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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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0 · 06 · 16

275. 어쩌면 모두의 – 新村

Editor 브리즈

생각의 권태에 빠져있었다. 생각하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고, ‘나다운’ 생각이 나오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생각하기 싫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다운 생각이란게 있을까 싶으면서도…문득, 이것이 관중을 의식한 살다 보니 그랬던 같다 하는, 그럴싸한 원인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인스타그램의 번째 계정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나를 지켜보기 시작한 곳에 적막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나만 아는 이야기.’ 상투적이지만 계정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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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복잡하고 우울한 마음이 때면 오고 싶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 기이한 생각의 늪에 빠져버릴 때가 가끔 있다. 미래를 생각하다 과거로 향해버리기도 하고, 현재의 일을 생각하다 마음처럼 해결할 없음에 좌절하면 그제야 늪이 걷힌다.

형체도 없는 온라인 상의 공간이, 실재하는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 아이러니. 하지만 그토록 하찮게 여기던 공간에 이젠 아늑함마저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아도 완전한 이해를 바랄 없고, 그렇게 하기도 애매한 감정. 사람이 없는 세상이란 없고, 그런 곳에서는 살아갈 없다. 그렇기에 나는 군중을 배제한 완전하고도 하나뿐인 , 어둠 속에서 하얀 색으로 쓰여지는 나의 글에서 아늑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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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십구년 삼월

처음 신촌에 입성했다. 처음 보는 학교는 광활하게 느껴졌고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몰랐…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꿈꾸던 자유가 눈 앞에 있다는 사실만이 내 머리와 온 몸을 지배했다. 고등학교 3년을 붙어다니고도 부족해 같은 대학에 온 친구들도 많았고 힘든 1년을 보내며 그려온 삶의 양식도 분명했다. – 대학에 가는 이유는 자유를 위함이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되고, 생기부 따위 상관없이 하고 싶은 취미를 하며 모든 게 내 선택과 책임인 삶을 갈망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실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불안할 이유가 신촌 바닥 담배꽁초만큼도 없었다.

 

가장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사진을 가져왔다. 입학식때다.

 

 

이천십구년 사월과 오월

타오르기만 하는 이십세의 절정이었다. 강의가 끝나면 동기들과 신촌으로 갔다. ‘아 오늘은 삼쏘가 너무 땡기는데?’ 하면 가자고 부추기는 귀여운 동기들. 이 때가 시작이었다. 사실, 내게 신촌은 곧 유흥의 장소였다. 술은 취할 때까지 마실 것이 아니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취기가 오른 상태가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술 마시며 춤을 추고,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아침 해를 보며 모두 태워버린 심지만을 가지고 귀가하는 일탈도 즐겼다. 하지만 내 절정은 조금은 빠르게 왔다가 가버렸다.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를 꼽으라하면 감히 골라낼 수 있는 4월의 순간들 중 하나. 단순히 공부가 하기 싫어, 같은 자리에서 해가 지고 나서까지 네 시간을 떠들며 놀고 웃었다.

 

 

이천십구년 구월

처음 느껴보는 무기력함이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 어떻다할 설명도 찾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선배 언니가 말했다. ‘권태롭다는거지.’ 그래, 뭘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고,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내 가식적인 인스타그램에는 잘 지내는 척 하는 사진이 걸리지만 사실 그 때 나는 섞이지 못하는 기름이었다. 진심이 아닌 마음으로 섞이려 할수록 기름은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고…. 섞이지 못한 채  쪼개지기만 한다. 신촌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마을로 보이는 곳 안에서 점점 작아지다 못해 숨이 찰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빨리 벗어나야 했다. 그렇게 도망쳐서 도착한 집 근처, 하늘을 보니 같은 달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항상 이 달은 변하지 않고 있어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나는 신촌과 멀어졌다. 생각해보면 이 시기, 비로소 나에게 있어 신촌의 의미가 바뀌고 있었다.

그 때 찍은 달 사진. 지금 보니 왼쪽에 이상한 게 찍혔다. 꼭 온통 까만 곳에서 섞이지 못한 기름 같다.

 

 

이천십구년 십일월

내 사진첩에는 점점 신촌에서의 유흥의 기록이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자주 가던 신촌의 술집과는 다른 결의 장소들을 알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관심도 안 가지던 학교 후문 뒤로 조금 올라가면 보이는 스탠바이 키친… 가을 햇살이 기분 좋게 들어오는 창가자리가 좋았다. 공강시간에 그곳에 가 식탁에 비치는 햇빛을 보며 샌드위치를 음미하면 어느새 나는 물이 되었다. 기름으로 날 선채 떠 있지 않고 물이 되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처음 가서 하룻밤을 보냈던 숲속랜드 숲가마… 저녁이 다 되어 그곳에 가 수면실에서 눈을 붙이고, 아침에 일어나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고요 속에서 식혜와 컵라면을 먹었다. 하릴없이 있다가 해가 뜨자 누워서 떠들고, 야외로 자리를 옮겨 산책이나 할까 했는데 반팔의 찜질방 옷으로는 견디기 버거운 쌀쌀함에 화로에 고구마를 구워먹고…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서 밥을 먹다 그 식당의 순두부찌개를 발굴해낸 후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눕는다. 그렇게 햇살이 눈을 부시게 하지 않을 시각이 되어서야 꿈같던 공간에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찜질방에서 먹은 아침

 

 

이천십구년 십이월

물과 어울리는 느낌은 들었어도, 내가 만들어낸 구속 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싫지도 않지만 조금은 서먹해진 신촌과의 관계를 잠시 보류하고 멀리 떠났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밀어냈던, 신촌에서 맺은 인연들과 짧지만 즐거운 추억이 담긴 공간들. 그들은 모두 달라진 게 없었다. 어쩌면 내가 물이라고 지칭했던 것들 속에도 기름이 있고, 물이 있고…애당초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을 기어코 해내고는 홀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나. 

한국을 떠난 곳에서 생각이 많아졌던 밤. 여기도 같은 달이 떠있다.

 

 

이천이십년  삼월

원래대로라면 다시 보고 느꼈어야 할 신촌에 못가게 되었다. 

 

 

이천이십년 오월

달라진 수업 방식과 환경에 숨가쁘게 적응하며 겨우 안정을 찾았을 때, 자주 가던 근처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장 약속을 잡아 친구와 곧 사라질 뽀모도로에 가서 피자도 먹고, 비어버린 가게 안을 보며 학교 근처 상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상권이 좋지 않구나, 가게가 망해서 나가는구나 하며 경제적인 문제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에겐 그것이 너무도 아쉬워 마치 작별인사 없이 떠난 친구같았다. 다시 충분히 느낄 기회도 주지 않고 떠난 그것들이 아쉬워 사무쳤다. 

 

 

그리고

이천이십년 유월 현재.

너무도 느끼고 싶다. 이맘때 즈음이면 그늘도 없이 햇볕만 내리쬐는 학교 정문과 숨을 몰아 쉬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나오던 애증의 학관,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공강 시간을 알차게 쓰겠다고 박스퀘어에서 밥을 먹은 뒤, 빨잠으로 향하던 발걸음.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또 그만큼 많이도 즐거워했던 저녁 무렵 신촌의 눈부신 거리…같은 풍경인데 그 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모두 즐거웠던 것만 같다. 

기억이라는 것도 참 제멋대로다. 분명 뜨겁던 여름에 여행을 갔던 곳이, 봄바람이 불어오면 생각이 나기도 하듯, 어느새 기억 속 신촌은 기분 좋은 살랑거림이다.

나역시 신촌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는, ‘나만 아는 이야기’ – 新村.

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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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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