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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2015 · 11 · 11

4-1. 김현식 가요제 – 여기,김현식,우리

Editor 져니

김현식이 어떤 사람이냐 물으면, 감정을 본능적으로 토해내는 점에서 세계 최강이라고 답하고 싶네요.” –김장훈

전설적인 싱어송 라이터 김현식, 그의 25주기를 맞아 오는 1114일 오후 430분부터 2시간 동안 신촌 연세로 유플렉스 앞에서 제1회 김현식 가요제가 열린다. 예선에 참가한 400개의 팀 중 노니파이 밴드의 이현수, 퇴근길 밴드의 엄민우, 밴드의 강유빈 등 총 10명의 참가자들이 예선을 통과해 가요제를 빛내줄 예정이다. 식전에는 스잔으로 유명한 가수 김승진의 공연이 펼쳐지고 본선 경연 이후에는 동균신(하동균)의 공연이 이어진다.

유재하 경연대회처럼 김현식 가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기대감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故김현식은 우리에게 그만큼 특별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의미 없이 그저 그런 가요제가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감이 들 때 즈음, 잔치가 직접 이 가요제를 기록하고 김현식을 기리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 사실상 잔치의 출동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의 글이 홍보효과를 발휘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자리에 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좋은 건 공유해야 제 맛이지 않은가.

이번 가요제는 故김현식을 추모하고 신진아티스트 발굴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요제’ 자체로서의 의미도 크다. 사실 얼마 전 8월에 열린 ‘2015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 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며칠 전부터 기다리는 모습이, 에디터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열광을 하지?’ 라는 생각에. 하지만 참가한 사람들이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고난 뒤에는, 그들의 인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기사는 무한도전의 가요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요제가 다 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렇다.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는 사라진 지 오래고 에디터처럼 음악을 들리는 대로 막 듣는 사람에게 락페스티벌이나 재즈페스티벌은 너무 멀고 비싸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현식 가요제는 포크, 팝, 소울, 록, 블루스, 발라드, 펑크에 이르는 그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통해 김현식을 좋아하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전에는 김현식의 유품 전달과 김현식 거리 선포식이 준비되어 있고, 틈틈이 그의 사진 갤러리와 추모 촛불 켜기 행사까지 있다고 하니 김현식의 삶과 뜻을 기리고 신촌의 어느 거리가 ‘김현식 거리’가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아직 단풍이 채 지지 않은 지금, 그의 노래로 가슴 따뜻한 겨울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By 혜린

이리로 가나 저리로 갈까 아득하기만 한데, 이끌려 가듯 떠나는 이는 제갈 길을 찾았나

손을 흔들며 떠나보내고 외로움만이 나를 감쌀 때 …….

가리워진 길

 

지난 11월 1일은 싱어송라이터 故김현식의 기일이었다. 그가 떠난지도 어언 25년이 흘렀다. “유재하 경연대회처럼 김현식 가요제도 한다더라.” 신촌에서 제 1 회 김현식 가요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에디터도 8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신촌블루스>를 떠올렸다.

듣기로 생전에 김현식은 참 신촌과 인연이 깊었다고 한다. 하긴 1980년대 당시,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모여들던 곳이 신촌 아니었던가. 더구나 그는 <신촌블루스> 객원보컬까지 했으니 신촌과의 인연이 더욱 각별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카더라식의 이야기는 나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제 (겨우) 21살이고, 김현식이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지는 25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촌”에서 “김현식 가요제”를 한다는 소식은 크나큰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

포크음악을 좋아한다. 좋아한지는 5년 정도 된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언제부터 포크음악을 자주 들었더라 하고 생각해보니 딱 5년이다. 그리고 그 5년은 “외로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한 시간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외로울 팔자는 아닌데, 외로움을 잘 탈 사주야” 라고 한 점쟁이의 말처럼, 나는 남들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한다. 또한 이 외로움이 누구를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아직 21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외로움이 그저 내가 가지고 갈 숙제 내지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는, 더 많은 외로움들이 나를 찾아왔다. 집 떠나 넓고 낯선 서울 땅에 왔더니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거기다가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 낯설음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 모두가 가려진 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테니. 하지만 나도 나를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이 될지를 고민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시간 속에서 김현식의 노래는 나에게 맘 놓고 울 수 있는 비밀계단 같은 존재였다. 새벽에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걸치고 혼자 터덜터덜 언덕길을 오를 때, 과제하다 지쳐 아무도 없는 여자휴게실에 누워있을 때 속 시원하게 눈물콧물 쏟아낼 수 있는 하나의 해방구였다. “괜찮아! 너는 혼자가 아냐! 울지 마!“ 라고 하는 것보다, ”우린 처음부터 혼자였어.“ 라는 말이 나에겐 더 큰 위로가 되었다.

슬퍼하지 말아요 혼자라고 느낄 때우린 처음부터 이렇게 혼자였던 거예요

슬퍼하지 말아요

김현식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노래는 ‘내사랑 내곁에’일 것이다. 김현식 특유의 거친 목소리와 고독함 그러면서도 절절한 애절함이 느껴지는 이 곡은 김현식의 유작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바쁜 일정과 악화된 몸 상태 속에서도 그의 열정은 대단했지만, 결국 그는 6집 앨범을 마무리하던 1990년 11월 1일, 만 3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정식 데뷔를 한지 10년이 지난 후였다. 김현식의 사연을 알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가슴을 치는 듯한 그의 고독함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종로의 벌판다방에서 노래를 시작한 김현식의 음악 여정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밤무대를 전전하기도 하고 2 건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으며 마지막엔 건강악화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열정은 대단했던 것 같다. 이승희와의 듀엣, 몇 번의 솔로 앨범, <봄,여름,가을,겨울>, <신촌블루스>까지….더군다나 본인의 노래를 통해 함께 울고 웃는 관객의 모습을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해 라이브 무대만을 고집했다는 일화에서도, 그가 노래와 그의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을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는지 느낄 수 있다.

만약 스트리밍 장소 추적이 가능하다면, 내가 김현식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은 장소는 아마 신촌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신촌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았던 외로움과 성장의 공간이기 때문에, 신촌 길바닥에서 그를 생각하는 자리가 열린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김현식에게도 신촌은 음악으로 많은 소통을 할 수 있었던 공간이자 그의 부인을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니, 본인의 첫 번째 가요제가 신촌에서 열리는 것을 썩 반대할 것 같지 않다. 마지막으로 가요제에 가기 전에 미리 듣고 가면 좋을 곡을 소개하며 길고 길었던 이 길을 마친다.

 

*지극히 개인적인 김현식 BEST

눈 내리던 겨울 밤
떠나가버렸네
내 사랑 내 곁에
사랑했어요

                                                                             가리워진 길
어둠 그 별빛
골목길
슬퍼하지 말아요
봄여름가을겨울
비처럼 음악처럼

By 지연

져니
AUTHOR PROFILE
져니

잔치에서 아리연세와 영상을 만드는 신지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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