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인용집 : 일곱 개의 조각들 (下)
If I were a bird
에디터 챌라또
존재의 실험과 인정에 대한 짧고 제멋대로인 고찰 하나.

잔뜩 엉킨 전깃줄로 휘감긴 신촌 뒷골목
‘그러나 실상 나는 어느 때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했고 용의주도했다. 여러 젠더를 횡단하며 천천히 실험해보자. 한 번에 하나의 젠더씩 입어보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람들을 만났고 남자 옷과 여자 옷도 마음껏 입어보았다. 도박사, 복화술사, 축제기획자, SF작가, 연설가가 되어보았고 그때마다 젠더와 이름도 수십 번 바꾸었다.
…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실험되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젠더가 풀려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김성중, <에디 혹은 애슐리> 중
Q.
나를 나이게 만드는 본질(essence)은 무얼까.
내 이름과 얼굴, 체형과 성격을 합친 어떤 무정형의 덩어리일까,
내 가족과 애인, 친구들과 또 그럭저럭 아는 사람들로 이뤄진 네트워크의 허브일까,
내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사실과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라는 믿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세포핵 속 이중나선 구조의 무엇이려나.
만일
저 모든 것들이 바뀌고 뒤틀린다면?
이름을 바꾸고,
신체의 모든 부분을 새롭게 갈아끼우고,
인생의 모든 관계를 폭파시킨 뒤 새로운 이들을 만나고,
뒤늦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성 정체성과 지향을 깨닫는다면?
그렇다면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닌, ‘내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게 될까?
내가 가진 ‘절대불변의 속성’만이 나를 정의하는 본질이 될 수 있다면,
‘나’라는 건 있을 수 있을까.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헤테로섹슈얼리티(heterosexuality): 생물학적 또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것
<에디 혹은 애슐리>의 배경은 시간이 멈춘 100년간의 세상이다.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도 태어나지 않는 백 년간의 여름. 그리고 에디, 혹은 애슐리로 불리고 싶은 주인공은 이 혼돈으로 가득 찬, 미쳐버린 이 100년을 ‘하나님이 마련하신 새로운 에덴’이라 칭한다. 다시 말해, 이 100년은 그/그녀에게 주어진 퀘스쳐닝*의 유예기간 같은 것이다. 원래와 같았다면 하루빨리 본인의 정체성을 픽스된 무언가로 ‘결정’하고 ‘정의’ 해야 했을 테지만, 이제는 100년의 인저리 타임이 주어진 셈이다.
*퀘스쳐닝(questioning):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성, 또는 성적 지향에 대해 묻는 과정의 의미로 사용됨. 퀘스쳐너(questioner)/퀘스쳐너리 (questionary)는 성 정체성이나 사회적 성, 또는 성적 지향을 아직 확립하지 못했거나 확립하고 싶지 않은 사람/상태를 포함하여 의미함.

벤치 맛집 연세대학교
신촌에서 멍을 때릴 때면 종종 그런 상상을 했다. 학교 안 벤치에 앉아 가만히 앞만 보고 있을 때. 가끔 신촌역에서 연착되는 2호선을 기다릴 때, 혹은 정처없이 연희동 골목을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닐 때. 아니면 약속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해버려서, 빨잠 앞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흘러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구경할 때.
Q.
지금 내 눈 앞을 지나가는 아무나로 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뭘 할까?
무엇이 되고 싶을까? 혹은 무엇이 되기 싫을까.
혹시 만에 하나, 지금의 나보다 내 영혼에 더 잘 맞는 핏의 옷이 있을까.
100년간 멈춘 신촌에서, 궁금했던 모든 삶을 누려볼 수 있다면?
이십대 후반의 남자가 한 번 되어보고 싶었다.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 한껏 멋을 내고 백양로를 활보하는 이들처럼, 궁금했지만 시도해보지는 못한 포마드 헤어에 착 감기는 수트를 맞춰 입은. 아니면 큰 운동 가방을 메고 늘 학교 체육관으로 출근해 매일같이 농구를 하고, 높은 확률로 경기에서 이길 때면 유니폼을 훌렁훌렁 벗어제끼고 관중석의 여친에게 핸드사인을 날리는. 그런 나를 상상했다.
또 한 번은 사람을 아주 보내버리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잔인한 여자 조직 보스인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수하에 마동석같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유유히 밤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하는. 중년의 나이지만 늘 세련된 외모를 유지했으며, 애인이 자주 바뀌고 가끔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나기도 했다.
세기의 수학 천재지만 사교성이 부족해 어딜 가나 괴짜 취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다섯 살부터 엄청난 두각을 드러내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정작 어린 나이에 경험한 폭발적 관심으로 인해 사람 앞에서는 고장이 나 숨어버렸다. 수와는 밤새 놀 수 있었지만, 그래줄 진짜 사람 친구는 없었다.
언젠가 연희동에서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게이 커플을 봤다. 집에서 방금 나온 듯, 꾸밈 없는 모습에 슬리퍼를 끌며. 그 중 최우식을 닮았던 한 명이 잠시 되어 보기도 했다. 같은 회사에서 만났지만 대부분의 사내연애가 그렇듯 비밀연애였고, 회식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빠져나올 핑계를 아침마다 같이 생각했으며, 상대가 너무 좋아 평생을 미뤄 온 커밍아웃에 대해 고민했다.
옷이나 화장에 전혀 관심이 없어 오직 실용주의를 택하는 나를 상상했다. 태어나서 립스틱을 세 번 정도 사봤고, 머리도 굳이 다듬기 싫어서 긴 머리를 늘 질끈 묶고 다녔다. 옷은 계절이 바뀔 무렵 유플렉스에서 대충 고르는 것들 중 하나였고, 그 고민의 시간도 아까워 같은 옷을 여러 벌 쟁였다.
누군가의 아빠가 되는 삶을 떠올렸다. 승진 경쟁에서 억울하게 밀린 날 저녁에도, 현관으로 안기러 달려 나온 딸을 보며 눈물과 한숨 대신 두 팔을 뻗었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가 커서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날을 떠올리면 막막한 가운데서도 웃음이 났고 말이다.

예쁨 받는 건 좋지만 플래시 세례가 불편할 때도 많다.
이해는 한다. 내가 워낙 잘나야 말이지.
쯧, 인간들이란.
상상에 끝은 없다고, 나는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정체들에 대해 상상하고 실험했다. 각각의 옷을 입고 있는 나를 그려보고 있자면 – 꽤나 잘 어울리는 것도, 너무 어색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개중엔 내가 가깝거나 먼 미래에 쉽게 될 수 있음직한 것들도 있었지만, 원한다면 무척이나 어렵게 획득해야 하는 것들도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상상한 그 어느 사람도 결국엔 나였다는 사실이다. 마음 먹은 모든 것이 가능한 21세기에서 나는 원한다면 남자가, 그리고 더 나아가 아빠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아빠가 된 나를 떠올렸을 때, 나는 그럼에도 아주 분명히, 나였다.
물론, 내가 지금의 나로 살 수 있는 것에 – 매일 마주하는 여성의 몸, 내 엄마와 아빠의 첫째 딸이라는 증명서, 혹은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틀림없이 그것들은 모두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세상이, 다시 말해 나를 둘러싼 모든 정의(定義)의 벽들이 무너진다고 해도, 그럼에도, 나는 나로서 어떻게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정체성에 막대한 혼란을 겪어본 적도, 나의 존재를 불특정다수에게 입증하고 납득받아야 하는 삶을 견뎌 본 적도 없는 스물 다섯짜리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평생을 살아도 나를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조차 나는 알 수 없겠지. 단지 만일 그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존재하기는 한다면, 그 뿌리가 영원성이나 고정성 같은 것들에 있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나의 고정된, 불변부동의 것만이 나를 마침내 구성하는 핵이 될 수 있다고 단정짓기엔 나는 많은 게 두려웠고, 쓸데없이 상상력이 풍부했는지도.

기숙사에서 내려다 본 밤의 신촌
‘매일매일 코스튬 의상을 고르듯 지내면서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던 것은 변함없는 강력한 정체성, 불면증 환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캄캄한 밤하늘에 불안의 물감을 풀어놓다가 아침을 맞기 일쑤였다.’
…
확실한 것은 나는 죽은 엔도의 선물로써 잠을 되찾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에디일 때도 애슐리일 때도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원단으로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재단해 입은 것처럼 두 가지 다 핏이 좋았다. 더 이상 애슐리가 되자마자 미친듯이 에디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에디로 지내는 동안 애슐리의 나날이 그립지도 않았다. 그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닐 때도 잘못된 자리에 억지로 껴 있는 답답함이 들지 않았다.’
<에디 혹은 애슐리> 중
극심한 불면증이라는 ‘변함없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정의하던 에디/애슐리는 결국 잠을 되찾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다양한 코스튬을 갈아입는 사이에서도 자신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본질적 요소라고 여긴 불면증이기에 더욱 역설적이다. 만일 그것이 그/그녀를 자체로서 존재하게 하는 중추였다면, 잠을 찾는 순간 존재는 해체되거나 대체되는 게 맞을 텐데. 그러나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잠’으로 표방되는 일상을 되찾은 순간부터 존재 혹은 상태에 대한 집착적 고민은 – ‘살아있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상태 아래 옅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아무튼 살아있으니 그것으로 된 거라고.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인생에서 확실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건 그것 하나일 테니. 중대하든 사소하든간에 일상이란 걸 가지는 존재라는 것 – 숨을 쉬고 잠을 잔다는 것, 밥을 먹는다는 것, 또 땅에 발을 딛고 걷는다는 것 – 그것이야말로 나를 나로 만드는 제 1의 배경이 아닐까. 억지로라도 밥을 먹고 꾸역꾸역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게 조금은 가벼워지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겠지. 최소한 내가 나의 두 다리로 걷고 있는 동안은, 내가 나로 존재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존재의 역동성에 관하여
그리고 결국, 역동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또 이내 인정하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제 1의 하얀 배경을 무엇으로든 채울 수 있는 힘과 결정권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알아 온, 그리고 믿어 온 나의 정체가 자꾸만 변하고 바뀌어도 괜찮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다. 다 그려놓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부 지워 없애도 되고, 원치 않는 부분이 있다면 뜯어버려도 된다고.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내도 된다고. 영원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긴 하나, 나를 구성하는 것은 영원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에 대한 고민을 일찌감치 끝내고 이것이 내가 나인 이유라고 선언해버리는 것은 아마도 혼란을 피하고 안정을 찾고자 하는 당연한 기제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를 이루는 것들은 하나로 고정되어야만, 그리고 완성되어야만 비로소 ‘올바르게’ 맞춰지는 퍼즐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늘 변화하고 적응하며, 또 변화하는 – 그렇기에 오히려 더 굳건하게 존재하는 바다같은 것이 아닐까. 물결에, 파도에 몸을 온전히 맡기면 결국 떠오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변화하는 나를 타고 흘러가보는 것이다. 그 끝이 어떠한 모양이어도, 어디에 닿아 있어도 괜찮다.
내 안의 미지수까지도 결국은 나이기에.
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나는 글쓰기를 하는 순간에 또 다른 젠더로 돌입한다. 그것은 ‘쓴다’라는 젠더이다. 작업에 길게 몰두할 때, 쓴다는 상태 자체가 하나의 젠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순간은 트랜스 상태이며 나는 여성/남성/퀴어/동물/식물/ 심지어 기계가 되기도 하니까.
작가의 말 중
Q.
그래. 젠더가 동사면 안 될 건 또 뭐람?
Inspired by <에디 혹은 애슐리>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人 윤동주- in 2021
에디터 신나우
시인 윤동주의 순수한 저항시와 사람 윤동주, 2021년 다시금 기억해 보는 시간.
그리고 내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윤] – 胤 이을 윤: 윤동주와 이어지다
“죽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새내기 시절 멋모르고 내뱉던 학교 응원곡의 가사이자,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에서 따온 구절이다. 동기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신나는 멜로디에 맞춰 허리를 꺾느라, 사실 가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스물, 스물하나의 파릇파릇했던 17학번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러다 한없이 무료했던 2년 전 가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오랜만에 학교에서의 산책을 만끽하고 있을 때였다. 제법 차가워진 밤공기 사이, 투명한 가로수 빛깔의 버니니를 들고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걷던 중, 낯선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의 캠퍼스 산책이라 확실친 않았지만, 분명 처음 보는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처음 윤동주 문학 동산을 마주한 순간.
밤에 와야 더 예쁘다.
새내기 때부터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 조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드디어 완공된 모양이다. 옆에서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던 친구도 최근에야 완공된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반딧불이 가족이 당장이라도 발 벗고 나와 반겨줄 것 같은 조명 아래 안내석에 ‘윤동주 문학동산’ 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마치 기존에 있던 윤동주 시비 주변으로 아름다운 공원 하나를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별 헤는 밤’이나 ‘서시’ 등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들과 함께, 다른 선배 문인들의 작품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시가 전시된 벽면 옆으로 펼쳐진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서늘한 가을바람과 포도주 한 모금의 콜라보는 낭만적이었다. 휴가가 아니었다면 이미 부대에서 잠자리에 들었을 시간이라는 생각에 괜히 더 설렌 걸까. 한 쪽 벽에 새겨진 ‘별 헤는 밤’에 시선이 멈추고서야 문득, 내 방 책꽂이에 한참을 방치해둔 그의 시집만 두 권이라는 게 떠올랐다. 입학 선물로 학교에서 받은 한 권과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한 1955년 증보판 오리지널 디자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까지…

그 사이에 몇 권 더 늘었다. 나의 윤동주 시집 컬렉션이다.
그 가을의 밤산책이 끝난 뒤 생각했다. 이제는 휴면 상태인 그 시들을 깨울 때라고. 달콤했던 휴가를 마치고 부대에 복귀하면서 윤동주 시집 한 권을 챙겼다. 그날 밤 문학 동산에서의 다짐처럼, 이번엔 제대로 그의 시를 읽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관물대 구석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꽂아두면서, 결코 이대로 먼지만 쌓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그렇게 2019년 10월 나와 시인 윤동주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아니 동행보다도 동거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그에게 허락한 자리는 관물대 가장자리일 뿐이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내 마음속 안방까지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처음 그와의 동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교과서에서나 대면할 수 있는, 나와는 친해지기 어려운 존재라고만 생각했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힌 시인이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니 말이다. 문학 선생님의 해설을 밑줄 치고 외우기 바쁜 고등학생으로서 그를 자주 대면했기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근데 그 해 가을만큼은 뭔가 달랐다. 교정에 새롭게 조성된 문학 동산에서의 다짐 때문인지, 가을의 시즌성 독서 욕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때보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을 지배했다. 두 달여 동안은 병영 도서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붙잡고 있었다. 내가 그의 의도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도 넘쳤다.
‘시험을 보기 위한 문학 감상도 아닌데, 내가 느끼는 대로 읽으면 되는 거지. 작품 속 숨겨진 상징과 의미를 다 찾지 못한다 해도, 내 감상에 집중해 보자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다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큰 위로를 받곤 했다. 시어 하나에 마음이 울컥하기도 하고, 의미는 여전히 아리송한 시가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기도 했다. 더욱이 마음이 힘들었던 날일수록, 기대 없이 펼쳤던 윤동주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두 팔 벌려 탈출구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달려가서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도록 말이다.
보다 더 제대로 윤동주를 느껴보고 싶어서 영화 ‘동주’도 찾아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개봉했던 영화라 항상 나중을 위해 미뤄뒀었는데…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창 그의 시에 빠져 있었기에 영화에도 쉽게 과몰입해버렸다. 생활관 침대 위 침낭 속에서 얼마나 눈물을 훔쳤는지. 누가 볼까 두려워, 휴대폰을 들고 있던 팔 소매로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동] – 同 같을 동/한가지 동: 윤동주의 마음에 공감하다
나와 윤동주의 동거는 상생 관계는 아니었다. 자연 생태계 속 다양한 형태의 공생 중 우리의 관계는 오히려 편리공생에 가까웠다. 한쪽만 피해를 입는 편해 공생, 다른 말로 기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 이익을 취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공생관계에서 내가 흡수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윤동주의 시와 해석을 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왜 한없이 부끄러움만 느끼는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수줍고 고민 많은 샤이보이인가 싶기도 했다.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이육사 같은 시인이 훨씬 멋있다는 어린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스물두 살이 되어 다시 마주한 윤동주의 시를 보며,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용기 있고 성숙한 태도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윤동주 문학 동산에 전시된 ‘별 헤는 밤’
그의 대표작 <별 헤는 밤> 후반부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中-
일제 치하의 현실 속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부끄러움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름마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라 흙으로 덮어버렸다는 것이 마음속에 뭔가 울림을 주었다. 잠시 동안 나의 이름이 부끄러웠던 적이 언제였나 고민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고작 학원에서 초라한 시험 점수가 내 이름 옆에 걸렸을 때 정도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부끄러움의 깊이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였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동주’ 속 윤동주가 존경하는 정지용 시인을 찾아간 장면에서, 정지용은 명대사를 남긴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이 대사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그 말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컸다. 부끄러움이란 무릇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감정이며,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쉽게 씌어진 시>는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라는 구절로 끝이 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겠다는 의지이자, 부끄러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자세를 갖추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中-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착각과 자기방어의 동물인 인간에게는 너무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유형의 대표격인 나는 얼마나 많은 합리화와 ‘자기 한정 관대함’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왔는가. 자기소개서와 면접용 자아를 만들고, 순전히 내가 바라는 자화상을 그려놓고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나는 항상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게 똑똑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상황 파악을 잘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어머니의 말씀이지 않았을까.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그 말을 몸소 실감하는 요즘이다. 어렸을 때는 꿈을 크게 가지고 세상을 넓게 보라고 배우지만, 크면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것.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세상과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 그게 사람들이 말하는 철이 드는 것이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20대 청년 윤동주가 이렇게 깊이 있는 부끄러움을 노래할 수 있었다는 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암울했던 시대적 현실 앞에 고민하고 사색할 기회는 더 많았을지 몰라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더 쉽지는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한 평생을 산 윤동주가 온전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을 ‘악수’라는 표현으로 맺은 것은 부끄러움을 느낀 ‘나’와의 화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는 것은 ‘나’와의 대면이고, 부끄러운 ‘나’를 포용하고 하나가 되겠다는 걸 의미한다고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윤동주가 내게 선물한 두 번째 가르침은 희망을 놓지 않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다. 함께 살기 전에 내가 알던 그는, 한없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운명을 비탄한 문인이었다. 순수한 저항시를 통해 현실에 맞서 싸웠지만,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아픔을 시로써 승화한 시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윤동주는 그런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소년이었다.

다소 잘 알려지지 않은 시 ‘병원’도 전시되어 있는 윤동주 문학동산.
그의 시 <병원> 중 이런 구절이 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어왔다.
-윤동주, ‘병원’ 中-
아픔을 오래 참았다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경험했다는 건, 오래도록 참고 견뎠다는 건,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서 비로소 만날 빛을 기다려왔다는 뜻이 아닐까.’
참는다는 것은 물론 어쩔 수 없이 견뎌낸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이 있었겠다는 게 보였다. 지금이야 위대한 시인이고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당시 윤동주는 내 또래 20대 소년이었다. 국가가 주권을 빼앗긴 현실 속 부끄러움을 노래하면서도,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길>을 보면 윤동주의 그런 희망과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새로운 길’ 中-
평화로운 풍경과 자신이 걸어갈 새로운 길을 노래한 그는 마음 속 작은 작은 꽃처럼 소망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의 벽 앞에 막혀 피어나지 못했을 뿐.
1941년 연희전문 졸업 후 작품을 모아 자기 손으로 시집 하나 내보고 싶었던 소년.
그 작은 꿈마저 이루지 못하고, 자필로 쓴 시가 1948년이 되어서야 유고 시집으로 묶여 출간되어야 했던 시인.
그토록 염원했을 조국의 광복을 6개월여 앞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 소년.
소년 동주가 품었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길’을 노래했던 소년 윤동주. 그가 품었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품었던 소망은 지금 우리가 바라볼 땐 정말 별것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흔히 ‘소확행’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한평생 꿈꿨을 것이다.
시인으로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 내가 우리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지 않는 삶, 태어날 때 지어진 우리말 이름으로 우리말 시를 쓰며 사는 삶…
오늘날 우리 누구도 꿈꿀 필요가 없이 거저 주어진, 빼앗긴 적 없어 의식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우리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다소 소박한 소망 아니었을까.
[주] – 住 살 주: 일상을 살다가 윤동주를 떠올리다
전역 후 코로나로 얼룩져버린 복학 생활을 보내다가 휴학을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소중한 대학생활을 흘려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도망쳐버렸다. 꿈꿔왔던 해외여행도, 달콤한 복학 생활도 물거품이 되었고… 이따금 망할 코로나를 탓하는 넋두리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사이버 대학교가 되어버렸기에, 학교 다니는 기분을 까먹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온 저녁에 오랜만에 학교를 다시 찾았다.
신촌 하늘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신촌 하늘에는 달이 밝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그가 다시 마음속 방문에 노크했다. 조심스러운 노크였지만, 소리는 왠지 크게 울렸다. 백양로를 따라 쭉 걷다가 윤동주 문학 동산, 그의 시 ‘자화상’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中-
‘자화상’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그와 함께 살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힘들 때면 언제나 그의 품에 기대었는데… 변함없이 그는 담담하게 위로해 줬었는데… 힘들었던 군 생활을 마치고 까맣게 그를 잊고 지냈다. 내가 필요할 때만 그를 찾았나 보다. 우리의 관계는 정말 상생이 아닌, 편리공생이었나 보다.
코로나로 꿈꿔왔던 복학 생활이 물거품이 됐다고 불평하던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오랜만에 느낀 부끄러움이었다.
잊고 지내던 부끄러움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윤동주, ‘돌아와 보는 밤’ 中-
그는 이미 그의 좁은 방에서 불을 끄고 밤을 맞이했다. 어쩌면 그토록 피곤한 낮을 살다가 그곳에서 보내는 밤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그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면, 이 글을 꼭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그를 추억하는 것조차도 내 마음대로다. 이것 또한 언제 그랬나며 금방 그를 잊고 지낼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혼자만 위로받고 일방적인 안정을 취했던 나였지만, 이렇게라도 내가 받았던 것들을 나눠본다.
이 글을 읽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기억해 준다면,
그의 정신과 가르침을 기억해 준다면,
여전히 우리의 관계는 편리공생이겠지만, 조금 더 상생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마스크 속으로 내쉰 입김마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 가을밤,
그를 기억하기 위한 윤동주 문학 동산에 홀로 서서
끝없이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했던 시인 윤동주와 그의 정신을 되새겨봅니다.
이 글을 하늘에 계신 윤동주 선배님께 바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Inspired by 윤동주와 그의 시- ‘서시’,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병원’, ‘새로운 길’, ‘자화상’, ‘돌아와 보는 밤’
으아!! 으아아 ㅇㅏ!!
ㅇ
⋌
ㅇ
ㅜ
.
.
.
아 무 것 도 안 하 고 싶 다 !
인생에 길이 남을 희대의 대작을 쓰고 싶지만 쓰고 싶은 것조차 없다. 항상 질리도록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어째 이럴 때 써먹을 만한 건 도통 안 떠오른다. 인정하긴 싫지만 휘발성의 얕은 생각들을 반복하는 게 내 일상의 현주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건 내 잘못일까, 아님 세상 탓일까? 사실 답은 없다. 그냥 맘 가는 대로 생각하면 그만이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신촌 인용 프로젝트라더니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재미가 없다. 현실에 딱 붙어서 산다는 게 그런 거 같다. 조금의 틈도 없이 휘몰아치는 현생의 무게에 눌려, 기쁨도 불행도 평면처럼 납작해져버리는 것. 그래서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져있어야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선명하게 숨쉬는 내 안의 가치들과 기쁨, 슬픔, 죄책 그리고 불행이 가진 세밀한 무늬를 온전히 감각하는 삶을.
이걸 위해 필요한 건 약간의 현실도피다. 삶의 성난 얼굴을 슬쩍 피하되, 아예 중력을 벗어나지는 않을 정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이다. 현실세계와 그 너머를 유영하는 것처럼. 그래서 단풍이 거의 저물어버린 신촌 거리에서 나는 조금 오래된 단풍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daum.net/silence41/15841762
메이플스토리 in 신촌(beta ver.)
에디터 냠
나는 게임을 안 한다. 수강신청 할 때 말고는 PC방도 안 가고 화투치는 법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내 폰에 게임 어플이 설치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내가 거의 유일하게 제대로 시도해봤던 RPG 게임이 메이플스토리다. 리본돼지였나, 그냥 돼지였나 아무튼 돼지한테 죽고 나서는 안 했지만. 근데 참 웃기게도 딴 사람이(엄마 아들) 하는 게임 구경은 좋아했다. 지금도 과제하기 싫을 때면 종종 나무위키에서 메이플스토리의 스토리라인들을 읽어본다. 재미없는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나름의 발버둥이다. 메타버스와 MZ세대를 엮으면서 신문 칼럼 쓰듯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난 메이플스토리랑 신촌+겸사겸사 내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사회분석 칼럼을 쓰고 싶은 게 아니다), 어쨌든 액정 속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유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자연스레 가상세계에서 경험한 소리와 색감,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현실에 스며들어 새로운 감각과 기억을 엮어낸다. 그러니 픽셀 도트로 된 세상과 3차원 세상은, 이미 ‘나’라는 주체를 매개로 연결되어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오랜만에 메이플스토리에 접속했다. 스폰 지역*은 신촌이었다.
*스폰 지역: 게임에서 플레이어나 몬스터가 처음 생성되는 곳.
신촌 메이플스토리!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bgm 링크로 연결됩니다.
휴. 1시간이나 걸려서 드디어 접속했다. 요즘 지하철에…아니 서버에 사람이 너무 몰려서 자꾸 튕기는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다. 2번 출구 포털에서 나와 연세로를 쭉 걸어가기로 했다.
이미지출처: https://www.inven.co.kr/board/maple/2299/552966
평화로운 헤네시스. 오전의 연세로를 닮았다.


오전의 연세로
2번 출구에서 나와 연세로를 걸을 때면 매번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첫 시작을 이곳으로 하고 싶었다. 신촌이 지닌 모습들 중 오전의 연세로를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특히 맑은 날에 보이는 깨끗이 채색된 하늘, 베일 커튼 같은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풍경을 좋아한다. 게임 속 배경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밝고 반짝거려서 그런 것 같다. 메이플스토리 맵(=지역)에 비유하자면 헤네시스 같다. 비록 연세로에는 버섯집도, 주황버섯 같은 몬스터들도 없지만. 다행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걔네들은 얼굴만 귀엽지 하는 짓은 깡패다.
역시나 유플렉스를 지나칠 때까지도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현실에도 길거리 몬스터들이 있긴 하지만 시국도 시국이고, 보통 저녁 시간대에 많이 보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연세로를 누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몬스터는 길거리보단 다른 곳에 많이 있다. 원래 삶의 장애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통수 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저 멀리 보이는 빨잠. 이렇게 보니까 게임 몬스터 같다.
가만히 연세로를 보고있자니 몇 년 동안 은근히 변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전보다 조금 썰렁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잡화상점은 여전히 많다. 내가 생각하는 연세로의 장점이기도 하다. 보통 잡화상점은 어디에나 흔히 있지만 이곳처럼 1분 간격으로 계속 나오는 곳을 못 본 것 같다. 덕분에 어느 곳에 갈지 고르는 게 여기서 누릴 수 있는 나름의 재미였다. 아쉽게도 이 맵에서의 잡화상점은 빨간 포션이나 파란 포션 같은 건 안 판다. 대신 카페인 포션을 수혈받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온갖 퀘스트에 시달리는 수많은 신촌 유저들에게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다.
이미지 출처: https://bit.ly/3njq1MK
헤네시스 잡화상점. 이런 인테리어로 신촌에 생기면 대박날 것 같다. 창업이나 할ㄲ…

[리빙포인트] 카페인 포션은 디저트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사실 그동안 연세로 맵에서 한 게 거의 걷거나 카페..아니 잡화상점 간 것밖에 없어서 더이상 쓸 말이 없다. 이대로 끝내긴 좀 아쉬운데… 아, 생각해보니 신촌 메이플스토리라고 말해놓고 연세로 얘기만 해버렸다. 물론 나의 주 활동지역은 연세로지만, 신촌에는 다양한 맵이 많다. 연세대, 노고산동, 연희동, 신촌 기차역 등등.. 버스 타고 가면 연남동도 금세 갈 수 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2차 전직(a.k.a 대졸자=말하는 버섯감자)을 위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스탯*을 쌓았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잡화상점에서 과제 퀘스트를 많이 했었는데… 하면서 레벨이 얼마나 올랐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 더. 맵들을 다니다보면 길고양이 NPC들을 만날 수도 있다. 눈이 마주쳤다면 반갑게 인사해보도록 하자.
*스탯: 캐릭터의 능력치를 의미함. 공격력, 방어력, 체력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 직업이나 레벨, 숙련도에 따라 획득량이 다르다.

연희동 맵에 사는 NPC 고양이. 지금은 사라진 ‘카페 공든‘에 저녁시간까지 있다보면 만날 수 있었다.
슬슬 체력이 떨어져간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된 것 같다. 현실이 하도 지루해서 한 번 해본 상상이었는데, 의외로 현실은 게임의 공간을 닮아있었다(음… 게임이 현실을 닮은 건가?). 온갖 텍스트들과 이미지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다가 일직선으로 된 거리를 걸어 포털로 들어가는 것까지 모두 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처럼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 정도.
결국 게임과 현실은 싱겁게 포개어졌다. 현실에서 좀 떨어져있고 싶었는데. 일직선의 삶이라는 건 어디에 있든 비슷하구나 싶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다보면 눈앞의 평평한 길을 넘어 만들어지는 궤적이 있지 않을까. 어떤 때는 현실에 딱 붙어서, 또 다른 때는 잠시 현실 너머를 부유하면서- 그렇게 차원을 넘나들어 쌓은 평면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입체의 궤적이.
자, 이제 다시 돌아가자.

다시 포털로 들어갔다.
Inspired by <메이플스토리>
말을 빌린다는 건 일종의 사유적 운동(movement)이 아닐까. 어떤 이의 표현 하나로 다른 이는 세상을 설명할 한 줄의 문장을 얻고, 그 문장에 얹어진 생각 하나로 또 누군가는 새로운 차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니 말이다. 뜨거운 횃불이 번지듯, 무지개색 물감이 퍼지듯 그렇게. 인용(引用)이라는 행위 안에서 말은 정말로 씨가 되고, 그 씨앗에 담겨 있는 시선은 바람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다가 전혀 생각치도 못한 진흙에 뿌리를 내린다. 일평생 잡초만 자라던 바닥에 조그맣게 핀 민들레처럼, 그리고 누군가가 후- 불어 날려 보낼 그 씨앗들이 새로 노랗게 물들일 또 다른 무수한 땅처럼 – 그렇게 계속해서 입체적이고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에게 불어온 시선을 통해 신촌을 바라보기로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가 다른 종류의 씨앗을 골랐다는 점이다. 음악, 영화, 시, 웹툰, 소설, 인물, 그리고 게임까지. 글을 기획할 당시부터 각자가 글을 완성할 때까지 단 한번도 상의하거나 미리 정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신촌은 그렇게 우주였다가, 한겨울의 미국이었다가, 지평(地平)이 됨과 동시에 무수한 갈림길의 연속으로 변했다. 또, 시간이 멈춘 100년 동안의 공간에서, 한 소년의 부끄럼 많은 생애를 거쳐, 평화로운 오전의 헤네시스가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한낮의 상상, 혹은 왔다 가는 뜨내기 생각의 조각들일 뿐이라고 말해도 좋다.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아주 분명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신촌은 일곱 가지의 새로운 층을 획득했고, 그로 인해 아주 조금은 더 입체화되었다는 것. 아마 이 일곱 빛의 신촌은 바람이 되어 새로운 사유의 땅에 씨앗을 날려 보내겠지.
겨울의 시작에서, 이 살짝은 차갑고 깨끗한 바람이 당신에게 닿길 바라며.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날아올 당신의 씨앗을 기다리며.

[…] 하(下)편에 이어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