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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06 · 15

수조

Editor 바녕

0.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후,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선 사진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11번째 필름을 들고 여느 때와 같이 단골 사진관으로 향했다. 

가져간 필름을 맡기고 새로운 필름 한 통을 사려고 했다. 아저씨는 난처한 얼굴로,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장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재고가 없다고 했다. 다만…

 

흑백 필름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저씨는 디지털이 필름을 못 따라잡는 유일한 분야가 흑백이라며 나를 유혹했다. 나는 홀딱 넘어가 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그것을 사고야 말았다.

훗날, 사진관에서 이메일로 보내준 파일을 열어보고 아저씨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1.

은 시각을 감각의 제왕 자리에 올린 주요 공신 중 하나다. 

색은 어떤 것을 마주쳤을 때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다. 따라서 색은 대상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우리가 대상과 맺는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이 점을 적극 이용한다. 미묘하게 다른 수많은 색을 하나로 묶어 이름(빨간색, 초록색…)을 붙이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각각의 색에 특정한 의미를 연결했다.

색은 대상에서 반사된 빛과 인간의 시신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수많은 동물들에게 사과는 빨갛지 않고, 바나나는 노랗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있어 색은 사과나 바나나 안에 내재된 어떤 본질이나 속성 같은게 되었다. 

이 사진에서 색이 보이는 것만 같은 느낌은 과연 기분탓일까?

 

꽃의 아름다움은 색에서 나오는가?

 

2.

세계는 밑도끝도 없이 흘러가는 강이다. 모든 것은 강물과도 같이 서로 뒤섞이고, 매순간 변화하면서 한시도 쉬지않고 나아간다. 

인간이 했고, 하는 중이고, 앞으로도 할 모든 일들은 강물을 떠서 수조 안에 담아 놓고 ‘이게 강물이야!’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내 방 창문 밖에는 작은 숲이 있다. 숲은 한낮의 햇살을 받을 때 초록빛으로 빛나고, 해가 질 무렵에는 주황빛으로 물들며, 밤이 되면 어둠에 잠겨 형체를 잃어버린다. 가끔 답답해지면 슬리퍼를 끌고 집을 나서 숲 안에 직접 들어가기도 한다. 잎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조그만 나무와, 밑에서 올려다보는 커다란 나무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모든 존재는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형성하고, 덩어리 안에서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나는 단순히 움직이거나 형태가 달라지는, 물리적인 변화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호관계를 맺는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또한 그 대상이 시공간의 어떤 좌표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존재는 무한한 차원을 획득한다.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거둔 모든 승리는,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를 거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는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측면 중 일부를 선택하여, 대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축소한다. 우리는 이름을 붙이고,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규칙을 찾고, 범주를 만들어 분류한다. 모든 것이 상호작용으로 연결된 하나의 덩어리에서 존재를 따로 떼어내어, 고정적이고 항구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수조 안에 떠담은 물은 여전히 ‘강물’인가?

우리는 직접 만든 비좁은 수조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수조는 답답하지만 천적들이 도사리는 강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3.

흑백 사진은 우리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수조 중 하나를 잠시나마 깨뜨린다. 우리는 보다 넓은 공간에서 헤엄치면서, 사진에 담긴 대상을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색이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많은 것들이  흑백 사진 안에서는 살아 숨쉰다. 우리는 흑백 사진에서 빛의 흐름과 디테일한 요소들을 더 잘 볼 수 있다. 

플레이 버스 인근 공원에 서 있는 김현식 동상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색의 빈자리를 다른 감각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중고딩 때 배웠듯 감각은 종종 다른 감각으로 전이되는데(공감각적 심상이었나?), 흑백 사진의 경우 시각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이되는 것은 바로 촉각이다.

흑백 사진은 컬러 사진보다 피사체의 질감을 훨씬 잘 표현한다. 우리는 흑백 사진을 눈으로 더듬으며, 표면의 거칢과 부드러움을 느낀다.

거친 벽돌 바닥에 놓인 말랑말랑한 꽃잎

 

4.

흑백 필름을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더 많은 수조에 구멍을 뚫은 후, 여태껏 놓치고 지나간 것들을 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어폰을 빼고 생각을 비운 후 발 닿는 대로, 며칠에 걸쳐서 신촌을 걸었다. 같은 거리를 두 번 세 번씩 걸으며,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밋밋한 풍경에 삐죽 튀어나온 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관찰한 후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다. 이를 36번 반복했다.

이는 약간의 뻔뻔함을 필요로 했는데, 왜냐하면 나의 목표물 중 대다수가 길바닥 혹은 허공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피사체를 제대로 담기 위해 나는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바닥에 쪼그려 앉거나 고개를 뒤로 꺾어야 했다. 전방을 똑바로 보고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쪼그려 앉는/고개를 꺾는 행위는 상상 이상으로 튀고 이질적이다. 몇몇 사람들이 나와 카메라 렌즈가 가리키는 곳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훑고는 가던 방향으로 다시 흘러갔다.

지하철의 소리와 냄새가 난다.

 

고개를 뒤로 꺾기 전까진 있는지도 몰랐다.

 

5.

버려진 것들 역시 나의 목표물 중 하나였다. 이들은 ‘쓸모’, ‘실용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친구들이다. 

버려진 것들은 구석지고 외딴 곳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길 위에서도 죽은듯이 자고 있다. 그러나 현란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은  차분하고 조용한 그들에게 좀처럼 가닿지 않는다. 

대체 언제적 사이다여 저건?!

 

이들은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조 안으로 금의환향하기도 한다. 

 

6.

나는 반영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본명의 의미(물 河에 비친 하늘 旻)가 마음에 들어 A에 비친 B의 그림자(反影)라는 이미지에 애정을 품었다.

그러다 사진에 취미를 붙인 후 다양한 반영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B가 A에 비치는 현상(反映)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울을 볼 때 표면에 비치는 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거울의 존재는 거의 잊혀진다. 이는 거울이 어떤 것을 그대로 ‘복사’한다는 우리의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거울에 굴곡이 있거나 거울의 각도가 틀어져 있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거울의 고유한 특성이, 비치는 대상을 왜곡한다. 우리는 낯설고 색다른 상을 봤을 때 비로소 거울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다. 

거울의 굴곡

 

거울의 각도

 

7.

우리는 반영을 복사로 착각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 다른 사물의 존재에 대해 너무나도 둔감한 채로, 그들의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나르키소스(Narcissus)의 도취 상태에 빠지게 한다. 샘에 비친 자신의 상에 도취된 사람은 샘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는다.

상은 ‘나’와 내가 비치는 ‘타자’를 은연중에 동일시하도록 한다. 이는 어떤 현상을 완벽하게 규명할 수 있다는 오만과 나의 어떤 행동이 타인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낳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와 우리는, 반영이 상호작용임을 놓치고 있다.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면 물에 비친 물체는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잡힌다. 또한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만지기 위해 샘에 손을 대는 순간, 물결이 일어 상은 이내 흩어져 버린다. 우리는 순식간에 상과 샘(타자)에 대한 통제감을 잃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조가 필요한 것이다. 물은 잔잔하고 고요한 표면을 유지해 우리를 ‘그대로’ 비춰야 하므로.

 

오전에 비가 잠깐 내린 어느 날, 나는 오로지 물 웅덩이에 비친 신촌을 담기 위해서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달려갔다. 더러운 물이 담긴 웅덩이를 여기저기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뭔가 이세계로 향하는 통로같기도 하다.

 

더러운 물에 비친 나무를 보니 문득 가로수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나는 실시간 화상 수업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은 네모난 틀로 구획된 각자만의 공간에 앉아 수업을 하거나 수업을 듣고 있다. 공간이라는 매개를 잃어버린 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다가 이내 흩어져 버리는 듯했다. 

그보다는 네모난 틀 안에서 움직이는 나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몇 시간 씩이나 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은 상당히 요상한 일이다.

사실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고 해도 별다를 건 없다.

 

9.

인간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강력한 숙적을 점차 극복해 나감에 따라 모든 수조의 벽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항상 좁고 번잡한 수조를 끊임없이 한탄하면서도, 한편으론 수조의 벽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을 불안해하며, 도통 수조를 깨뜨리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나의/우리의 수조 벽 너머에 있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때로는 그들을 미워하고 비웃는다.

수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결코 비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수조 안에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만반의 준비 없이 수조를 벗어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10.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수많은 수조들을 깨 왔다. 

수조의 벽이 더 단단했을 때도.

강을 항상 그리워하기에.

수조와 강, 그 사이에 놓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바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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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녕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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