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인용집 : 일곱 개의 조각들 (上)
거울을 통해서만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이들은 일종의 ‘막’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 막은 외부에서 얻은 이미지나 언어, 기타 감각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만들어진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서로 다른 색료와 화학물을 녹여 굳히고, 문양을 만들듯이 이어붙여 탄생한 견고한 작품과도 같다. 살아온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달라 각자 다른 막이 만들어진 탓에, 우리는 같은 것도 다르게 본다. 아예 상반된 색채로, 언어로, 소리로, 또 촉각으로 감지하기도 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해주는 게 다름 아닌 외부의 조각들이라는 사실은 삶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이야기한다. 살아간다는 건 하나의 거대한 인용집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인용(引用): 남의 말이나 글을 자신의 말이나 글 속에 끌어 씀.
끌 인, 쓸 용.
타인의 언어를 끌어와 자신의 세상을 만드는 것, 이는 끊임없는 이동이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의 말과 글을 통해 더 멀리, 넓게 나아갈 수 있으니까. 땅과 물과 빛의 도움으로 뿌리를 뻗어내리는 나무처럼, 혼자서는 이르지 못할 사유와 감각에 다다른다. 지하 속 우주로 들어가거나 타자의 삶을 살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이동하고 나면 우리의 막은 견고한 장벽이 아닌 환한 창이 되어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도시를, 신촌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창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모인 잔치의 에디터들이 각자의 인용집을 펼쳐 신촌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자유롭게 이동하며 만들어낸, 여러 갈래와 빛깔로 뻗어나가는 일곱 개의 조각들이다.
*각 글에서 볼드, 이탤릭체로 표시된 부분은 모두 인용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Underground oddity
에디터 개굴

Space oddity – David Bowie(1969)
*글과 함께 감상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Take your protein pills
and put your helmet on
“다음순서에요 스탠바이 해주세요.”
우주비행사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인간이 맨몸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힘을 뚫고 하늘에 구멍을 낸다고 한다. 그 구멍을 통과하고 우주선에서 나와 바라보는, 그 흑색 바다 위에 떠있는 푸르른 구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한편 하늘에서 시선을 돌려,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무처럼 자라있는 숲 사이의 신촌 골목길로 들어서면 길거리에 뚫린 구멍들이 우리를 지하로 안내한다. 억지로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알 수 있는 작은 구멍들 말이다. 그 구멍을 통해 신촌의 지하로 내려가면 어둠 속 별빛 같은 조명들이 각자의 궤도를 돌고 있는 또다른 우주, 공연장들이 신촌 땅 아래 펼쳐진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그 우주를 탐험하는 비행사들은 떨리는 마음을 간직한 채, 지하의 우주복인 악기들을 꺼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륙 전 체크리스트를 안내하는 방송처럼 자신들의 순서를 알려주는 진행자의 사인을 듣고 각자의 우주복을 착용한다.

Ground Control to Major Tom
Commencing countdown,
engines on
Check ignition
and may God’s love be with you
“다음 팀 입장하실게요!”
먼저 지하의 우주에 당도한 비행사들의 엔딩곡과 동시에 카운트다운도 시작된다. 뒤에 대기중인 이들의 마음속 엔진은 달아오르고, 불티같은 새빨간 액체들이 더욱 빠르게 몸속에서 튀어오른다.
그러다보면 곡이 끝나게 되고, 카운트다운은 0을 가리키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몸을 감싼다. 엔진을 둘러싼 붉은 액체들이 폭발한 것이다.
그렇게 동력을 얻은 비행사들은 우주선이 발사되듯 천천히 무대 위로 발걸음을 내딛고, 착용한 각자의 우주복을 최종으로 점검하면 공연의 막이 오를 준비가 끝나게 된다.

This is Ground Control to Major Tom
You’ve really made the grade
And the papers want to know whose shirts you wear
Now it’s time to leave the capsule
if you dare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우주비행사들에게 쏠리는 관심과 마찬가지로, 무대라는 우주 위의 비행사들에게 쏟아지는 집중도 어마어마하다. 각자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신촌 땅 아래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비행사가 지구에 보내는 메시지와 비슷하게 무대 위에서는 발 아래 모인 사람들에게 인사와 소개를 건넨다.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고요했던 신촌의 지하는 서서히 자신을 숨겨왔던 어둠을 걷어낸다.
그러고는 우주비행사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 광활한 우주의 신비로움을 자신이 살던 세계에 전하듯이, 땅 아래의 비행사들도 땅 위에서는 사소하고 외면받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용기내어 외친다. 바로 그 이야기들을 듣고 위로받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용기를 낸 비행사들의 외침에 빅뱅과 같은 폭발이 일어나게 되고 마침내 땅 아래 우주는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This is Major Tom to Ground Control
I’m stepping through the door
And I’m floating
in a most peculiar way
And the stars look very different today
For here
Am I sitting in a tin can
Far above the world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그냥 내 노력을 믿고 즐기면 되지 않을까?’
내가 하늘 위 우주를 여행한다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경외심을 느끼며 항상 올려다보던 별들이 나를 바라보며 검은 바다 속을 헤엄치는 모습에 사로잡힐 것같다.
신촌의 지하에 그런 별들은 없지만, 무대 위의 비행사들은 자신들을 비추는 조명을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살면서 듣기 힘든 함성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빛에 경외심이 들고 머리속을 떠다니던 음표들이 생각나지 않게 되겠지.
그런 당황스러움도 잠시, 비행사들에게는 준비한 것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이 순간을 즐기자는 마음이 생겨난다. 거대하고 고요한 우주 안에서 홀로 무엇도 할 수 없는 우주비행사지만, 그들에게는 우주선과 연결된 안전장치들이 달려있어 안심하고 임무를 수행하는것 처럼, 지하의 비행사들에게는 그동안 이 순간을 위해 연습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안전장치 처럼 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밧줄을 잡고, 비행사들은 무대에 몸을 맡겨 땅 위에서 밟히고 굴러다니던 이야기들을 모두에게 더 열정적으로 전달하며 움직인다. 관객들과의 도킹을 방해하는, 수많은 소행성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굴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 열정적인 유영이 끝나면 비행사들은 지상으로 돌아가고, 열기는 가라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촌 아래 작은 우주는 고요와 어둠속에 잠긴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가 여행해 주기를 한참을 기다릴 것이다.
Inspired by <Space oddity>
겨울이 오면
에디터 보라
너 기억나?
사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시작했잖아 우리.
손을 다 가리는 긴 니트들을 좋아하기도, 그 니트에 좋아하는 옷 여러 겹을 더해 입을 수 있는 것도.
낙엽 밟는 소리와 눈 밟는 느낌을 좋아하고,
얼어버린 아스팔트 길을 걸을 때 혹시나 넘어질까 무서워 조심조심 걷는 것까지. 손잡고 걸으면 같이 넘어질까 그때만큼은 꼭 따로 걸었잖아.
그렇게 소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좋아하고, 잘 맞는 우리가 난 너무 좋았어.

근데 한편으로는 무서웠어. 어느 날 갑자기 오는 노래처럼 왔기에, 길거리에서 많이 들어봤지만 플레이리스트에 넣어야겠다 생각이 든 적이 없던 그런 노래가 귀로 들어와 머리 속에서 내내 맴돌았기에.
그렇게 한참을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살며 매일같이 늘려지다 어느새 질려버려 가차없이 내쳐지고 마는 그런 노래처럼. 시작부터 우리의 결말은 정해져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저 사람들 뭐하는거야?
재개발 반대 시위하는거래. 평화적으로.
예술이다. 나도 나올래.
그러지 뭐. 너 수영복 있어?”
어느 날 갑자기 신촌 한복판에 노란 안전제일 표지판과 그걸 여러 번 돌려 돌려 막고 있는 노란 테이프들이 길을 막아버렸을 때 기억나? 난 솔직히 그게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어. 앉지 말라는 건 확실히 보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곳을 그렇게 막을 수는 없잖아. 나도 너에겐 그저 저 노란 테이프였을 거 같아 슬퍼지더라. 너가 거짓말하는 거, 알고도 정말 온 힘을 다해 모르는 척했는데. 생각해보니 넌 이미 내가 안다는 걸 알고 있던 거 같아.

“….괜찮겠지?
뭐가?
그냥 다.
안 괜찮은게 어딨어.”
내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넌 모든 게 쉬웠을까? 이미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붙이는 건 불가능이란거 알고 있었어. 그래도 어쩌면 가능하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 같아.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더이상 못하겠어서 떠난건 난데 왜 내가 남겨진 느낌일까?
겨울이 오면 -올 때마다- 너와 함께 걷던 곳, 너와 함께 봤던 영화, 함께 듣던 노래 계속 생각나겠지. 그리고 난 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그 곳에 갈 거 같아. 너가 없을 걸 알면서도.

재개발이 결정되었습니다.
윤영씨에게도 이주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추신.
미국에 꼭 한 번 가보는게 너 소원이었잖아. 뉴욕부터 LA까지 다 갈거라고. 라스베이거스 가서 돈도 막 써보고 거기서 결혼도 하자고, 할리우드 표지판 보는 건 상상만해도 너무 행복하다고. 뜬금없는 곳에 툭 서있는 아웃백 보면 항상 그 얘기였어. 전에 말했었는지는 알고있는지 모르는지. 말할 때마다 아이같이 행복해 보이는 너에게 그게 중요해 보이진 않더라.
근데 궁금하긴 하다. 아웃백이 왜 그 자리에 들어왔는지 넌 알아?
Inspired by <메기>
아이고 시다
에디터 황도

무얼 그리 빤히 바라보고
그러세요!
이쪽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제가 예쁘다는 걸
제가 먼저 알았다는 말이다.
– 나태주, “어여쁨” 전문
우리 사진 찍는 김에, 거울의 입사각과 반사각에 대해 고민해 볼까. 혹은 빛의 직진성에 대해 논해 볼까. 나처럼 네게도 가슴에 계절의 상(像)이 맺히었나 확인해 볼까. 서로에게 이뻐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더 어여쁜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여우비 같은 사람아, 밀려왔다 밀려가는 마음들아.
아, 네가 올 때면 허공에서 비누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나.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멀리서 빈다” 中
요즘 날씨가 하두 느자구가 없-드라 카네. 나오면 춥고 들어가면 덥다고 하도 그래싸는데 거 나보고 어쩌란 겨? 머시여, 뭐 염색? 아 그려 햇볕 색깔이여 이쁘지. 나이 먹고 주책은 무슨 다 그런 재미로 사는 거지 어따 대고 잔소리여. 하이고 귀청 떨어지겠다 이눔아 아직 귀 안 먹었어.
그려 추운데 잘 챙겨 먹고. 응 다음 달엔 얼굴이나 좀 비춰라. 아 바쁘다고?

햇빛이 너무 좋아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갑니다.
– 나태주, “그리움” 전문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데
흘러 넘친 감정들 돌아갈 때 잊지 말고 꼭 챙겨갑시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中
때때로 경계에 대해 묻곤 했다. 세상과 세상의 경계에 대해 곱씹어 보기도 했다. 그림자의 경계를 결코 만질 수 없음을 알고는 오후 내내 슬퍼하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이 우리의 경계에까지 미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캐묻지 않기로 했다. 그리곤 조용히 약속했다. 우리 사이는 경계 말고 지평(地平)이라 부르자고. 누구도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하게 하자고.
Inspired by 나태주 “어여쁨”, “멀리서 빈다”, “ 그리움”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당신의 과녁
에디터 욘
언덕을 올랐다.
‘행복하구만’

‘나 지금..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
나.. 난 진짜 복 받은 놈이야..
주신만큼 앞으로도 나쁜 짓 안하고 착하게, 늘상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22살 엽이가 소주를 들고 언덕을 올랐다. 달에게 거듭, 거듭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를 올렸다. 한 잔은 자신의 금슬좋은 부모에게, 한 잔은 사랑스런 애인에게, 또 한 잔은 아닌 척 하지만 서로를 위해주는 친구들에게.
22살의 나도 언덕을 올랐다. 소주병은 아니지만 에어팟과 핸드폰을 손에 쥐고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면 신촌 전경이 펼쳐진다. 하늘은 손에 닿을 것만 같고, 다른 사람들은 저 아래에서 열심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시선에서 오는 우쭐함에 괜히 기지개를 한번 켰다. 이런 위치에서는 감상에 빠지기 쉽다.

이 기분이면 뭐든 감사할 수 있지 않겠어? 나도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것들을 따로 구별할 것 없이 내가 걸어갈 저 아래의 골목까지도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 사람과 사람의 운명이 얽히고 섥혀 내 몸을 촘촘하게 둘러싸고 있는 바람과 달빛으로 와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이건 모두 운명이야.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은 다 정해져있다고. 그냥 편히 흘러가게 두라고 말하는 달에 대답하듯 가만히, 몇 분이고 서있었다. 왠지 모를 자유와 권태로움까지도 느껴졌다.
언덕을 내려간다.

엽은 언덕을 내려갔다. 그리고선 자신의 따듯한 심성으로 한 노인을 도왔다. 노인에게 감사의 표시로 받은 박카스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순식간에 연쇄살인범이 되어있었고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하늘에 등지는 순간, 엽이의 등에 잘못 조준된 운명의 화살이 꽂혔고 엽이는 과녁이 되었다. 신의 조준이 항상 정확한 것만은 아니기에.
나도 언덕을 내려간다.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곤, 그와 등을 진 나에게도 화살을 겨눌지 모른다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지. 땅과 점점 가까워질수록 건물 사이에 끼인 나의 현실이 보인다. 운명이란 거, 잘 모르지만 자그마한 것이라도 선택을 해야지만 나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주어진 두 개의 골목길 앞에 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른쪽 혹은 왼쪽.
오른쪽을 선택했다.
“어찌하여
..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17년만에 무죄로 풀려난 39살의 엽이는 복수를 결심했다. 17년동안 엽이라는 과녁엔 셀 수도 없는 화살이 날아와 꽂혀 있었다. 그 과녁은 넘치고 넘쳐서 엽이 사랑했던 사람들 또한 화살을 피해갈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이 그로 인해 비참하게 살아온 인생을 마주한 엽. 이제껏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다녔으나, 복수는 그의 온전한 선택이다. 진범이었던 노인은 아무런 가책과 질환 없이 자연사한 상황에서 엽이의 선택은?

나는 고민하다 오른쪽을 골랐다. 한 눈에 보기에도 더 깔끔하고 완만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늘의 존재는 금방 잊어버리고 오른쪽이 나의 온전한 의지인 것 마냥 또 걸어갔다. 그늘진 길을 편하게 걷다보면 내 인생이 내가 선택하고 이루어낸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착각에 빠져든다.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오른쪽 길을 걷다 보니 언덕길과 가파른 계단을 마주했다. 왼쪽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마치 왼쪽은 평안한 길이었던 것처럼 미련한 상상을 해보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해보면 뭐하나. 그래, 왼쪽은 더 끔찍했겠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지만, 억지로 과거에 인과성을 부여하는 것도 창피한 일이다. 갑자기 무언가가 몸을 옥죄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 발 더 내딛는 순간 그늘이 걷혔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햇살에, 아.
나는 이미 잘못 겨냥된 화살에 맞아버렸던 건 아닐까?
Inspired by <당신의 과녁>
하(下)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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