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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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9 · 11 · 20

125. 이름은 무슨 그냥 포장마차

Editor 러폴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 하나.

물음은 수없이 변주되고, 어느 얼굴을 가린 가수는 같은 물음을 거칠게 노래했습니다. 에디터 또한 우주의 미물에 불과한데, 고통이 많습니다. 고통이라 부르기에 하찮은 그것일 수 있으나 모두에게는 각자만큼의 크기를 안은 아픔이 있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는 에디터는, 너무 많은  것들이 지금 2019년을 후려치며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을 밤에는 수많은 먼지들이 어느 골목길 안에서, 힘없이 맥빠진 눈물을 조금씩 쏟아내는 바람에, 그 눈물은 뜨겁지 않고 차가워서, 그래서 여름은 가을이 되고 곧 겨울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점이 찍힌 남의 눈물을 조심스레 따라가면, 신촌은 수많은 골목길을 통해 갈래갈래 이어져 있습니다. 신촌 현대백화점 방향으로 벗어나면 그곳은 홍대입구역과 신촌역 사이의 무성한 공간, 예를 들면 연희동, 연남동,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그런 공간들입니다. 그 많은 골목길 중,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5번 출구는 동교동 삼거리 연희동 방면에서 내려야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동교동 삼거리의 신호등을 건너 어느 전자제품 서비스센터의 번쩍번쩍한 건물을 지나면, 옆으로 빠지는 골목길 하나가 있습니다. 이 골목길의 끝에는 홍대의 번화가가 있고, 그러나 그 끝의 전에는 공항철도 5번 출구가 있고, 그러나 그 끝의 전의 전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있습니다.

 

골목길 포장마차는 참 흔한 말이었는데.

 

늦은 시간에 들이닥친 에디터의 당돌한 질문에도, 사장님께서는 자근자근 대답해주셨습니다. 학교 학생회관 ATM기에서 벌벌 떨며 뽑아간 만 원짜리 한 장이 파르르 떨기 무색할 만큼이었습니다.

 

내가 재작년이랑 작년까지는 병원에 있느라 쉬었어.

 

보름인 월요일에 6시간 강의를 듣고, 동아리 활동을 한 뒤 포장마차에 앉은 에디터는 저녁 식사로 떡볶이 하나, 순대 하나, 내장 없이요! 어묵도 하나 더 먹을게요, 사장님. 먹고 가겠다는 말에 사장님께서는 플라스틱 그릇에 어묵 국물을 담아 앞에 턱, 내려놓으십니다. 떡볶이는 요 근래 본 떡 중에 제일 길었습니다. 음식의 맛을 예민하게 분별해낼 재주가 없는 에디터로서는, 이게 밀가루떡인지 쌀떡인지조차 긴가민가하면서 먹었는데, 갑자기 불쑥 방문해 사장님에게 이거 밀떡이에요? 묻고 다음에 와서 사 가겠다고 한 행인에 의해 불현듯 밀가루떡임을 알게 됩니다.

떡볶이는 솔직히 맛이 없었습니다. 양념은 짭짤한 고추장에 불과했고, 떡도 밀가루떡이라 치기에 너무 쫀쫀한 식감이었고, 어묵은 옆 어묵 국물 기계에 있던 어묵 하나씩을 빼서 대충 버무린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밀가루떡은 입에 넣은 순간에만 잠깐 고추장이 묻어 있다가 곧 사라졌고, 너무 정직하게 고소한 밀가루만 쌀떡처럼 쫀득쫀득 씹혔습니다.

순대는 솔직히 맛이 있었습니다. 건조해 보였는데 순대는 많이 촉촉하지 않아도 맛있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걸 그제야 압니다. 게다가 회색빛이 도는 깨가 섞인 소금을 찍고, 짭짤한 고추장 양념에 불과한 떡볶이 국물을 찍었습니다. 순대가 이렇게 고소하고 부드럽고 맛있는 음식이었나, 에디터는 맛이 없는 떡볶이를 완벽히 용서합니다.

 

여기 자랑할 게 뭐가 있다구…

 

포장마차 안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무려 방금 대로변에 있던 전자회사의 냉장고가 한 대 있고, 냉장고 위에 요즘은 보기 정말 힘든 신발 상자만한 텔레비전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9시 뉴스였겠지요.

구석에는 맥주 상자와 온갖 과일 상자가 쌓여 있고, 사장님이 계신 뒤쪽에는 플라스틱 종지와 그릇들이 몇 개 쌓여 있습니다. 당연히 간장 종지나 소금 종지는 종이컵을 반토막 낸 임시 그릇이라든가 비슷한 곳에 나올 줄 알았는데, 종지도 모두 플라스틱 그릇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디터는 얼떨떨하게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어묵 국물을 받아들었던 것처럼 소금과 간장도 받아 듭니다.

 

사장님, 저저번주까지는 이 가림막 없었는데 새로 치셨어요?

응, 저번 주에 쳤어. 바람이 자꾸 부니까. 올해 처음 치는 거다. 없어서 못 썼다.

 

사장님과 독대하던 가게 안에, 두 번째 손님이 들어오십니다. 긴가민가한 한국어로 떡볶이 하나를 시켜 앉으신 두 번째 손님은, 에디터가 한자 까막눈임을 처음으로 안타까워하게 하였는데, 포장마차 쇠판 카운터 위에 손가락으로 에이치, 케이. 에이치, 케이를 연신 그렸습니다. 아, 홍콩? 에디터는 홍콩이 홍콩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몰라서 애석해했고, 그러나 두 번째 손님은 흔쾌히 맞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후로 이어진 대화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 그저 적당한 반응을 보인 대화였지만, 그래도 두 번째 손님이 70살이라는 것과, 손가락으로 주고받은 숫자 8. 급하게 찾은 광둥어번역기로 물은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되었어요?”에 대한 손가락 8개, 그러니까 두 번째 손님은 8일째 혹은 8주째 혹은 8개월째 혹은 8년째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걸까요.

 

저 아가씨는 몇 번 와. 땡글땡글 생겼잖어, 그러니까 기억하지.

 

두 번째 손님을 보낸 뒤,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5번 출구에서 나온 많은 관광객들이 에디터의 뒤와 사장님의 앞을 지나갑니다. 이 골목이 그렇습니다. 5번 출구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공항철도에서 사람들이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곳이고, 그들에게 홍대입구란 그래서 아마 조금 삭막한 뒷골목의 첫인상일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 포장마차에게 홍대입구란 아마 온갖 언어의 향기가 뒤섞인 혼곤한 혼란의 첫인상이겠습니다. 그래서 이 가게는 신촌 구석, 어느 곳보다 낯선 공간입니다. 완벽한 타인, 완벽한 타국의 타인이 수없이 지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열고닫을 문도 없으니 만남과 이별은 짙게 구분되지 않는 신촌 끝자락의 외딴 별.

세 번째 손님에게 사장님은 익숙한 인토네이션으로 오예, 대답하며 떡볶이와 어묵 하나씩을 포장해 줍니다. 조금 오지랖일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에디터는 영어를 하느냐고 세 번째 손님에게 물었고 세 번째 손님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어디 살아요, 학교 다녀요? 아 그 학교 다니는 구나. 사장님에게 통역을 해 전달하지만, 사장님은 생각보다 영 시큰둥한 표정으로 응, 어, 그렇구나, 하고 벨기에가 고향인 세 번째 손님을 보냅니다.

 

저기 옆에 공사해서 새로 생겼잖아요, 사장님.

그래, 저거 고치는데 6억 들었대, 6억.

 

이곳을 방문하고자 했던 것은, 조금 늦은 오후에 골목을 지나가다 본 광경때문이었습니다. 수업이 일찍 끝나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그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어른들의 음료수였습니다. 에디터도 이제 어른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으니 그래, 에디터의 음료수이기도 한 초록색 병 두어 개가 포장마차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해가 짐과 어른들의 음료수는 상관이 없지만, 그 골목길에, 이역만리 향기가 골목길에 쌓인 쓰레기봉투만큼 놓여 있는 골목길 안에서 투명한 초록색은 여름날의 우거짐만큼 번득였습니다.

 

사장님 이거 간장은 만들어 오시는 거예요?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냥 파랑 양파랑 썰어 넣은 건데, 더 드릴까?

 

골목길 포장마차에는, 오후 2시쯤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오신 어른 음료수 손님들이 많다고 사장님은 말합니다. 또 일본에서 온 어느 손님은 가끔 와서 갈색병에 어묵을 그렇게 잘 먹습니다. 11월 10일 일요일에는 근처 편의점에서 치즈 무언가를 사와 초록병만 포장마차에서 사서 마시고 간 “아재”도 있습니다.

원래 홍대 근처에, 특히 3번 출구 쪽으로 가면 포장마차가 많았지만 다 정리되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음료수는 팔지 않고 다만 튀김과 어묵만 판다고 합니다. 에디터는 저렇게 큰 냉장고가 이 골목길 포장마차에 있어야 할 이유를 이제야 찾아냅니다. 초록병, 갈색병, 흰병까지 몇 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냉장고는 이 작은 골목길 구석에 뚝심있게 버티고 서 있어야 합니다. 에디터는 잠시 동안 셋 중에 하나를 시켜 마셔볼까, 생각을 하다가 아가씨는 그러면 자취를 하느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집으로 가야 할 거리를 깨닫고 마지막 순대에 정성들여 떡볶이 국물을 찍습니다.

 

하루의 막바지라 포장마차 안에서 김은 더이상 모락모락 나지 않지만, 에디터는 하나도 춥지 않습니다. 외딴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이 차가워지는 줄도 모르고 따뜻하게 식어갔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골목길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 외딴 곳에서 하나도 외로운 줄 모르고 식어갔다는 일에 대해 가만히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께 만 원 한 장을 건네어 드립니다. 7천 원 어치를 먹었지만 6천 원을 거슬러 받고 사장님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문이라고 하기 애매한 문을 지나 외딴 별에서 다시 우주 속으로 던져집니다.

 

사장님, 저 칠 천원 어치 먹었는데요.

아이 됐다. 순대 쪼끔밖에 못 줬다.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5번 출구를 통해, 이국의 우주에서 이 나라의 우주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먼지들, 매일 오후 2시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로 들어오는 우주의 먼지들, 간혹 지나가는 어쩌다 마주친 먼지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먼지들, 알아들을 수 있는 먼지들. 그 골목길의 포장마차는 이 모든 먼지들을 위한 외딴 별입니다. 무의 공간에서 차가운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는 그들을 자연스레 붙잡아, 타인임을 인정하는 외딴 별.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바라보기엔 벅찬 먼지들이라 차라리 그 불가함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는 간격을 인정해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덤덤한 위로, 덤덤한 반응.

그래서 골목길의 포장마차 위로 날아가는 달님은 긴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고, 먼지들 각각이 안고 온 괴로움과 고통에는 덤덤한 어묵 국물과 꼬소한 밀가루떡의 맛만 더해집니다. 그대는 타인이고, 우리 모두는 이 공간을 영영 떠돌 하나의 먼지들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렇게 인정함을 통해 먼지로서 내어줄 수 있는 섬섬한 대화들.

 

우리는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데 왜 이렇게 큰 고통을 받아야 하나.

이곳 포장마차 안에서 먼지들의 물음은 수없이, 그러나 고요히, 강인히 변주되고, 어른 음료수는 냉장고에서 하나씩 주인을 찾아 갑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을 밤에는 수많은 먼지들이 이곳 골목길 포장마차 안에서, 뜨거운 눈물을 외딴 별의 호수에 넣고 찬찬히 식혀, 그래서 겨울은 봄이 되고 곧 여름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장님, 여기 가게 이름이 있어요?

이름은 무쓴! 그냥 포장마차지

 

 

 


이름은 무슨 그냥 포장마차

서울특별시 신촌로 10-1 언저리

사장님이 편찮으시지 않은 날, 오후 2시 언저리 ~ 사장님이 퇴근하실 때.

러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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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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