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SF&판타지 도서관
생각해보면 이만한 방공호가 있을까 싶다. 전(前) 대통령이 두 명이나 살고 있어 뭔가 안심되는 연희동, 눈에 띄는 간판도 없어 여기에 있는 건 맞는 걸까 싶은 접근성, 위로 올라오는 적들을 일망타진해줄 것만 같은 아래층의 특전사 환경연합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몇 날 며칠 갇혀 있어도 전혀 지루할 것 같지 않은 무수한 SF&판타지 재원들.

먼저 인정을 해야겠다. 나는 사실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아지나 고양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나 자전거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에는 굳이 고백의 형식을 빌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SF와 판타지의 경우에는 뭐랄까, 얘기하기 전 한 템포 속으로 삭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에디터가 어느 모로 봐도 레너드나 하워드처럼 하고 다니지는 않더라도, 내 취향을 밝히는 순간 준수한 여대생의 기준에서 벗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인정을 해야겠다. SF&판타지 도서관은 에디터처럼 SF와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덮어두고 환장할 만한 곳이며, 평소 SF와 판타지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면 샘솟는 흥미를 선사해줄 곳이라는 것을. 열람실을 빼곡히 채운 책들은 각종 SF만화책, 판타지 소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옛 만화 잡지들로 구성되어 이용자로 하여금 넋 놓고 이 책 저 책 쓸어 담아 자리에 앉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에디터는 도서관 방문 첫 날, 취재를 위해 들고 간 카메라는 까맣고 잊고 미친 듯이 <신세기 에반게리온> 전권을 읽어버린 것이다.

무시무시한 도서관이다
아무리 “도서관”이라지만, 당연히 입장료도 내고 회원비도 내고 시간당 얼마로 계산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곳은 정말 “도서관”다운 “도서관”이었다. 대출 등의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싶다면 회원비를 내고 정기 회원이 되어야 하지만,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것은 이름과 연락처만 상납하면 나오는 회원증으로 무제한 이용 가능한 것이다. 마치 만화카페를 공짜로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면 이해가 빠를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 곳이 SF와 판타지”만”을 취급하는 전문 도서관이라는 점. 학교 도서관이나 공립 도서관에 가면 목적 도서(?)가 아닌 책들은 헤치고 제치고 원하는 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곳은 특정 장르의 도서들이 응집해있는 곳이기 때문에 대충 아무거나 때려잡아도 내 취향의 재미를 보장해주는 굉장한 곳이다. 어린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흥분 상태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처럼, 이 곳에서는 온갖 책들에게 둘러싸여 뭘 읽어야 할까 고민하는 “어쩔 줄 모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취향의 중력에 깔려버렷

책 읽으면서 음료도 마실 수 있붸에ㅔ
이 도서관에서는 비단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SF와 판타지를 즐길 수 있다. 로비에는 어느 만화 혹은 영화에 등장했던 것만 같은 깜찍한 피규어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정말이지 <빅뱅이론>에서나 보던 TRPG 게임과 보다 친숙한 보드게임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상영관과 회의실을 빌린다면 모임의 목적에 맞게 강연을 할 수도, 회의를 할 수도, 상영회를 열 수도 있다. 도서관 차원에서 특정한 주제를 잡아 상영회를 열기도 한다. 다가오는 토요일에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개봉에 경건하게 준비하기 위한 <어벤져스>시리즈 밤샘 상영회가 예정되어 있다. 물론 본인 소유의 게임이나 DVD를 들고 오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방음에는 주의하자. <모리아 던전>회의실을 빌린 소녀들이 EXO의 판타지를 영상으로 즐기면서 낸 괴성은 윗집 아주머니까지 내려오게 만들었으니.

이건 overdose!
SF&판타지 도서관의 전홍식 관장은 SF와 판타지의 매력 중 하나를 “가능성”으로 꼽았다. 아,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라는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에디터에게 이 도서관은 그 무한한 가능성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보였다. SF와 판타지를 누릴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통해, 아, 이렇게도 SF를, 판타지를 즐길 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곳.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어쩌면,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취미를 공유하고 있으리라 짐작하게 해주는 곳. 그래서 우리의 삶이 이토록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곳. 빛나는 가능성을 한껏 품은 채, SF&판타지 도서관은 오늘도 새로운 모험가, 아니 이용자를 기다리고 있다.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29 중앙빌딩 3층
연락처 : 070-8102-5010
운영 시간 : 수~금요일 – 14:00~20:00 pm, 토, 일요일 – 13:00~21:00 pm
홈페이지 : http://www.sflib.com/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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