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을 찾습니다
우리집을 찾습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곳
에디터 조각
- 가만히 있기
나는 태생적으로 게으름과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게으름과 안정이라는 단어가 양립 가능한가? 미안하지만, 내 세계에서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 안정이자 안전이다.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아도 나를 내치지 않는 유일한 공간은 카페도, 학교도 아닌, 우리집이다. 우리집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나의 외출을 반기지 않으면서도, 나갈 일이 없는 나를 종종 안쓰러워했다. 그 안쓰러움에 잔뜩 엉겨 붙어있는 동정은 당당한 나를 되려 움츠리게 했다.
외출 일정이 없는 날이면, 정오가 다 되어갈 때 즈음 느즈막하게 눈을 뜨고선 한참을 뒤척인다. 졸음을 물리쳐보려는 나름의 반항이지만, 어젯밤에 닫는 것을 깜빡한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젖은 풀냄새와 선선한 공기를 느끼는 와중에 다시 잠이 든… 안 되지, 잠 들면 안 돼. 후딱 씻고 오예스 낱개 한 봉지를 뜯어 대충 당분을 채운 다음 발이 다섯 개 달린 책상 의자에 앉아 밀린 과제와 인터넷 강의에 집중한다. 거짓말이다. 정확히는, 집중한다는 게 거짓말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일기에 빼곡히 채우거나 전자 피아노를 뚱땅거리기도 하고, 사이버 문물을 적극 활용해 대구에 사는 친구와 함께 밤새 과제를 하기도 한다. 대구에 사는 그 친구는 아마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일곱 개의 발이 달린 기괴한 내 의자의 모습을 말이다. 그동안, 부지런한 지구는 그새 한 바퀴를 다 돌아 내가 사는 곳에 내일의 해를 띄우기 시작한다. 주말을 제외한 모든 날은 이렇게 지극히 정적인 하루의 반복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지만 변한 것은 없었으며 과제가 많은 것을 제외하면, 내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새로운 해가 뜰 때 즈음 과제를 마치고 의자에서 힘겹게 일어나 방 불을 껐는데 방 안이 검지 않고, 파랬다. 새벽이 만들어낸 이 방 안 푸른 빛은 내 침대와 노트북,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오예스 봉지까지 새파랗게 물들일 만큼 강렬해서, 내가 지금 저 침대에 눕는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방을 가라앉히고, 이 방 모든 것의 핏기를 앗아가는 퍼어런 죽음의 빛이었다. 매정하게 시작된 새로운 하루는, 아직 전 날의 하루를 마무리하지 못한 사람의 숨을 가져가려고 했다. 내 방이 허락없이 밀려온 거대한 파도에 완전히 잠기려고 한 그 때, 난 내 두 팔과 두 다리를 힘차게 움직여 집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 걷기
내 정확한 심경을 정의내리지 못한 채 그 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한 다음,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운동하는 것이 우리집 사람들은 땀을 비 오듯이 쏟으며 자전거를 타는 나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주로 심경의 변화에 관한 물음이었다. 갑자기? 열심히 하네? 나는 대답했다,
“건강해지고 싶어, 요즘 같은 날일수록 면역력 키우는 게 중요하잖아.”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우리 같이 나가서 운동하자’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 거짓말.
사실은 사라지는 게 무서워서 달리는 거잖아. 아니면 사라지고 싶은가?
네 마음 어딘가에 건드리면 아픈 염증이 났구나.
앉아있다는 건 참 편하고도 불편한 일이야. 나중엔 너가 일어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하고 말거야.
아하, 너 도망가고 싶은 거구나?
생활기록부 개인정보 쓸 때도 생각나지 않던 내 특기가 떠올랐다. ‘최선을 다해 괜찮아 보이기.’ 여태껏 이 척박한 일상에 무뎌진 척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침대와 의자를 오가는 매일을 사는 동안 서서히 건조해지는 내 뼈마디와 근육들을 모른 척하고, 그저 과제만 잘 끝내면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고 이번 학기를 버텨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근거 없는 바람이었다. 그저 버티면 괜찮아지는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있는 이상, 밖에 나가 공부를 하고 돈을 버는 가족들을 대신해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일조해야 했다. 적어도 그들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더러운 집구석을 보며 한숨을 내뱉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우리 네 식구 중 누구도 그러한 규칙을 입 밖으로 내어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결정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이 집에서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므로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 근거였다. 최선을 다해 그 규칙을 따르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루 깜빡한 5월의 어느 날, 부모님은 내게 상상을 초월하는 화를 쏟아냈고 급기야 나와 식사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괜찮은 척,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러나 핏기를 잃은 손이 금세 차가워졌고, 집안일이 내 인생의 제1정체성을 차지한 듯한 거북한 느낌에 속이 썩어 들었다. 각자 방으로 흩어진 가족들을 뒤로 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집을 나와 운동 트랙으로 향했다.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인 느낌이 들 만큼 길고 끝없는 트랙 위를 걷다가, 숨차게 뛰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깨달은 것은 결국 내가 집 밖을 나왔다는 것, 그리고 바깥 공기는 방 안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공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상쾌하고 맑았다는 것이다. 이대로만 있으면, 새벽의 방을 감싸돌았던 푸른 빛이 날 찾아와 먹어버린다고 해도 죽지 않을 것 같았다.
있는 힘껏 숨을 들이키고, 한껏 내쉬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아까 방에서 잘못 들이킨 푸른 물이 쪼록쪼록 뱉어지는 듯 했다. 그 물에선 씽크대용 세제 향이 났다. 그 푸른 파도가 내 방에서 아직 완전히 밀려나가지 않았었나보다. 감상은 그게 다였다. 내 몸에 남아있던 퍼런 색을 모두 비우고 나니, 다시 채우고 싶었다. 어두컴컴한 파랑 말고 내가 좋아하는 색과 빛으로 가득찬 바다에서 유영하는 상상에 빠졌다. 나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배움에 목마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상상 속의 바다는, 신촌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신촌에 가고 싶었다.

- 달리기
신촌에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친구들, 동기들, 그리고 밴드. 내 스무 살 생활의 큰 구석을 차지하는 기억들이 그 곳에 다 있다. 신촌에서의 나는 미움받은 기억이 없다. 내가 신촌을 미워한 적은 있어도, 신촌이 나를 미워한 적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신촌에 간지 오래되어 흐릿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신촌에는 내가 그리워하던 사랑이 있었다. 맞아, 신촌엔 사랑이 있다. 신촌을 유달리 사랑했던 작년 가을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끝이 없는 트랙을 걸었다.
신촌에, 정확히는 신촌 바로 옆동네에 살고 계신 할머니께 가기로 마음먹은 날엔 집에서 일찍 일어나 배낭에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대충 쑤셔넣는다. 그 위에 노트북과 마우스를 얹고 각종 인쇄물을 우겨넣은 다음 교통카드가 든 지갑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오는 것이다. 배낭이 잡동사니로 가득 찬 탓에 모양은 울퉁불퉁 이상하지만 신경쓰이지 않는다. 오후 5시, 학교 수업을 마치면, 지하철역이 아닌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퇴근을 시작하는 직장인들로 가득 찬 천안행 만원 열차에 몸을 우겨넣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제멋대로 나댄다. 학교 후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얼마 있지 않아 도착한 파란 버스에 올라타 아무 좌석에나 쏟아지듯 앉아 창가에 비친 노을을 가만히 바라본다. 빛은 창가에 앉은 어느 탑승객의 눈살을 조금 찌푸리게 한 점을 제외하면 꽤 은은하게 버스 안을 비췄다. 세브란스병원 유리창에 비친 빛은 주황 같기도, 초록 같기도 했다. 잠깐 두 눈동자의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려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빛과 색이 뒤엉켜 아주 아름다운 한 폭의 물결이 일렁였다. 자기만한 배낭을 앞으로 멘 오지랖 넓은 한 대학생은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저 주홍빛 노을이 새겨지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한 작은 선물로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해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10분 정도 걸렸나보다.
– 어서 와라, 버스는 잘 타고 왔니, 여기가 교통이 좋아 다행이다.
밥은 먹었니, 배 안 고프니?
손녀의 눈동자에 할머니의 모습이 살짝 비쳤다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와이프와 딸과 손녀와 함께 저녁으로 회를 먹게 됐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손녀의 대학 생활은 어떤지, 그리고 내 아들과 며느리는 잘 있는지가 그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6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손녀와 조부모님은 서로에 대한 사랑 하나로 같은 시공간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요즘 할머니가 다니는 노래 교실에서 핫한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이야기가 하이라이트였다.

– snow라고? 별 신통한 게 다 있데? 내 얼굴에 충무공 장군 마냥 수염이 붙어가지고 너무 웃겨!
할머니의 한 친구분은 충무공 필터(?)를 입힌 자신의 사진을 찍어 남편분께 보여드렸는데, 남편분께서 이 X은 누구냐며 딴 영감 만나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할머니 말에 따르면,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 뻔했다고 한다. 사람이 웃다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현실로 돌아올수록 흐려지는 신촌의 나무 냄새, 노을빛, 할머니의 서투른 사랑을 놓치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결국 내가 이 끝이 없는 트랙을 대체 몇 바퀴째 돌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사람은 다 지나간 과거를 붙잡으려다 종종 지금을 잊곤 한다.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기계를 꺼내 내 걸음 수를 확인했다.
– 12369걸음. 그 중 건강한 걸음은 11449걸음. 399kcal 소모. 9.57km.
오, 재수없어. 거짓말이라곤 할 줄 모르는 이 기계의 솔직함이 부러워 괜히 액정 화면을 툭, 툭, 건드렸다. ‘다 지나간 일들을 – 윤지영’. 재생 중이던 노래 스트리밍 화면이 켜진 채로 나는 이 기계에게 괜히 한 마디 덧붙였다.
너는 내가 얼마나 걸었는지는 알지만, 어떻게 걸었는지는 모를 걸.
넌 당연히 내가 앞으로 걸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나는 뒤로 걷고 있었어.
지금 이 자리에서 12369걸음 물러나 너가 모르는 어디론가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거야.
거기서 초여름의 풀 냄새를 잔뜩 맡고 왔어. 그리고 얇은 천 위에 올려져 있던 할머니의 편지 뒷면에
내 사랑을 큰 글씨로 빼곡히 적었지.
북치기박치기 말고는 딱히 별 다른 말을 하지 않는 빅스비의 특기는 ‘들어주기’였고, 그 특기는 사용자에게 어떤 말보다 더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여전히 내가 발을 올리고 있는 이 트랙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나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건넸다. 나는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에 일을 나가고, 내가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외출을 나간다고. 아빠가 나에게 스치듯 건넨 그 미지근한 말 덩어리는 지금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알고 있었으나 모른 척해왔던 것. 나왔던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나오는 것보다 돌아가는 게 더 어렵다. 도망치듯 버렸던 나의 일부를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꽤나 고통스럽지만 멋진 일이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으나,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색깔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든 나오고 돌아갈 수 있다. 거닐던 트랙 중간을 빠져나와 집에 가는 가장 빠른 길로 걸었다.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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