고, 그래서 자주 발걸음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더 브레드 블루의 빵은 제 속을 편안하게 해요. 동물성 식재료가 일체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제가 차분한 마음으로 여러 생각들을 되뇌며 빵을 먹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 두 가지 이유 모두 들어맞는 대답이겠지요.
두 번째 이유는요, 제가 잊었던 사람들을 자꾸 상기시켜줘요.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들, 그러니까 채식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계속 잊지 않도록 돕는다고 해야 할까요? 실은, 저는 채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감수하는 불편들을 자꾸만 잊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곳에 앉아 건강상의 이유든, 종교적인 이유든, 윤리적·환경적인 이유든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가 쉽게 놓쳤던 그들의 존재를 다시 제 마음 속에 새길 수 있어요. 이렇게 말하니 참 거창하지만, 그냥 저는 더 브레드 블루에 발걸음하면서 비(非)채식인으로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그들의 당사자성(한 사안에 대해 당사자만 가질 수 있는 그의 위치 같은 것.)을 상기하는 셈이죠.

가게 안을 가득 메운 비건(Vegan)빵. 모두 Be 健(건강할 건)하세요 !
지난번에, 더 브레드 블루에서 혼자 앉아 과제를 하다가 별 뜻 없이 이런 생각을 했어요.
‘비건 레시피가 발달된 것도 아닌 나라인 한국에서 비건 베이킹을 하는 것이 되게 귀찮으시겠다. 나 같으면 절대 못할 텐데….’
이렇게 생각해버리고는 화들짝 놀랐어요.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더브레드 블루의 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채식주의자들은 빵을 쉽게 사 먹지 못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빵순이인 제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답니다. 앞으로 사는 내내 빵을 한 입도 먹지 못한다니!
우유 대신에 두유와 같은 견과류 밀크(milk)를, 계란 대신에 두부를, 버터 대신에 올리브유를 넣는 과정은 누군가에게 번거로운 일일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베이킹 레시피는 동물성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쓰이다보니 동물성 식재료를 식물성으로 바꾸는 순간, 모든 비건 레시피는 처음부터 새로이 써야 하잖아요. 계량도, 오븐에 넣는 시간도 뒤바뀌게 되니 비건 레시피로 베이킹하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빵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몰라요. 비건을 지향하는 순간부터 식재료들은 비싸지고, 빵은 투박해지며, 베이킹은 번거로운 과정들로 뒤덮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두유, 두부, 올리브유를 넣을 때 달라지는 레시피들을 수정하고 단가가 비싼 식재료들을 사는 것이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비건이 되기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고작 번거롭다는 이유로 제빵사님이 그들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평생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보드라운 빵도 먹지 못할 거예요. 제빵사님이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비건 베이킹을 지속하듯, 우리 역시 우리가 지닌 일상 속 권력을 인지하고 조금 귀찮은 노력을 더하는 것은 어떨까요? 혐오가 없는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비하와 배제가 없는 행동을 습관화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가 조금 귀찮아진다면 소수자성을 지닌 이들의 삶이 거대한 크기로 뒤바뀔 수 있는데, 우리가 조금 귀찮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이제는 편지를 끝마치려고 해요. 빵도 슬슬 다 먹어가고, 이제 가게 안에 사람들도 붐비고 있어요. 앉을 자리를 찾는 모양인데 전 여기 계속 앉아 있었으니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비켜주어야겠지요.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지금껏 생각지 못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곁에 있지만 알지 못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 다시 되뇌었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이 글은 읽고 있는 당신뿐만 아니라 사회가 변화하면서 앞으로 인식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답니다. 제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지요?
말이 자꾸만 길어지네요. 그렇다면, 모쪼록 평안하시기를 바라요.
2018년 6월 7일 목요일.
For. 앞으로 알게 될 이들(People who WILL be known)
*Will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부터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왔는데요. SHOW프로젝트의 마지막 ‘W’는 바로 ’Will’입니다. 오로지 당신의 클릭만이 잔치의 SHOW를 이어지게 합니다. 끝이나지 않을 잔치를 기대해주세요, 잔치의 Will Power!
더 브레드 블루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노고산동 54-58
전화 : 070-4405-0723
영업시간 : 주중 – 오전 9:30 ~ 오후 10:00 / 주말 – 오전 9:30 ~ 오후 9:00
빵 나오는 시간 : 11:00~12:00, 15: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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