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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18 · 10 · 30

218. <퇴근길 책한잔> 김종현 대표

Editor 짜이

‘사각사각’

고요한 적막감 속에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빈 공기를 채운다. 한 호흡씩 내뱉는 숨소리와 시계 초침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언제 그렇게 무더웠냐는 듯 무심코 찾아왔던 가을이 어느새 소리없이 조용히 떠날 채비를 하는 지금, 책방 안에서 보는 바깥 계절은 그 분주한 종종걸음 마저 다 비춰질만큼 느리게 흐른다. 그 저속의 계절감을 맛보고자 조용히, 느리게 걸으며 염리동으로 향했다.

 

느리게 걷자는 간판의 작은 결심

 

이대역 5번출구를 따라나가 염리동 길을 걷다 보면 간판 하나 없이 그저 ‘책 한잔’ 이라는 팻말만 고요히 서 있는 책방을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작은 공간을 지키는 책방지기 김종현 대표를 만났다. 당초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끝이났다. 인터뷰가 끝이 날 무렵, 시작할 때 켜 둔 녹음 어플이 시작하자마자 멈춰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헛헛한 웃음을 짓자 그가 말했다. “큰일이네, 한 이야기가 많은데 어떡해요? 그래도 아무쪼록 글 잘 써주고 연락줘요.” 비록 그와 나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진 못했지만 그와의 대화는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이끌기 충분했다.

 

 

일전에 그가 늘 자기를 ‘자발적 거지’라 소개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왜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지가 궁금했다. “그게 가장 심플하고 깔끔하게 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사업 그만두고 책방한다니까 다들 만류했죠, 너 그러다 거지된다고. 그래서 제 뜻대로 거지되겠다 했어요. 솔직히 톱니바퀴처럼 회사생활 하는 거, 노예잖아요. 그것도 자발적인 거거든요. 그러면 이제 단순해지죠. 너는 자발적 노예를 해라, 나는 자발적 거지가 될 테니.”

사실 그가 처음부터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그냥 똑같이 하는 거 하고 가는 길 가다가, 어느 순간 진짜 내 자유와 내 욕망에 충실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이 공간을 얻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채워 넣기 시작했어요. 책, 술, 빔 프로젝터 등등…… 진짜 자발적이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책방이 되어있더라고요.”

나는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자발적’으로 살아가는 책방지기의 삶이 문득 부러워졌다. 동시에, 특별해진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의외였다. “본인이 원하는 걸 하는 삶이 굉장히 특별해 보이고 뭔가 다를 것 같잖아요. 근데 생각보다 정말 별 게 없더라고요. 사실 요즘 사람들이 다 그래요. 자기가 갇혀 있는 좁은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고는 싶은데 막상 나가려니 무서운 거예요. 근데 정말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 생각만큼 그 틀을 깨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뿐더러,  깨고 나와서 두려운 현실과 마주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왕 그렇다면 자발적인 게 좋은거 아니겠어요?”

 

항상 빠르게 걷는 당신, 당신의 세계는 몇 시인가요?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동네책방을 비롯하여 여러 공간들이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른바 ‘살롱’이라 불리우는 현대인들의 모임 등도 크게 확산되었다. 어쩌면 이 모든 현상들의 핵심이 그의 한마디에 담겨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러한 변화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는 오히려 이런 문화들이 하나의 숨구멍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과연 그런 문화생활을 정말 여가로서 즐기기 위해 할거라 생각해요? 아니요, 사실은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함 때문이에요. 요즘 ‘소확행’ 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어요. 저는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고 봐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데, 왜 행복이 소소해야만 하죠? 행복은 큰 게 당연히 좋은 거 아니에요? 그럼에도 ‘이제는 행복조차 소소해야 한다’, ‘소소하기만 해도 좋은 거다’ 와 같은 프레임이 생겨나는 건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자꾸 뭔가를 찾는 거예요.”

 

 

내게도 그런 공허함은 존재한다. 물론 나의 공허는 빌딩숲 사이를 누비는 정장들의 그것은 아니다. 사실 다니던 경영대에 자퇴서를 들이밀었던 날 이후로 더 이상의 공허는 없을 줄 알았다. 그가 되물었다. 이후에 또 다른 공허가 없었느냐고. 나는 없었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 내가 원했던 자발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였으나 어느 순간 또 다른 공허가 나를 덮쳐왔다. 그가 다시 말했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어요. 그게 정말 내가 바라고 좋아하는 선택의 결과라 할지라도 항상 백 퍼센트의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간 책과 영화, 여행 등으로 나의 숨구멍을 찾아 더듬거려왔다. 완전한 공허의 소멸을 맛보지 못한 채 절망을 거듭하던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잔잔한 파도같은 위안이 되어 밀려들어왔다.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의 삶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라는 주체와 ‘나의 인생’이 전혀 동질감을 갖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은 기분.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만들어내는 라떼의 층위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차츰 감정에 둔감해지고 자연스레 고이는 행복이라는 감정조차 행복으로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삶과 행복이 삶이 아닌 것과 불행이라는 대구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쉽게 망각하며 살아간다. 작가 김금희는 소설에서 이렇게 적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부스러진 마음을 주워담아줄 한 권의 손길

 

여느 동네책방처럼 이 곳을 메우는 책들의 주류는 독립출판물이다. 사실 일반서적보다 독립출판물은 시대의 분위기와 트렌드를 훨씬 앞서서 담아낸다. 지난 해, 『82년생 김지영』으로 일었던 페미니즘도 이미 그 이전에 독립출판계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였었고,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역시 최근 트렌드인 ‘우울’을 담아낸 것으로 본래 독립출판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그에게 이러한 흐름에 대해 물었다. “자연스러운 거예요. 아무래도 독립출판계가 일반서적보다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대적 분위기를 빠르게 담아낼 수 있는 거죠. 사실 이런 트렌드가  나타난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거예요. 견디다 못해 터져버리는 거죠. 이런 작품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이  피난처 역할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뒤이어 그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책방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주제 넘게 모든 책방은 이래야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렇고요, 제 책방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냥 쉬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는 공간이 되어야겠죠. 저는 저 스스로부터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항상 내 행복과 욕구에 충실하자는 목표가 있거든요. 이게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일종의 투쟁이죠. 원하는 자유를 얻고자 하는 고독한 투쟁. 제가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할 수는 없어요. 자연스레 개인적으로 책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고요. 그냥 저는 저의 행복을 좇아 투쟁할 뿐이고, 사람들도 자신의 삶을 한번쯤 돌아보기를 바라는 거죠.”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에게 멈춤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설사 이내 곧 그 공백을 철회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할지라도 지난 시간이 무의미해지진 않는다. 스스로 멈출 줄 안다는 건 스스로 나아가는 힘 역시 내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하여 가끔은 공백이 필요하다. 잠시 현실적 두려움을 극복하고 온전히 나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여백의 시간이 말이다. 책방은 오늘도 조용히 그 시간을 선사하는 중이다.

책 한 잔 하실래요?

건배-

 


info.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 9-60번지 1층

운영 시간: 수~금 14시~22시 / 토 14시~19시 (일~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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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단 한번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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