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B 신촌
색은 날것의 의미를 담는다.
언어는 의미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먹음직스럽게 요리하지만, 완성된 요리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숟가락을 가져다 대는 일밖에 없다. 반면 색은 펄떡펄떡 살아있는 의미를 상에 올린다. 색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회를 쳐먹든 매운탕을 끓여먹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다.
색에 담긴 의미는 사람들의 마음에 훨씬 쉽게 침투하며, 색이 대강의 테마만 던져주면 고유한 느낌과 감정으로 의미의 빈칸을 채우는 건 각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좀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밤에도 겨울에도 색은 쉬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없는 시간에 더더욱 색들은 생난리를 치며 나 좀 봐달라고 떼를 쓴다. 끊임없이 조잘대는 색들에 눈도 머리도 쉽게 피로해진다. 오죽하면 양 극단에 있는 하양・검정과, 맥아리없는 파스텔톤에 더 마음이 갈까.
하지만 신촌에서 나고 자란 나는 색들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다. 나의 고향 신촌은, 밤낮으로 흘러넘치는 원색 그 자체다.
요즘 한창 재미를 붙인 포토샵에는 RGB라는 약어가 자주 등장한다. 빨강, 초록, 파랑. 빛의 3원색이다. 이 세 가지 색을 조합해서 지구 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색을 만들 수 있다는게 아직까지도 신기하다.

근-본
나는 카메라란 바구니를 들고 신촌을 누비며 이 세 가지 색을 가득 따 담아보기로 했다.
채집 활동에 나선 선사시대 사람들마냥.
빨강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단연 빨간색이었다.
‘금지, 위험, 제한, 중단, 정지…’
도처에 서있는 표지판을 보면 온갖 부정적인 역할은 빨간색이 도맡아 하는 듯했다.
독이 있는 동식물도 “날 먹으면 좋은 꼴 못 봐.”라고 경고할 때, 주로 빨간 계열의 색을 쓴다.

노랭이와의 환상의 콜라보레이션ㅡ☆
한편 빨간색은 가장 매혹적인 색깔이기도 하다.
사과나 딸기가 새빨간 빛깔로 씨를 퍼뜨려줄 동물들을 유혹했듯이, 신촌의 빨간 친구들은 자꾸만 시선을 뺏어가 돌려주지 않는다.

신촌 밤거리 최고의 어그로 장인은 빨간 불빛들이다.
경고와 매혹, 언뜻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의미는 ‘배제’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다. 경고하는 빨간색은 위험요소(천적)를 배제하고, 매혹하는 빨간색은 경쟁자(다른 과일)를 배제한다. 결국, 빨간색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것을 배제하고 부정하는 색이다.
부정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나쁜게 아니다.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대부분 부정으로부터 나온다. 시뻘겋게 타는 불은 살아남기 위해 제 몸에 닿는 모든 것을 태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인류를 번영케 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주어진 선택지 중 일부를 선택하고, 이에 전력을 다해 집중해야 한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는 곧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를 부정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 무익한 것을 부정하지 않는 자는 이내 도태되고 잡아먹힌다.
사회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질서는 무엇이 악이고 해인지 규정하는 것 위에 세워졌다. 또한 모든 발명은 불편함을 인식하고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으며, 모든 변혁은 낡은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의 색인 빨강은 강력하고 열정적이며, 자신감과 개성이 넘친다.
개인적으로 누가 나에게 신촌이 무슨 색이냐 물어본다면, 나는 빨간색이라 답할 것 같다.
기꺼이 무언가를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갖춘 공간, 사람들.
그것도 그렇고 일단 마스코트부터가 빨간색이지 않은가.

빨잠이의 속살
부정은 마치 피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며, 몸 구석구석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피가 몸 밖으로 나오면 이내 죽음에 이르듯이, 지나친 부정은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통제를 벗어난 부정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배제된 이를 찌르고, 찔린 이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정은 또다른 칼이 되어 찌른 이에게 되돌아간다.
빨간색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피곤한 색깔이기도 하다.

그러니 적당히 부정하며 삽시다.
초록
인간이 제 입맛에 맞게 지구를 뜯어고치기 전에, 세상을 지배하던 색은 초록색이었다. 식물들은 날마다 새로운 잎을 냈고, 바람에 흔들리며 초록빛 파도를 만들었다.
초록색은 조용히 자라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색이다.

돌에 붙어있는 얘들은 뭘 먹고 살라나?
하지만 연결고리를 끊어 모든 것을 개체로 만드는 인간에게, 변화는 곧 죽음이고 끝이다. 인간은 자연을 변두리로 몰아내어 항구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계절이 바뀌어도 별로 달라질게 없는 도시에서, 초록색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또한 인간 자신에겐 초록색이 없다. 그린스크린을 주로 쓰는 것이 이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초록색은 인간 세상에서 점차 낯선 색깔이 되었다.
여러 매체에서 괴물이나 외계인의 피부가 초록색으로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게 초록 테이프는 어디 붙여도 낯설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가 내쫓아버린 자연을 몹시 그리워한다. 초록색은 역시 좀 낯설지만 아직까진 편안함을 주는 색이다. 아무리 억누르고 거부하려 해도, 모든 것의 본령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과 사고는 고정된 질서를 필요로 하지만, 우리의 원초적인 본능은 변화에서 안정을 찾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속에 초록색을 품고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라, 인간은 약간의 꼼수를 부렸다.
신호등에 사는 초록 사람은 걷는 시늉만 하지 실제론 제자리에 멈춰서 있다. 시간이 되면 조급하게 깜빡거리는 이 사람처럼, 우리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숨을 헐떡이며 변화에 만족하지만, 사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거기서 기분이라도 좀 내쇼…(애잔)
소주병이 초록색인 것도 묘하다.
소주는 모든 것이 활기차고 빨리 변하던 어릴 때,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의 물약 아닌가. 하지만 초록색 병에 들어 있는 화학 물질은 그저 세상이 잠깐 낯설게 보이도록 도울 뿐이다.
인위적인 초록색은 정교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에 대한 갈증을 잠깐 해소하지만, 실제로 변한게 없음을 깨닫는 다음날 있는 건 무자비한 숙취뿐이다.

소주는 아니고 요새 맛들인 대통주
도시에 인위적인 초록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촌의 중심 거리에는 벚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다. 이들의 초록색은 옅어지기도 짙어지기도 하면서, 때로는 사라지거나 분홍색에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향수 때문에 좁디좁은 사각형 안에 갇혀있는 병약한 초록색이지만, 매순간 조금씩 변화하는 이들이야말로 신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진짜배기다.
파랑
하늘과 바다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크고 넓은 덩어리들이다. 이들이 인간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때 띠는 색깔이 파란색이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제 빛깔을 내는 날, 활동하기 더할 나위 없는 날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파란색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긍정의 색이 되었다.

도심 속에 갇힌 바다 한 조각
하지만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극히 작은 일부분만 가지고도 어떤 것을 부정하기란 쉬운 일이지만, 어떤 것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증빙 자료가 필요하다. 무엇을 싫어하냐는 질문보다 무엇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긍정은 어렵고, 이 때문에 무언가를 움켜쥘만한 힘이 없다.
온전하게 긍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대상과 너무 가까이 있으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은 배제되어, 대상은 슬금슬금 부정의 빨간색으로 물든다.

서강대역 앞 그래피티.
너무 가까이서 찍은 탓에 뭐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다가 아무리 파란 날에도, 두 손을 모아 담은 바닷물은 투명하다. 긍정은 항상 저 멀리서 차갑게 빛나며, 내 것으로 만들고 오래도록 남기려 해도 이내 흩어져버린다.
파란색은 우울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울은 부정이 아닌 긍정에서 나온다. 끔찍한 현실을 정면으로 부정할만한 에너지조차 없을 때, 과거에 묻어 둔 긍정을 찾아 헤메는 게 우울이다. 긍정은 추억의 형태로 새파랗게 빛나는데, 뒤돌아서 아무리 달려봐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연세대학교 ‘앞’ 버스정류장
하지만 차분하고 안정적인 파란색이 없었다면, 분명 우리의 눈도 이 세상도 펑 하고 터져버렸을 것이다. 파란색은 어느 한 군데에 집중하는 대신, 시선을 고르게 분산시켜 빨간색의 과열을 식힌다.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초록색의 과도한 활기를 진정시킨다. 아무리 무기력하고 우울한 색이라 할지라도, 파란색은 밑바닥에서 조용하게 모든 것의 균형을 잡는다.

그러니 적당히 긍정하며 삽시다.
파란색은 신촌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쓰레기통, 전신주, 간판, 버스정류장…
끝없이 펼쳐져야 할 것 같은 파란색이 작은 물체에 갇혀 있는 모습은 어쩐지 답답하고 불완전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고개를 들기만 하면 된다.
때로는 다른 색으로 물들고 구름에 가려도, 긍정은 항상 같은 자리에 있으니.
지금까지 신촌에서 채집한 빨강, 초록, 파랑의 의미를 제멋대로 요리해 보았다. 빨간색으론 부정, 초록색으론 변화, 파란색으론 긍정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여러모로 부족한 한 상을 차렸다.
빨강, 초록, 파랑은 색들의 근본이지만, 그만큼 많이 변질되어 요즘 시대에는 피로를 안기는 색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간직해 왔기에, 아직까지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색은 날것의 의미를 담으며, 그것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는 당신의 자유다. 색들엔 분명 당신만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이를 가지고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 보길 권한다.



오.. 첫 문장 부터 되새겨 읽게 되었어요. 색의 의미도 제가 생각하는 색의 의미는 달랐지만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바녕님의 글은 평소에 많은 사색을 하시는게 느껴지는데 또 글의 캡션이나 어쩌다 한번씩 나오는 문장들이 되게 재치있어서 매력적인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아 사진도 멋져요! 아 소주병의 초록색 의미도 좋아요! ㅎㅎ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