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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2 · 04 · 11

新村五香 – 언택트 시향지 (非對面 試香紙)

Editor 개굴

베이비 팝콘 톡톡 립스 – 조향사 히피

 

어떤 향이 너의 몸속에서 여행하고 있어? 라고들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얘기할 거야.

달달한 거. 솜사탕. 달짝. 풍선껌. 지근. 딸기. 달달. … 아무튼 달달한 거.

  아, 그리고 이끌리는 또 하나의 향이 있어.

 

 

달달에 상상이 더해진다면…

(조합 중)

 

올해도 살아서
벚꽃을 보고 있습니다
사람은 한평생
몇 번이나 벚꽃을 볼까요
철들 무렵이 열 살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많아도 칠십 번은 볼까
서른 번 마흔 번 보는 사람도 많겠지

너무 적네

…중략…

이바라기 노리코, <벚꽃>

 

 이 향은 벚꽃과 닮았어. 파스텔 입자가 바람에 날아가며 귀띔해 주더니 나를 벚나무로 이끌었네. 특히 연세로에서 길게 뻗어 있는 4월의 벚꽃과 많이 닮아 있어. 매년 피는 벚나무 꽃에 왜 이리 유난을 떠냐고? 시인의 표현을 빌려, 살면서 아무리 많아도 칠십 번의 기회뿐이더라. 그래서 매년 처음 보듯이 환영할 필요가 있다네.

 

 

 이제 내가 그 벚에게 어떤 이름을 선물해 주었는지 설명해 볼게. 향에 조예가 깊지 않은 대신 민감한 나는 우연히 여행 패턴이 비슷한 향을 찾았어. 그 후로 집에 들여온 스위트 타바코 립스sweet tobacco leaves 씨. 어찌나 달달하던지,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 립스의 leaveslips인 줄 알았어. 향의 설명은 다음과 같아.

 

코냑, 호박, 달콤한 복숭아의 향기를 품은 스모키한 향의 캔들.

 

어쨌든 달콤한 건 맞네.

 

 

 

동반자인 립스 씨에게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이파리를 따왔어.

이름하여
베이비 팝콘 톡톡 립스 baby popcorn toktok lips.
(포근한)

       (벚꽃과 닮은)

                     (은은한)

                           (설명 필요 없지?)
                                  (sweet)

4월에 신촌을 거닐기 시작한 당신에게도 이 향을 선물할게.

포근하고 달달한 여행해.

 


입춘시계 – 조향사 해랑

 

봄은 자기주장이 참 강하다.

 

 봄이 왔다. 봄병을 앓기 좋은 시기이다. 나는 3~4월, 봄이 오면 꼭 크게 몸살을 앓는다. 의학 신봉자라서 독감 주사를 포함한 각종 예방주사는 다 맞으러 다니는데도 그냥 아파한다. 지금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몸살을 앓으며 봄을 맞이하는데, 편지 한 통이 왔다. 정말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편지지는 업그레이드 됐는데 글씨는 영…

 

 이 친구는 늘 봄이 오면 편지를 써서 부쳤다. 4월에 있는 내 생일을 맞이해서 안부 인사와 함께 본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카톡도 있고, DM도 있는데 왜 편지를 쓰냐 물었더니 편집되지 않는 종이에 담을 내용을 고민하는 봄의 새벽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편지의 수신자가 잘 받았다며 걸려오는 전화 한 통이면 미소가 지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친구였다. 편지에 담을 말을 고민하는 습관 때문인지 모든 말을 문학적으로 했다. 새 학기마다 아프냐며 핀잔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봄에 태어나서 봄병을 앓는 거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봄병의 존재를 까먹은 채로 진통제나 털어먹던 나에게 친구의 편지는 봄병을 일깨워줬다. 봄이 오고야 만 것이다. 편지 한 통이 일깨운 기억의 힘은 강해서, 이전에 쓴 일기장들을 모두 펼쳐보게 만들었다. 18년의 봄, 19년의 봄, 20년의 봄, 21년의 봄까지 매년 봄에는 친구가 봄병을 걱정하는 내용이 있었다. 매해 봄마다 예쁘고 다정한 말로 사람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말이 만들어내는 힘을 생각했다.

 

자세히 보면 전선 사이에 음표처럼 달이 걸려있다.

 

 나는 봄향이 나는 말을 사랑한다. 전선 사이로 보이는 달을 보며 달이 오늘은 전선들로 밤을 연주하고 있다는 말이나, 마기꾼이라는 말 대신 눈이 특별하게 예쁜 사람이라는 말이나, 늙어서 체력이 떨어진다는 말 대신 신체가 감가상각을 시작해서 그런 것(이건 아닌가…?)이라는 말 따위를 좋아한다. 그런 말을 뱉는 사람 옆에 있으면 한겨울에도 봄바람이 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가상각 얘기를 하는 교수님을 보며 대학원을 잠시 고민했다. 미쳤나 보다) ‘신촌’이라는 단어에도 향기가 있다. 20살의 나는 신촌에서 약간의 향내와 물이 가득한 향을 맡았고, 21살의 나는 알코올 향을 맡았다. 이제는 오롯이 봄의 향을 맡게 됐다.

 

향수의 탑, 미들, 베이스 노트 구성

 

 지나온 약 2년의 시간을 신촌이라는 향수 전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 향수 구조로 표현하자면 탑노트에 불과하다. 2년간 만들어낸 탑노트의 향을 표현하자면, ‘스파이시(Spicy)’가 아닐까 한다. 스파이시는 시나몬, 클로버, 너트맥, 카다몬, 후추 등 향신료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향으로 표현된다. 딱 내 20살과 21살의 신촌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0살의 나에게 신촌은 그 향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고, 21살의 나는 정말 매운 술자리(^^…..)를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파이시는 우디 계열의 향에 깊이를 더해줄 때 주로 사용된다. 22살의 봄에 신촌에서 꽃 향이 이렇게나 많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리고 앞으로의 신촌이 계속 기대되는 것을 보니 미들 노트로는 ‘우디(woody)’가 어울릴 것 같다. 나무를 연상시키는 신선하고 편안한 향인만큼, 나에게 편안한 공간이 된 신촌과 잘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직 베이스 노트는 모르겠다. 신촌에서의 기억을 뿌렸을 때 끝에 무슨 향이 남을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할 것 같다.

 

벌써 벚꽃이 지고 있다.

 

 그래도 신촌을 향수로 표현했을 때 향수 이름은 정할 수 있다. ‘printemps’, 프랑스어로 ‘봄, 봄철’을 뜻하는데 ‘청춘(기)’를 비유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 선생님이 신촌을 늘 ‘printemps’라고 불렀다. 그때는 몰랐지만, 신촌만큼 ‘printemps’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촌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봄향이 날 정도이니까 말이다. 앞으로 맞이할 신촌에서의 모든 봄이, 앓게 될 모든 봄병이 기대된다.

 

 근데 어느새 신촌의 벚꽃이 지고 있다. 봄이 지나간다. 봄병이 나으려나 보다.

 


쿨 워터 아재 살 탄내 향 – 조향사 송사리

 

아 따 모르겠고 딱 십년만 어려질래.
엄마가 아끼는 영국제 커피잔에 김 빠진 콜라 넣고 쓴 커피 마시는 척 했던.
겨울철 뜨끈한 라면 국물이 먹고 싶어 라면국물 티백 회사 사장이 되는 이상한 상상하던.
그리고 신중하게 아바타스타 슈의 변신마법약을 타던 그 때 처럼

 

내 맘대로 마법의 항아리를 막 휘저을 거야

 

 

 

 

 

1.쿨워터 아재향

내가 아는 한자
하늘 천
땅 지
불 화
물 수
(…)

열 몇 개 아는 한자들 중 유일하게 조합할 수 있는 동네 이름
새로울 신, 마을 촌
신촌
젊음의 거리 신촌

우리는 다 젊다.
그런데 요즘은 참 이상하다

“요새 xx년생들이 소맥 타는 법”
“어쩔 + 가전제품으로 대화하기”
“힙한 인스타갬성 카페”

‘젊음’의 정도를 자꾸 나누고, 젊음을 확인 받으려한다.
이런 말을 쓰면
이런 곳에 가면
이렇게 술을 먹으면
이런 사진을 올리면..?

22세 송사리, mz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다 결국 놓쳐버렸다.

 

나 그냥 AZ할래

 

하지만 신촌은 젊음을 나누지 않는다.
MZ부터 AZ까지, 모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 놀아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쿨한 아재 향 같달까나

 

2. 신촌 살냄새

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언제 어딜가도 보장된 양질의 상품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어찌 보면 의심이 많고, 어찌 보면 아무거나 다 잘 주워먹는다는 뜻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늘 예외인 곳이 있다.
예를 들어 카공은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와 같은 곳에서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신촌에선 ‘카페나무’가 제격이라던지.
혹은 아빠가 ‘아저씨들이랑 술먹고 있어~’ 할 때 지나쳤던 집 근처 호프집같이 오래된 술집분위기는 좋아하지 않아도, 신촌 ‘보스’ 두부김치는 자꾸 생각이 난다던지,
또, 친구들과 술 먹을 때 민속주점인 곳을 찾아서 간 적은 없어도 이젠 안가면 섭섭할 것 같은 잔치 대표 회식 장소인 ‘향꽃’ 처럼,

굳이 뿌리려한 적은 없지만 이상하게 계속 킁킁대고 싶은 향
지나간 시장에서 폴폴 나오는 김치찌개 같은 그런 향
나도 모르게 나에게 이미 베어버린 살냄새처럼,
신촌에게도 신촌살냄새가 짙게 난다.

 

 

 

3. 탄내

나는 신촌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신촌역으로 등교를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신촌을 자주 가지는 않는다.

그러고보니 날 밝을 때 신촌을 마지막으로 간게 언제더라.
올해 초 방탈출 하러 갔을 때였던가
그마저도 방탈출을 하고 나오니 벌써 어둑어둑 하더라.
아직 나는, 핑크빛 벚꽃 향기가 감싸는 신촌을 맞이해본 적이 없다.

18시 이후가 대부분 이었던 나의 신촌은 탄내가 날 정도로 어둑어둑했고,
나는 신촌 길거리 속 그 향기를 맡으며 코를 찡그렸다.
진한 담배 냄새, 진한 술냄새, 진한 구토냄새

우리는 꽃은 꽃병에 두고 가끔씩 향기를 맡지만,
요리하다 음식을 태우면 바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탄내는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았던 탄내도 그만큼 강렬한 기억이다.

그리고 내가 그 탄내를 맡지 않았더라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술냄새를 맡지 않았더라면
간접흡연을 당하며 코를 찡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에게 없었을 수많은 인연들, 경험들.

나에게 있어서 신촌은
코를 찡그려서라도 맡고 싶은 탄내다.

 

 

 

 

 

 

.
.
펑!
.
.
쿨 워터 아재 살 탄내 향..?

 


연세로 블라썸 – 조향사 개굴

 

온 신경을 집중하면 형용할 수 없는 향이 몸으로 퍼져와 아득해지는, 그런 순간이 있다.
바로 이 계절, 이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촌을 형용하는 데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흐드러진 벚꽃을 보고 ‘참 아름답다’ 라고 신촌을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머릿결을 스치는 봄바람에 여린 벚꽃잎이 하나둘씩 하늘과 작별할 때, 시선 위로 나리는 분홍비는 어딘가 애절하면서도 마음을 간지럽힌다.

 

초록빛이 세상을 덮기 시작하면, 분홍빛은 비가 되어 푸른 하늘에 뿌려진다.

 

 그런 감정과 함께 비로소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 잊혀진 것들의 숨소리가 들려오면서 신촌에서 더 자주 느낄 수 있는 향도 함께 실려오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향으로 먼저 느끼는 나로서는 꽤나 반가운 소식인데, 귀를 막고있던 이어폰을 잠시 뺀 채 얼굴에 난 모든 구멍으로 그 향을 몸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는다면 벚꽃의 향은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인지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더욱이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 꼬박 1년을 더 기다려야 이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중에 판매하는 인공적인 향이 아니라 순간을 투자해서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진짜 향기, 연세로에 가득한 벚나무들 사이에서 잠시 집중하면 여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괜히 설레오는 그 향은 더욱 내 신경을 자극한다.

 

황홀한 순간은 굳이 더 꾸밀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사랑스러우니.

 

 이 거리를 거닌지 어언 17년이 다 되어가지만 요즘처럼 벚꽃 향에 집중해본 순간도 없는 것 같다. 마스크를 써서 향을 잘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건지 잠깐의 순간이라도 마음에 여유를 더 담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발걸음을 멈추고 벚나무 아래에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같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이 향을 설명해주고 싶어지는데, 생각보다 공기중에 강하게 퍼져있지 않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벚꽃에 향이 있다고?” 라는 반응을 듣기 일쑤이다.

 

향이건 마음이건 그 강도는 절대적인 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그럼 이 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체리 블라썸 향도 벚꽃향을 담은게 아니라 조향사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향인데, 나라고 새로이 이 향을 정의하지 말란 법도 없다.

 향을 만들기 전에 잠깐 생각해보자. 이 거리를 덮은 벚꽃 향이 어떤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릴지를.

 주위를 둘러보니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이 거리를 잔뜩 채우고 있다. 그들의 설레는 상황을 한번 가정하고 향을 만들어볼까? 상상은 자유니 내 맘대로 이미지를 그려보자.

 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연세로에 가득 찬 벚꽃 아래를 걷고 있다.

 관문같은 굴다리를 지나면, 카페와 음식점에서 흘러나온 향들이 짙게 바닥에 깔릴 것이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주문하고 싶게 만드는 향.
옆을 걷는 사람과 함께 말이다.

 무겁게 내려진 향 위로 살짝 섞이듯 옆에있는 연인의 섬유유연제 향이 코를 감쌀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고개를 돌리게 되는 그런 향.
어떤 섬유유연제라도 좋을 것이다.

 고개를 돌린 당신은 옆에 있던 연인을 힘껏 끌어 안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러면 꼭 붙은 두 사람 위로 만개한 벚꽃에서 흘러나온 향이 봄바람을 타고 찾아올 것이다.
봄바람이 앞에서 섞여가고 있는 두 향을 포근히 감싸면
그 연인들은 비로소 봄의 벚꽃향을 인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신촌의 거리에서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과 향이 있어.

 

 신촌을 감싼 벚꽃향은 길어야 2주를 채 못버티고 1년 후의 미래로 떠난다. 그 전까지는 이 향을 정의하지 못해 자꾸만 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는 새로이 정의한 신촌의 향을 머리속에 그릴 수 있다.

 그리곤 1년 뒤의 나는 한치의 오차 없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에 그 향을 꺼내보겠지. 향을 만들면서 떠올렸던 순간을 떠올리며, 필연적으로 돌아오는 따스함을 추억할 것이다.

 

아 그러면 더 찾아내기 쉽게 이름을 붙여두자.
체리 블라썸이 아니라 연세로 블라썸이라고.

 


신촌 향수 제작 일지 – 조향사 앵두

 

봄이라는 계절에는 한껏 설레는 마음이 담겨있다. 처음보는 풍경, 낯선 얼굴들, 생소한 분위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적응해야할 것 같은 다양한 시작들이 가득하다. 어째선지 봄만 되면 제 몸에서 풍기는 향내를 바꿔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작의 계절에 어울리게 새롭게 단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서일까. 따뜻해진 날씨에 한껏 뽐낸 옷차림들과, 하나 둘 피어오는 꽃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더욱 오묘해진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맞이했던 신촌에서의 첫 봄을 담아 향수를 제작해볼까.

 

#1. 탑 노트

가장 먼저 맡게되는 향 탑 노트.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처음 상경한 스무살의 나. 기숙사에 필요한 물품을 사고자 휴대폰을 꼬옥 쥐고 홀로 탐방에 나섰다. 다이소 하나를 찾지 못해 신촌 로터리를 빙글빙글 돌고, 지하철 출구의 계단을 몇번이고 오르내렸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그러니까, 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저쪽인건데 … 어? 여기로 가는게 아닌건가? 2월 28일, 월말의 느린 데이터로 인한 네이버 지도의 버벅거림. 그에 걸맞게 렉이라도 걸린 듯 삐걱거리는 내 다리를 외면한 채 애써 태연한 척 에어팟을 끼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높게 서있는 건물들과 빽빽한 상가들은 뭐가 뭔지.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문득 고개 들어보면 제자리 걸음 중이었던 시절. 전부 똑같이 생긴 것만 같은 술집들과 밥집들, 당최 몇 개가 있는지 모르겠는 카페들을 괜시리 원망하기도 했다.

골목을 지날 때 맡게 되는 매캐한 담배 냄새, 지나가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알코올의 아린 향. 포장마차에서 후욱 빠져나온 뜨거운 김과 어묵 국물 냄새 … 외출이라도 할 겸 한 번 신촌을 훑고 오면 다양한 향내들이 코에 아른거렸지만, 내게 푹 담기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그런 것을 당시의 나는 주욱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아는 사람도, 아는 장소도, 무엇도 없던 당시의 나에게 신촌은 차가운 곳이었기에. 익숙한 향기를 찾아 헤맸지만 모든게 낯설었다.

가장 먼저 맡게 되었던 것은, 아직은 찬 바람을 타고 흐르는 이질적인 공기의 분위기.

그것은 어린 시절 첫 비행기에서 내린 내 폐에 가득 차던 것과 같았다.

탑 노트의 향은 10-15분 안에 제일 먼저 사라진다.

 

#2. 미들 노트

탑 노트가 사라질 때 즈음 나타나는 미들 노트. 향의 중심으로, 향수의 계열을 결정한다.

밥, 커피, 술, 밥, 술, 술, …

어색함을 감춘 웃음과 함께, 새로운 친구들과 이곳저곳 쏘다니다보면 어느새 낯선 거리는 이름을 아는 가게들로 가득차고. 네이버 지도에도 하나둘씩 가지각색의 하트와 별이 찍힌다. 늘상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느라 바빠 익숙해지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던 날들.

한번 가본 정도면 잘 아는 가게지, 한번 만난 정도면 괜찮은 사이지 뭐…

인스타그램의 팔로우, 팔로워에는 나날이 새로운 아이디가 늘어나고 이따금씩은 의미없는 다이렉트 메시지가 이어진다. 만남의 즐거움이 연결과 이어짐의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지 않은가. 새로운 만남이 익숙해지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쯤, 모순적이게도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느낀다.

낯선 향기가 사라질 때 즈음 코를 가득 메우는 것은 허기 앞의 유혹적인 냄새들.

 

#3. 베이스 노트

향의 중심인 미들 노트를 강조하고 고정시키는 역할.

 신촌의 향에 소중한 인연들을 빼먹을 수는 없다. 우정, 애정, 많은 감정들을 넘어서 사랑, 그 이상의 것들까지. 다양한 감정들을 배웠고 마음을 주고받는 법을 몸에 익혔다. 서툰 웃음보다 중한 관계들.

 어느샌가 만연해진 신촌의 네컷사진관들이 고맙다. 추억들을 기록하고 돌아볼 수 있게 만든 덕분이다. 깔깔거리며 사진관에 들어가, 정신없이 버튼을 누르고 숫자에 맞춰 제멋대로 포즈를 취하다보면 어느새 행복한 순간이 담겨 나온다. 무슨 포즈로 찍지? 하며 촬영 전 작당모의를 하더라도, 막상 카메라 앞에 서면 결국 계획이고 뭐고 삐걱거리기 일쑤. 사실 제정신으로 찍은 사진보다 취기에 찍은 것들이 다수긴 하다. 알코올 냄새가 가득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는건 꽤 즐겁지 않은가. 눈웃음의 휘어진 정도를 분석하면 어느정도 취했는지 알코올 퍼센트의 파악도 가능하다.

 이따금씩 한장 남게 되는 추억을 붙여두는 재미도 쏠쏠하다. 필자의 경우 사진관 입구의 손잡이, 그러니까 ‘문 열림’ 버튼에 사진을 붙였던 적이 있다. 헤롱거리는 정신이, 이 특별한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남기고 싶다는 강박을 만들어 그랬던 것일지도 … 우습게도 그 사진은 꽤 오랫동안 손잡이에 붙어있었다. 누군가의 추억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 덕분일까?

사진으로 간직하고 돌아보는 인연들과

앨범에 차곡히 쌓여가는 함께의 시간들

 

사진관 안 애매한 금속의 향을 기초로,신촌의 향이 머무른다.

 

베이스 노트는 향의 기초가 되며 피부에서 향기가 지속되도록 도와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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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들이 전하는 말-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은 다섯가지 향이 화면을 넘어 코끝을 간지럽히면, 당신의 감정을 더해 더욱 향기로운 내음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향을 느낀 공간에 시향지를 살포시 올려두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그 순간을 추억해주길.

짧은 순간이지만 당신이 남긴 그 향을 누군가가 맡고 새로운 향이 진열된다면 신촌은 더욱 향기로운 공간으로 변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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