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신초너 관찰일기 in 할리스
Rrrrr- Rrrrr- Rrrrr-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어디냐고~”
“내가 어디겠냐. 할리스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지금 거기 사람 많아?”
“콘센트 자리는 이미 다 찼음.”
“세상에.”
.
.
.
아뿔싸! 한발 늦었다. 오늘은 꼭 카페 가서 할 일들을 다 끝내려 했는데. 흐엉.
여기서 잠깐! 신촌에서 제일 자리 잡기 힘든 곳은 어디일까? 소주와 핫식스의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신촌의 명물 다모토리? 온전히 음식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는 미분당?
나의 답은 바로 신촌 할리스다. 3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에 층마다 꽤 많은 좌석이 있지만, 정작 내가 앉을 곳은 없다. 대부분 저마다의 두꺼운 전공 서적을 뒤적이며 알 수 없는 용어들을 중얼거린다. 벌써 몇 시간 째 노트북 자판을 콩콩 두드리며 끝없는 페이지를 향해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는 이들도 많다. 물론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늘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문 채, 이따금 입술의 작은 틈 사이로 한숨만을 푹푹 내쉴 뿐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라곤 조별과제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마무시한 양의 과제들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기말고사 시험 범위를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시끄럽고 활기찬 카페의 풍경이지만, 실상 그 안은 신초너들의 슬픔, 푸념, 힘듦이 가득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문득,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무엇에 그리 열중하는지, 공부를 하는 건지, 아니면 과제를 하는 건지, 왜 신촌 할리스에 왔는지. 나 또한 그들처럼 밀린 인터넷 강의를 듣고자 할리스에 왔기에 그들과 동질감을 느낀 것이리라.
‘말을 걸까, 말까? 누구에게 말을 걸까? 혹시 바쁘다고 거절하진 않을까? 나를 사이비 전도사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겨우 용기를 내어 노트북을 열심히 뚱땅이는 옆 테이블 분들에게 “혹시…”라고 말문을 트며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흑! 퇴짜를 맞았다. 옆에서 내가 혼자 고민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가 웃으며 말을 한다.
“야. 나라도 안 하겠다. 생각해봐. 너도 신촌 지나갈 때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대꾸도 안 하잖아.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고. 요즘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흉흉하니깐. 가뜩이나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바쁘게 공부하고 과제 하는 데 인터뷰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맞다. 친구의 말이 옳다. 이걸 어쩌지… 아! 그럼 내 앞에 있는 그를 인터뷰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는 신촌 할리스 지박령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사람이다. 할리스에서 밤을 새우기 위해 몇 개월 전 집도 신촌역 근처로 옮겼다. 학교에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할리스에서 가까운 곳이 좋단다. 그에게 할리스란 어떤 곳일까? 왜 매일 밤 할리스에 오는 것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똑똑’ 그의 말문에 노크를 한다. “아오. 가뜩이나 바쁜데 왜!”

그만 외우고 나 좀 봐줘…
– 오늘 할리스에는 왜 왔어?
– 내일 시험이어서.
– 아 맞아. 너 내일 시험이지. 신촌에는 카페들이 되게 많잖아. 그런데 꼭 할리스에 온 이유가 있어?
– 내가 다 확인을 해봤는데, 일단 탐탐은 노래가 좀 이상해. 거긴 클래식을 틀어주는데 되게 시끄러운 클래식이야. 블로그는 의자가 불편하고 투썸은 술 취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또 나무는 음료가 너무 맛이 없어. 그리고… 24시간 카페가 또 뭐 있지? 없지 않아? 아무튼 그래서 할리스에 와.
– 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이유에서 할리스를 오는 거였구나. 너 거의 일주일에 3~4번은 여기에 오잖아. 그렇게 자주 오면 크라운 12개 모으는 데 얼마나 걸려?
– 크라운 12개? 일주일 컷이지. 한 번 오면 커피 두 잔, 케이크 한 조각, 베이글, 계란. 하루에 크라운 3개는 뚝딱이야.
–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다보면 돈 진짜 많이 깨지겠다. 혹시 여기에서 선호하는 자리가 있어?
– 나는 좀 춥지만, 1층에 콘센트 있는 자리가 제일 좋아. 밤새워 과제 하려면 노트북이랑 핸드폰 충전이 필수거든. 지금 여긴 2층인데 사실 2층은 별로 안 좋아해. 2층이랑 3층은 너무 조용하거든. 난 큰 소음은 상관없는데, 소음이 작으면 안 돼.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전류
– 사실 카페라는 공간을 뭐라고 딱!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일차적인 용도는 차 마시고 노는 거잖아. 그런데 너한테 어디냐고 물어보면 할리스라고 대답하고, 뭐하냐고 물어보면 공부나 과제 하는 중이라고 해서 항상 마음이 아팠어. 너무 학업에 찌들어 사는 것 같아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 잠깐 눈물 좀 닦고 말할게. 나도 참 그런 생활이 슬퍼. 하지만 혼자 카페에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친구랑 같이 오잖아? 같이 와서 놀면서 공부하는 거지. 카페에 오는 목적에 공부를 조금 곁들이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친목 도모라고 볼 수 있지!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어. 물론 지금처럼 시험 직전에는 말고.(웃음)
– 너 정말 긍정적이구나! 혹시 너도 너처럼 할리스에서 공부하고 과제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애잔함이나 동질감 같은 걸 느껴?
– 응. 정말 슬픈 거 같아. 물론 20대 대학생으로서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 맞지. 그런데 밤에 사람들이 24시간 카페에 오는 이유는 대부분 잠을 안 자려고 오는 거잖아. 집에 있으면 자꾸 침대에 눕게 되니깐 공간에 변화를 주고 집중을 더 잘하려고. 그리고 커피 마시면서 잠을 이겨내려고 그러잖아? 나는 여기 커피 때문에도 오거든?
– 여기에?
– 응. 여기 커피를 마셔야 잠이 잘 안 와.(웃음) 커피까지 마셔가면서 잠을 떨쳐내고, 건강을 잃어가면서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나는 그게 참 슬퍼.
– 맞아. 요즘 대학생들에게 ‘밤샘’이라는 단어는 더이상 일부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닌 것 같아. 그나저나 할리스에는 언제까지 올 생각이야?
– 12월 19일에 종강이고, 20일까지 과제 제출이니깐, 음… 20일 이후에는 다신 오지 않을 거야.

과제에 대한 열정으로 shift를 하얗게 불태웠다…★
– 진짜 부정할 수 없는 계획이야. 이제 연말이잖아. 올해를 마치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망 같은 게 있어?
– 올해? 이번 달? 음…
– 할리스를 탈출하고 싶진 않아?
– 이젠 뭐 그러고 싶지도 않아. 오늘의 소원은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거고, 올해의 소원은 그냥 아무 탈 없이 평탄하게 인생이 흘러갔으면 좋겠어.
– 큰일 없이 그저 평범하게 인생을 살고 싶다는 너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인간으로서 평균적인 수면시간과 적절한 휴식시간일지도 몰라. 인터뷰하는 내내 느낀 건데, 너 정말 공부랑 과제에 찌들어 사는구나?
– 넌 아닌 것처럼 말하지 마.
– 그래.(웃음) 또 뭐 재밌는 질문 없을까?
– 재밌어야 하는 거야? 할리스 인생, 슬퍼야 하는 거 아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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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스에서 매일 밤을 지새우는 그의 인생을 재치있게 풀어냈지만, 사실 이건 굉장히 슬프고도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20대 대학생으로 산다는 것, 오락과 유흥이 난무하는 신촌에서 대학생 신초너로 산다는 것. 찬란한 20대의 삶이 사실 제일 어두울지도 모른다. 책가방을 찢고 나올 것만 같은 수많은 전공 서적과 ppt 자료가,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그 무게를 짊어지고 카페로 와 공부와 과제를 해치울 수밖에 없다.

AM 2:00. 하지만 그는 NAVER STOP…
시간은 벌써 12시를 훌쩍 넘겼다. 갑자기 3층에서 사람들이 몰려 내려온다. ‘슬슬 집에들 가시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3층 사람들은 3층이 문을 닫는 새벽 1시에 짐을 정리하고 다시 1층과 2층에 흩어져 자리를 잡는다. 새벽 2시를 조금 넘긴 시각, 내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집으로 향하는 그 시간까지도 할리스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신초너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쓰디쓴 커피로 잠을 물리치고 허기진 배를 고작 빵 몇 조각 따위로 채우며. 오늘의 해가 고개를 숙이고 내일의 해가 슬며시 고개를 드는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여전히 오늘을 살고 있다. 한 자리 잡기도 힘든 신촌 할리스 안에서 나와 비슷한 ‘할리스 인생’을 살고 있는 신초너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내게 동질감을, 큰 위안과 위로를 준다.

그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신초너 모두의 미래를 위해 오늘도 할리스는 어둑한 신촌의 밤을 밝게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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