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혼자특집 1 – 미분당, 피망과토마토
모든 혁신가는 홀몸이다. – G. 무어
우리나라에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말하는 이의 의도와 맥락을 반영해서 영어로 번역하면, 아마 ‘see you next time’이 될 것이다. 진짜 식사 같이 할 생각도 없으면서 저런 표현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는 잘 모르겠다만, 이 상투적인 작별 인사에서 ‘밥’이라는 개념이 간접적으로 만남의 수단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둘 이상이 모여 외식하는 경우가 많으니 혼자 나가서 뭘 먹으려 하면 덜컥 겁이 나고 남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어떻게 혼자 밥을 먹지. 누가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보면 오히려 혼자 밥을 못 먹는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음식이 들어가는 입도 나의 입이요, 식도부터 위와 소장 등 모든 소화기관들도 전부 나의 것인데 갓난아기가 아니고서야 혼자 밥을 먹을 수 없는 이유가 있겠는가! 만약 나의 십이지장이 내 친구 몸 안에 있었다면, 절대 혼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소화기관은 오로지 본인의 주관 하에 작동하잖아? 그러므로 오늘은 혼자인 님들을 위해 신촌에서 혼자 재미나게 노는 법을 알려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혼밥의 성지 미분당에서는 절간 같은 고즈넉함과 결코 섭섭하지 않은 양의 1인분을 체험할 수 있다.
나는 지난 여름 여러분 중 상당수가 미분당의 쌀국수 맛을 소문으로만 들어보고 직접 가본 적은 없어서 허구한 날 주변 사람들한테 거기 어떠냐고 물어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떠긴 뭘 어때. 양 많고 맛도 좋지.
덕분에 준비시간이 끝나고 5시부터 저녁 손님을 받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친구 여럿과 함께 이 곳을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칠듯한 인기를 자랑하는 이 쌀국수집은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혼밥 문화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일본의 1인식당을 닮았다. 대뜸 들어가면 안 되고 우선 가게 앞에 있는 자동발매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를 미리 해야 한다. 줄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직원이 나와 에스코트를 해 준다. 아담한 규모의 가게에 들어가면 가운데 부엌에서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고 손님들은 회전초밥집에 온 것처럼 그 주변에 빙 둘러앉는다.

혼밥러를 굉장히 많이 배려한다는 점이 느껴지는 안내서. 떠들면 안 돼요!
첫 방문이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단연 스테디셀러 베스트셀러 아무튼잘팔려 ‘차돌박이 양지 쌀국수’를 시키면 된다. 그만큼 믿음직한 요리란 말씀! 분명 차돌박이라는 기름진 부위가 들어가는 국수인데, 고기도 육즙을 잃지 않고 국물도 탁해지지 않은 기묘한 마법국수다.

에블바리 푸쳐 챱스틱!!!!!!!!!!
혹시 미분당 문지방 깨나 밟아 봤는데도 매번 양지 계열 쌀국수만 시켜먹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해산물 쌀국수를 시켜보라고 은근슬쩍 추천해 보고 싶다. 홍합의 양이 도가 지나치게 많은데 자꾸 이렇게 나오시면 몹시 감사한 수준이다. 맑은 국물에 매운 고추로 칼칼함을 연출한 백짬뽕을 평소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정확히 취향을 저격할 것이다.

홍합 밑에 국수 있어요
※ 꿀팁: 추석 연휴기간동안 2호점이 정상적으로 영업한다! 민족 대명절(혹은 가을방학)을 신촌에서 홀로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미분당에서 뜨끈한 쌀국수 한 그릇 뚝딱하시오.
혼놀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피망과 토마토에서는 각종 만화와 심리적 안정 그리고 혼술의 기회를 제공한다.
사실 만화카페 피망과 토마토(애칭 피토)는 이미 잔치에서 한 번 다룬 적 있는 플레이스다. 풍성한 만화책, 쾌적한 실내 환경, 아늑하면서도 유쾌한 분위기가 삼박자를 이루는 신촌의 소듕한 아지트로, 피토의 치명적인 매력에 사로잡힌 現 잔치 편집장은 유머러스하신 사장님과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피토 VVVIP 고객이다. 이 곳을 두 번째 다루게 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한 번만 권하기에 너무 섭섭할 정도로 멋진 곳이어서. 꼭 가라 두 번 가라
- 가구 위치뿐만 아니라 요금제도 바뀌었으므로 정보 업데이트가 필요해서.
- 위에서 언급한 VVVIP 편집장이 혼놀하기 딱 좋은 곳이라며 압력을 넣었기 때문에.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을 반기는 가게의 bgm은 블루스였다. 개편 전에는 시간당 이용료를 받았으나 요새는 아무 음료나 한 잔 시키면 나갈 때까지 이용시간이 무제한이므로, 음료를 골라서 원하는 자리에 앉아 신나게 만화책을 보면 된다. 섹시함 그 자체인 진한 가지색 소파에 앉을까 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소녀의 다락방 같은 자리가 있어 담요를 하나 챙겨 그리로 이동했다.
음료마다 다르다는 전용 잔에 네모반듯한 얼음을 담아 사장님이 자리로 서빙하러 오신 시점에서 bgm의 장르가 하드 밥으로 바뀌었다. 피토에서 마실 수 있는 음료로는 오렌지주스나 에이드 같은 착한 음료부터 해서 머리가 맑아질 듯한 차도 있고, 결정적으로 머리가 탁해질 것만 같은 ★맥주★도 제공된다. 사장님께서 체리 맛이 나는 맥주를 적극적으로 권하셨는데 ‘지금 낮이어서요…’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니 ‘전 낮에 이미 마셨는걸요!’라는 모범 답안을 말씀하셨다………
그렇다. 혼술과 혼놀을 겸할 수 있는 곳에서 혼술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하는 것은 온건적 친알콜파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홍빛이 영롱한 이 맥주의 맛은, 비유하자면 닥터 페퍼의 훨씬 사랑스러운 버전이다. 체리에 대한 안 좋은 추억 같은 것만 없다면 누구나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무슨 만화를 볼지 정했다면 이제 시간을 달려서 계속 읽으면 된다. 참고로 소녀 다락방에서 필자가 고른 만화책은 네온비&캐러멜 작가의 웹툰 ‘다이어터’의 단행본으로, 다이어트 의지 따윈 개나 줘 버린 시점에 읽어도 참 재미있다.

다이어터는 이 유명한 짤의 원출처기도 하다.
※ 꿀팁: 피토는 추석동안 이틀만 쉬고 9월 16일 불타는 금요일부터 정상영업한다. 소중한 불금 당신의 엉덩이를 만화카페 마약소파에서 불태워보는 건 어떠실지.
편안한 마음으로 눈 앞의 한 끼 식사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혼밥의 미학이다. 같이 간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가고 싶은 곳 가서 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 혼놀이 주는 즐거움이다. 혼술은 솔직히 단독으로 술집에 입장해서 거나하게 취해버리면 위험할 수 있는게 현실이지만 분명 자기 기분과 그날의 컨디션에 맞는 호흡으로 음주할 때의 색다른 감회가 있다. 얼마 전엔 ‘혼공’이라는 신조어를 알게 되었다. 혼자 공부하기의 준말이라는데, 공부는 원래 혼자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혼자라는 키워드가 붙는 행사가 점점 다양해지는 걸 보여주는 한 예시인 듯하다. 점차 ‘혼자 xx하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하는 오늘날 신촌 땅 위에 발 딛은 혼자 여러분, 당신만의 시간을 한껏 즐기세요.

미분당
주소: 서대문구 연세로5다길 35
영업시간: 11:00~21:00 (Break time 15:00~17:00)
차돌박이 쌀국수 7000원, 양지 쌀국수 7500원

피망과 토마토
주소: 서대문구 명물길 27-21 2층
영업시간: 매일 12:00~24:00
오렌지주스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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