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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1 · 05 · 26

156. 라오상하이

Editor 김나름

이전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에디터는 카페에 다소 집착(?)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소, 혹은 그런 느낌을 주는 장소들을 선호하는데 오늘 소개할 장소도 다소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카페가 아니라 찻집이라는 점이다.

 

2층에 위치한 간판을 찾았다면 대충 여정의 반 정도가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2층에 위치한 찻집의 입구를 찾는 것부터 다소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방탈출카페, 떡볶이집, 덮밥집, 고깃집, 주점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신촌의 거리에서 커다랗고 하얀 간판을 찾았다면 당신은 반쯤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근처에 교회가 있는 것과 다소 모순적(?)이게도, 다양한 밥집과 술집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라오상하이]라는 꽤나 크지만 평범한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과 달리 1층에 위치한 다른 가게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탓에, 입구를 찾는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영업 중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어두운 복도이지만

2층의 빛을 찾아 용기를 갖고 나아가보자

 

가까스로 찾은 입구로 들어선 후 1층 불이 꺼져 있다고 놀라지 마시라. 어두컴컴한 복도 탓에 문을 닫은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데아의 빛을 찾아 동굴을 나서는 플라톤의 심정으로 어둠을 딛고 나아가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유리문을 발견할 수 있다. 혹시 어둠이 무섭다면 반대쪽에 위치한 철제 계단을 사용해도 된다. 

 

잘 살펴보면, 철제 계단에  위치한 아주 작은 표식을 발견할 수 있다 

맥주는 이곳에서 파는 품목이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모습

침착하게 시선을 옮겨보자

 

힘겹게(?) 찾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작은 주물 종이 쨍쨍한 목소리를 울리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마치 영화 속 차를 파는 가게 같은 진열장의 모습이다. 둥글넓적하게 눌러 굳힌 전통 차들이 정갈하게 정리된 채 길게 늘어선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순간 이곳이 대한민국이 아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놀란 마음에 뒷걸음질 칠 수 있으나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일곱 개의 테이블들이 보이며 이곳이 찻집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평범한(?) 찻집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앉을 곳을 찾는 동안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 앉으시라는 안내와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 주신다.

 

시선을 조금만 왼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풍경

 

일곱 테이블 중 넷은 통유리로 된 넓직한 창문 옆, 살짝 올라온 단 위에 위치해 있다. 옅은 색의 나무 테이블과 함께 비슷한 색상의, 앉는 쿠션 부분이 라탄 재질로 된 의자들이 짝을 이루고 있다.  이 자리에 앉으면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유리창을 통해 인근 신촌 거리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다만, 때때로 건너편 떡볶이 가게에 앉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수 있으니 타인과의 눈맞춤이 부담스러운 분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전통 차를 마시지 않고 일반 음료를 마신다면, 다기가 세팅되지 않은 테이블이 있는 이쪽으로 사장님께서 안내해주실 확률이 높다.

 

풍채 좋은 아저씨 오브제(?)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에겐 미안하지만 밤에 보면 좀 무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세 테이블은 창가의 테이블들과 다르게 창문에서 조금 떨어진 평평한 바닥에 있는데, 다양한 다기들이 세팅되어 있다. 창가의 밝은 색 테이블들과 다르게 세월의 흐름이 보이는 짙은 색의 원목 테이블은 에폭시 처리된 바닥의 검은색 랜덤한 무늬들과도 잘 어우러진다. 검은색으로 마감되어 레일 등이 설치되어 있는 천장과 달리, 다양한 우드톤의 가구들과 오브제들로 인해 현대적이기보다는 전통적인 인테리어라고 느껴지는 공간이다.

 

다양한 종류의 차와 다기들도 판매 중이다

 

대충 어림잡아 봐도 수십 가지의 차 종류들이 진열되어 있고, 차를 위한 전통 다기들 또한 다양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차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찻집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그 향을 즐기며, 에디터는 고요한 가게의 분위기를 틈타 이것저것 구경해볼 수 있었다. 홍차를 더 발효시킨 보이차가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 홍콩에 방문했을 때 맛보고 그 향을 잊을 수 없었던 에디터는 보이차 덩이들을 보고 흥분했고, 그 종류가 다양해 더 흥분했다. 거대한 차뭉치들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다. 또한 레트로한 분위기에 맞추어 흘러나오는 (여전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중화권 문화의 음악을 감상하며 차에 관련된 것들뿐만 아니라, 전통 악기나 그림이나 서예 작품들, 꽤나 오래되어 보이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다기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도 여러 대 보인다

 

함께 방문한 일행이 차에 크게 관심이 없는지라, 냉오미자차와 냉밀크티를 시켰다. 언제나 남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것, 혹은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는 에디터의 성격답게, 항상 찻집에 가면 ‘정산소종(랍상소우총)’이 있는지 여쭤보는 편인데 라오상하이에는 놀랍게도 정산소종으로 만든 밀크티가 있어 주문해 보았다. 정산소종 혹은 랍상소우총(lapsang souchong)은 예전 유럽에 수출되던 중국 명품 홍차의 일종으로, 솔잎을 태워 그을리기 때문에 특유의 훈연향으로 유명한 차(라고 한)다. 예전에 우연히 독특한 이름에 이끌려 시켜봤던 정산소종을 마셔본 에디터는 그 특유의 시원한 소나무향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생각보다 잘 팔지 않는 차인 탓에 집착적으로 방문하는 찻집마다 ‘정산소종의 유무’에 따라 그곳이 단골가게가 될지가 정해졌지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산소종을 팔고 심지어 이로 밀크티를 만들어 파는 것을 발견한 에디터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각 테이블마다 구비되어 있던 나무판

아마 다기와 관련된 물품인 듯하다

 

냉차로 시킨 탓인지, 두 음료가 담겨 나온 컵은 다소 평범할 수 있는 유리 자(jar)였고, 넘치는 양을 자랑했다. 오미자차는 일반적으로 다홍빛을 띠는 것과 다르게 다소 밋밋한 노란색과 주황색 중간의 색을 띠고 있었고, 밀크티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색을 띠고 있었다. 더운 여름의 신촌 거리를 가로질러 이곳을 찾은 에디터와 일행은 홀린 듯 음료를 마셨고, 다소 시원한 내부의 온도와 함께 차가운 음료로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오미자차(좌)와 정산소종 밀크티(우)

추가 금액을 내면 버블도 추가가 가능하다

 

오미자차는 다소 밋밋한 색과는 다르게 오미자 특유의 향이 진했고, 다만 평소 집에서 직접 만든 꽤나 신맛의 오미자차를 즐기는 에디터의 입맛에는 조금 달았다. 그러나 여느 카페에 파는 달기만 하고 오미자는 발만 담갔다 뺀 듯한 맛의 오미자차를 생각해보면 완벽했으며, 무엇보다 오히려 다소 달기에 더운 여름에 활기를 되찾아주는 맛이었다.

그리고 정산소종 밀크티를 마셔본 에디터는 이후에 다시 방문했을 때 마실 전통 차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졌다. 밀크티 파우더나 시럽을 사용한 얄팍한 맛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잎을 우려낸 밀크티 특유의 쌉싸름한 끝맛과 함께 정산소종 특유의 솔향이 은은한 맛이 일품이었다. 마시는 동안 얼음이 녹아 다소 싱거워지는 동안 오히려 차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더욱 잘 우러나왔고, 정산소종의 맛이 더욱 잘 느껴져 얼음이 녹으면서도 아쉽기보다 음료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행여나 부서질까 소중히 손에 들고 돌아온 후식 국화차

 

계산대에는 하나씩 집어갈 수 있도록 국화차도 마련되어 있다. 이 글을 읽고 방문할 손님들 중, 왠지 고급지게 생긴 외관에 혹시나 파는 제품인가 싶어 가져가도 될지 고민할 이들을 위해 에디터가 미리 여쭤봐뒀다. 그리고 먼저 마셔본 입장에서, 아주 향기롭고 맛있다. 일반적으로 사탕 따위를 두는 것과 달리 1회분 국화차를 두다니, 덤마저 찻집답다. 

 

덤으로 받은 국화차를 우린 모습

꽃 한 송이가 통째로 들어간 차는 아주 향기로웠다

 

단순히 차를 파는 가게라기에는 사장님의 차에 대한 애정이 상당해 보이는데, 라오상하이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방문해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과 그곳에 소개된 라오상하이의 카페(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다양한 차에 대한 지식과 함께, 연관된 수업들에 대한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화과자를 만드는 수업이나 도자기 복원 수업과 같은 원데이클래스들을 진행했는데, 지금은 양갱 원데이클래스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다. 차를 즐기고, 관련된 것들을 더욱 배우고 싶다면 활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차 자체와 관련된 수업들도 진행하고 계시며, 흔치 않은 차들을 판매하는 글들도 보인다. 에디터처럼 아직 차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차의 매력에 끌리고 있다면 한 번쯤 계정을 팔로우하고 찾아보길 추천한다.

 

라오상하이의 인스타그램 계정

다양한 클래스들이 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차를 팔고, 유럽식 차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들은 간간이 있었으나 중국차나 대만차 등 중화권 차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를 자주 보지 못한 만큼 단골(예정) 가게가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나만의 단골 가게’를 사랑하는 에디터가 너무 널리 알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몰래몰래 찾아다닌 몇몇 가게들이 최근 전염병의 풍파에 스러져 간 광경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기억에, 이번만큼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원래 ‘덕후의 마음은 덕후가 안다’고, 차덕후이심이 분명해 보이는 사장님의 가게가 차덕후들의 성지가 되기를 바라며, 몇 년이 지나 찾아도 ‘신촌에서 차를 마시려면 라오상하이지’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성업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향긋한 차와 함께 번뇌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면 어두컴컴한 계단을 지나, 차의 이데아를 찾아 라오상하이를 방문해보는 것이 어떨까. 

 


라오상하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2길 27 2층

매일 10:00 – 23:00 (현재 코로나로 인해 22시까지 영업 중)

(휴무일 명절)

02-715-1542

Instagram: @laoshanghai_goun

Website(cafe): http://www.laoshanghai.co.kr

김나름
AUTHOR PROFILE
김나름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라오반장
    라오반장 2021.05.26 21:06

    와우 글 너무 잘쓰셨네요~^^ 감사히 잘 봤습니다~^^ 라오상하이는 2006년 신촌에 처음 생긴 이래 작년에는 강남점도 열었습니다 오래 해온 가게이니만큼 앞으로도 오래오래 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언제든 찾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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