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대학생이 되면 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살게 된다. 하루가 어떠했든 결국은 타지의 자취방에서 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숨 쉬는 걸 의식하게 되는 어색한 순간처럼 밤이 신경 쓰이는 하루가 온다.
속이 울렁거리면 이것저것 욱여넣고 지쳐 잠들면 되지만, 너무 일찍 할 일을 마친 날은 그럴 수도 없는 시간이 생긴다.
연락할 곳도, 연락하고 싶은 곳도 없어 이내 아빠 번호를 찾는다.
집에 살았던 그때는 전화를 많이 했다. 끝났으니 태우러 와달라, 버스를 안 탔던 모든 주말이면 매번 전화를 해야 했다.
아빠는 항상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다시 거는 게 아니라 걸 때마다 받았다.
예전 직장에서의 버릇인지 찾는 사람 없는 시골에 와서도 항상 전화를 잘 받았다.
두 달 만에 번호를 누른다. 곧 생일이라는 핑계로 지금 나를 변호한다.
처음에는 자주 연락했을 거다.
더 맛있는 밥을 먹고 더 좋은 하루를 보내면서, 대충 감자를 씹고 계실 아빠에게 안부 물을 용기가 없었을거다.
휴학하고 빈둥거리는 장소를 집으로 옮긴 적도 있었다. 서울 올라가서 공부나 하라는 등 떠밂이 내심 기뻤다.
침대에 쓰러져 전화가 걸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다.
돈도 힘도 없다가도 울리는 전화 소리에 여유로워진다.
곳간이 마음에 있는거라면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믿을 수 있다.
그러다 발신음이 끊어진다.
새로 지은 이층집에 아빠가 혼자 지낸 지는 몇년이 됐다. 아빠는 요새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2시간 간격으로 전화를 걸다보면 잠깐 들어온 아빠를 만날 수 있다. 친구들이, 관심 있는 일들이 새로 생기신 것 같다.
전화 소리가 다 울리고 전자음도 끝이 날 때 쯤, 기뻐해 줄 수 없는 나는 닫힌 곳간을 뒤로한 도둑이였다.
아무도 없는 하루에서 혼자 취미를 찾으신 아빠를 보면서 나는 평생 부모는 못 될것 같았다.
자기 마음인마냥 들어와서 퍼가기만 하는 자식을 위해 곳간을 마르지 않게 할 자신이 없다.
생일에 집에 내려간다.
도둑질로 잡혀 온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주시는 신부님 얘기가 생각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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