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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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05 · 11

저장 용량이 부족합니다.

Editor 바녕



 

 

 

2018년 5월의 어느 새벽

 

 

 

재작년 딱 이맘때였다. 나는 새벽 불침번을 서기 위해 군복을 갖춰 입고 싸늘한 복도 위에 섰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적막에 잠은 금세 달아났다.
뇌는 효율이 몹시 좋지 않은 기계 장치와 같아서 단 한 순간의 공허도 견디지 못한다. 뇌가 태울 연료를 찾아 두 눈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주변의 모든 것들은 어둠에 흠뻑 젖어 도저히 땔감으로 쓸 수 없었다.

 

 

 

어둠은 사고를 마비시킨다.
메가박스 옆 터널

 

 

 


이와 같은 무(無)의 위협을 마주했을 때, 인간은 기억이라는 방공호로 대피한다. 어느새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와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를 에워쌌다. 누군가에게 한순간에 박탈당한 것 같았던 이런저런 기억은 빡빡 깎인 머리카락마냥 날카롭고 선명했었다.


 

 

 

2020년 5월의 어느 새벽

 

 

 

얼마 전 커피를 잘못 마셔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스마트폰 여기저기에서 주워온 질 낮은 땔감마저 다 태워버린 나는 일단 불을 끄고 누웠다.

깜깜한 방안에서 마주한 기억은 이전만큼 선명하지 않았다.

너무나 소중하고 찬란해서 영원할 것 같았던 기억은 어느새 색조도, 형태도 잃어버린 무색무취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 덩어리는 은근한 압력으로 가슴을 눌렀다. 또 다른 기억들은 시간에 풍화되어 입자가 고운 가루로 변했다. 제법 예뻐 보이던 가루가 바람에 날리자 황사가 되고 미세먼지가 되어 숨통을 조였다.

2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의 상태가 마치 반건조 오징어처럼 느껴졌다. 합리와 이성의 볕에 완전히 건조된 것도 아니고, 낭만을 온전히 머금어 촉촉한 것도 아닌 상태.

 

 

 

딱딱함과 말랑함 그 사이 애매한 어딘가.
반건조 오징어…는 아니고 버터구이 오징어

 

 

 


 

 

 

낮이 되어

 

 

 

밤의 감상은 대부분의 경우 햇살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충분히 자고 일어난 나는 좀 더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경험은 용량이 엄청나게 큰 데이터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 고양이에 대한 경험은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를 안에 품고 있다. 고양이와 내가 놓여 있는 시공간적 좌표, 만남 직전에 하고 있었던 동작과 생각, 주위를 둘러싼 온갖 사물들, 고양이에 대한 개념과 사전 지식 등……
우리의 작은 머리에는 이렇게 큰 데이터를 저장할 만한 공간이 없다. 따라서 경험을 보존했다가 나중에 활용 또는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작은 크기로 압축한 후 무의식이란 클라우드에 업로드한다. 이와 같은 처리 과정을 거친 경험이 바로 기억이다.

그러나 불러올 기억을 선택할 권한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놓인 상태가 어떤 기억을 불러올지 결정한다.
일반적인 경우,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새 경험과 유사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기억은 현재의 경험을 해석하고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온전하고 단단한 상태로 나타난다.
반면 앞서 본 두 개의 밤과 같이 텅 빈 공허에 던져질 경우, 기억을 선택하는 기준은 ‘나에게 지금 무엇이 없는가’에 놓인다. 우리의 결핍은 기억을 잔뜩 불러와서,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리고는 문제를 해결해 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과장된 기억 뒤로 숨어버린다. 뒤틀리고 왜곡된 기억은 지나치게 아련하고 감성적이라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반건조 오징어 앞에 놓인 세상은 먹물같이 까만 밤이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는 뭘 할 틈도 없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친구들은 점점 바빠지고 마지막으로 거나하게 취한 것이 언젠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기억은 죄다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곳에 서서 흐물거리고나 있다. 아예 기억을 꺼내 볼 깜냥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기억을 보다 온전한 상태로 되살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20년 넘게 살면서 나의 온갖 기억이 서린 신촌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새롭고 낯설게

 

 

 

특정 기억을 딱 찝어서 불러올 수는 없지만,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최대한 재현함으로써  원하는 기억이 우리를 찾아오도록 유도할 순 있다. 기억을 되찾는 제일 직관적인 방법은 무대가 되었던 공간을 다시 찾는 것이다. 단, 이 방법은 방문이 꽤 오랜만에 이루어졌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새로움낯섦만이 기억을 온전하게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 정도는 낯설고 반 정도는 익숙한 길 위에 놓인 것들은 그 자체가 조금씩 변해 있고, 지금의 나 역시 기억 속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 달라진 것들을 달라진 눈으로 훑으며, 우리는 지금의 경험과 과거의 기억을 꼼꼼하게 대조한다. 이와 같은 작업은 보다 원형에 가까운 기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익숙한 공간은 사정이 다르다. 이 곳을 무대로 아무리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제도 어제도 본 풍경의 표면에서 시선은 그저 미끄러진다. 잘게 조각난 기억은 그저 목적지로 가기 위한 최단 경로를 찾는데 이용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저기 묻혀 있는 기억들을 파내려면 익숙한 공간을 새롭고 낯선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00%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에도 낯선 골목들이 꼭꼭 숨어있다.
신촌장로교회 근처 골목길

 

 

 

때때로 요상한 물건들이 발치에 놓여있기도 한다.
창천동의 어느 한 골목길, 깨진 거울

 

 

 

앞만 보도록 설계된 인체 구조 상 올려다 보는 행위는 대체로 생경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창천교회

 

 

 



 

 

 

빛과 기억

 

 

 

처음 보는 풍경과 사물만 공간에 새로움과 낯섦을 부여하는 건 아니다. 각양각색의 은 건물과 도로와 사람들 위에 매순간 미묘하게 다른 그림자를 드리운다. 특히 햇빛은 날씨,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그 각도와 색감이 천차만별이다. 햇빛 아래서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같은 길을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구도로 찍었는데도 그 느낌이 이렇게나 다르다.
연대 정문 횡단보도 근처 골목길

 

 

 


신촌은 생선 뼈와 비슷하게 생겼다. 얼마 전 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척추에 해당하는 큰 길을 따라 걷다가, 가시가 뻗어나가는 지점에 이르러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거리는 낮게 깔린 태양 특유의 주황색 빛으로 꽉 차 있었다. 후광을 받아 사물의 윤곽은 어느때보다 뚜렷했지만,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한데 연결되었다. 집에 가기 위해 수백 번 넘게 오간 길이 한 순간에 머나먼 이국의 땅마냥 낯설어졌다. 지금 이 순간이 특별해지자 이전에 이 길 위에 섰던 매 순간 역시 특별해졌고, 길 여기저기에 꼭꼭 숨어있었던 기억들이 깨어나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햇빛은 매우 천천히, 연속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햇빛이 가져오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 밤에 빛나는 인공 조명들의 효과는 항상 극적이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기억의 주 활동 무대는 밤이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겁에 질려 과거의 기억을 닥치는 대로 긁어 모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들은 우리에게 묘한 안정감을 주며, 기억의 바다를 표류하는 우리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안내한다.  

밤의 빛은 뻗지 않고 번진다. 그래서 가로등과 간판과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다시 그린 기억은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  

 

 

 

연대 정문 맞은편에 있는 꽃집

 

 

 

그랜드마트 옆 포장마차

 

 

 

서강대역 부근 과일 가판대

 

 

 

남는건 사진 뿐

 

 

 

빛은 순간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카메라는 원하는 피사체에 내려앉은 특정 순간의 빛을 0과 1의 형태로 변환하거나 필름에 묻힘으로써 저장하는 기계다.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순간을, 원하는 구도와 색감으로 남기는 것.
사진과 기억의 메커니즘은 상당 부분 유사하다. 그러나 사진은 삭제하지 않는 이상 원본 그대로 영원히 남는다. 옛 사진을 보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다.

반건조 오징어가 나밖에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클라우드로 추억 여행을 떠나는 내 또래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귀찮아서 저장 버튼을 안 눌렀다가 기간 만료로 날려버린 사진들이 너무나 많다. 이제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다.  

흩어진 기억을 찰지게 반죽하고 싶다면, 침대에 누워 옛 사진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당장 카메라를 들고 밖을 싸돌아다녀 보기를 추천한다. 피사체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눈은 빛의 흐름과 새롭고 낯선 사물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민감해진 눈은 반짝이는 세상에서 기억을 더 잘 끌어낸다.
‘찰칵’ 소리 후에 남는 것은 셔터를 누르는 바로 그 순간만이 아니다. 사진에는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과거의 다양한 기억 역시 담긴다.

 

 

 

요즘은 주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신촌 밤거리

 

 

 


앞서 소개한 방법들(익숙한 길에서 삐죽 튀어나온 것 찾기, 빛의 흐름에 집중하기, 사진기 들고 다니기)은 과거의 기억을 온전하게 되찾는 방법인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새롭고 낯선 것을 통해 불러낸 튼튼한 기억은 나중에 꺼내볼 또다른 기억을 낳는다.

모두가 숨가쁘게 달리고 있는 지금,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일종의 사치가 되었다. 그러나 기억은 우리의 뒤쪽에 놓여 있지 않다. 기억은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다.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전경을 새롭고 낯설게 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바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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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녕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Cho hyo rin
    Cho hyo rin 2020.05.11 19:12

    글이 너무 좋네요,,,,앞으로 더 좋은 글로 자주 만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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