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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4 · 03 · 25

일상의 형상, 마음의 균형

Editor 쿠이

 봄이면 유독 맥을 못 춘다. 정확히 말하자면, 3월의 초봄에 특히 그렇다. 더 이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새순은 아직 돋아나기 전의 애매한 기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더 예민해진 성질 탓에 평소라면 웃을 일에도 선뜻 미소가 나질 않는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온통 널브러진 책상 위가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봄에도 어김없이… … . 창밖을 바라보며 책상 위의 선인장을 괜스레 매만졌다. 날씨가 흐린 탓에 하늘이 희었다. 바깥에는 봄 답지 않은 쌀쌀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휘청인다는 말은 어쩜 단어의 소리도 그 모양새 같은지. 휙-, 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옆으로 스러지는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 발목이 약한 나는 실제로도 잘 넘어지는 편이기도 하다. 초봄에 마음이 휘청이는 탓은 어디가 약해서일까.

 

 일상을 살아내기가 버거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씩씩하게 보내는 하루다. 나를 제자리에 붙들어줄 존재는 나의 일상뿐인 걸. 하루하루의 관성에 몸을 싣는 것이다. 넘어지는 나를 받아줄 거라며 상대방을 믿고, 눈을 감은 채 뒤로 몸을 누이는 신뢰 게임(Trust Fall)처럼. 넘어지는 나를 받쳐줄 일상의 힘을 믿고 체중을 싣는다. 결국은 이 위태로움 또한 지나가리.

싱숭생숭한 기분은 도통 갈무리할 수가 없지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강의시간 사이에 조금은 빠듯하지만 전시 관람 일정을 끼워보았다. 긴 하루 중 잠시나마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오늘의 이정표를 꼭 쥐고 전시장을 향해 나선다.

한낮의 신촌은 고요하다. 골목골목을 지나 신촌문화관에 다다랐다.

 

 

일상의 형상, 마음의 균형

김란희, 김수연 作

 

projectify 기획전

 

김란희는 일상의 풍경에서 애정을 담은 사물을 화폭에 가져와 *담한 채색으로 한지의 질감을 살려 정갈한 풍경을 그려낸다.

*담하다(淡하다) : 1) 빛이 엷다 2)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그의 작업은 책가도라는 만화를 접한 것에서 변화를 맞는다. 책가도는 조선시대의 책 그림으로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그림이다. 아끼는 책과 소망을 담은 아름다운 기물을 담박하게 그려내는 표현법과 삶의 이야기를 함께 더하는 책가도의 의미는 그가 지금 화폭에 담는 정물들과 맥을 같이 한다. 작가의 시선에 닿는 생활의 소소한 사물들이 하나의 주제가 될 때 그의 소박한 일상도 하나의 중심이 된다.”

(projectify 전시 소개글 中)

 

“정물이 가져오는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작가는 빛과 그림자의 과한 표현을 배제하고 원근을 최소화한다. 바탕에 진한 색을 먼저 올리고 그 위에 연한 색을 발라 밑의 색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도록 하는 채색의 담박한 멋으로 드러나는 넉넉한 여백은 한지의 질감과 조화를 이루고 그의 작업에 맑은 정서를 더한다.”

(projectify 전시 소개글 中)

 

일상의 풍경 속 사물을 화폭에 가져와, 진한 색의 바탕 위로 연한 채색을 한 겹 한 겹 올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파랑새를 찾은 우화의 주인공처럼 새삼스러운 삶의 비유를 발견한다.

수 번의 붓질이 겹쳐져 그려진 그림처럼, 삶 또한 여러 겹의 일상이 겹쳐져 완성되는 것.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일상의 의미를 김란희 작가의 작품을 통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다.

일상 속 오브제들로 채워지는 개인의 삶과 그만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에 대해서 사유하고, 저마다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을 다른 이들의 삶을 떠올리면서 모든 이의 하루하루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깨닫는다.

 

일상의 형상은 삶의 중심을 잡는 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공중에 떠 있는 나의 발끝에 무게를 달아

장엄한 중력의 힘으로 나를 현실의 지면 위로 데려다 놓는다.

 

“김수연은 전통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의 모던한 미로 이어지는 그만의 선과 면을 만들어낸다. 그가 선보이는 행잉 발은 전통이 전하는 고유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여 담백하면서도 단정한 조형미를 드러낸다. 한땀 한땀 이어가는 바느질에 담긴 매일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공간에 따스한 언어를 가져온다.

행잉 발의 마지막 과정은 돌을 매어 다는 것이다. 그 작은 무게는 문장을 마무리 짓는 마침표처럼 넓은 면으로 이루어진 행잉 발에 균형의 미감을 자아낸다.”

(projectify 전시 소개글 中)

 

“… 매일을 아끼는 마음은 쉽게 나 자신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나의 마음을 채우는 문장으로 하나하나 자리할 때 하루에 담기는 이야기가 풍성해질 것이다.”

(projectify 전시 소개글 中)

 

 

전시의 메시지가 텅 빈 듯 공명하던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전시를 보고 깨달은 일상의 의미를 재차 곱씹었다.

삶은 일상의 합이므로, 매일을 아끼는 마음은 삶을 사랑하는 마음. 일상의 형상은 곧 삶의 형상이나 마찬가지.

꼭꼭 씹어 문장이 아주 작은 알갱이가 되어 마치 소화가 잘 되라는 듯이, 몸과 정신으로 모조리 흡수되어 나와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듯이. 나의 하루가 어떻게 되든 말든 무관심한 듯이 보일 정도로 무기력한 행동 뒤에 가려진, 실은 내가 잘 살기를 어느 누구보다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한껏 실어서. 여느 때와 같은 귀갓길이지만, 어제에 비해 조금은 힘이 실린 발걸음에서는 꽤나 경쾌한 소리가 났다.

 

3월 20일,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라고 한다. 때가 될 때마다 심심찮게 들리는 절기 소식이지만 이번에는 감회가 남다르다. 하나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기분에 한결 긴장이 풀어지는 듯하다. 오늘 하루 낮과 밤의 길이처럼, 비로소 내 마음의 균형도 맞아지는 순간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2마길 14 신촌문화관 2층

13:00 – 19:00(화-토). 일요일, 월요일 휴관

2024.03.15 – 2024.04.06

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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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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