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들
그 날은 눈이 내렸다. 나는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다. 나는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려 노력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을 비웃듯 떠올리기조차 벅찬 순간들이 찾아 올 때가 있다.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생각이 턱 끝까지 차올라 숨을 헐떡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몰라 쩔쩔 맸다. 나를 점검할 정신도, 세상을 볼 여유도 없었기에 내 몸은 추위에 파묻혀 얼어붙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 이러고 있으면 감기 들어.” 당신도 추웠을 텐데, 기꺼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내 두 손을 감쌌다. 차갑게 얼은 손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흩날리는 눈, 몸을 파고드는 추위, 걱정 어린 아주머니의 표정, 그리고 나를 감싸고 있는 두 손. 분명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했다. 이상한 일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온기를 내어주는 사람들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가질수록 빛이 날 것이라 믿는 세상 속에서 내어줌으로써 빛이 나는 사람들이다. 신촌의 한켠에도 이러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화려하고 풍요로운 공간에서 오지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모두가 여유로운 휴가를 꿈꿀 때 그들에게 갈 생각을 하며 웃음 짓는다. 신촌을 수없이 오간 나는 절대 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궁금했다. 나는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당신들은 할 수 있었는지, 사랑을 주는 것은 어떤 기분인지 묻고 싶었다. 또 차가운 세상에 울고, 뜨거운 세상에 데여 사랑을 믿지 않는 많은 이들에게 세상이 이렇게 따뜻하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 신촌의료봉사단에서 12년 동안 봉사를 하신 김용운님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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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본인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63년생 김용운. 치과의사이며, 현재 양재동에 있는 임플란티아치과 강남본점 원장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한국외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신촌의료봉사단을 소개해주세요! 봉사단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신촌의료봉사단은 대한민국 토종 NGO단체인 ‘(사)글로벌비전’과 신촌로터리에 위치한 ‘신촌성결교회’가 연합하여 2000년부터 매년 7월에 동남아시아 각국의 오지로 다니며 의료와 미용, 아동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7-8명의 의사, 치과의사들과 4-5명의 미용사, 그리고 많은 일반인들로 이루어진 40여명 정도의 단원으로 의료봉사단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각자에게 주어지는 포지션에서 봉사에 최선을 다합니다. 40-50대의 나이에 의료봉사단 활동을 시작해서 60-70세가 될 때까지 2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 단원들도 계십니다. 정말 마음으로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12년 동안 여름휴가 대신 봉사단 활동을 가셨다고 들었어요. 봉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또 12년 동안 쭉 하시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신앙심 하나 없이 세상속의 삶을 즐거워하던 저는 2005년부터 아내에게 끌려가다시피 신촌로터리에 위치한 신촌성결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교회를 다니면서 무의미한 인생을 살던 중, 2008년 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예배를 보던 중에 베트남으로 가는 의료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번 의료봉사에 꼭 가야겠다는 강한 이끌림에 사로잡혀 예배가 끝난 후 이번 의료봉사에 참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의 응원 속에 떠난 첫 번째 의료봉사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번째성 오지에서의 4일, 너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각종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순수한 마음과 미소를 보여주던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풍족한 삶 속에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나눌 줄 모르고 살았던 나 자신이 깨어지며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자 떠났던 의료봉사에서 오히려 제가 더 큰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행복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의료봉사를 다녀온 후, 제 나이 70세까지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매년 의료봉사를 가겠다고 주님 앞에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후 2019년까지 12년 동안 매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네팔, 필리핀, 태국의 오지로 의료봉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도 의료봉사에 함께 참여하여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을 함께 극복하고 나눔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을 더욱 돈독하게 쌓는 계기가 되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주민 분들이 무사히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요?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있나요?
주민들이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단, 주민들 자신이 앓고 있는 기저질환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접수 때 미리 얘기를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됩니다. 또 미얀마, 라오스, 태국의 오지는 예전에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 지대였기에 아직도 주민들 중에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치과치료는 마취와 발치를 동반하는 치료가 대부분이라 마약을 한 상태이거나 기저질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마취와 발치 후,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또 몇 번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미리 얘기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또한 의과팀의 검진과 진료동안 주민들 자신도 몰랐던 암이나 심각한 질환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인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만, 주민들도 치료를 받을 여건이나 환경이 안 되고, 저희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죽음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그저 안타깝고 마음만 아픕니다.
봉사를 가셔서 하시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의료봉사를 가서 하는 일은 의료봉사, 미용봉사, 아동 및 지원, 기부 받은 물품들과 기부금을 기부하는 봉사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각 팀으로 구분되어 담당하며, 20년 동안 의료봉사로 쌓인 내공으로 각 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일사분란하게 봉사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저희 신촌의료봉사단은 접수/지원팀, 의료팀, 미용팀, 아동팀으로 구성됩니다. 의료팀은 치과팀, 의과팀, 약국팀으로 다시 세분화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봉사를 합니다. 치과팀은 불소도포를 통한 충치예방사업과 충치치료, 발치를 주로 하고, 의과팀은 내과, 안과, 산부인과, 외과, 초음파검사 등을 진행하며 청각검사를 통해 보청기를 무료로 장착해 드립니다. 또 돋보기안경과 선글라스 등을 무료로 나눠줍니다. 약국팀은 치과와 의과팀에서 처방을 내린 약을 나눠주고, 비타민과 영양제, 파스 등을 주민들에게 제공합니다.
접수/지원팀은 모든 봉사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환경조성과 장비설치 등을 지원하고, 질서를 유지하면서 주민 접수를 하며 구충제 투약과 몸무게, 혈압을 측정하고, 의류 등 주민 지원물품을 나눠주고, 또 접수를 마친 주민들을 각 의료파트로 안내하는 일까지 도맡아 합니다. 미용팀은 주민들의 헤어 미용을 담당해서 헤어 악세사리를 나눠주고, 헤어커트와 머리염색까지 여자 주민들에게 아주 인기 만점입니다. 아동팀은 주민들 중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용품과 아동의류 등을 제공하고, 그림 그리기, 레크리에이션과 스티커 문신, 페이스 페인팅 등으로 아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해 줍니다.

봉사를 하는 동안 힘든 점은 없으셨나요? 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가장 힘든 것은 더위와의 싸움입니다. 기온 35도에서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고, 매일 밀려오는 수백 명의 주민들로 인해 봉사가 끝나면 녹초가 됩니다. 그래서 봉사단의 숙소는 호텔 등에 쾌적한 숙소를 잡고, 식사도 체력보존을 위해 좋은 음식으로 잘 먹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이어지는 봉사활동 속에서 폭염과 싸우며 피 땀 눈물을 쏟은 후에 쾌적한 숙소에 돌아 와 맛있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다보면 천국이 따로 없죠.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뽑자면 어떤 순간인가요?
의료봉사를 하는 중에 매 순간순간이 보람이고 기쁨이지만 가장 큰 한 가지를 들자면…
2019년 5월에 저에게 심각한 건강의 위험이 닥쳐왔습니다. 치과에서 진료를 하던 중,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져 강북삼성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치과를 쉬면서 두 달간 요양을 하며, 제 건강을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제 소원인 70세까지 매년 의료봉사를 갈 수 있도록 다시 건강을 허락해주시길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기적적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고, 재발의 위험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지켜주실 거라는 확신으로 그 해 7월에 가는 의료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시련과 고난이었던 뇌경색을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해 의료봉사를 갈 수 있게 된 그 기쁨과 감사를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원장님께 신촌의료봉사단은 어떤 의미인가요?
신촌의료봉사단은 저에게 있어 제 삶 자체입니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올 한해도 의료봉사를 잘 준비해서 모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은혜가운데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시작합니다. 2월 달에 의료봉사단 집행부 모임을 시작으로 의료봉사 할 나라와 지역을 정하고, 3월 말에 의료봉사단을 모집하여 4, 5, 6월까지 매월 2회씩 준비모임을 가지면서 준비할 것들을 준비하고, 7월에 의료봉사를 떠납니다. 그리고 의료봉사를 다녀온 후, 의료봉사단 해단식을 갖고, 남은 한 해를 의료봉사에서 담아 온 감동과 기쁨과 에너지로 보람 있고 행복하게 보내며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렇듯 의료봉사는 제 삶의 가장 큰 보람이고,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그리고 제 삶에 주어진 가장 큰 사명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계속 봉사단 활동을 하실 예정이신가요?
2020년은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가 혼란과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저희 신촌의료봉사단도 불가피하게 올해의 의료봉사를 취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꼭 다시 의료봉사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촌의료봉사단은 20주년을 맞아 그동안 두서없이 이곳저곳 오지로 다녔던 활동을 지양하고, 한 나라의 한 지역으로 집중해서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꾸준히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살피는 의료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매번 다른 지역으로 의료봉사를 다니다보니, 저희들이 치료했던 분들을 다시 살펴줄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는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섬길 계획을 세우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 70세까지 건강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매년 신촌의료봉사단의 일원으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끝으로 이 글을 볼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의료봉사를 가고 싶은데,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구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만 있으면 됩니다. 그 열정과 마음으로 충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오십시오.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아직 구체화시키지 못했다면, 살아오는 동안 가슴 벅차도록 보람 있는 일을 해보지 못했다면,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한번쯤 해보고 싶다면,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외롭고, 누구도 나에게 관심주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내가 하는 봉사활동으로 그 누군가의 미래가 밝게 빛나도록 하고 싶다면, 직접 신촌의료봉사단에 참여해보세요.
여러분의 인생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차갑고 험난함에도 불구하고 꽤 따뜻하다. 주변 사람들의, 심지어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얼어붙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온기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의 온기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까지 뻗쳐 빈 공간을 사랑으로 메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척박한 세상을 헤집어 따뜻한 무언가를 찾을 용기를 얻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배운다. 우리의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사랑과 온기는 물질적인 것들과는 달라 내어줄수록 더 크게 돌아온다고 한다. 사랑을 주면 더 큰 사랑과 기쁨이 찾아오기에 내어준 사람만이 비로소 찬란한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이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이글을 읽는 당신, 당신도 사랑하기를, 사랑함으로부터 얻을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를, 기쁨이 당신의 삶을 메우고도 넘쳐 마침내 찬란한 세상을 이룰 때, 그 세상 또한 당신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용운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웹진 ‘잔치’가 서울과 신촌 지역의 대표적인 소식지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