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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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 05 · 04

308. Moss and the City,

Editor 욘

딸랑

 

‘…왔다.’

 

커피의 ‘ㅋ’도 모르는 내가 주 1일 카페 알바를 시작한지도 어언 3개월.

사장님은 주 1일인데다 단시간 파트타임이기에 무경력자를 뽑지 않으려 했더랬다.

 

내가 매일 출근했다면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을테지만 일주일에 하루하는 근무시간에  매번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을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쩔 땐 – 아니 대부분 – 무진장 바빠 보이는데다 말과 행동은 어찌나 빠른지, 첫 출근 날엔 카드를 부탁하기도 전에 이미 카드를 꼽고 있었다.

이 초보 알바생이 외운 매뉴얼 순서를 앞질러버려 뚝딱대는 내가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얼굴도 들지 않은 채 진동벨을 건네 받았다.

 

 “…”

 

첫 인상으로는 마냥 차가운 느낌일 것 같으나 옷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나무톤을 자주 입는다.

가끔은 이것이 믹스 매치의 센스인지, 아니면 노-센스의 결과물인지 알 수 없는 코디

– 해진 뉴스보이스캡에 스웻셔츠와 스웻팬츠 셋업이라든지 – 를 하고 나타나는데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행동 때문에 깍쟁이일 것만 같았는데 여러 음료를 시킬 땐 빨대를 입구 쪽 비닐만 남겨두고 캐리어에 챙긴다든지,

썼던 캐리어를 살뜰히 챙겨와 재활용 한다든지 하는 면이 제법 야무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카페 원두 냄새 보다도 향을 더 짙게 풍길 수가 있다니.

남기고 간 눅진하고 진한 이끼 향이 잔상을 남긴다.

 

왜소하다고 기억하는 체구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동굴같은 저음이고 가게 앞에 핀 철쭉 앞에서 한참 사진 찍다 가거나,

별 말 없는 사람이 카페를 나갈 땐 항상 ‘좋은 하루 되세요.’라 인사하는데 이런 의외의 모습들은 뭐랄까,

 

“누군가의 지독한 짝사랑 상대였을 것 같은 이미지? 으악, 근데 뭔지 알지.”

 

“어어 뭔지 알 거 같아.  그래서 뭐 어떻게 생기셨는데?”

 

“..어 그러게. 근데 어떻게 생겼더라.”

 

 

..

..

..

 

 

잔치를 알게 되고 지원서를 쓰기 위해 무작정 신촌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신촌’이 대체 뭐길래 이 지역을 기반으로 매주 새로운 컨텐츠가 나올 수 있을까, 한편으로 의심이 되면서도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신촌에 가기 전 신촌에 사는 친구에게 물었다.

 “신촌 어때?”

 “신촌? 어.. 편리하지? 아 근데 나 저번에 진짜 이상한 아저씨 봤는데 … .”

 “…”

명쾌하다면 명쾌한 한 마디 설명을 끝으로 화제가 금방 넘어가 버렸다. 같은 신촌이 맞는 것일까

 

 

그렇게 처음 본 신촌은 뭐랄까, 서울 축소판 같다고 해야하나?

늘어진 건물들과 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매섭게만 느껴졌다. 마치 내가 대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던 그날처럼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가 있는 듯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촌스럽게 두리번거리고 싶지 않아 – 전혀 촌스럽지 않은 행동이지만 나의 이상한 피해의식 – 어색하게 팔짱을 끼고 시선은 바닥에 고정한 채 간판을 흘끗 보다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나만 목적지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것 같아 괜히 위축돼서 일까.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만 하염없이 쳐다봤다. 

서울이, 그리고 신촌이 나를 위축시킨 건 아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항상 시작이 어색하고 두렵다. 한편으로 처음이 없다면 나아갈 수 없겠지라는 흔해 빠진 자전적인 자기 격려로 이 어색함을 참아본다. 문득 어렸을 땐 처음인 순간은 당연했는데 이젠 시작이 당연하게 오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처음이 닳아버릴 때까지 며칠을 신촌에서 배회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낭만적이었다.

돌이켜보면 낭만적이라는 말을 한 번도 내뱉어본 적이 없어 이게 맞는 표현일까 싶지만 맞을 것이다. 마냥 깨끗하고 깔끔한 통행로 같다가도 골목을 돌면 보이는 2000년대 드라마 세트장이 아직 철수되지 않은 것 같은 오래된 풍경이 나온다. 길은 좁고 언덕은 또 왜 이리 많은지 건물이 많아 그늘져 다행이었다. 골목들은 대부분 그늘져 있다. 따듯한 햇볕보다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군데군데 깨진 보도블럭 사이 진흙에서 푸른 잡초와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오히려 프랜차이즈 사이에 알알이 숨어있는 개인 카페와 술집들이 더 빛을 발하는 듯 했다. 나에게는 처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일으킬 것만 같은 공간이다. 방향을 틀면 예상치 못하게 나오는 짧고 높은 터널은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어디론가 다른 차원으로 통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펼쳐지는 하숙집 거리는 왠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처럼 저마다의 에피소드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신촌을 구경하면서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번화가일 것만 같았는데 한껏 꾸미고 온 사람들 사이에 잠깐 바람 쐬러 나오신 어르신들이나 잠옷 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튀지 않고 자연스럽다. 방송국에서 나와 고가의 카메라로 무언가를 촬영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누가 봐도 시험 기간인 학생의 표정과 옷차림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기념일을 위해 멋지게 차려 입었다.

공간이든 장소든 사람이든 간에 이 온도 차가 심한 묘한 조합들이 재밌다. 

 

 

볕 드는 서늘함

 

그 중에서도 가장 신촌을 신촌이게 하는 것은 여기 사람들의 무심함이 아닐까. 

신촌의 전형적인 술집이라 하면 크지 않은 공간에 은은한 조명, 세월이 느껴지는 닳은 나무 테이블이 떠오른다. 뭔가 유럽에 있을법한 오래된 펍 같은 느낌이다. 특히 간판과 메뉴판같은 인테리어에서 무심함이 보인다. 마치 비주얼보다는 맛으로 승부한다고 자부하는 맛집 사장님 내외와도 같은 모토일까. 테이블과 다른 곳에서 산 듯한 의자들도, 심지어 의자끼리조차 짝이 맞지 않아도 너무 당당한 태도에 그냥 수긍하게 된다. 빈티지와 그저 오래된 물건은 한끝 차이인데 그 차이를 아는 듯 헤지고 생뚱맞은 소품들은 의도였던 것 마냥 쿨해 보였다. 

그런가 하면 하숙집 골목은 또 어떠한가. 다세대 주택의 철문이 제대로 달린 모습은 생각보다 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보수는 노끈 하나로 충분하다는 건지 노끈으로 칭칭 감아진 집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해가 안들었던 건지 시기가 아닌 건지 말라버려 뿌리와 대만 남은 화분들이 한 쪽에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본 2층짜리 헌 책방은 질서없이 책들이 쌓여있었다. 생각해온 책을 찾아간다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제목이나 한 번 들어본 거 같은 책 하나 보이면 사갈 요량으로 방문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대포>라고 첫 방문부터 단골이 되리라 다짐한 술집이 있다. 사실 신촌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 가게된 곳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딱 내가 생각하는 신촌 술집의 전형이다. 10종류 남짓한 메뉴가 적힌 나무 메뉴판과 천장에 달린 용도를 알 수 없는 빨간 팬이 인상적이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는 앞접시를 준비해주시는데 같이 주신 장미 국자가 피식 웃게 만든다. 아주 살갑고 친절한 사장님이 운영하시는데 계산할 땐 항상 맛있게 먹었느냐고 물어봐 주신다.

 

“어떻게, 맛있게 드셨어요?”

“네, 너무 맛있었어요! 10시 영업 제한이라 더 있지 못하는게 아쉬워요.”

“우리도 10시까지만 해야 돼서 힘드네요. 학생들이 어디 힘 좀 써줘요.”

 

장난 삼아 하신 말씀이지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더군다나 7평 남짓 작디 작은 업소인데 2021년에도 여전히 코로나 영향은 피해갈 수 없었다.

 

 

 

마포구 합정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지하철과 아파트가 동시에 이어진 복합 상가라 아기부터 어르신까지 나이대가 다양한데 신기하게도 이곳 주민은 특유의 느낌이 있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4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부부. 아내 분은 명품은 아니지만 편하게 입기엔 가격대가 있는 티셔츠에 숄을 걸치고 신발은 독일군 스니커즈를 신었다. 남편분은 조던 덩크 하이를 신고 일본 브랜드의 트레이닝 세트를 입었는데 딱 합정 아파트의 대표룩 같았다. 비약이 심한가? 생각이 들다가도 (인간 카누라 하면 배우 공유, 인간 율무차라 하면 배우 정애리인 것처럼) 정말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계산 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문득 신촌이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시작은 이게 좋겠다.

 

 

 

..

..

..

 

 

 

딸랑

욘
AUTHOR PROFILE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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