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ART 2020 · 05 · 25

정말 이게 현실일까?

Editor 콜리

이게 정말 현실일까?  이따금 드는 실없는 생각이지만, 잉크가 퍼지듯이 머리 속을 헤집어 놓는 질문이다. 정말 이게 정말로, 현실일까? 어릴 때 본 <맨 인 블랙> 엔딩에 사물함을 열자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고, 세상은 한 없이 넓어진다. 정말,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일까? 인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상상, 누구는 진리를 찾고, 또 누구는 물질의 근본을 찾는다. 그렇지만, 플라톤이 상상한 이데아는 더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불러왔고, 양자역학은 내가 지금 존재하는지 조차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세계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무한한 포용과 가능성만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렸고,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진리라도 되는 듯이 들이닥치는 많은 것들에 잠식되어갈 쯤,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이게 정말로 현실일까?”

 

 

그런 의문은 항상 “내가 심즈(Sims)” 속의 “심(Sim)”일 뿐인건 아닌지 또 다른 의문으로  결론난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차오를 때마다, 그렇게 물길을 틀어버린다. ‘난 단지 누군가가 의도한대로 움직일 뿐이야. 그러니깐 이해할 필요 없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은 것처럼 만족하고 넘어가버린다. 그래서인지 고양이가 부럽다. 멋대로 우리집에 들어와 사는 고양이는 세상의 중심이 본인이다. 본인이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거다. 아무리 장난감을 흔들어도 낮잠 시간에는 움직일 수 없고, 애교를 부려도 귀찮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항상 ‘갑’의 위치에 있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렇지만, 난 항상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한다. 그리고 세상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진실이라는 것은 없고 이해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진실은 없지만, 내가 만든 곳이라면 다르지”

– 트루먼쇼 (1998) –

 

결국에 변하지 않는 것은 내가 채운 세상이다. 그렇지만, 신촌에서 내가 채울 수 있는 세상이 있을까? 무심하게 떠밀려가는 사람들, 매일 변하는 가게들, 어느하나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나 보다 버스커들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고작 몇 명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세상을 채울려고 그렇게 열창했는지도 모르겠다. 

홍익문고 앞 피아노도 그렇게 매일 누군가가 건반을 치며 자신의 세상을 채웠었다. 생각해보면, 피아노는 꽤 특별한 존재이다. 어릴때 엄마의 불안 섞인 기대에 피아노를 배웠지만, 불안은 항상 그럴듯한 이유가 있기에 우리집 한 구석을 차지하던 피아노는 다른 사람에게 팔려갔다. 음악은 항상 날 채워줬지만, 작은 이어폰에서 울리는 소리는 기다란 줄의 울림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인지 홍익문고 앞 피아노는 항상 내 발걸음을 멈췄다. 소란스러운 신촌역 앞 거리를 채우는 울림도 좋았지만, 질투섞인 부러움도 생겼다. 

 

 

지금은 음악이 멈추고 다시 삭막하기만한 신촌거리지만, 홍익문고 앞 피아노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피아노를 칠줄 모르지만, 아무도 치지 않고, 아무도 듣지 않는 홍익문고 앞 피아노를 보면서 언젠가는 저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이해받지 않아도 되고, 미친듯이 연주해서 내 세상을 피아노 줄의 울림 그대로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언젠가 저 피아노를 치게 될 날을 상상하면서 울렸으면 하는 나만의 노래들을 모아 이해받지 않아도 되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처음 본 서울은 끔찍했다. 논술을 치기 위해 서울에서 고작 몇 개월 살았다고 인솔자로 온 누나와 함께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왔다. 이제 해가 떠오르고, 잠 기운이 몽롱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홍대에서 본 사람들은 취해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처음 가본 대학교는 공사판이었고, 가야할 길은 처음 본 규모의 사람들 때문에 피난 가는 길 같았다. 꼭, 전쟁이 나버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인파 속에서 난 언제부터인가 혼자 떠밀리듯 걷고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갈 때 이제는 혼자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홀로인 것을 느꼈다. 모두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우린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나누고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사람들, 서울 생활은 그런 관계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저 마다의 세상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런 세상을 잊고 나와 함께해줄 사람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스패니쉬 아파트먼트>에서 라디오헤드 노래를 처음 들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한참을 이유없이 계속 울었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계속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 밤에도 그림자가 점점 길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점점 더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우울은 그렇게 가라앉아 완전한 어둠이 되었다가 해가 뜨면 사라졌다. 어디까지 떨어질지 몰랐지만, 바닥을 치고 나서야 다시 위를 보게 되었다. 영원한 안식은 그곳에 있었다. 더 이상 뱉을 것이 없어진 울음이 그쳐 소리도, 빛도 없이 해가 뜨기 직전 모든 것이 그림자인 곳에.

 

       내가 태어나기 전 별들이 모두 떨어져 버렸을 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어도 직접 보지 않고서야 잘 믿지 않는다. 내가 별을 본적이 있을까? 숨가쁘게 간신히 빛나는 인공위성인지 지나가는 비행기일지 모를 그런 별 말고, 별자리를 그려야 겨우 같은 별이 아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별들을. 그래서인지 밤하늘을 잘 보지 않는다. 분명 바라보면 바스라진 채로 힘겹게 빛나는 별하나 쯤은 있을 텐데, 이미 난 별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 ‘이해’ 관계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바꾸거나 감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란 의문은 그런 ‘이해’ 관계에 대한 의문이었고, 내 세상을 지키기 위한 의문이였다.

세상이 좋아져 좋아할만한 노래도 알아서 추천해주지만, 그래도 난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그냥 내가 좋아서 만드는 플레이리스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듣고 싶어서 만드는 이해받지 않아도 좋을 플레이리스트지만, 누군가와 함께 아무말 없이 듣고, 그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도 들어보고 싶다. ‘이해’관계 없이 그냥 그 사람의 세계를 구경하듯이 들어만 보고 싶다.

홍익문고 앞 피아노 part 2

콜리
AUTHOR PROFILE
콜리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