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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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1 · 05 · 17

신촌에게

Editor 나무

뭐랄까,

숨 막힐 정도로 지극한 현실이면서도 가끔은 꿈이고 낭만인 곳.

 

 

2021년 5월,

모처럼 마주했던 햇살 좋은 날에.

 

안녕,

‘미리미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일정에 늦지 않기 위해 주로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던 곳. 길눈도 밝지 않은 데다 무심하기까지 해서, 가보고 또 가봤던 길도 외우지 못해 휴대폰 속 작은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걷기 일쑤였던 곳. 

그래서였을까, 질릴 만큼 당연했음에도 정작 잘 알지는 못했던 곳. 특별히 가고 싶은 목적지였기보다는 그저 가까우니, 단지 만만하니 불러봤던 이름. 그냥 신촌에서 볼까?’ 

 

그래서 설렘보다는 권태의 감정과 더 어울렸던 너.

 

신촌에게.

 

 

 

아마 너랑 가장 진득하게 시간을 보냈던 건 주로 시험기간, 24시 카페에서였지. 몇 번이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매번 벼락치기를 하던 시험 기간이면 너를 찾아가, 하루 남은 시험 과목을 공부한다고 씁쓸한 커피를 밤새 들이키던 게 기억나. 조용한 도서관을 두고 굳이 시끄러운 카페까지 기어 들어와 집중이 안 된다고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생각나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고 몸까지 지쳤을 때, 내 탓을 하기는 또 싫어서 괜한 짜증을 부릴만한 대상이 필요할 때 말이야. 아마 그땐 그게 너였나 봐. 그렇게 내가 만든 거짓 짜증 속에 너를 가둬놓고, 그저 ‘하루 종일 바쁘게 굴러가며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는 곳’이라고 오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못된 심보를 가진 나에게도, 너는 잊을 만하면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줬거든. 예상치 못하게 카페에서 만난, 코앞의 시험은 잠시 제쳐둘 만큼 반가운 얼굴이라든가, 밤을 새고 돌아가던 길, 나를 맞아주던 산뜻한 새소리와 핑크빛 일출 같은 것들 말이야. 물론 자주 있던 일은 아니긴 했지. 그런데 가끔 찾아오는 그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때로는 조금 잘 나온 성적보다 기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고. 누가 보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철없는 소리라고 하려나? 그렇다면 더더욱, 철없어도 될 시간들을 철없게 보낼 수 있게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둬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가 종종 별로라고 말했던 것들도 있었지. 곳곳에 위치한 술집 골목들, 특유의 답답하고 텁텁한 공기,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컴컴한 기운 같은 것들말이야. 간혹, 시끄럽게 귓등을 때려 자꾸만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데시벨 높은 목소리 같은 것들도.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틈에서 위로받았던 기억도 되게 많은 것 같아.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웠는지,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종종 압도되었었거든. 그럴 때면 어디 속 시원히 말도 못 하고 눈물 없는 울음만 삼키곤 했어. 그런데 등 떠밀려 갔던 그 곳에서 마주한, 그 바보 같은 소리들이랑 바보 같은 분위기가 또 그 상황을 이겨 낼 힘이 되기도 하더라고? 사실, 알맹이 없는 소리를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맛도 없는 술이나 마시는 시간들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어. 그런데 그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시간이, 때로는 하루를 망쳐버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정말이지 세상 제일가는 겁쟁이에,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던 나를 이만큼은 무모하게 만들어줘서, 이만큼은 삶을 즐기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고마운 게 참 많은 너인데, 어쩌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너는 내게 선물 그 자체였던 것 같기도 해. 최선이 뭘까,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 굴리며 세운 계획들로 점철된 일상 속, 툭 하고 끼어들어 예상치 못한 최고의 것을 선사해주는 선물말이야. 

아마 너랑 본격적으로 친해졌던 건 내가 지금의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부터였지? 별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귀찮게 오라고 한다고, 당시엔 친구도 없던 내가 툴툴대며 입학식에 참여했던 날. 벌써 꽤나 오래 지난 일이지만 아직까지 유난히도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 교수님들이 ‘선물’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셨던 순간. 사실 얼마 전에 유튜브에 영상을 검색해봤는데, 뒤이어 불렸던 다른 두 곡은 고화질 영상으로 잘만 돌아다니면서 이 노래만 쏙 빠져있지 뭐야? 서운하지만 어쩌겠어. 그런데, 내게 유난히 소중히 여겨졌던 이 노래가 오직 내 노트북에만 저장되어 있다니  오히려 더,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이었단 생각이 들기도 해. 모두가 똑같이 기념하는 것보단, 내게만 특별한 것이 더 소중하기도 하잖아? 너를 함께 공유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게 있어 너의 의미가 유일한 것처럼 말이야.

 

 

 

사실 그동안은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너였는데, 요새 네 생각이 참 많이 나더라고. 끝을 알 수 없이 연장되는 팬데믹 상황이라든가, 눈 깜짝할 새에 자꾸만 반 토막 나버리는 내 남은 학기 수 같은 걸 떠올려보면 무섭기까지 하더라. 머지않아 소중한 네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까 봐, 혹은 내가 너무 많이 변하고 난 후에야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봐. 그래서인지, 특별한 날이면 신촌만큼은 피해서 사람들을 만났던 내가 요새는 자꾸만 네 근처를 맴도는 걸 보면서 스스로도 많이 놀라.

 

내가 너와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꾸만 둥둥 뜬 채 부유하던 나를 밀어내지 않아줘서 고마워. 오히려 너를 미워했던 순간의 나까지도 포용해 줘서, 이런 내게도 많은 것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가장 좋은 시기에 나타나 너무도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 준 너는, 내게 최고의 선물이었어.

 

너와의 사 년을 추억하며, 나무 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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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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