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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8 · 05 · 16

잔치마당 시네마당 #레이디버드

Editor Mr.Lee

 

 

 안녕,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왠지 특별한 기분이야.

 

 네가 누구인지, 어쩌다 이 공간에 들어와서 나와 글로 마주하는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행복’이나 ‘레이디버드’에 마음이 끌렸다는 건 나랑 마찬가지겠지? 한번쯤 누군가와 나누고 싶던 이야기였는데, 마침 잘 된 것 같아. 영화 먼저 보고 이 글을 읽는 거라면 영화는 좀 어땠어? 아직 못 봤으려나. 내 감상평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했던 영화’가 될 것 같아. 행복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하게끔 도와줬다는 점에서 말이야. 그럼 혹시 아직 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간단하게 줄거리도 얘기하면서 글을 시작해볼게.

 

 혼영하러 간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영화를 봤어. 180504 나의 소확행!

 

 영화 속 시간은 주인공 크리스틴의 마지막 고교시절부터 시작되어 흘러가. 자신에게 ‘레이디버드’라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그는 한 마디로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야. 연애상대를 얻기 위해 온갖 척이란 척은 다 하고, 엄마가 레이디버드란 이름을 무시하자 차에서 뛰어내려 팔이 부러지기도 해. 부모님과 오빠, 오빠의 애인까지 다함께 사는 낡은 집은 높은 언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어. 고리타분한 학교, 가난한 가정, 시시하기 짝이 없는 고향 새크라멘토··· 이런 것들로 가득 찬 매일매일은 지루하기만 하고, 레이디버드는 그런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해. 그래서 레이디버드는 엄마 몰래 동부 도시로의 대학진학을 꿈 꿔. 지금보다 더 쿨한 인생을 살기 위해,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고? 개소리! 

-영화의 첫 대사

 

 나는 이런 레이디버드를 보고 나와 반대인 동시에 닮았다는 생각을 했어. 붉은 머리에 직설적인 모습은 나랑 꽤 거리가 멀지만, 현재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야. 나도 고등학생 땐 대학에 가면 더 행복할거라고 생각했고, 대학생인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나가면 더 행복할거라고 생각하거든. 아니, 생각‘했’거든. 사실 레이디버드처럼 지긋지긋하다고 소리 지르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누구나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그건 평범함을 넘어서는 특별함인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그리 특별한 건 아닐 거야. 당장 남들만큼 사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걸. 레이디버드의 엄마 매리언도, 레이디버드의 애인이었지만 사실 게이였던 대니 역시 마찬가지겠지. 우리는 보통의 존재지만 보통의 행복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결국 레이디버드는 대학교에 합격해서 뉴욕으로 떠나게 돼. 합격 가능성도 낮고,  학비마련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탈새크라멘토에 성공했지. 떠나는 날까지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모녀는 그렇게 서툰 작별을 해. 그럼 여기서 질문, 그렇다면 레이디버드는 뉴욕에서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았을까?

 

 슬프게도 그렇진 않아 보여. ‘These streets will make you feel brand new’라는 뉴욕을 노래한 어느 가사의 말마따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레이디버드는 왜인지 공허감을 느껴. 그리고 남들에게 자신을 크리스틴이란 본래 이름으로 소개해. 새크라멘토를 떠나서야 크리스틴이 된 레이디버드는 도심을 걷다가 마주한 성당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리곤 처음 고향에서 운전을 하며 바라봤던 노을 진 풍경을 떠올려. 그땐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겨운 고향이 아름답다 느껴졌던 그 순간을 말이야.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를 붙잡고 크리스틴은 엄마에게 이야기해. 그때의 새크라멘토가 아름다웠다고, 엄마도 그렇게 느꼈었느냐고.

 

그리곤 크리스틴이란 자신의 이름이 예쁜 것 같다는 진심도 전해

 

 나는 뉴욕의 크리스틴은 불행하고, 새크라멘토의 레이디버드가 실은 행복한 거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그 반대 역시 아니고. 그보단 그냥, 언제든 어디든 좋기만 할 순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달까. 매 순간이 빈틈없이 한 감정으로만 가득 찰 순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거겠지. 어른들은 그리워하고 청소년들은 선망하는 청춘을 지내면서도 사실은 막 엄청 행복하진 않은 이십대가 특히 그런 시기인 것 같아. 마냥 불행하지도, 마냥 행복하지도 않은 시기. 불완전한 아름다움, 뭐 이런 모순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으려나.

 

 나는 예전엔 ‘모순’이란 개념이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모순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상식으론 비시민적인 사람들일 뿐이었고. 그런데 요즘은 모순이야말로 사랑과 나란히 우리 삶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가 아닐까 싶어. 열심히 살다가도 어느 순간 길을 잃어 무의미함을 느낄 때나, 내 안의 여러 정체성이 충돌해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할 때, 애증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들을 대할 때 모두 모순을 빼놓곤 설명될 수 없는 순간들이잖아. 꽤 최근까지도 나는 내 안의 이런 모순을 발견할 때 엄청 괴로워했어.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여성으로서도 그랬고, 우리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도, 또 가족관계 속 딸, 맏이로서도 그랬어. 지금도 그렇지만 내 가치관을 구축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 역시 레이디버드처럼 자기혐오나 부정의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 특히 작년, 나의 스물한 살이 그랬었어. 작년 생일에 내 손목에 ‘I’m me’라고 새겼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해.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모순이지.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했으면서 그런 문장을 새겼으니.

 

 말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조금씩 그런 모순을 인정하게 되면서 나 자신이나 내 상황을 긍정할 수 있었단 거야. 새크라멘토를 싫어했지만 동시에 좋아했던 감정을 고백하면서, 멀리 날아갔던 레이디버드는 다시 돌아와 마침내 크리스틴이라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돼. 아마 그 순간 크리스틴은 ‘사실 그때가 행복한 거였는데’보다는 ‘사실 그때도 나쁘지만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마냥 슬프지만도 않았을 거야. 자신이 그리던 낭만을 포기했다고도,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아.

 

이 영화의 오랜 가제는 ‘엄마와 딸’이었다고 해.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관계,

너무 가까이 있어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관계, 다른 인생의 시기를 살아가는 닮은 관계.

엄마 매리언과 딸 레이디버드.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이 뭐냐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름 정리를 한다곤 했지만 내 생각의 결론도 아직 미완성이거든. 자신이 어떨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매 순간 자신의 감정에 너무 솔직해도 탈인 것 같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노랫말을 좋아하지만 행복하자고 말하는 순간의 감정은 행복이 아닌 것 같아서 왠지 슬퍼. 보통의 행복은 별 거 아닌 것 같다가도 그게 참 얻기에 쉽지만은 않아. 이런 내가 모순적이고 애매하다고 생각하지? 나도 내가 그래 보여. 그런데 요즘엔 그냥 구태여 답을 찾거나 결론을 맺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 의미나 답을 찾는데 혈안이 됐던 과거가 만들어낸 후유증인가 봐.

 

 그래도 크리스틴이, 레이디버드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매리온도, 다른 그의 가족과 친구들도,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면 좋겠어. 실컷 행복이 어렵다느니, 잘 모르겠다드니 떠들어놓고 이런 진부한 바람으로 글을 맺게 되어 민망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모두가 진심으로 행복하면 좋겠는 걸. 결론없는 내 얘기는 여기까지가 끝이야.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들어줘서 고마웠어, 언제 한번 네 이야기도 듣고 싶다.

 

 

*O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5월엔 ‘O’가 팀별로 다.르.다! Match ‘O’ you want……………….and CLICK👍🏻

M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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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스터리

COMMENTS

댓글 2

  1. 빙봉
    빙봉 2018.05.23 22:44

    이렇게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 정말 기뻐요.
    에디터 미스터리님의 잔치 마지막 글이라고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지금부터 서운합니다.
    이 글을 읽기 전 레이디버드를 본 제 자신에게 감사해지는 글이었어요.

    1. Mr.Lee
      Mr.Lee 2018.12.03 12:15

      이렇게 좋은 글이라고 말해주는 빙봉님이 있어서 제 글이 좋아지게 되었어요 :)
      늘 아껴요 진심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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