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김재이

김재이(22)
2018.09.25. 맑음
차가워진 공기가 실감나는 요즘, ‘가을 냄새’가 문득 옛 기억을 불러온다. 은행냄새만 가득하던 어릴 적 단풍구경, 지겹기만 하던 고3 수험생활, 숙취와 함께 새벽 첫 차에 올라타던 새내기 시절.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던 기억들도 코끝을 스쳐오는 가을 향기와 함께 그리움이 되곤 한다. 지금, 나에겐 신촌이 그런 순간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지난 3년동안 매번 신촌의 가을을 지켜봤다. 원래대로라면 이대에서 3학년 2학기를 재학 중이겠지만, 나는 지금 미국 뉴욕에 있는 suny new paltz라는 학교로 교환학생을 오게 됐다. 아, 모두가 상상할 법한 그런 뉴욕은 아니다. 머릿 속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떠올랐다면 잠시 접어두시길! 내가 있는 곳은 ‘뉴욕 시티’가 아니라 뉴욕주의 한 시골 동네다.

뉴욕의 이상과 현실
건물이 많고 차가 많이 다니는 신촌과 달리, 이곳은 밤에 반딧불이가 보일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신촌의 다모토리나 시끌벅적한 포차에 익숙한 나에게는 조금은 낯선 고요함이다. 사실, 좋게 말해서 고요함이지 심심할 때가 많다. 평소에는 생각이 안나다가도, 친구들의 연락을 받으면 문득문득 신촌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수 없나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은 엠티 가기 귀찮다고 투덜대는데, 난 그저 부럽기만 하다. 신촌에서 대성리 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아, 아니다. 이건 진짜 먼 거였다. 어쨌든, 지금 하면 술게임도, 주루마블도 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친구가 말아주던 5:5 소맥도 그리울 지경이다. 포석정, 꼼보포차, 삼칠포차…… 잘있니…?
물론 여기 뉴욕에도 나름의 문화가 있다. 밤이 되면 파티를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곤 한다. 보통 누군가의 집에서 열리는데, 개최자를 잘 모르더라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음악과 술을 즐길 수 있다. 가끔은 북한과의 관계나 한국의 분위기에 대한 질문도 받는다. 약간 외교부 관계자가 된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미국 사람들이 더 크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더라도 우리는 항상 일상생활을 평온하게 유지하는데, 이 곳은 비교적 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세상이 평화로워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은 어느덧 이곳 생활이 익숙해졌지만, 첫 일주일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시차적응도 못했다. 일주일 동안 잘 수 있었던 시간이 총 24시간은 되려나? 그 때마다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외로움을 견뎠다. 역시 남는 건 사진 뿐인 것 같다. 아, 나는 원래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은 아니다. 찍더라도 항상 아이폰을 가진 친구들이 찍어주곤 했는데, 드디어 이번 교환학생을 앞두고 아이폰으로 바꿨다! 언젠가 이 순간들도 그리움이 될 것을 대비해서다. 왜 하필 아이폰이냐고? 다들 단체사진 찍을 때 “아이폰인 사람?” 한번 씩은 찾아 봤을 것 같다.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잘 적응해서 이곳의 가을을 나름 즐기고 있다. 되돌아 보면, 신촌에서의 가을은 과제와 시험 뿐이었다. 비교적 여유로운 이곳에서는 오랜만에 단풍구경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걸 보고 소확행이라고 하나보다. 이제는 가족, 친구들과 통화하며 울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한 것도 다 추억이 됐다.
행복한 뉴욕 라이프지만, 극복되지 않는 것이 있다. 떡볶이, 고기, 곱창, 짜장면, 김치찌개, 제육볶음, 분식집 라면… 이 곳에 온지 한 달이 다 되어가니 한식이 슬슬 생각난다. 특히 매운 음식! 나는 엽떡을 주기적으로 공급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다. 그래서 신촌에서는 지점별로 배달을 시켜먹곤 했다. 무려 우리 학교 도서관까지 배달해주시던 친절한 엽떡 아저씨들이 그립다. 아무래도 이번주 주말에는 엽떡을 위한 원정을 떠나야 할 것 같다. 매번 먹던 한식이 이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물론 이 곳에도 한식당이 있긴 하지만, 원조는 다른 법이다.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간 컵밥이나 라면이 남아 있어서, 한식이 그리울 때면 종종 꺼내 먹으며 버티고 있다.

한식이 그리울 때면 종종 찾곤 한다.
4개월 뒤, 캐리어를 내려 놓자 마자 하고 싶은 것? 당연히 신촌 맛집 투어다. 이 곳의 ‘의(衣)’와 ‘주(住)’는 완벽하지만, ‘식(食)’ 만큼은 여전히 아쉽다. 사실 교환학생 가기 전에 가장 두려웠던 것이 음식이었다. 잔뜩 겁을 먹고 가서인지 그래도 나름 버틸만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몇가지가 있다. 특히 내 최애 고깃집 ‘군삼겹’! 삽겹살, 냉면, 된장찌개의 조합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굴까. 아직도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삼겹살을 먹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군삼겹은 내 텅장에도 무리가 되지 않았는데… 고기가 잘라져서 나오는 것도 참 좋았다. 맨날 자기가 굽겠다고 싸우는 내 친구들에게는 최적의 공간이었으니까. 가위와 집게를 동시에 안 들어도 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이렇게 적고 보니 신촌이 더욱 그리워진다.
결국 늘 그렇듯이 기승전 ‘음식’이 됐다. 언제쯤 음식 얘기를 빼고 일기를 적을 수 있을까? 이제 슬슬 그만 쓸 때가 된 것 같다. 인위적으로 보이지만 마지막 멘트를 적어보자면, 나에게 신촌은 ‘친구’다. 너무 익숙하고 또 그리운 것. 한마디로 축약할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 빨리 보고 싶은 곳. 막상 다시 신촌으로 돌아가면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은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맛있는 음식들과 행복한 술자리가 가득했던 신촌으로 돌아가고 싶다.
2018년 어느 가을, 신촌이 그리운 신초너 씀.
친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군삼겹’을 가봐야할 책임이 생겼다. 친구가 그리워 하는 그 곳. 대리만족이라도 해주고자 신촌으로 향했다. 고기가 먹고 싶을 때마다 자주 찾던 곳이긴 하지만 하필 왜 삼겹살 집일까? 그 곳의 어떤 특별함이 기승전 ‘군삼겹’을 만든 걸까? 다들 알다시피 신촌에는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삼겹살 집들이 있다. 풀리지 않는 의문때문에 그저 일기장을 덮어 둘 수 만은 없었다. 신촌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담긴 친구의 일기를 읽고도 음식 생각뿐인 나도 어쩔 수 없는 ‘먹초너’ 인가 보다. 결국, 취재를 핑계로 삼겹살 집을 찾았다.

꽤 오랜만에 찾은 군삼겹의 맛은 여전했다. 20살때 친구들과 와서 처음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20살때 부터 군삼겹의 매력에 반해 3년 동안 그 곳만 찾았으니, 일기의 주인공에게도 나에게도 신촌 삼겹살 집은 오직 군삼겹 단 하나인 셈이다. 맛도 맛이지만, 쉼없이 몰아치는 수업을 끝내고 찾은 군삼겹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이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신촌의 수많은 삼겹살 집 중 ‘군삼겹’을 최애로 뽑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 곳에는 3년간 기록해온 우리의 신촌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황금비율의 소맥과 시끌벅적한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진 이 곳은 작은 ‘신촌’이었다.
아주 일상적인 공간도 시간의 덧칠을 통해 특별한 추억으로 거듭나곤 한다. 무심히 지나쳐 갔던 거리들, 수업 후 찾던 고깃집, 그저 쓰기만 했던 술자리까지. 어쩌면, 그리움 속에는 그 공간 자체의 풍경은 물론, 각자 나름의 이야기들이 녹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신초너 들에게도 언젠가 신촌이 아득한 추억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 이 글은 신초너 ‘김재이’씨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습니다. 13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촌과 가을을 솔직하게 들려준 재이씨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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