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의 만담
21년 11월, 신촌의 한 술집에서 6명의 학생들이 술을 먹고 있다. 6시 반에 만난 6명은 밤 10시가 넘어가면서 2차 막바지를 마주했고, 술에 취한 채로 아무 말이나 내뱉기 시작한다.
만약에 신촌에서 말이야, 정말 만약에….
이렇게 이상한 가정에서 시작하는 신촌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정1. 신촌의 학생들이 민초 전쟁을 한다면?

민초박멸 캠페인 대응 민초단 모집 포스터

민초 박멸 캠페인 홍보 포스터
신촌에 있는 학생들끼리 사상전쟁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주제는 아주 뻔하고 고질적인 민트초코이다. 민트초코를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나누어져 민트초코에 대해 전쟁을 한다면 신촌은 어떤 모습일까? 전쟁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신촌의 빨간 잠망경 거울에 어떤 사람이 빨간색으로 “민트초코 척결”이라고 적어뒀다. (여기서 공공물을 훼손해 발생하는 법적, 금전적 문제는 제외하자.)

누군가가 신촌의 빨간 잠망경에 빨간색 페인트로
“민트초코 척결”을 썼다.
이를 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점점 “이게 맞지. 이게 정의다.”와 “글자로 쓰였다고 해서, 입으로 나온다고 해서 말이 아니다.”로 나뉘어 사람들 간 언쟁이 오간다. 서로 간 가벼운 투닥거림에서 논리적 설명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신촌 대학가의 게시판.
대자보와 포스터, 메모지가 활발히 붙어있다.
다음 날, 신촌 곳곳(공사중인 곳 옆 가림막에, 술집 앞에 등)과 신촌에 있는 대학들 게시판에 대자보가 붙기 시작한다. 누가 그랬는데, 공부하는 문과가 있는 한 대자보는 절대 사라질 수 없다고. 신촌에 공부하는 문과들은 글을 써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대자보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은 매너가 아니기에 대자보 옆에 “연대합니다.”와 “기각합니다.”처럼 상반되는 의견의 포스트잇이 형형색색으로 붙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고, 또 붙고.
술집에 가면 아마 마주앉아 끊임없이 얘기할 것이다. 민트초코를 허용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토론 동아리들은 토론을 하겠지. 토론과 토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선의 결과를 찾기 위함이기에 최선의 결과를 찾을 것이다. 예를 들면 “먹는 것은 자유이니 허용해야 하나 타인과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에 넣지 않는다.”와 같은. 여기에 법전 각 조항에 주렁주렁 붙어있는 단서조항마냥 단서도 붙여야 한다. “같이 먹는 아이스크림은 배스킨라빈스의 경우 파인트 사이즈 이상을 의미한다. 버라이어티팩에 들어가는 것은 싱글레귤러컵으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제외한다.”와 같은.
그런 논쟁이 종료되면 다시 평화로워질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지성인의 마음으로.
6명은 첫 번째 가정의 결과물을 보고 흡족해한다. 역시 이래야 신촌이지. ‘따-수운 신촌’이라고 하면서 3차 장소를 정한다. 3차로 신촌의 어느 술집에 들어가니 안락하고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옆 테이블에는 신촌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40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다섯 분이 계셨다. 옛날의 신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옆에서 듣던 젊-은이 6명은 다시 한 가정을 세운다.
가정 2. 신촌에서 20대를 보낸 모든 사람을 모아본다면?

신촌 복원 캠페인 포스터 인스타그램 ver.

신촌 복원 홍보 포스터 미리캔버스 ver.
신촌은 대학가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신촌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열렬히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예술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글을 써내려 갔겠지. 그런데 그 사람들을 모두 모아보면 어떨까? 모두 모아서 자신의 신촌에 대해 얘기하도록 한다면? 그러면 각자 어떤 말을 할까?
갑자기 6명 중 한 명이 말을 덧붙인다.
근데, 가정이 두 개가 더 필요할 것 같아.
신촌이 지금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서 신촌을 지금 복원해야 하는 상황이야!
근데 신촌에 대한 사진도 영상도 음성 파일도 없어.
오직 남아있는 건 사람들 기억이야.
폐허가 된 신촌을 사람들 기억에 의존해 다시 만들어야 하는거지.
다들 동의하고 다시 가정을 시작한다.
2021년의 신촌에 있었던 사람들은 유플렉스, 지니버스, 버스킹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빨간 잠망경도. 시험기간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공부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던 투썸플레이스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있는 신촌복합문화공간도 생각하지 않을까? 반면에 70-80년대에 신촌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떠올릴 것이다. 90년대의 누군가는 홍익문고 앞에서 약속을 잡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신촌복합문화공간에 내려다 본 신촌의 전경
신촌에(정확히 말하면 폐허가 된 신촌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어떤 시대의 신촌을 복원해야 할지 토론할 것이다. 가장 최신식으로? 아니면 이전의 시대 중 신촌의 마지막 낭-만이 남아있던 시대의 모습으로?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생각들에 사람들은 제각기 의견을 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어떤 특정한 결론이 나지 않을 듯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론이 나기 전에 신촌은 만들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모여 발언하고 토론하는 동안 어느새 그래피티가 폐허가 된 신촌에 그려져 있을 것이고, 신촌의 자리에 토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먹을 곳, 놀 곳 등이 생겨나며 또 다른 신촌을 구성해 버릴 테니까. 구체적인 모습이 아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곳이 신촌이니까.
명쾌하지 못한 결론에 숫자와 결론을 사랑하는 두 명은 떨떠름하지만 이내 인정을 한다.
그래, 그래피티가 좀 마구 그려져야 신촌이지.
그래, 신촌은 그렇게 또 다른 신촌이 될거야.

얼마나 많은 대화가 있었을지 예상할 수 있는 술자리 사진.
“신촌 전체가 사유화돼서 신촌에 돈을 내고 들어와야 한다면, 신촌에 괴물이 나타난다면, 신촌에 빨잠을 누군가가 훔쳐간다면” 등 끝없는 가정과 가정을 반복하며 신촌에 대한 생각들을 펼치다 5차가 끝나고 해가 뜨고 있을 때, 해장국을 먹으면서 6명은 결론을 낸다.
신촌의 모습을 정의하기 위해 이상한 가정들을 덧씌워 본 것은 어쩌면 신촌의 포용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이렇게 저렇게 괴상한 생각을 해도 될 것 같은 곳. 어지러운 생각들을 구체화하며 신촌에 있는 우리의 의미 또한 찾고자 했던 것이라고 했다. MBTI도 그렇지 않은가. MBTI의 상황별 대처, 생각 등을 얘기하지만 실제 경영학부 조직관리 수업을 시작할 때 교수님은 MBTI는 업무 성과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 수업을 함께 들었던 많은 경영대생들이 MBTI를 좋아하는 것처럼. 신촌에 대한 생각도 그러한 거라고 했다.
전혀 연관성 없는 듯해 보이지만 MBTI로 사람들을 이해하듯이 신촌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는 신촌을 구현하면서 우리도 만들어가는 거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오랜만에 찾아낸 오래된 편지처럼 우리가 정의한 신촌이 낯설어 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도 다들 인정했다. 신촌도 변하지만 우리도 변할 테니까. 누군가 신촌의 매력을 느끼고자 한다면 신촌에 이상한 이야기들을 마구 대입해보길 바란다. 그 끝에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신촌의 의미가 있을 테니까.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