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취방은 달빛도 닿질 않는 곳
내 옆방에 드디어 새 세입자가 들어왔다. 그동안 몇 명이 저곳을 거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국적도, 목소리도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다. 다들 대학생이라는 점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은 달빛도 닿질 않는 곳이다. 그날은 여름 달이 정말 예쁘게 뜬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밤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달을 사진으로 담은 후, 서로의 짝들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다들 자기들만의 랑데부를 보냈다.
나는 그 사람들 사이를 지나 골목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거리의 불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달은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달이 내 바로 뒤통수에 걸릴 때가 되어서야 나는 자취방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집주인 할머니의 으리으리한 새 아파트, 그리고 내 자취방 앞뒤로 늘어져 있는 지저분한 낡은 원룸 건물들이 완벽한 대조를 이뤘다. 이질적인 블록들이 한데 모아져 있는 곳이 신촌이고, 난 여기에 산다.

이 방과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계단 한 칸 한 칸이 너무 높아 올라갈 때마다 숨이 가빠졌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나와 다르게 아주 멀쩡했다. 내가 문제인 건가? 앞으로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어둑어둑한 방이 보였다. 방이 너무 작아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방 전체를 볼 수가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전에 살던 사람은 방에 디퓨저를 한… 4개쯤은 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출처 모를 불쾌한 냄새가 디퓨저 향을 뚫고 내 콧속에 들어왔다.
“어때요? 이 정도면 깔끔하고 좋죠? 새로 인테리어 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너무 작은 것 같은데요…”
“신촌이잖아요, 여기는 다 그래요.”
그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당일 그 방을 계약했다.

집주인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이래저래 잔소리를 들었다.
“남의 집이니까 꼭 깨끗하게 쓰도록 해. 어휴, 곰팡이 봐. 왜 여름에만 에어컨을 트는지. 계절 상관없이 에어컨을 틀어줘야 곰팡이가 안 생길 텐데 말이야.”
전기세가 무서워 불도 잘 못 키며 살고 있는 내가 입주 첫날 들었던 말이다.
여름 달이 너무 예뻐서 술을 진탕 마셨다. 여름철 방 안 습도계는 자꾸만 90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곤 했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폐를 열고 들이마시는 공기엔 곰팡이 포자가 가득했다. 어항 속에 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살다간 아가미가 돋아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우리 집 같은 곳 없어~ 깨끗하고, 방음 잘 되고.”
나는 입주 첫날부터 화장실 청소만 삼 일을 했다. 방음은 말할 것도 없다. 가벽으로 촘촘히 쪼갠 여러 개의 방들. 소리의 근원지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모든 방들이 같은 소리를 공유하며 산다. 방에는 물이 차올랐고 천장은 일렁거렸다. 뻐끔. 뻐끔. 행여나 다른 방에까지 소리가 들릴까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 위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옆방을 본 모두들 같은 말을 했다.
“여기 너무 좁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신촌이잖아요.”
신촌에 있는 대학들이 한꺼번에 다 망하지 않는 이상, 이 질문과 답변은 똑같을 것 같다.
이 어항 속에 산 지도 벌써 한 해가 지났다. 겨울 지나 다시 여름이 도래할 봄, 지금의 나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 신촌에 적응한 것 같다. 적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미쳐버린 신촌 집값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자취방은 햇빛도 달빛도 들지 않는 북향이지만 언제 아침이 오고 밤이 찾아왔는지 알 수 있다. 방음 수준은 형편없지만 상관없다. 되려 다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이라는 게 실감이 나서 내게 일종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내 옆집-드디어 새로운 세입자를 맞이한 그곳-에 살던 사람은 밤 12시에 들어오곤 했었다. 아마도 늦은 시간까지 알바를 하고 오는 것 같았다. 내 방 건너건너에는 서강대 남학생이 산다고 들었는데, 그 방에선 가끔씩 변기를 부여잡고 뱃속의 뭔가를 꺼내는 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시험기간이 막 지나갔을 때쯤엔 어김없이 들렸던 것 같다. 내 위층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산다. 타지에서 공부하느라 많이 외로운지, 그 학생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집에 들어간다.
그렇게 어항 속에서도 다들 잘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낮에는 젊음을 태우고 밤에는 꿈을 꾼다. 청춘을 예찬하다가도 홀로 침전하는 느낌에 잠시 숨이 막혀오곤 한다. 열의에 넘쳐 작열하다가도 금방 식어버린다. 침대에 누워 낮은 천장을 바라보다 유한함에 절망한다. 하지만 이내 태동하며 다시 젊음을 태우고 꿈을 꾼다. 어항 속에서 닿지도 않는 햇빛과 달빛을 기꺼이 사랑으로 안아본다. 처음으로의 영원한 회귀를 꿈꾸는 이들이 이곳, 신촌에 산다.

21세기가 오기 전 마지막 10년대에 지어진 이 낡은 건물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대학생들.
그리고 그 대학생들이 머물고 간 자리에 다시 들어올 또 다른 대학생들.
언젠가 내 방에 들어올 대학생인 당신을 생각해 본다.
베개에 묻힐 당신의 목소리를, 어항 벽에 부딪혀 멍이 하나 둘 늘어갈 당신의 팔다리를 생각해 본다. 결국 돋아날 당신의 아가미 또한 생각해 본다.
그러나 당신의 젊음은 이 비좁은 어항에 비하면 너무나 과분하다.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요원한 삶을 살아갈 당신의 젊음은 찬란하다.
때문에 지금의 난, 먼 미래에 존재할 당신의 젊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젊음을 사랑하는 나는
더럽고, 좁고, 냄새나는 이 공간에 사랑을 조금이라도 채워 넘겨주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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