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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9 · 10 · 30

122. 피켓 (PICQUET)

Editor 라봉

반짝이던 초록빛을 내던 나뭇잎들은 하나 둘 자신의 개성대로 옷을 바꿔 입는다. 아침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차가워졌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도 두꺼워졌다. 눈앞에 보이는 변화들은 가을이 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몇 차례의 비로 여름을 배웅하고 나니 어느새 가을은 성큼 우리의 옆에 섰다.

여러 색깔이 뒤엉킨 나무들과 눈에 띄게 높고 푸르러진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이전까지는 하지 않았던, 혹은 애써 무시했던 생각들이 크기를 키운다. 높게 펼쳐진 하늘에 자신감이라도 얻은 것인지, 이런 생각들은 가만히 두면 끝도 없이 크기를 키우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크고 무거워진 생각은 우리를 답답하게 하기도, 우울하게 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를 ‘가을 탄다’라는 말로 치부하지만, 우리의 생각들은 가을이 지나가도 남아있기에, 가을 탄다는 짧은 말로 어지럽게 떠도는 상념들을 포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긍정하기 어렵다. 중간고사를 허겁지겁 끝낸 에디터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크기를 키운 생각은 ‘꿈’이었다.

 자그맣지만 강렬한 색감의 간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꿈,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수십 번도 넘게 꿈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는다. 단순한 꿈에서 시작한 질문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꿈에서 직업으로, 직업에서 목표로, 목표에서 가고자 하는 회사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를 향한 질문들은 물음의 범위가 점점 좁아져 그 대답의 크기 또한 작아진다. 구체적이라는 건 그만큼 빈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받고 질문한다. 쉽게 질문하지만,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과거의 꿈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웠다면 지금의 꿈은 질문들에 난도질당해 그 형태를 잃어간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걱정은 걱정을 낳는다. 굶주린 상념들은 자기 자신을 깎아 먹기 시작한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거리를 유영하던 에디터에게 눈에 띈 건 다름 아닌 빨간 간판이었다.  PICQUET. 빨간 아크릴 간판에 쓰여진 하얀 글자는 작은 간판의 크기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잡았다. 가게의 이름 밑에는 CAFÉ/SHOWROOM이라고 작게 쓰여있었는데, 카페와 쇼룸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굴려보아도 그 두 개의 연관성이 크게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카페였다면 지나쳤을 테지만, 쇼룸이라는 단어에 홀려 이끌리듯 에디터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한 곳도 사장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간판 옆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색적인 색채가 들어찬 원단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러 패턴이 섞여 있음에도 어딘가 일체감이 느껴진다. 계단을 내려가자 ‘OK, BUT FiRST COFFEE!’ 라는 글씨의 네온사인이 사람들을 반기고, 그 옆에 하얀 커튼을 열면 밖에 나와 있는 간판의 형제쯤 되어 보이는 간판이 서 있다. 간판을 끼고 한 계단 더, 은은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내려가면 통유리로 되어있는 작업실과 생각보다 넓은 내부가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작업물들과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카페 공간은 본디 하나인 것처럼 외부인을 맞이한다. 가게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업실 옆에는 사장님의 작업물들이 가게 구석구석에 놓여 있다. 캐비닛 위에는 가방이, 책장 옆 선반에는 작은 파우치들이, 주문하는 공간 옆에는 키링, 에어팟 케이스 등 작고 아기자기한 용품들이 놓여있었다. 처음 공간을 눈에 담았을 때는 카페가 맞나 싶었지만, 핸드드립 커피 메이커와 작게 마련되어 있는 주방공간이 이곳이 카페임을 깨닫게 했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팝 음악에 지쳐있던 마음을 내려놓고 가게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에 앞서 메뉴를 살펴보니 그리 많은 가짓수의 메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커피 메뉴에는 비엔나커피, 카페오레, 핸드드립 커피, 피켓 오레의 총 4가지로 구성되어 있었고 비커피 메뉴로는 밀크티와 레모네이드, 그리고 여러 차가 있었다. 사이드 메뉴는 시리얼 초콜릿 쿠키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에디터가 방문한 날에는 준비된 쿠키가 모두 소진되어 주문하지 못했다. 음료류로 눈을 옮겨, 에디터는 고심 끝에 처음부터 눈에 띄었던 피켓 오레를 시켰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름의 메뉴가 모험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한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이지만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공간.

주문을 마치고 가게를 둘러보니 이곳저곳에 흥미를 자극하는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주문을 받는 책상 옆에 세워져 있는 작은 시디 음반들과 쌓여있는 책들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속해있는 모양새였다. 가게의 구석에 존재하는 작은 동굴 같은 공간에는 디자인 서적들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과 빔프로젝터가 놓여 있었다. 빔프로젝터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화면을 다 담지 못하는 작은 벽은 디귿자로 이어져 뮤직비디오의 화면이 세 개의 벽에서 보여진다.

오묘한 빛깔의 피켓 오레는 사장님이 개발한 피켓의 오리지널리티 

가게를 천천히 눈에 담던 중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사장님은 손수 음료를 가져다주셨고 호기심에 젖은 에디터의 눈동자를 눈치챈 듯 가게가 중구난방이죠? 라는 말을 건네셨다. 잠시 대답을 고민하던 에디터는 이내 처음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들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가 쇼룸과 카페를 같이 운영하게 되셨나요? 어쩌면 무례할 수 있는 에디터의 질문에도 사장님께서는 웃으며 이곳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 넣어 만들어낸 공간이라고 대답해주셨다. 디자인을 전공한 사장님은 커피를 만드는 일에 흥미를 느꼈고, 쇼룸과 작업실 안에 카페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셨다고 한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채워 넣다 보니 지금의 피켓이 완성되었다는 말도 덧붙여주셨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가게 안 모든 요소가 사장님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흘러나오는 팝 음악에서부터 은은하게 풍기는 커피 향과 각종 디자인 서적들, 모던한 내부의 색감과는 달리 원색적인 색감을 보여주는 미술작품들까지. 그저 쉬어가는 공간을 넘어 한 명의 사람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잘 섞어 마셔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끝으로 사장님은 작업실로 돌아가셨다. 그제야 에디터는 이제까지의 여러 생각을 덮어두고 피켓 오레를 입에 담았다. 달콤하고 고소한, 그러나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맛의 커피였다. 처음 먹어본 피켓 오레는 고소한 오트밀 맛과 은은한 커피 향이 기분 좋게 입안에서 맴돌았다. 모험심에 택한 메뉴였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신비로운 맛에 몇 모금 더 커피를 마시다, 에디터는 다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공간이 꿈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꿈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고, 점점 더 구체화되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더욱 어렵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기란 쉽지 않고,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더라도 이를 하나의 직업군으로 분류하고, 그 흥미와 능력을 잃지 않기는 쉽지 않다. 흥미에만 치우쳐 꿈을 결정하기에는 미래가 두렵고, 능력만 생각해 꿈을 정하자니 자신의 능력이 의심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때문에 우리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없이 작아지기만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는 꼭 흥미와 능력을 저울질해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다다른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解答)을 에디터는 피켓이라는 공간에서 찾았다.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답안으로서의 피켓. 피켓은 우리에게, 굳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즐거움이 있는 일과 잘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외친다. 피켓은 원래 쇼룸과 작업실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커피를 만드는 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카페를 병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흥미와 능력을 저울질하여 하나의 답안을 만든 것이 아니라, 피켓이라는 새로운 답안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피켓의 모습에 에디터는 괜시리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가게를 나서며, 다시 문 앞에 옷감을 마주했을 때, 에디터는 여러 색깔이 뒤엉킨 옷감의 모습이 피켓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러 선과 도형들, 색깔들이 동떨어짐 없이 하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마치 다양한 흥미와 꿈이 본래 하나였던 것처럼 담겨있는 피켓을 표상한다는 요상한 생각. 어쩌면 에디터가 피켓에 들어오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닐까. 언젠가 상념이 또다시 자신을 괴롭힐 때, 에디터는 피켓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꿈이 조화롭게 뒤섞인 공간, 한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 피켓을.

 


CAFE/SHOWROOM PICQUET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8-12

전화번호 : 070-7627-2017

영업시간 : 일/월 휴무, 화요일 – 토요일 12:00 – 20:00 

인스타그램 : @picquet_

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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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봉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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