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모인 사람들: 40도 양주 마시고 -4도에 산책하기
‘40도 양주 마시고 -4도 산책하기’
뭐 이런 괴상망측한.
그걸 우리가 한다. 왜인지 버킷리스트에 적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하면서도 구미가 당기는 일을!
아, 미리 말해 두자면
필자는 겨울 산책 다음날 곧바로 감기에 걸렸다. 지금도 코를 훌쩍이며 적는 중.
그러니까 하려는 말은,
! WARNING ! 함부로 따라 하지 마시오.
우리가 대신 잔치를 벌여두었으니.
–
알코올 주세요. 고급으로.
살다가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알코올과 우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열두 시 땡 치고 스무 살이 된 기념비적인 날에도, 첫 실연의 아픔을 거창한 말로 달래볼 때도 우리 곁에는 늘 알코올이 있었으니.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고오-급’ 알코올이라 함은 대체 무엇인가?
처음 마셨던 초록 병 속 액체는 일단 패스. 그런 건 화학 폐기물이나 다름없다. 첫 감상부터가 그랬다.
이별 통보와 함께 했던 레드와인은? 애매하다. 분명 구리다고는 할 수 없는 술인데, 와인의 침전물에서는 구리구리한 냄새가 났다. 아니면 그때의 공기 자체가 구렸을 수도.
감히 단언하건대,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그날 홀짝였던 양주는 고오-급 알코올이 맞다. 증거를 몇 개 내보일 테니 줏대 있게 판단하시길.
- 속이 따뜻해졌다. (마음이 따뜻해진 건지, 식도가 따뜻해진 건지 헷갈릴 만큼.)
- 마시는 동안에도, 마시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술 덕분인지, 사람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 우리가 갔던 바(bar)의 이름은 ‘Day1’ 이다. 처음 알았는데, Day 1은 ‘좋은 시기나 나쁜 시기나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 사람’을 뜻한다고. Day1에서 Day1과 함께 했으니, 고급이 아닐 이유 없겠지.
나머지 증거들은 우리 모험기를 읽으면서 차차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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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40도 양주 마시고 -4도 산책하기’
Chapter 1. 술이 좋아 모인 사람들
Chapter 2. 양주와의 첫만남은 너무 어려워
Chapter 3. 저마다의 술술술: 각자의 술 이야기
Chapter 4. 헤어지자고? 나 지금 테이스팅 세트 시켰는데?
Chapter 5. 떠나요~ 잔꾼이서~ (with. 따뜻한 폭탄주)
Chapter 6. 이거 마시면 나랑 별 보는 거다?

Chapter 1. 술이 좋아 모인 사람들
삼식(언제나 배고픈 사람): 다들 밥 먹고 왔어?
쓱빡(오뎅 소믈리에): 오뎅 6개 먹고 왔는데.
초록(저격수): 아니 저번에도 오뎅 먹고 왔다며. 뭔 오뎅만 먹어?
이도(그냥 궁금한 사람): 어디서 먹었는데?
쓱빡(신촌 상권 쇠락의 주역): 신촌역 앞 포장마차에서.
글루(맞말 장인): 공학관 앞에서 먹고 왔어야지. 너 잔치 맞아?
정원(포장마차 전문가): 아 좀 서운한데.
쓱빡(대역죄인): 제가 잘못한 걸로 합시다. 그래도 같이 먹으려고 폼프리츠 사 왔어요.
글루(신촌의 화석): 그거 내가 사 오라고 했잖아.
쓱빡(에이스): 그래서 소스를 맛있는 걸로 사 왔어. 그리고 편의점 세 군데 뒤졌는데 프레첼은 이거밖에 없더라고.
[일동 물개 박수]

Chapter 2. 양주와의 첫만남은 너무 어려워
삼식(감자): 뭐 먹지…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쓱빡(학생 호소인): 선생님 있잖아. 물어봐.
이도(고구마):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원(제갈량): 그냥 이름 보고 맘에 드는 거 하나씩 안 겹치게 시키자.
쓱빡(코끼리): 나는 발베니 12년.
글루(돌고래): 글렌스코시아 18년? 이름 좀 맘에 드는데.
삼식(구관조): 토마틴은 토마토 맛이 나는 건가? 나는 토마틴 CS.
정원(제갈량): 나는 무난하게 몽키숄더.
초록(코카투): 꼬냑 먹어보고 싶은데 Rapper들이 먹는 헤네시 먹어볼까?
이도(침팬지): 처음 먹어보는 거면 까뮤를 추천함. 나도 그냥 납크릭 마실래.
글루(프로이트): 아니 근데 우리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좀 고능한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아.
삼식(카를 융): 원래 그런 거지 뭐. 재밌자고 하는 거잖아.

초록(SNS 중독자): 술 나왔는데 어떻게 찍지? 짠메랑 할까?
쓱빡(HMH): 하면 함.
정원(제갈량): 그래도 너무 없어 보이면 안 되니까 각자 거 먹어보고 향이나 맛 좀 적어보자. 나한테 종이 있어.
글루(우등생): 역시 다르다. 삼식이 근데 뭐 시켰더라?
삼식(감자): 나 무슨 토마토였는데 (메뉴판을 보고) 토마틴 CS.
초록(돌고래): CS가 뭐지? Customer Service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쓱빡(코끼리): 프랑스어인가?
이도(침팬지): Cask Strength라고 하는데 도수 조절을 하려고 물을 안 섞은 술이야.
정원(연세대학교 비교문학과): Cask의 Strength니까 통에서 나온 강도 그대로. 진짜 그런 뜻이 맞겠네.
글루(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역시 언니는 달라. 멋있다.
초록(개코): 아니 근데 내 거(까뮤) 너무 독한데? 무슨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겠어.
삼식(갑자기 똑똑해진 사람): 그거 포도로 만든 술이라며. 포도 냄새는 안 나?
초록(코카투): 아니 그냥 모르겠는데.
이도(고구마): 포도 껍질 냄새 같은 거 안 나? 원래 달달한 냄새랑 같이 강하게 나는데…
글루(프로이트): 줘 봐. 포도 껍질 냄새는 잘 모르겠고 포도 졸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초록(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아니 포도 껍질라이팅 때문인가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 뭐 스월링? 해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
이도(침팬지): 글킨 함. 향 좀 끌어올리려면 조금 놔두는 게 좋긴 해.
정원(제갈량): 보통 숙성연수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데, 공기랑 접촉시켜 주면서 향 달라지는 것을 관찰하면 좋다고 하더라고.
쓱빡(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그냥 각자 종이에 써보고 나중에 공유하는 걸로 하자.

글루(유재석): 근데 정원 언니는 몽키숄더를 딱 시킨 이유가 있어?
정원(인사이더): 나는 친구들이랑 20살 때 바를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위스키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거든. 그 친구가 이걸 시켰는데 뺏어 먹었더니 너무 맛있는 거야. 그래가지고 나중에 먹어봐야지 했는데 한 번도 먹을 일이 없었어. 그래서 오늘 시켜봤어. 너희는 바 같은 데 자주 가?
쓱빡(빠니보틀): 나는 일본에 가서 혼자 여행 다니면서 바를 가봤는데 너무 좋았어. 근데 한국에선 아직 많이 안 가봐서 앞으로 가볼려고. 다들 어떤 술 좋아해?
글루(농부): 지금 양주 먹으면서 할 얘기는 아닌데 나 요새 약간 막걸리 좋아해.
삼식(프로파일러): 좋아하는 막걸리 있어?
글루(농부):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등산 갔다가 내려와서 딱 밤 막걸리를 마시는데 너무 맛있는 거야. 그때가 한창 가을일 때였는데 계절에 따라서도 약간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 삼식이는 술 자주 마셔? 혼술 같은 것도 하나?
삼식(밀수꾼): 나는 우리 집이 엄청 기독교란 말이야. 그래서 술 가지고 들어오는 거 걸리면 진짜 큰일 나. 그래서 집에서 대놓고는 못 마시고, 집 들어올 때 패딩에 막 숨겨서 공부한다고 하고 방문 잠그고 먹고 그랬어.
초록(국세청): 근데 쓰레기로 다 걸리지 않아?
삼식(밀수꾼): 들킨 적 없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캔을 씻어. 그런 다음에 분리수거하는 거야. 집에서 나갈 때 같이 가지고 나가고.
초록(국세청): 대단하네. 그럼 공부하면서 술을 마신 거야? 생각해 보니까 저번 중간고사 시험 기간에 공대 친구가 술을 마시고 수학을 풀면 잘 풀린다고 하긴 한 것 같네.
쓱빡(아인슈타인):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데? 나도 저번에 시험 준비하면서 미시경제학 풀다가 못 해 먹겠다 싶어서 연희동 편의점에서 맥주 사와서 풀었는데 그냥 잤어.
삼식(오펜하이머): 1학년 때 뇌인지과학 전공 수업을 들었거든. 그냥 막 재밌어 보여서 남의 전공 들은 건데, 거기서 공부할 때 술을 먹으면 시험 볼 때도 술을 먹고 보는 게 맞다고 하더라. 오빠도 시험 볼 때 술을 먹고 했었어야지.
쓱빡(살짝 아픈 아인슈타인): 그 생각을 못 했네. 다음엔 텀블러에 담아가서 마시면서 해야겠다. 술은 금지 아니잖아? 도핑도 아니고.
글루(판사): 맞지. 운동선수도 아니고.
정원(브레이킹 배드): 근데 그 스티브 잡스가 했던 천재 되는 마약 있잖아. 그런 거 하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이도(나르코스): LSD? 맞나? 솔직히 그거 하고 스티브 잡스처럼 되는 거면 할 만하다.
초록(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멕시코 갱단): 월스트리트 사람들도 많이 한다더라. 근데 혼술 얘기하다가 왜 여기까지 왔지?
이도 오빠도 혼술 해?
이도(그라가스): 술 모으는 게 약간 취미라, 비싼 술은 아니고 이것저것 있어. 친구들이랑도 같이 먹고 혼자 먹기도 하고.
글루(유재석): 신촌에서 가장 좋아하는 술집은 어디야?
쓱빡(백종원): 저는 너무 프랜차이즈이긴 하지만 리춘시장을 제일 좋아함.
정원(정지선): 맛있긴 하지.
쓱빡(백종원): 여기 중화 허니콤보가 맛있어. 마라탕도 맛있고.
이도(안톤 이고): 근데 중화 허니콤보면 도대체 무슨 맛이야? 허니 콤보랑 중화랑 너무 생소한데?
쓱빡(백종원): 막 불맛, 매운맛이 나진 않고 그냥 맛있어. 나중에 한 번 먹어봐
정원(개츠비): 나는 틸트(Tilt)라고 친구가 알바하는 바가 있는데 거기를 자주 가긴 해. 되게 아늑한 분위기고 좋더라고.
이도(새내기 호소인): 나는 씽킹인사이드더 박스. 처음으로 친구들이랑 칵테일 먹은 곳이기도 하고 제일 많이 갔어.
삼식(정철): 나는 포석정. 친구들이랑 놀러 갔을 때 너무 재밌었던 기억이 있어서 영원히 그 기억을 안고 가고 싶어.
초록(파티플래너): 잔치도 다 같이 한 번 가자. 다음이 벌써 마지막 총회 아니야.
Chapter 4. 헤어지자고? 나 지금 테이스팅 세트 시켰는데?
삼식(당러버): 와 근데 정원 언니가 가져온 초콜릿 진짜 맛있다.
정원(아낌없이 주는 나무): 많이 먹어. 아직 많이 남았어.
이도(그라가스): 근데 우리 다 마신 것 같은데 하나씩 더 시킬까?
정원(제갈량): 우리 테이스팅 세트로 하나 시켜서 나눠 먹자. 4개 고를 수 있잖아. 뭐 시키지?
이도(안톤 이고): 여러 가지 먹어보려면 스카치 위스키 2개랑 버번 위스키 하나, 꼬냑 하나 시키면 좋을 듯.
삼식(고골리 저격수): 기원(고골리)* 좀 궁금한데 시켜보자.
초록(고골리 담당일진): 좋다. 최대한 비판적으로 평가해 보자. 꼬냑은 아까 까뮤 먹어봤으니까 헤네시 하면 될 거고.
쓱빡(코끼리): 버번은 그냥 이름 예쁜 거. 와일드터키 어때?
이도(바텐더 호소인): 그거랑 사장님이 피트향** 느껴지는 스카치 위스키로 라프로익하고 아드벡 중에 고르면 좋다 하셨으니까 그것만 고르면 되겠다.
글루(관상가): 라프로익으로 가자.
*잔치의 에디터 고골리의 본명은 최기원이다.
** 피트향: 피트(Peat)라는 석탄 비슷한 연료로 위스키의 원료인 맥아를 건조할 때 입혀지는 향. 흙, 인센스, 재,훈연향 등으로 표현된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라프로익(40도), 와일드터키 12년(50.5도), 기원(40도), 헤네시(40도).
삼식(산타클로스): 근데 이제 크리스마스가 거의 다가왔잖아. 연말 느낌으로 크리스마스 때 추천할 만한 술이 있어?
이도(바텐더 호소인): 에그노그? 가 원래 크리스마스 술인 걸로 아는데.
정원(미국 거주 경험 有): 맞아. 근데 한국에서 재료 구하기가 어렵긴 할 거야.
삼식(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로 해봐야겠다.
사장님: 라프로익, 기원, 와일드터키 12년, 헤네시 나왔습니다. 라프로익하고 와일드터키 향이 강해서 먼저 기원하고 헤네시 드신 후에 먹어보시면 좋을 거예요.
초록(꼬냑 졸업반): 헤네시가 훨씬 낫다. 근데 아까 꼬냑 처음 마실 때는 알코올이 강력하게 느껴졌는데 토마틴 CS 같은 57도짜리 술 마셔보고 그러니까 하나도 세지 않게 느껴져.
이도(최현우): 포도껍질 향은 어때?
초록(최면 걸린 사람): 하도 그렇게 말하니까 이제 느껴지는 것 같아.
삼식(고골리 저격수): 기원 마셔볼게.
초록(고골리 담당일진): 필터링하지 말고 할 말 다 합시다.
삼식(고골리 저격수): 이 기원이라는 작자는 향이 좀 약한데, 많이 빈 느낌.
글루(행동대장): 알맹이가 없다. 아직 어려. 고골리는 각성하라.
쓱빡(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선배): 고골리, 좀 더 커서 와라.
이도(안톤 이고): 향이 좀 약하고 나무 빤 물같이 밍밍한 맛이 있음.
정원(최강자): 캬라멜 맛이 한 번씩 나긴 하는데 가운데가 텅텅 비었다. 최기원은 좀 더 익어라. 고개를 숙여라!
쓱빡(빠니보틀): 와일드터키도 마셔보자.
정원(최현석): 오 좀 세다. 근데 확실히 향이 강하네. 캬라멜 향이 강하게 나고 달아.
초록(에드워드리):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얘가 가장 맛있는 듯.
이도(자칭 버번 애호가): (매우 흐뭇함)
글루(콜럼버스): 라프로익은 진짜 세다. 지금까지 마신 것 중에 가장 강력한 향인 것 같아.
삼식(나폴리맛피아): 캠핑장 냄새. 나무 향이 너무 세서 매력적이라고는 못할 듯.
쓱빡(안성재): 와 진짜. 훈연향이 정말 센데? 처음으로 느꼈어. 나무 타는 냄새.
이도(자칭 버번애호가): 정말 내가 싫어하는 냄샌데 한 잔 다 마시면 토할 것 같아.
초록(에드워드리): 병원에서 나는 냄새. 빨간약 냄새? 랄까. 근데 머리 아프긴 해. 멀미 느낌. 이거 많이는 못 먹겠다.
정원(제갈량): 이제 다 먹어봤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우리 산책도 해야 되잖아. 슬슬 나갈까?
이도(갑자기 침팬지에서 벗어남): 우리 각자 맡은 향, 맛 기록한 거 놓고 사진 한 번 찍고 가자.

Chapter 5. 떠나요~ 잔꾼이서~ (with. 따뜻한 폭탄주)
쓱빡: 어느 코스로 가지? 대충 신촌역까지 찍을까?
글루: 아니 근데 경숲길은 너무 멀지 않아?
초록: 아 몰라. 그냥 공덕까지 가자.
정원: 공덕은 우리 공멸이야. 다 같이 얼어 죽어.
초록: 그냥 거기 분위기가 좋아서.
쓱빡: 근데 그쪽 가는 길이 낫긴 한데, 그럼 대흥까지 가서 꺾을까?
삼식: 대흥 갔다가 다시 신촌으로 와.
글루: 얼마나 걸리려나?
이도: 한 20~30분 걸릴 것 같은데…
정원: 고민할 시간에 그냥 가자.
삼식: 맞아. 이제 더 있으면 잘 것 같아.
초록(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 근데 우리 혈중알콜농도가 좀 낮은 것 같아. 편의점에서 뭐 좀 더 사갈까?
이도(참스승): 맞긴 해. 근데 편의점에서 사면 차가운 것밖에 없잖아. 마무리로 술 하나 사서 따뜻한 거에 섞자.

폭탄 제조 현장, 핫초코와 발렌타인 위스키를 섞어 만든 우리만의 칵테일
Chapter 6. 이거 마시면 나랑 별 보는 거다?

서강하늘다리(경의중앙선 서강대역)
정원: 와, 이쪽은 거의 처음 와 보는 것 같은데 한적하고 좋네.
초록: 신촌 쪽에선 거의 별이 안 보이는데 여긴 진짜 잘 보인다.
글루: 뭐야 여기 이도 오빠 글에 나왔던 곳이잖아. 완전 이도 성지순례 데이네.

작위적인 웃음 집합
삼식: 그러게, 별 진짜 잘 보인다. 저거 오리온자리 아닌가?
글루: 오, 맞는 것 같은데?
정원: 나 갤럭시인데 별자리 한 번 볼까? [핸드폰을 꺼낸다] 오 맞네 저거 오리온자리야.
초록: 저 빨간 거는 뭐지?
정원: 화성이라는데?
삼식: 달은 어딨어?
정원(윤동주): 이미 내려간 것 같은데? 근데 우리가 태양을 밟고 서 있네.

이도: 멋있는데?
초록: 와, 근데 갤럭시에 이런 기능 있는 거는 좋다. 컨셉 맞추려고 마케팅 담당자가 넣은 건가?
이도: 역시 경제학과는 달라.
쓱빡: 그래서 우리 공덕 가는 거야?
글루: 아니 저 추워요.
초록: 추울려고 온 거잖아요. 갑시다.
글루(4달라): 대흥으로 합의하실까요?
초록: 좋습니다.
삼식: 대흥역에서 이대까지 얼마나 걸리죠?
초록(사기의 귀재): 20분?
이도(보이스피싱 마스터): 대흥에서 서강대 후문까지는 5분 걸려요.
삼식: 아니 45분 걸리잖아요. 괴상한 사람들이네.
초록: 그냥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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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기도 많이 서툴렀다.
처음 마셨을 땐 웩, 이게 뭐야, 같은 소리만 나왔다. 끽해야 16도 정도 되는 소주를 들이키며 나도 이제 어른 다 됐다 싶었는데, 아득히 먼 차원의 세계가 있었다. 양주가 낮게 깔린 잔을 들고 고갤 숙여 코를 킁킁대기만 해도, 훅 끼쳐오는 알코올 향에 금방이라도 취할 것 같은 기분. 눈이 아릴 정도로 독한 기운을 스멀스멀 풍기는 만화영화 최종 보스 같은 포스에 놀라기도 했다. 향만 맡고도 어느 지방, 어느 농장에서 온 친구인지 척척 맞추는 이들은 코에 센서 칩을 심어넣은 미래 인간인가. 어찌하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이제 비강을 통해 화학 분자를 탐지하는 일은 그만 두고, 미뢰로 받아들일 차례였다.
조심스럽게 잔을 들고ㅡ 그렇게 천천히ㅡ 입술 사이로 흘려 보낸다
홀짝
낯선 느낌. 단순히 속이 뜨겁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보이지도 않는 몸속 소화 기관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지며 천천히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혀와 볼을 감싸면서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 25cm의 식도를 지나, 비로소 위로 도착하는 용암 같은 갈색빛 투명한 액체. 누구 말로는 이 1ml의 액체가 지금 어딜 지나고 있는지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나 뭐라나. 재밌는 표현에 웃으면서도 아무에게도 내 속마음을 들키기 싫은 날에는 먹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조금만 마셔도 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내 마음을 줄줄 읊어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제대로 마셔보자 다짐했다. 함께한 모든 이들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었기에.
잔을 둥글게 스월링 하며 공기와 섞고, 그에 따라 변모하는 맛과 향을 경험한다. 신기했다.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전에 머금었던 것과는 또 다른 향미를 내뿜어내다니. 잔은 빙빙 돌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대화도 풍성해진다.
그렇게
점점
빠져든다
…
이들과 처음 만났던 날도 처음 양주를 마셨을 때와 같았다
낯선 느낌
새로운 사람들
내가 살던 곳과는 조금은 다른 차원에서 온 듯한
아직은 서로를 잘 몰랐던, 그런 때가 있었더랬다
그런데, 같은 공기를 들이쉬고, 섞이고 또 섞이다 보니 이상하게 머리가 저릿할 정도로 좋았다
서로가 뒤섞이며 서로의 향미를 끌어올려 준 덕이겠지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이 청명한 하늘 아래서
있는 힘껏 고개를 꺾어 모든 반짝임을 눈에 담아내고
우리는 저기 손 잡고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자리 아닐까?
같은 유치한 소리도 해본다
뒤늦게 올라온 취기 탓인지
함께 나눈 온기 덕인지
우리는 시린 밤공기에도 얼어붙지 않고 참 씩씩하게도 행진했다
갈색 액체도, 함께 길을 걷는 이들도, 눈앞에 펼쳐진 우주도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40도의 양주를 마시고
-4도의 거리를 걷자
찬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다 못해
달덩이같이 환한 얼굴들을 감싸 안을수록
우리는 태양보다 뜨거운 마음을 나누며
더 맑고 밝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쓱빡, 글루, 삼식, 초록, 이도, 정원, 그리고 잔치
2024년 겨울 초입 술꾼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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