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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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05 · 18

불온한 자유

Editor 왕 잔치

 

 

 

    

 

 

 

    

 

 

 

 

 

 

 

 

 

 

 

 

 

  

 

 

 

   

 

 

 

   

 

 

 

-전공에 다가가기

 

 

 

지난 2월이었다. 나는 생애 첫 프랑스어학원을 등록했고 약간의 긴장과 함께 강의실 문을 열었다. 유창한 불어구사가 전공생으로서는 당연히 가질 목표니까, 학원이면 내 꿈을 이루어 줄 것만 같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불어를 처음 배웠다. 새로운 언어는 꽤 흥미로웠고 어려울 것이 없었다. 무릇, 누구나 기초를 배울 때는 즐겁지 아니한가. 아무튼 첫 불어 수업의 인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1년이 흐르고, 2년이 흘렀다. 다시 내 의지와 상관없이 3학년이 되었고 난 나의 어쭙잖은 불어실력에 불안해졌다. ‘겨울방학에는 꼭 불어공부를 하리라.’라는 다짐으로 ‘신촌신중성프랑스어학원’을 등록했다. 2월 한 달 동안만 다니며 복습하는 개념으로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데 난이도는 내 예상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원은 내 불어실력을 되새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원을 해 건물을 나와 오른쪽으로 쭉 직진하면 신촌역 앞 투썸플레이스 카페가 보인다. 나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해 베이지색 의자에 앉았다. 2월은 투명한 얼음을 뿌리는 듯했다. 그 틈으로 햇살은 간신히 숨만 버티고 있다. 카페의 큰 유리창이 2월을 반사한다. 공책을 펼쳐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는 도중 P의 카톡이 왔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흔쾌히 수락 후 2시간 뒤 우리는 만났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와인을 마셨다. 그 동안 나누지 못한 근황을 터놓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날 P는 나에게 전과를 하였다고 말했다. 예상은 했던 터라 그리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정말 떠난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P는 나처럼 외국 문화와 국제적 이슈에 관심이 많아서 불문과에 진학한 친구다. 나와 다른 점은 나는 문학을 더 좋아했고 P는 국제무역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제, 무역학과로의 전과 승인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P는 불문과를 떠났다. 새내기배움터 때 처음 만나 바로 친해진 녀석이었는데. 서로 프랑스유학, 해외거주에 대해 로망이 가득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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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무역학과 학점이 훨씬 좋아. 더 재밌어.” 

 

 

 

P가 내게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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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찾은 전공이 마냥 꿈이라 믿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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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한 모퉁이에서 본 나무

 

 

 

 

 

 

 

 

 

 

 

-신촌에서의 20살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저녁을 먹고 친언니와 낙동강변을 따라 피어난 유채꽃밭에서 산책을 하는 여유로운 세상이 내 고향이었다. 내 세상은 소박하였지만 단단했다. 태풍이 지나가도 고개를 들 수 있는 벼였고 제 3자가 충격을 가해도 부서지지 않을 바위였다. 온전히 나에게 정성을 들이는 시공간이었다. 내 마을을 사랑했지만 바깥 세상에 버려질 유혹을 참지 못했다. 나는 마을 밖의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아이였고 지구 반대편 갈라파고스가 이상향이던 몽상가였다. 19살의 나는 더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었다. 서울은 무서운 곳으로 인식되었다. 왠지 서울이라고 하면 차가운 인상이 강했다. 나혼자 홍대 중심에 서있으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는 고3 담임 선생님의 적극적인 서울권 대학 입학 지지로 나는 서울을 지원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타의인지 자의인지 ‘서울’은 간절히도 가고 싶게 된 곳으로 바뀌었다. 시골소녀는 그렇게 신촌, 홍대, 강남, 을지로 등등 ‘서울경험’이 소원이 되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시골소녀는 서울에 입성한다. 

 

 

 

어느덧 신촌에서 산 지 햇수로 3년 차가 지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새로운 1년을 보내고 익숙한 듯 신선한 또 한번의 1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현재까지, 3년이 지났다. 그 동안 아주 두꺼운 대하소설에 쉼표가 사라진 듯이 살았다. 바쁜 미싱 작동만 나를 채우고 있었다. 공장의 미싱이 잘도 도는 것처럼 마치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중심 기계를 빠트리고 돌아가고 있는 공장처럼 중앙은 돌아가지 않는데 주변 기계만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서울에 왔는지 잊어버렸다. 서울에 오지 않았어도 프랑스어는 배울 수 있었는데,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할 더 큰 가치가 있나? 그래서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 나에게 하루에도 여러번 대답없는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어를 배우는 이유도 점점 헷갈리기 시작한다. 꿈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걸까. 유효기간이 지나면 꿈을 꾼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던 중 2월의 어느 밤, 신촌의 와인바에서 P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불문학은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무역학과 학점이 훨씬 좋아. 더 재밌어.”

 

 

 

 

 

 

 

  

 

 

 

   

 

 

 

나는 정말 프랑스어와 문학을 좋아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재밌는 것이란 뭘까. 

 

 

 

그녀는 길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내 적성을 찾지 못했다. 나는 회피하고 있었나보다. 아니, 회피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난 내가 적성에 맞는 과를 선택했다고 여겼었다. 지금의 난 그저 내 적성이라고 타협한 것일 뿐이고 그녀처럼 방향을 틀 용기도 없었던 것이었다. 과연 나는 살면서 특정한 무언가에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었던가.

 

 

 

인생의 20살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나이였다. 서울에 온 그날. 홀로 버티는 방법을 터득한 나이에 불과했다. 아무도 모르게 꽁꽁 싸맨 불온함. 아무도 모르게 꽁꽁 싸맨 냉소. 그것이면 충분했다. 가면을 쓴 채 아웅아웅거렸다. 실수할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2018년, 신촌에 첫발을 내딛은 그해를 떠올리면 애수가 꽂힐 뿐이다. 항상 어딜가든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날 눌렀다. 서울이란 곳은 영혼의 그늘을 내어주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끄적인 낙서는 어두운 내용으로 가득했다.

 

 

 

아래는 그 무렵의 낙서이다.

 

 

 

  

 

 

 

  

 

 

 

  

 

 

 

<새벽 세시>

 

 

 

  

 

 

 

  

 

 

 

산산조각난 새벽

 

 

 

북극성도 북극을 잃은

 

 

 

감은 눈보다 어두운 밤 

 

 

 

 

 

 

 

나는 집을 잃어

 

 

 

바람에게 길을 묻는다

 

 

 

바람은 대답도 없이

 

 

 

동쪽으로 떠나간다 

 

 

 

 

 

 

주인 없는 개마냥

 

 

 

이곳저곳 몸만 담그고

 

 

 

가시넝쿨에 나뒹굴듯

 

 

 

여기저기 찔린 심장

 

 

 

 

 

 

 

싸늘한 공기만 자욱하고

 

 

 

세상의 빛이 내게서 등을 돌릴 때

 

 

 

까마득한 그 속을 걷는다

 

 

 

오늘도

 

 

 

나는

 

 

 

침울한

 

 

 

어둠 속에서 절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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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말로 서울에 온 진정한 목적을 찾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왔더라.

 

 

 

목적의 상실은 우울을 낳았다. 무기력하고 소화가 안 되고 사람 만나기도 싫은 나날만 생겨났다.

 

 

 

나 무엇 때문에 왔더라 서울에. 무엇 때문에

 

 

 

기억이 차즘 백지화가 되어갈 때, 도망갔던 꿈을 상기시켰다.

 

 

 

 

 

 

 

자유였다.

 

 

 

 

 

 

 

백색의 자태를 뽐내는 곱디 고운 자유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좇았다. 이곳 저곳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사는 게 내 꿈이었다. 그런 면에서 불문과는 내 꿈과 일치되는 기분이었다. 한국을 벗어나 자유롭게 외국을 누비는 것. 온전한 자유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달이 지난 후에 그 꿈은 명백하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집단의 규범에 종속된 채 살아간다.

 

 

 

꿈은 꿈으로만 잔재하기 때문에 꿈인가보다.

 

 

 

학창시절에 그리던 대학생의 나는 이상을 좇는 자유인이었는데, 아마 이 세상의 완연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 ! 저기 강렬하고 무한한 자유가 내리쬔다.

 

 

 

원하는 건 그곳에서 숨쉬는 것.

 

 

 

평온한 지평선 넘실거린다

 

 

 

서둘러 곧 구멍이 돋을 거야

 

 

 

사람들이 자유 앞으로 줄 섰다.

 

 

 

하나 둘 셋 ··· 백 백 하나 ···

 

 

 

사람들이 걸신 들린 마냥 마구 쑤셔넣는다.

 

 

 

아 ! 자유가 싱크홀에 빠진다.

 

 

 

누군가 땅 아래로 빨아들인다.

 

 

 

지하는 암묵만 자욱하다.

 

 

 

어쩌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쌀 한 톨 만한 자유를 마셨다.

 

 

 

들이마셨다.

 

 

 

내보내진 못했다. 

 

 

 

어쩌면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자유와 여름은 서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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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좇는 불온한 새

 

 

 

지난주, 신촌 대로를 걷다가 방학 때 다녔던 어학원을 지나쳤다. 시커먼 계단에 성인 남성 발 사이즈 정도의 발자국이 눈에 띄었다.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발자국으로 돌렸다. 그 자국은 자유를 가질 수 없겠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어둠이 자욱해지고 간판의 네온사인이 진해진다. 휴대폰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보니 저녁 8시 19분이다. 스크린화면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약간씩 흔들리는 지하철에 내 몸을 맡기며 곰곰이 그 말을 헤아려봤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가볍게 읊조렸다. 자유. 그 정의를 쉽게 짐작하기 어려움을 나는 안다. 완전무결이라는 단어가 불온하듯이 자유도 불온한 단어일 것이라. 불온한 자유- 말이다. 학원이 눈에 밟힌 것은 내가 품을 자유가 프랑스어를 거쳐야만 하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단 것이다. 꿈을 좇을 때마다 난 남들보다 자주 지치고 질려한다. 하루에도 몇 번을 그들과 대립한다. 허무주의가 친구인 듯 자주 만났다. 프랑스는, 나는, 돌고 돌아 내가 찾는 꿈에 회귀한다. 완전하지 않은 그것, 그래서 잘 부서지고 잊히는 그것, 너가 바로 내가 찾던 자유였던 거겠지. 그 염원을 좇아가다보면 그 길 어드메즈음 내가 그 경계선에 서있겠지.

 

 

 

자유는 영원토록 늙지 않는다.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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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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