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너는 어쩌면 나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너는 어쩌면 나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금붕어가 나를 향해 입을 뻥끗거렸다. 카페 한 가운데 놓여있는 어항에는 몇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였다. 같은 위치, 같은 날갯짓, 같은 입모양을 반복하는 금붕어는 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너는 어쩌면 나를 만났을 지도 몰라.’ 동그랗게 벌어진 입 밖으로 기포들이 글자의 형태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게 말을 걸며 아는 척이라도 하는 듯 말이다. 책장 옆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제자리를 맴도는 물고기에게는 다 똑같아 보였을지도 몰랐다.
내가 보는 신촌이 그랬다. 어떤 신호등이든 어떤 사거리든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비슷한 옷차림과 행동들이 신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을 만나보겠다며 나는 작은 입을 뻥끗거리며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고, 입 밖으로 떠오른 말의 기포들은 글자의 형태로 남아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잔치를 벌였다.
마지막으로 벌일 내 잔치에는 더 많은 사람을 부르고 싶었다. 무작정 나는 또 누군가를 찾기 위해 신촌로를 걸었다. 무언가를 포획하고자 동그랗게 눈을 뜨는 금붕어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비슷하게 남을 줄 알았던 사람들은 각기 나름대로 서로 다른 형체의 모습으로 나를 지나쳐 갔다. 뚜렷한 인상은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 그들은 낯선 향으로 내 코를 찌르기도 했고, 친구 J와 나로 보이기도 했으며, 저만치 멀리 떨어진 연인은 친구 S와 그녀의 남자친구처럼도 보였다. 교복을 입은 한 소녀에게서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걸어가던 고등학생의 나를 마주하기도 했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과 지나갔을 인연들, 그 순간들은 여전히 신촌에 남아있었다. 말로 내뱉지 못했지만, 터지지 않은 생각의 기포는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곧 폭죽이 되어 터질 수 있도록 잔치를 벌이고 싶었다. 그렇게 내 마지막 잔치가 열렸다.
이 잔치에 초대 받은 너는 어쩌면 나를 만났을 지도 모른다.
# 신 촌
신촌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신호등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신촌로터리 신호등 앞 포장마차에서 친구 J와 함께 매운 오뎅을 먹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신촌에서 편안했던 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 손에 오뎅 꼬치를 쥐고 신호를 건너는 사람들을 무심코 볼 때면 나는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교복을 입던 그 때의 나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J는 머리가 많이 길었다. 나는 늘 손에 실내화 가방을 쥐고 있었다. 좁은 포장마차 안쪽에 그 가방을 내려놓고는 먹는 데 집중하느라 늘 놓고 나왔다. 순대 볶음 철판 위로 뿜어져 나오는 김은 내 안경을 뒤덮었지만 우리는 여름에 늘 빙수를 먹듯, 겨울엔 오뎅을 먹었다. 오뎅 국물을 들고 J는 11번 버스를, 나는 5번 버스를 타러 갔다.
5번 버스 신사들은 내 첫 잔치의 주인공들이었다. 잔치를 벌이려 그들의 사무실을 갔을 때 나는 한 여인을 마주쳤다. 그녀는 신사들의 점심을 준비해주는 아주머니였다. 신사들과 내가 대화를 나눌 때 그녀는 식판에 음식을 옮겨 담았다. 음식은 정갈하게 놓여있었고, 그녀의 모습은 매우 침착했다. 신사들이 떠난 후 자리를 정리할 때, 그녀는 걸려온 전화를 몇 번 망설이더니 이내 전화를 받자마자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그녀는 나의 인사를 공손하게 받아주며 다시 침착함을 유지했다. 원래 신사 곁은 숙녀…가 있기 마련이라고, 아까는 그녀의 개인사정으로 인한 일시적인 소통의 방법이었을 뿐이라고, 나는 수없이 홀로 되뇌었다.
침착함은 상황에 조용히 스며들어 존재한다. 때로는 가장 크게 발현되기도 하는데, 신촌오거리 앞 치킨집 아르바이트생을 마주친 때였다. 한 마리에 사천원하는 그 통닭집에는 사람이 많았다. 밤거리를 환히 밝히는 불빛만큼이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요란했다. 그들 앞에서 통닭을 튀기던 젊은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로봇을 연상시키는 침착함을 가지고 있었다. 요란스런 소리에 사람들은 한 번씩 치킨집에 눈길을 주고 떠났지만 그의 눈길은 오로지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린, 튀김옷을 입은 한 마리의 닭을 향해 있었다. 마스크를 낀 채 얼굴 한 번 제대로 들지 않으면서도 그는 허리를 꼿꼿이 핀 채 서있었는데, 나는 괜히 굽어진 내 어깨를 의식적으로 피며 걸어갔다.
그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 한 금발의 남자 외국인이 있었다. 큰 보폭으로 걸으며 일정하게 몸을 들썩이는 그의 걸음걸이는 발랄했다. 손에는 베스킨라빈스 종이백이 있었는데, 종이백을 뚫고 나올 듯한 플라스틱 용기가 종이백 너머로 형체를 드러냈다. ‘ARE YOU MIN-CHO?’ 그는 민초파일까 반민초파일까 하는 부질없지만 중요한 생각을 하며, 그가 민초파라면 나는 홀린 듯 따라갔을 지도 몰랐다.
신촌을 지나며 수많은 외국인을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명물거리 버스킹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있던 흑인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손에 닭강정을 쥔 채 옆에 있는 한국인 연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한국인 연인들은 그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도 닭강정 컵이 있는 걸로 보아 일행인 듯 했다. 한국인 연인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와 나눈 대화는 버스킹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명물거리 가운데쯤에는 한 옷가게가 있다. 친구 O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나 또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옷을 보러 들렸다가 O의 마감시간에 함께 나왔다. 우리의 집은 둘 다 아현이었는데, O는 버스비가 아깝다며 걸어가자고 했다. 신촌 기차역을 지나치는 길목에서 타코야끼 트럭을 보았고, 결국 우리는 손에 나무꼬치를 쥐었다. 지나치는 마을버스를 보며 서로 헛웃음을 지었지만, 설익은 타코야끼 반죽에 파고든 문어를 씹으며, O는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고 중얼거렸다.
기차역을 지나 이대 정문으로 올라오는 길에 닭꼬치 포장마차 점포가 있었다. 교복 위로 가방을 맸던 고등학생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그곳을 간 적이 있다. 가게 주인 아저씨는 몇 입 베어 물어 꼬챙이만 남은 나무 꼬치를 잘라주었다. 닭꼬치 옆으로 양념에 절인 가래떡들도 내 앞으로 놓았다. 그는 이제 그곳에 없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 신촌에는 남아있다.
한 남성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그 길을 지나갔다. 그의 한 몸에서 다른 두 소리가 겹쳐 나왔다. 자세히 보니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두 명이었다. 몸을 살짝이라도 기울이면 모두 자빠질 듯한 좁은 킥보드 발판에 둘은 간신히 서있었다. 뒤에 탄 남성은 손을 들었다가 다시 내리는 행위를 반복했다. 알 수 없는 말로 강렬한 샤우팅을 뱉었다. 호기로운 그의 목소리는 차의 경적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신촌 명물거리를 거니는 한 노인 여성은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부엉이가 그려진 에코백 밖으로 검은 봉지가 기울어지며 쓰러질 듯 했다. 그녀는 벤치에 짐을 내려놓았다. 흰 마스크와 백발의 머리 사이에 위치한 눈은 감은 듯 희미했다. 그녀의 등 뒤로 햇빛이 비췄다. 그녀는 곧 다시 몸을 세워 두 손에 짐들을 쥐었다. 한 손에 든 노란 맥심 박스가 유난히 커보였다.
건너편으로 유플렉스 앞, 스파오 행사 매장에는 늘 사람이 북적였다. 그날은 유독 더 그랬는데, 큰 목소리로 할인 행사를 알리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한 몫 했던 것 같다. 짙은 색의 모자와 조끼를 입은 그는 얼굴을 하늘 높이 들고 큰 소리를 외쳤는데, 무슨 의미의 소리인지는 몰랐으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그곳에 내딛었다. 그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양 손으로 옷들을 헤집었으며, 모두 떠나갈 기미는 없었다. 계산은 앞 쪽에서 해달라는 그의 친절한 말투와 표정에 나는 홀린 듯 따라갔다. 블라우스를 하나 구입한 뒤에야 나는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옷은 잘 입고 있다.
신촌은 여전히 공사 중인 곳들이 많다. 집으로 가는 길이면 나는 안전모와 조끼를 입은 건설 노동자인 그들을 마주한다. 오후 12시, 그들은 인도에 앉아있다. 마스크를 벗고 땀을 닦고, 물을 마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기도 했다. 그들의 뒤로 크게 공사현장을 가리는 철판에는 소통과 혁신으로 더 크고 행복한 마포를 만들겠다고 적혀있다. 나는 그 문구를 보며 내게 행복했던 신촌을 떠올렸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되뇌이면 신촌의 한 양식집에서 토마토 파스타를 먹는 순간이 떠오른다. 중학생이었던 넷이 모여 세트 A 혹은 B를 시켜 먹는 것은 넷 중 누군가의 생일이었거나 시험 끝난 날에나 그럴 수 있는 여유였다. 신촌 거리가 보이는, 2층에 위치했던 그 양식집은 우리에게 특별했다. 친구 S가 시킨 크림 빠네 파스타에 스파게티 면이 꽂혀 있는 모습은 참으로 호화스러웠다. 같은 자주색의 교복을 입고, 늘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상을 나눈 그 순간이 왜 잔치로 남았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일상 속 특별했던 그곳의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재현되었을지도 모른다. 2층 창문에 비친 교복입은 소녀들의 모습을 보고 중학생이었던 나를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신촌을 거닐던 순간들은 모두 잔치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잔치를 벌여보겠다고, 잔치에 걸맞는 특별한 누군가를 찾아보겠다고, 이 길을 걷던 순간에도 잔치는 내 안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쳤을 당신에게도 그 일부의 순간이 잔치였기를 바란다고. 어쩌면 나를 만났을지도 모를 사람들, 메람에게. 메수가 만난 사람들에게.




우리가 만났을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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